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진단 | 인력 키우고 응용 분야 공략해야

    입력 : 2025.02.11 17:13:27

  • 양자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구글·IBM·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시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은 국가기관이 예산을 활용해 개발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한국 역시 2023년 ‘양자컴퓨터 기술 원년’을 선언하고 양자컴퓨터 산업투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투자 금액, 기술 수준, 산업 규모 등에서 현저히 뒤떨어졌다. IT와 반도체 등 양자컴퓨터 관련 산업이 발달했지만 잘 연계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간한 ‘2023 양자정보기술 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양자 기술 예산은 953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투자가 빈약하다보니 기술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글로벌 양자 기술 수준을 조사한 결과,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2.3으로 초라하다. 중국(35), 독일(28.6), 일본(24.5)과 비교해도 한참 부족하다. IT 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6.9)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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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세한 국내 관련 기업

    국내 양자 기술 연구는 대학 연구소 수준에서 진행된다. 관련 기업 대다수가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이거나 스타트업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현재 20큐비트(양자컴퓨터 연산 단위) 성능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지금은 실험용 수준이지만 올해 클라우드(가상 서버) 서비스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개방하고, 2026년에는 50큐비트급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온에서 작동하는 광자(光子) 기반 8큐비트 집적회로 칩을 개발했다. ETRI는 올해 중 16큐비트 칩 개발에 도전하고, 이후 32큐비트까지 성능을 확장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양자컴퓨터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4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양자 시대 종합 전략인 ‘퀀텀 이니셔티브’가 통과됐다. 양자컴퓨터의 핵심이 되는 양자 프로세서(QPU), 소프트웨어 등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민간 기업과 힘을 합쳐 2035년까지 양자 과학 기술 분야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3조원 가운데 정부가 2조4000억원을 댄다. 기업은 2027년까지 6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8년 이후에는 기술 발전 속도와 경영 환경을 반영해 투자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한국 기술 수준을 세계 최선도국인 미국의 8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 목표다.

    이와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상용화 시점을 둔 시각차는 있을 수 있지만 양자컴퓨터가 미래 혁신 기술이 될 것이란 데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양자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 또한 “상용화는 어떤 데 가치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며 최근 연세대학교가 IBM 컴퓨터를 도입한 사례를 들었다.

    김 교수는 “IBM은 양자컴퓨터를 연세대에 판매했고, IBM 양자컴퓨터를 구매했다. 이를 신약개발후보물질 발굴에 사용하려고 한다. 단순히 연구에만 쓰인다고 해서 상용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과거 컴퓨터가 개발됐을 초기만 해도 엄청난 크기에 연구용으로 사용했던 것들이 점차 발전하면서 개인 노트북이 됐듯 ‘보편화’ 시점을 두고 서로 견해를 보이는 것이지 양자컴퓨터가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데는 모두 의견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자컴퓨터 자체 하드웨어(HW)의 개발은 크게 멀지 않은 시간 내 이뤄질 수 있다”며 “다만 양자컴퓨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가 완벽하게 잡히는 시점은 멀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점을 기업마다 다르게 예측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러한 논쟁 자체는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긍정적인 현상”이고 평가했다. 다만 “기존에 어려웠던 계산을 해내는 등 양자컴퓨터가 특수한 목적에만 사용되는 것도 굉장히 파급력이 있다. 이 역시 체감할 만한 상용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의 상용화는 10년 안팎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만큼 주도권 경쟁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재 확보 절실

    특히 전문가들은 한국이 양자컴퓨터 응용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IBM의 백한희 박사는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응용 분야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여서 한국이 도전해도 늦지 않다”며 “부가가치가 매우 큰 분야”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스타트업 아이온큐를 창업한 김정상 듀크대 교수는 “추격과 추월의 원동력을 마련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며 “양자컴퓨터 연구·산업 분야에서 앞서갈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채 한미양자기술협력센터장은 “현재 양자컴퓨터 산업 생태계는 누가 먼저 실용적인 응용 분야를 찾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인재 양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양자컴 관련 기업에서 양자 전문가를 채용하려고 해도 구하기 어려워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김 교수는 “모든 성장 동력은 최고의 인재에서 나온다”며 “중견 연구 개발 인력을 적극 지원하고, 해외 협력 기회를 확대해 독창적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박사도 “IBM은 한국, 미국, 일본에서 향후 10년간 최대 4만 명의 학생을 교육할 계획”이라며 “정부도 양자 정보 과학자 양성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자 기술과 관련된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가 서둘러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AI·첨단 바이오와 달리 양자 분야는 아직까지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만 이뤄지고 있어, 추후 상업화에는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한상욱 연구단장은 “양자 분야의 경우 기술적 장벽이 워낙 높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놓고 있지 않으면, 당장 10년 뒤에 ‘양자 시대’가 왔을 때 뒤처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며 “중요한 결정을 해줄 수 있는 국가 주도의 ‘거버넌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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