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역습 ②] 반도체

    입력 : 2025.01.15 17:53:07

  • “삼성 최대 위협은 TSMC 아닌 SMIC”
    D램 공급확대 이어 HBM 생산도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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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최대 위협은 TSMC가 아니라 결국 중국의 SMIC가 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상황에서도 SMIC는 HBM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은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으며, 한국이 이를 방관한다면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두고 반도체 업계 한 인사는 이같이 경고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의 파운드리 시장 확장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2024년 3분기에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4% 증가한 21억 7000만달러(약 3조원)의 실적을 올린 이유는 구형(레거시) 제품을 중심으로 중국 내수 시장에서 반도체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들은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심지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수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보전 받는다. 현재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추면서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에 중국 파운드리가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TSMC가 가장 경계하는 기업은 이제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중국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SMIC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TSMC에서 지금까지 관리해 온 기술 노하우와 정보가 문서의 형태가 아닌, 전문 연구진의 집단적인 이직의 형태로 한 번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매체 닛케이 중국어판은 2024년 8월, 시미즈 히로하루 일본 반도체 조사기업 테크날리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 반도체 기술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약 3년의 차이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업체는 TSMC가 2021년에 양산한 5나노 칩 기린 9000 AP와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 SMIC가 2024년에 양산한 7나노 칩 기린 9010 AP를 비교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韓 메모리 반도체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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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세계 1·2위를 점하는 D램 시장에선 중국의 물량공세에 우리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생산을 통해 가격을 대폭 낮출 경우, 가격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로 인해 한국의 D램 제조업체들은 마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D램 기술 수준은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2~4년 격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최신 기술을 채택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직 고도화된 선단 제조 공정이나 미세공정 기술에서 한국 기업들과 차이를 보인다는 뜻이다.

    중국 1위 D램 기업 창신메모리 핵심 제품은 17·18나노(nm) 공정 기반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저전력 D램인 LPDDR4X 같은 구형 메모리다.

    현재 양산되는 최선단 D램이 12나노 공정 기반의 DDR5·LPDDR5X인 점을 감안하면 레거시(구형) 제품이 주력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D램 생산량이 증가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중국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가 빠르게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신메모리는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생산 능력을 구축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창신메모리는 2020년 웨이퍼 환산 기준 월 4만 장에 불과하던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20만 장으로 대폭 확대했다. 단기간에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생산 능력 기준 4위에 올라선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창신메모리의 D램 생산량이 올해 세계 총 생산량의 10%를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첨단 D램과는 다소 격차가 있지만 중국 기업들이 레거시 제품부터 빠르게 점유해 시장 기반을 다지고, 기술 역량을 축적해 첨단 D램 선단 공정까지 도약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중국의 물량 확대로 내년 D램 생산량이 올해보다 2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현재 연세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D램 생산 확대는 D램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 <사진 연합뉴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 <사진 연합뉴스>

    HBM까지 점령하려는 중국의 도전

    생성형 AI에 활용되는 고부가 D램 분야에서도 중국의 기술 확보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위협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AI 반도체와 같은 고급 기술을 지원하기 위한 고성능 D램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위해 상당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 IT 전문 매체인 디지타임스는 최근 창신메모리(CXMT)가 2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2) 생산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고부가가치, 고성능 반도체다. 주로 엔비디아 AI 가속기와 같은 첨단 기술 제품에 사용된다. HBM은 높은 데이터 전송 속도와 대용량 메모리 용량을 제공해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고성능 컴퓨팅(HP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 부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신메모리의 HBM 수율과 생산량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당초 예상됐던 2026년보다 2년 정도 개발이 앞당겨졌다는 점에서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창신메모리가 HBM2 생산을 조기에 시작한 것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제 구형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중국 기업들이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울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중화권 반도체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를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데이터를 연산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러한 시스템 반도체는 고도의 설계 기술이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팹리스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고, 제조는 외부 파운드리에서 맡는 형태의 기업이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설계 역량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최근 중화권 반도체 기업들은 뛰어난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정부 지원으로 시스템 반도체 굴기 본격화
    설비투자를 적극 늘려온 중국 업체들이 D램 저가 판매 공세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을 불러와 D램 가격이 속절없이 추락했다.
    설비투자를 적극 늘려온 중국 업체들이 D램 저가 판매 공세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을 불러와 D램 가격이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자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존 선도적인 기업들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인 팹리스 기업은 업계 추산으로 300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기업은 복잡한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며, 실제 생산은 전문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고 있다. 특히, 중국의 팹리스

    기업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 수준을 빠르게 향상시키고 있으며, 설계 역량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연구개발(R&D)과 설계 인프라스트럭처 강화, 인재 양성 등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의 팹리스 기업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국내 한 팹리스 기업 대표는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이 창업을 하고 초기 투자금으로 유치할 수 있는 평균 금액이 10억원대인데, 중국은 100억원에서 시작한다”며 “아예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낸 점이 이목을 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 자립을 위한 강력한 노력과 자체 연구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비록 일부 첨단 장비의 수입에 제약이 있지만, 자체 개발한 장비와 기술로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점차 확보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에서의 독립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중국 화웨이가 7나노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한 것에 대해 “미국 안보를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중국 반도체 기술의 급속한 성장에 대한 놀라움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국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의 반입을 차단하더라도, 선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능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에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중국 시스템 반도체의 빠른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IT 매체에 따르면, 화웨이 메이트 70 시리즈에는 6nm 공정으로 제작된 자체 개발 AP 기린 9100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기린 9100은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생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백서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반도체가 전 방위적으로 기술력을 빠르게 높이는 건 우리 산업 경쟁력 저하에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전력 반도체, 화합물 반도체는 단기간 내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의 영향으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시장의 경쟁력 하락이 더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올해 상반기 세계 톱5 반도체 장비 업체의 대중 수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우리나라 소부장 업계 실적은 감소했다”며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산업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장비 산업에서 수익을 올린 반면, 우리나라 소부장 업계는 반도체 산업과 후방 생태계 모두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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