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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권력과 風水] 신격호 롯데 회장의 묘지가 초라한 이유
입력 : 2023.05.09 16: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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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형 창업자의 경우 선영 조성작업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성공을 조상님께 고하는 것과 동시에 문중 일가·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선영 현창(顯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자신의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조상의 음덕, 특히 선영의 응험함이 있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소위 명당발복에 대한 믿음이다. 과학적으로 명당발복이 있느냐 없느냐는 논의의 밖이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명당발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풍수 고전이자 조선조 지리학 고시 필수 과목이었던 <금낭경>은 말한다. “부모와 자손은 본래 하나의 기로써 서로 간에 느낌이 통하여 조상신의 복을 받게 된다. 천하에 이름난 묘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산천 정기가 모이면 길지가 형성되는데, 그 자리에 조상을 모시고 후손이 마음을 거기에 의탁하면, 그 의탁하는 마음으로 인해 장차 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조상의 뼈를 묻는 것이 아니라, 후손의 마음을 묻는 것이고, 산천의 정기가 신령스러운 것이 아니고 후손의 마음 자체가 신령스러운 것이다. 세상에는 조상의 유골을 물이나 불에 버림으로써 화복을 없애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마음이 그곳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중국 고대 사상가 열자(列子)는 말한다. “화장(火葬)도 좋고, 수장(水葬)도 좋고, 매장도 좋고, 풍장(風葬)도 좋고, 구렁텅이에 버려 나뭇가지로 덮어두어도 좋다.”
그러나 서양 철학자 앙드레 베르제의 말처럼 “인간은 쓸데없는 행위를 할 필요를 느끼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선사 이래로 결혼을 예식화하고 장례를 의식화하였다. (…) 장례의식은 호화롭게 치르지는 못하더라도 개처럼 땅에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욕망의 표현이다.”(<인간학·철학·형이상학>)
아름다운 묘역 조성은 그러한 ‘장례의식’의 마지막 단계이다. 자수성가형 창업자들이 조상 묘 현창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너 CEO의 경영 의식과 조상의 묘역은 매우 유사한 ‘심리적 공간배치’를 공유한다.
그림에서 주산(현무)은 조상묘에 해당한다. 나(창업자)를 받쳐주는 든든한 배경이 주산이자 조상묘이다. 혈(穴)에 창업자(CEO)가 자리하면서 좌청룡·우백호 임직원의 호위를 받는다. 혈(穴)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명당은 개척해야 할 시장(市場)에 해당된다. 맞은편 앞산인 안산은 고객으로 상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묘역 조성작업을 우리나라 현행 묘지법은 ‘호화분묘’로 규정하여 금지한다. 이웃 나라인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의 매장법은 억지에 가까울 정도로 가혹하다.
‘묘의 형태는 봉분 또는 평분(平墳)으로 하되, 봉분의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1m, 평분의 높이는 50㎝ 이하여야 한다. 20호 이상의 인가, 학교, 그 밖에 공중이 수시로 집합하는 장소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 하천으로부터 200m 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개인 묘지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이나 선산에 묻히고 싶어 한다. 굳이 선산이 있는데 ‘도서관 사물함’과 같은 납골당에 ‘유폐’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행 사설공원묘원 납골당은 인간은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간다는 동서양의 보편 관념에 어긋난다.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땅에 묻혀야 맞다.
고 신격호 전 명예회장 묘 2020년 1월 19일 롯데 신격호 회장이 작고하였다. 대기업 재벌 회장들은 많으나 그중 자수성가한 이는 정주영 회장과 신격호 회장이다. 신격호 회장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크게 부를 이룬 기업인이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국내에 자본을 들여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생전에 그는 고향을 늘 그리워하여 자주 찾았다. 죽어서도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는 유언에 따라, 울주군 삼동면 생가 근처에 장지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묘역작업 과정에서 울주군청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와 묘역 규모(5m×6m)와 봉분 높이(50㎝)를 직접 줄자로 재면서 감시할 정도로 깐깐하였다. 그 결과 너무 초라한 무덤이 만들어졌다.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교수(2013년 작고)는 우리 전통 무덤을 “꽃받침에 받쳐진 꽃망울로 온 세계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덤은 없다”라고 극찬했다. 그래서 그는 ‘꽃무덤’이라 불렀다. 역사학자 윤명철(동국대) 명예 교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우리나라 무덤의 둥근 봉우리가 어울리게 하고자 하는, 즉 산천과의 조화라는 미학적 표현이다. 둘째, 의미론적 관점에서 부분(무덤)과 전체(산하)는 하나라는 유기체적 관념이다. 사람이 죽으면 산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전통 무덤이다.” 사람이 죽으면 산천의 꽃으로 환생한다.
반면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들은 현행 ‘묘지법’을 따르지 않는다. 대통령 무덤의 규모나 봉분 높이는 왕릉에 가깝다. 2015년 작고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생전에 모 풍수사에게 동작동 현충원 내에서 길지를 잡아달라고 의뢰했다. 해당 풍수사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의 길지’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광중을 파는 과정에서 큰 돌들이 7개가 나왔는데 그 돌이 봉황의 알이라고 한다.
봉황은 임금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서수(瑞獸)이다. 대통령이니 봉황이 되겠고, 봉황이 알을 낳았으니 이 후손 가운데 또 대통령이 나온다는 공간 심리가 반영된 터 잡기이다. 같은 현충원 내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 역시 왕릉 규모이다.
국가 기여도를 따지자면 평생 기업보국(企業報國)한 기업인·창업자들도 5년 임기의 대통령 못지않다. 대통령 묘역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하거나, 좀 더 유연한 묘지법 개정이 필요하다. ‘꽃무덤’이 전국 산하에 피게 될 날을 희망한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