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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 세대 ‘꽉’…月 300만원에도 수천 명 대기 [고령화 시대 도심형 요양시설 인기몰이]
입력 : 2023.05.04 12: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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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대 어르신 김 모 씨는 최근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KB손해보험의 도심형 케어센터 ‘위례빌리지’ 입주를 고민 중이다. 도심에 위치해 입지가 좋은 데다 월 부담금이 최저 90만원대로 고급형 실버타운에 비해 저렴한 덕분이다. 김 씨는 “자녀 요양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실버타운에 들어가고 싶지만 워낙 비용 부담이 커 고민하던 중에 도심형 케어센터를 알게 됐다. 입주 조건에 해당되는지부터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요양시설이 인기몰이 중이다. 고급형 실버타운부터 도심형 케어센터(거주형 요양시설)까지 다양한 상품이 속속 등장하는 모습이다. 건설사뿐 아니라 금융사들까지 대거 뛰어들면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KB손보 요양시설 인기
위례빌리지 대기자만 3500명
노인 주거시설은 넓게 보면 요양원, 실버타운, 양로원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상품은 요양원이다.
일명 ‘거주형 요양시설’로 불리는 요양원은 실버타운과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만 60세 이상이면 입주할 수 있는 실버타운과 달리 요양원은 만 65세 이상,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어르신만 입소할 수 있다. 본인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실버타운과 달리,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점도 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차이다. 또 다른 개념인 양로원은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입주 가능한 시설이다. 일부 실비를 받는 시설이 있지만 대부분 비용이 무료다.
최근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도심형 요양원 투자가 활발하다.
KB손해보험은 2019년 위례빌리지, 2021년 서초빌리지에 이어 내년 은평빌리지 오픈을 앞뒀다. KB손보가 도심형 요양원 확대에 나선 이유는 단순하다.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오픈한 서울 송파구 장지동 위례빌리지의 경우 정원은 125명에 그치지만 입소를 기다리는 대기자 수만 3500명에 달한다. 정부 지원을 제외한 매달 순수 본인 부담금은 최저 90만원에서 최대 310만원 수준이다. 1인실의 경우 매월 부담금이 270만~305만원, 2인실은 215만~220만원 선이다. 4인실은 90만~93만원으로 1~2인실보다 저렴하다. 치매전담실을 갖춘 데다 요양보호사의 개인별 맞춤형 케어 서비스, 체계적인 건강검진이 가능한 점이 매력 요인이다.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서초빌리지도 위례빌리지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대기자 수만 1500명으로 정원(80명)의 20배에 육박한다. 서초빌리지는 4인실이 없어 매월 본인 부담금(1~2인실)이 219만~325만원에 달하는데도 대기 수요는 끊임없이 몰리는 모습이다.
여세를 몰아 KB손해보험은 최근 경기도 수원에 4번째 도심형 요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요양 사업 전문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에 190억원을 출자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요양 등급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는 장기요양보험 지정기관이다.
KB손보 성공 사례에 자극받은 다른 보험사도 요양시설 건립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신한라이프는 자회사 신한금융플러스에 ‘요양 사업 부문’을 신설하고 요양원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미 건립 부지 매입을 검토하는 등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이승환 기자) 실버타운도 인기몰이
롯데건설, 서울 마곡지구에 공급
요양원뿐 아니라 실버타운 인기도 꾸준하다. 도심형 실버타운은 문화시설과 병원 등 각종 인프라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게 특징이다. 그야말로 섬세하게 기획돼 만들어진 시니어 전용 5성급 호텔인 셈이다.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 등 주요 도심형 실버타운의 경우 평균 입주 대기 기간만 2~3년이라는 후문이다.
국내 실버타운 역사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유당마을’이 시작점이다. 1988년 개원한 뒤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내는 방식으로, 보증금은 주택 규모에 따라 최소 1억900만원에서 최대 3억원까지 책정된다. 월 생활비는 1인과 부부 여부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부부의 경우 최소 338만원에서 최대 355만원 수준이다.
유당마을을 포함한 초기 실버타운 모델은 대부분 수도권 외곽 혹은 지방에 위치했다. “여생은 한적하게, 자연 속에서 즐기고 싶다”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 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에서 지내던 이들이 교통 불편, 인프라 부족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은 일.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수도권 실버타운의 공간적 분포와 이용자 인식 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전원 지역에 노인들만 모여 살 경우 가족과 친구, 친지 접촉에 제한을 받아 삶에 생기를 잃게 되는 등 부정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해당 논문은 실버타운 종사자의 발언을 인용해 “이 같은 이유로 불편함과 외로움을 느껴 시골 실버타운에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변화에 발맞춰 실버타운은 점차 도심으로 들어왔다. 1998년 도심형 실버타운으로 들어선 ‘서울시니어스 서울타워’가 시작점이다. 이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심형 실버타운이 속속 등장했다. 서울시니어스타워는 강서, 분당, 강남 등에 설립됐다. 국내 최고급 도심형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도 2009년 만들어졌다.
