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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양자컴퓨팅 리딩 컴퍼니는?
입력 : 2025.02.11 11: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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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 증시에서 양자컴퓨팅 관련주가 거센 상승세를 탔다가, 다시 급락으로 돌아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 모두에서 ‘양자컴퓨팅’이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화제를 모았다. 특히 구글(알파벳)이 차세대 양자 프로세서인 ‘윌로우(Willow)칩’을 공개하면서 관심을 집중시킨 이후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양자컴퓨터 상용화까지는 2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언급하자, 하루 만에 관련 종목이 급락세로 돌아서는 등 변동성이 극심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어떤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해 사업모델을 준비하거나 실질적인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양자컴퓨터의 두 갈래 방식
게이트 모델 vs 어닐링 모델양자컴퓨터는 크게 게이트 모델(Gate Model) 과 어닐링 모델(Annealing Model)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게이트 모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글(알파벳)의 시커모어(Sycamore)칩, IBM의 양자 프로세서, 아이온큐, 리게티 등의 기술 방향이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연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자 얽힘과 에러율 제어 등 복잡한 기술적 과제가 산적해 있어, 완벽에 가깝게 구동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반면 어닐링 모델은 특정 연산 문제 해결, 이를 테면 물류 경로 최적화, 금융 리스크 계산, 신약 개발의 분자 배치 탐색 등에 특화된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디웨이브(D-Wave)가 이미 어닐링 모델 양자컴퓨터를 여러 기업들에 제공해 왔다. 범용성은 떨어지지만, 특정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20년 소요” 발언에 대해 디웨이브 CEO 알란 바라츠는 “젠슨 황의 주장은 게이트 모델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어닐링 모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빅테크들의 ‘양자 사업모델’ 어떻게 다를까양자컴퓨팅은 현재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가 앞다퉈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그 중심에는 구글(알파벳), IBM,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AWS),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와, 디웨이브, 아이온큐, 리게티 같은 전문 스타트업들이 포진해 있다.
먼저 구글(알파벳) 2019년 ‘시커모어(Sycamore)’ 칩으로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발표해 큰 화제가 됐고, 이후 ‘윌로우(Willow)’ 칩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구글이 가진 강점은 AI·클라우드 등 이미 막대한 컴퓨팅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개발부터 실제 클라우드 서비스(구글 클라우드)로 양자컴퓨팅을 연계해, AI 모델 훈련 가속화, 빅데이터 연산 효율화 같은 형태로 사업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구글의 목표는 단순 하드웨어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클라우드)로서의 양자컴퓨팅”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으로 IBM은 가장 오래전부터 양자컴퓨터를 연구해온 기업으로, 이미 ‘IBM Quantum’이라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운영한다. 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이 IBM 클라우드에 접속해 양자컴퓨터로 테스트 연산을 해볼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다.
IBM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특히 금융·과학·공학 분야 전문 솔루션을 위해 다수의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애저 퀀텀(Azure Quantum)이라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과 협업한다. 개발자 도구, 소프트웨어 스택, 시뮬레이터 등을 제공해 ‘쉽게 양자컴퓨팅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MS의 강점은 전 세계 수많은 윈도우·오피스 사용자를 비롯해, 이미 거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양자컴퓨팅 솔루션을 연결해 기업용 서비스를 확장하려는 전략을 지향한다.
아마존(AWS)의 경우 클라우드 시장 1위인 AWS가 운영하는 ‘Braket’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가 양자 하드웨어를 원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디웨이브, 아이온큐, 리게티 등의 양자컴퓨터도 플랫폼상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오픈해, “다양한 양자컴퓨터를 한곳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는 장터”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결국 하드웨어를 자사가 직접 만들기보다는, 클라우드 플랫폼으로서 각종 양자 기기를 연결해 트래픽과 서비스료를 확보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양자컴퓨팅 스타트업들의 도전엔비디아(NVIDIA) 역시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분야를 이끌어온 대표 주자다. 젠슨 황 CEO는 “20년” 발언으로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지만, 최근 “GTC 2025 행사 첫날을 ‘양자컴퓨팅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다시 끌었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양자컴퓨팅을 GPU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해, 데이터센터/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초고속 연산을 구현하는 것이다. 지금도 AI 훈련에 GPU가 필수적인 상황이므로, 양자컴퓨터와의 결합 시너지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학개미들의 많은 선택을 받은 디웨이브(D-Wave)의 경우 어닐링 모델을 통한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다. 실제로 폭스바겐(물류 최적화), BBVA(금융 위험관리), 멘턴 AI(신약 후보 탐색) 등에 어닐링 모델을 제공해, 최적화 문제 해결 사례를 확보한 바 있다. 다만 범용성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매출 규모가 크지 않고 아직 확장성이 미지수”라는 평가도 동시에 나온다.
