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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K-뷰티 부흥기 왔다 2년 만에 주가 20배 뛴 이곳은?
입력 : 2025.02.20 17: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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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대표 브랜드사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과거 2010년대 중국 시장을 개척하며 K-뷰티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5년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부임했던 당시 주가가 3만원대였으나 중국 시장에서의 K-뷰티 인기와 고속 인수합병(M&A)이 진행되면서 2015년 주가가 100만원을 넘어섰다. 한때 코스피시장에서 ‘황제주’ ‘황후의 주식’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의 성장이 주춤하자 주가는 불과 1년도 안 돼 반토막이 나면서 제1차 K-뷰티의 부흥기가 막을 내렸다. 2022년 이후엔 고금리 등으로 인한 거시경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꺾이자 K-뷰티는 투자자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인 현재 K-컬처의 물결을 타고 제2차 K-뷰티 부흥기가 도래했다. 대형 화장품사의 고급 브랜드가 아닌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인디 화장품사의 중소형 브랜드 제품들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 K-푸드, K-팝, K-패션·뷰티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명동에서도 한국 화장품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다양한 인디 브랜드들이 직접 명동에 오프라인 가게를 열어 화장품을 판매하는 한편 K-뷰티 제품들을 한데 모아 파는 올리브영도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화장품을 쇼핑하고 있다. ‘조선미녀’ 브랜드에서 나온 맑은쌀 선크림을 카트에 쓸어담는 인도인부터 ‘메디힐’ 티트리 에센셜 마스크팩 10매 묶음을 담는 일본인, ‘브이티코스메틱(브이티)’의 에센스 제품인 리들샷 100을 대량 결제하는 중국인까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K-뷰티에 열광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자본시장 참여자들도 K-뷰티 회사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국내 상장사들은 주식시장에서, 비상장사들은 M&A 시장에서 K-뷰티 회사들이 활발하게 거래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올리브영 매대에 진열된 VT 리들샷 제품. K-뷰티 주식 수익률 ‘폭발’국내 주식시장에선 실리콘투로 대변되는 글로벌 화장품 유통 플랫폼사와 브이티 등의 중소형 브랜드 운영사, 코스맥스, 한국화장품제조, 코스메카코리아 등의 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들이 큰 주목을 받으며 주가가 크게 뛰었다.
실리콘투는 K-뷰티 역직구 플랫폼인 ‘스타일코리안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중소형 화장품 브랜드사에 오픈마켓 운영 대행, 위탁 배송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데 조선미녀, 코스알엑스, 라운드랩 등의 브랜드들이 실리콘투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도매 사이트를 통해 고객사들이 실시간으로 재고와 단가, 주문 배송 일정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중소형 화장품사들이 실리콘투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기 용이해졌고 이는 실리콘투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실적과 주가가 모두 좋아졌다. 실리콘투의 매출액은 2019년 649억원에서 2023년 3429억원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6.85%에서 13.94%로 올라갔다. 2021년 9월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실리콘투는 상장 후 2500원대 주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6월 5만4000원대까지 상승했다. 자그마치 주가가 2년여 만에 20배 넘게 뛴 것이다.
모공보다 얇은 미세침이 피부에 침투해 흡수·재생 효과를 키운다는 ‘리들샷’ 에센스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자 리들샷 에센스 제조사인 브이티도 주식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년 전인 2023년 1월 5000원대인 주가는 현재 3만원대로 올라간 상태다.
현재는 브이티의 리들샷 100, 300 에센스 제품 외 시카 데일리 수딩 마스 등도 인기를 끌면서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데일리 수딩 마스크는 브이티 시카 라인 제품 중 하나로 호랑이풀로 알려진 병풀추출물이 함유돼 있어 피부 진정 성분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유럽과 러시아, 중동 등지에서도 올 1분기부터 리들샷 판매가 본격화될 예정”이라며 “브이티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과 국내 시장에서도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처럼 K-뷰티 산업이 글로벌 선두에 서 있다는 평가가 시장 안팎에서 나오자 투자업계의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일부 기업들의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쳤지만 향후 디레이팅(평가절하) 구간을 지나 실적과 주가가 모두 회복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지난 한해 동안에도 한국화장품제조(120.94%), 펌텍코리아(81.63%), 코스메카코리아(52.34%), 아이패밀리에스씨(42.09%), 코스맥스(17.96%) 등은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메리츠증권은 높은 실적 가시성과 낮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매력이 돋보이는 화장품 OEM, ODM 업체를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화장품 제조 기업 가운데 최선호주로 코스맥스를 꼽았다. 화장품 브랜드·유통 기업 가운데선 실리콘투의 성장성을 가장 높게 봤다.
