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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다 잘나간다? 브랜드 따라 달라요
입력 : 2024.06.07 15: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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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차 가격 인상’의 대표 주자인 샤넬은 뷰티 제품의 가격을 5~10% 인상했다.<사진 연합뉴스>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며 국내시장에서 명품브랜드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팬데믹에도 수년간 고성장해온 명품이 불황에 빠졌다” “… 그럼에도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등 서로 상반된 내용이 보도되며 의견이 나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팩트는 맞고 시각은 다르다. 우선 국내시장에서 ‘에·루·샤·디’라 불리는 해외 명품 4대장의 2023년 매출액은 총 5조197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브랜드의 매출액이 5조원을 돌파한 건 5조89억원을 기록한 2022년 이후 두 번째다. 고로 최고 매출 경신은 ‘맞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들 4개 브랜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총 1조1065억원. 전년 대비 19%나 감소했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소비심리 위축에도 제품 값을 인상하며 실적 방어에 나섰지만 오히려 수익성은 낮아졌다”며 “재료비나 광고, 마케팅 비용 상승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결국 금리 등 경제 상황에 발목이 잡히며 Z세대 등 새로운 소비자 유입이 더뎌졌다”고 지적했다.
1위 오른 샤넬…역신장한 루이비통각 브랜드의 실적을 살펴보면 우선 샤넬이 1조703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루이비통(1조6511억원)을 앞질렀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제품 가격 인상이 전년 대비 7%의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업계에선 훅 꺾인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다.
샤넬은 2022년에 네차례나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리며 전년 대비 30%의 매출 성장을 올린 바 있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조651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줄어든 성적(2022년 1조6922억원)을 냈다. 4대장 중 유일한 역신장이다. 영업이익도 4177억원에서 2867억원으로 줄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는 전년 대비 12.4% 늘어난 1조45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출 1조원 달성에 성공했다. 이로써 루이비통, 샤넬에 이어 세 번째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3.6% 줄어든 3120억원에 그쳤다. 4대장 중 눈에 띄는 실적은 에르메스가 유일하다. 지난해 매출 7972억원, 영업이익 2357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3%, 12% 늘었다. 2022년의 매출 증가율(60.1%)보다는 확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루이비통의 새로운 앰버서더 르세라핌과 최신 캡슐 컬렉션.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광고나 마케팅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한 세 브랜드에 비해 에르메스는 이렇다 할 빅 모델 기용이 없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엔데믹의 보복소비는 끝난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전년 대비 6배 성장한 셀린느, 낙폭 큰 롤렉스해외 유명 명품브랜드와 달리 중하위권 브랜드의 국내시장 성적표는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감소했다. ‘양극화가 뚜렷해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주얼리와 시계 부문에서 좀 더 두드러졌다. 티파니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3509억원, 영업이익 21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2.3%, 1.7% 감소한 수치다. 불가리도 매출액 3399억원, 영업이익 477억원을 올리며 전년 대비 각각 2.8%, 8.4% 줄었다. 수천, 수억원을 호가하는 브레게, 블랑팡부터 몇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스와치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스와치그룹의 매출은 전년보다 17.5%(3079억원)나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73.4% 줄어든 139억원에 그쳤다.
디올 성수. 오픈런의 원조 격인 브랜드 롤렉스도 성장세가 주춤했다. 지난해 매출은 2944억원. 전년 대비 1.6%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46억원으로 85.9%나 급감했다. 반면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계약을 종료한 뒤 국내에 직진출한 셀린느는 전년 대비 6배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3072억원. 501억원이던 2022년과 비교하면 무려 513.2%나 훌쩍 커진 셈이다.
올해도 여전한 가격인상, 기부금은 제자리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주춤한 성장세에도 명품브랜드의 가격 인상 전략은 올해도 여전하다.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간 에르메스의 경우 새해 첫날부터 신발 가격을 최대 44%, 인기 가방은 약 10~15%나 인상했다. 샤넬도 1월부터 주얼리와 시계, 2월에는 뷰티, 3월에는 가방 등의 가격을 차례로 인상했다. 루이비통은 지난 2월 일부 가방의 가격을 5%가량 올렸다. 보석 브랜드 티파니는 지난 1월에 약 5%, 불가리는 3월부터 일부 주얼리 가격을 평균 7%나 올렸다. 그런가 하면 LVMH그룹 소속의 펜디는 지난해 매출 1522억원, 영업손실 8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0.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펜디는 실적 발표가 이어진 지난 4월, 전 제품의 가격을 5~6% 인상했다. 지난 1월 6% 수준의 인상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가격을 올렸다.
셀린느의 실적은 1년 만에 크게 늘었다. 2022년 매출은 501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6배 이상 뛰었고, 이 기간 영업이익은 7배 가까이 늘었다. ‘N차 인상’이라 불릴 만큼 매년, 매달 가격인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본사 배당금과 국내 기부금은 반비례하거나 제자리 걸음이란 사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해외 명품 4대장의 경우 샤넬은 본사인 룩셈부르크 법인 ‘Chanel S.a.r.l’에 전년(2950억원) 대비 0.8% 늘어난 2975억원을 배당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보다 높은 금액이다. 루이비통은 전년 대비 68.7% 증가한 3800억원을 프랑스 본사에 배당했다. 에르메스도 6.8% 늘어난 1250억원을, 디올은 1.6% 줄어든 2425억원을 배당했다. 반면 국내 기부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샤넬은 전년 대비 28.1% 늘렸다지만 매출 대비 0.08%인 13억원에 그쳤다. 에르메스는 1.4% 줄어든 5억5300만원. 디올은 1920만원에 불과했다. 루이비통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차례도 기부금을 내지 않았다.
中 수요 둔화에 글로벌 시장서도 깊어지는 고민글로벌 명품 시장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높은 이자율, 불안정한 경제 성장, 지정학적 갈등 등의 상황이 이어지며 고가 시계에 열광하던 중국인들의 수요를 감소시켰다. 자연스레(?) 스위스산 명품시계의 수출량이 뚝 떨어졌다. 스위스시계산업연맹이 공개한 지난 3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6% 감소한 20억스위스프랑(약 22억달러). 팬데믹으로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았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블룸버그통신은 “스위스 시계의 주 수출국인 중국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42% 급감했고, 홍콩 출하량도 44%나 줄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시장의 소비 위축 경향은 비단 시계업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루이비통, 디올 등 내로라하는 명품브랜드를 보유한 LVMH그룹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망치인 211억유로를 밑돈 206억9400만유로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한 수치다. 무엇보다 지난해 상반기에 기록한 두 자릿수 성장률에 비해 초라한 성적이다.
장 자크 귀오니 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메인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디올의 매출 증가율이 2% 언저리에서 정체됐다”며 “지난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 고객의 변화”라고 언급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