또 하나 서학개미들이 많은 자금을 투입한 아이온큐(IonQ)는 이온 트랩(Trapped-ion) 방식으로 큐비트를 구현하는 게이트 모델 기업이다. 아이온큐의 강점은 상대적으로 에러율이 낮다는 점으로, 구글·IBM과 협업해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접목하고 있다. 아직은 연구개발(R&D) 단계에 있지만 오류제어(에러 보정)에 성공하면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상 듀크대 교수와 크리스 먼로메릴랜드대 교수가 2015년에 창업했다. 2021년 양자컴퓨터 전문 기업 중에는 처음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아이온큐는 기존 양자컴퓨터의 크기를 비디오 게임기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 아이온큐는 자사의 양자컴퓨팅 하드웨어와 엔비디아의 ‘쿠다-큐’ 플랫폼을 활용해 양자컴퓨팅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20년 11개의 큐비트 시스템인 ‘아이온큐 하모니’를 선보였고, 2022년 25개의 큐비트 시스템인 ‘아이온큐 아리아’를 내놨다. 32개의 큐비트 시스템인 ‘아이온큐 포르테’까지 개발을 마쳤다.
리게티컴퓨팅은 IBM에서 양자 컴퓨터 개발을 이끌었던 채드 리게티가 2013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 1년간 100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이 회사도 양자 컴퓨터용 칩을 설계하고 제조한다. 특히 양자 컴퓨터 및 초전도 양자 프로세서를 구축하는 통합 시스템을 만든다. 엔비디아가 AI 개발자들에게 AI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쿠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처럼, 리게티컴퓨팅만의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풀스택’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현재 리게티컴퓨팅은 ‘안카’라는 84개 큐비트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다. 리게티컴퓨팅은 올해 1000개 큐비트를 지원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목표다.
디웨이브퀀텀은 실제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는 회사 중 한 곳이다. 2022년에 상장된 이 회사는 양자컴퓨터의 핵심 기술인 가열과 냉각 과정, 이른바 ‘어닐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웨이브퀀텀은 4400개 큐비트를 탑재한 ‘어드밴티지2’ 프로세서를 개발하는데 성공해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디웨이브퀀텀은 2024 회계연도 예약 매출이 2300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양자컴퓨터가 돈이 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300만달러 매출은 2023 회계연도 대비 약 120% 증가한 수치다.
양자 컴퓨팅 시대에 대비한 보안 솔루션 기술을 개발하는 실스크도 눈에 띈다. 지난 6개월간 500% 가까운 주가 상승률을 보여준 이 회사는 2023년 5월에 설립됐다. 양자 컴퓨팅 시대에 대비한 보안 솔루션을 포함해 보안 반도체와 사물인터넷 관련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실스크는 데이터 및 기기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설계된 반도체 칩 시리즈‘VaultIC’ 라인을 판매한다.
또, 사물인터넷 기기를 포함해 다양한 기기에 내장돼 데이터를 보호하는 소형 반도체 칩인 ‘보안 마이크로컨트롤러’도 팔고 있다.
실스크는 지난해 8월 양자 저항 반도체 칩인 QS7001 칩을 출시한 이후 양자 보안혁명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내놓고 있다. 다만 실스크의 양자 저항 보안 기술은 상용화 초기 단계로, 채택이나 상업화에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태다.
한편, 양자컴퓨터 섹터는 미국이 올해 1월부터 중국의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분야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기로 하면서 주목도가 더 커지는 모습이다. 금융정보업체 마인드커머스에 따르면 양자컴퓨팅 시장은 2023년 18조 8352억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123조 8263억원에 달하는 등 연평균 31%씩 성장이 관측된다.
‘장기 성장성만큼 변동성도 커’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로는 처리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연산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게임 체인저’로 손꼽힌다. 특히 금융, 암호 보안,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신약 개발, 반도체 설계까지 광범위한 응용 가능성을 갖췄다. 하지만 아직 기술적 완성도가 충분치 않고, 상용화를 위해선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증권가에서는 ‘기술이 완성되어도, 이를 어떻게 돈으로 연결할 것인지(사업모델)가 관건’ 이라고 강조한다. 구글, IBM, MS, 엔비디아, 아마존 등 빅테크들은 기존 클라우드·AI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거나, 고객사(기업)에게 서비스를 판매하는 플랫폼 모델을 준비 중이다. 한편 디웨이브나 아이온큐, 리게티 같은 전문 스타트업들은 각자의 하드웨어 특화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며, 일부는 ‘어닐링 + 게이트 모델 하이브리드’라는 융합 모델도 연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10년간은 양자컴퓨팅 관련주가 기술 이슈나 기업 발표 등에 따라 극단적인 급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ETF를 통한 분산투자나 대형 빅테크주 중심의 장기 투자 방식을 권장하는 의견이 많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뛰어들 경우 손실 위험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개별 양자컴퓨팅 전문기업들의 연간 변동성(Volatility)이 80%에 달한다”며, 이는 암호화폐나 원유 시장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테마성 투자가 아니라면, ETF나 펀드를 활용해 분산투자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라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