박종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스맥스는 세계 1위 화장품 ODM 업체로 K-뷰티 글로벌 확대 수혜 폭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내 생산량은 지난해 7억 8000만 개 규모로 직전해 대비 1억 3000만 개 증가했고 올해도 20% 이상 증가하면서 중장기 성장 여력을 높일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실리콘투는 코스맥스와 함께 K-뷰티 글로벌 확장의 최대 수혜 업체가 될 것”이라며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중국 사업에서의 수익뿐 아니라 매출이 본격적으로 개선되고 미국, 일본에서의 중소형 브랜드들이 성장이 나타나면 실적과 주가가 모두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M&A 시장 나온 기업들에 ‘군침’M&A 시장에서도 K-뷰티 기업들은 인기 매물로 꼽히고 있다. M&A 시장 자금이 메마른 상황이지만 지난해 다양한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새 주인을 맞이했다.
영국계 사모펀드 CVC캐피탈은 라운드랩 브랜드 운영사인 서린컴퍼니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라운드랩은 ‘1025 독도 토너’ 제품이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자작나무 수분, 집중진정 소나무 시카, 비타 나이아신, 동백 콜라겐, 약콩 판테놀 라인 등을 선보이며 제품군을 다각화했다.
마녀공장 클렌징오일, 라운드랩 독도 토너 라운드랩 제품들은 특히 2030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올리브영에서 진행한 ‘2024 올리브영 어워즈’ 스킨/토너, 선케어, 클린뷰티, 글로벌 트렌드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국내 대표 K-뷰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CVC캐피탈이 제시한 인수 희망가액은 약 80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케이엘앤파트너스는 엘앤피코스메틱이 보유한 마녀공장 경영권 지분 51.87%를 약 1900억원에 인수한다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엘앤피코스메틱은 메디힐 ‘BTS(방탄소년단) 마스크팩’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2018년 마녀공장 지분 약 70%를 인수하며 독보적으로 성장해왔다. 마녀공장은 코로나19로K-뷰티 업계가 불황이었던 2020년에도 연 매출 393억원을 달성, 2021년 626억원, 2022년 1018억원으로 그 규모가 점점 확대됐다. 주력 품목인 클렌징, 기초케어 제품의 판매량이 증가한 덕분인데 특히 ‘국민 클렌징 오일’로 불리는 퓨어 클렌징 오일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케이엘앤파트너스는 마녀공장의 해외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외에 메디필, 더마메종 브랜드사인 스킨이데아는 모건스탠리PE(프라이빗에쿼티)가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67%를 약 1000억원에 인수했다. 조선미녀 브랜드사인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은 구다이글로벌 컨소시엄이 2400억원에 지분 85%를 인수했다. 현재 M&A 시장엔 우량 K뷰티 기업 매물들이 많이 나와 있는 상태다. 마스크팩, 용기, 튜브류 OEM 전문 업체인 지디케이화장품은 현재 새 주인을 찾고 있다. JKL파트너스·퀀테사인베스트먼트·헤임달PE의 특수목적법인(SPC)월킨스 주식회사가 갖고 있는 지디케이화장품 지분 54.68%가 매각 대상이다.
지디케이화장품은 JKL파트너스 등이 인수한 이수 적극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 제품군을 다변화했고 고객사도 늘렸다. K-뷰티를 찾는 외국인들이 많아진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현재 지디케이화장품의 기업가치는 1000억~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어펄마캐피탈이 2019년에 인수한 화성코스메틱도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코스메틱은 1994년에 설립된 색조 전문 화장품 ODM 업체다. 어펄마캐피탈이 인수한 후 고객군 확장, 공장 통합, 중국 진출 등의 여러가지 전략으로 화성코스메틱을 키웠고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사인 로레알을 신규 고객사로 확보했다.
M&A 전문가들은 K-뷰티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브랜드나 제품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창업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조성됐고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침투할 수 있다고 본다.
삼일PwC에서 발간한 K-뷰티 회계·세무 가이드북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수출액은 2021년 역대 최고치인 91억 8000달러를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출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K-뷰티가 자국 브랜드 선호 기조와 규제 강화로 역성장하고 있지만 미국, 일본, 유럽 등 다른 소비국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영순 삼일PwC K뷰티 산업 리더(파트너)는 “2010년대 중반 중국 중심의 1차 부흥기를 거쳐 이제 K-뷰티는 완성형 생태계를 통해 2차 부흥기로 나아가는 시점”이라며 “창업, 투자, M&A, IPO(기업공개) 등 K-뷰티의 활발한 활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홍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