도심형 실버타운이 처음부터 ‘호황’을 누렸던 건 아니다. 높은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더클래식500’의 경우 1인 가구(전용 125㎡ 기준) 보증금만 9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매달 지불하는 금액만 500만원 수준이다. 월간 이용료(167만원), 기본 관리비(245만원), 세대 평균 관리비(30만원), 의무식 20식(30만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높은 비용에도 입소문을 타고 도심형 실버타운 수요는 빠르게 늘었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불리는 이들이 도심형 실버타운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특징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마케팅업계에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능동적 소비 주체로 부상한 이들을 ‘욜드(YOLD·젊은 노인)’ 세대라고 부를 정도다. 욜드 세대에게 도심형 실버타운은 휴식 공간이자 동년배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만남의 장’으로 다가온 셈이다.
실버타운이 인기를 끌면서 신규 분양 물량도 부쩍 늘었다.
롯데건설은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 ‘VL르웨스트’를 분양했다. VL르웨스트는 월세 방식인 ‘표준형’과 전세 방식인 ‘전환형’으로 나뉜다. 표준형은 보증금 6억~18억3900만원에 월 임대료 115만~354만원이다. 전환형은 임대료가 없다. 다만 보증금이 최소 7억3800만원에서 최대 22억6400만원에 달한다. 주택 크기에 따라 월 관리비(215만~500만원)도 추가된다. ‘억 소리’ 나는 비용이지만 VL르웨스트는 지난 3월 청약 당시 평균 19 대 1, 최고 20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화의료원과 협약해 이대서울병원의 24시간 응급관리 서비스, 맞춤형 운동 처방, 재활 물리치료 서비스 등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덕분이다. 이대서울병원 이용 시 입주민 전용 창구를 통해 신속한 의료 케어가 가능하다.
대우건설도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 인근에 노인복지주택 ‘백운호수푸르지오숲속의아침’을 공급한다. 지하 6층~지상 16층, 13개동, 1378가구(전용 99~119㎡)로 노인복지주택 536실을 임대로 공급할 예정이다.
극소수 이용은 한계…정부도 나선다
비용 부담 줄인 ‘고령자 복지주택’ 뜬다
기업들이 노인요양시설 공급에 나서지만 아직까지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정부도 실버타운 개념을 벤치마킹한 고령자 복지주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고령자 복지주택은 주거시설과 복지시설을 함께 설치한 공공임대주택이다. 입주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헬스케어, 물리치료, 식당, 사우나, 카페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고령자 복지주택은 보통 보증금 200만~300만원, 월세 5만원 수준이다.
정부의 복지 서비스인 만큼 입주 자격은 민간 실버타운에 비해 구체적이다. 고령자 복지주택 입주를 위해서는 크게 ‘무주택’ ‘연령’ ‘소득’ 3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어야 한다. 배우자를 포함, 세대에 속하는 구성원 전체가 무주택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주택 분양권이 있어도 안 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배우자가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재외 국민일 경우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 입주 신청 공고일 기준 만 65세 이상이어야 한다. 민간 실버타운보다 입주 가능 연령대가 높다. 셋째 소득 수준에 따라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입주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1순위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생계급여수급자 혹은 의료급여수급자다. 2순위는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등 국가유공자인 동시에 월평균 소득 수준이 70% 이하인 신청자다. 3순위는 월평균 소득이 50% 이하인 신청자다.
고령자 복지주택은 전국적으로 약 2000여가구가 공급됐다. 정부는 2027년까지 고령자 복지주택을 5000가구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요양시설 입주 시 주의할 점은
분양형, ‘주택 수’에 포함
도심형 요양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나지만 입주할 때 눈여겨볼 점도 많다. 일부 실버타운의 경우 예외 규정이 있다. 만 80세 이상 입주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이 있거나 치매 등의 증상이 심할 경우 입주가 제한될 수 있다.
‘의무식’도 꼭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생활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기 때문. 의무식 제도는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식비를 의무적으로 내는 것을 의미한다. 실버타운마다 최소 의무식 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은 20식, 강남구 더시그넘하우스는 60식 등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부분은 ‘세금’이다. 실버타운은 같은 건물에 입주 방식에 따라 ‘분양형’과 ‘임대형’이 섞여 있기도 하다. 과거 실버타운은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 주택 수 중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2021년 2월 정부가 노인복지주택 취득세 중과로 유권해석을 변경했다. 앞으로는 노인복지주택 운영을 위해 취득할 때만 취득세 중과 예외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즉 집을 보유한 채로 실버타운을 분양받아 입주하면 다주택자가 되는 셈이다.
보증금 안전 장치 마련도 빼먹으면 안 된다. 과거 일부 실버타운이 사업비 부족 등을 이유로 입주민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실버타운은 분양형과 임대형으로 나뉜다. 안전 장치 마련 방식은 기존 주택 매매 혹은 임대차 방식과 동일하다. 분양형 실버타운은 잔금을 납부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진행하면 끝이다. 임대형 실버타운은 전입신고 이후 확정일자를 받으면 마무리된다.
“입주를 원하는 실버타운이 운영상 문제가 없는지, 사업자의 전문성은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입주 전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식사 체험, 입주 체험을 꼭 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 보고 느끼며 살 만한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체험 과정에서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미처 점검하지 못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 조언은 눈길을 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8호 (2023.05.10~2023.05.16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