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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서 보석으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입력 : 2022.12.02 15: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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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이 호황을 맞았다. 충전과 방전을 거듭한 배터리는 가치가 떨어져 한동안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배터리 원료 가격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회수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사업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너도나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면서 폐배터리가 ‘황금알’로 탈바꿈하는 분위기다.
▶폐배터리 ‘블루오션’으로
▷LG, 포스코, 두산 등 속속 진출
폐배터리 개념부터 살펴보자. 크게 재활용(Recycle)과 재사용(Reuse)으로 나뉜다.
재활용은 폐배터리에서 값비싼 원자재를 추출해 활용하는 방식이다. 폐배터리를 방전시킨 후 양극, 음극, 분리막 등으로 분해해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구리 등 원재료를 회수한다.
이에 비해 재사용은 수명을 다하지 않은 배터리 상태를 점검한 뒤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잔존 성능이 70~80% 이상이면 ESS 등에 재사용하고, 50% 이하면 필수 광물을 재활용하는 식이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분야에 얼마든지 사용 가능하다.
기업들은 폐배터리 가치를 높게 보고 일찌감치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성일하이텍, 새빗켐 등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전문기업이 맹활약하는 중이다.
성일하이텍은 배터리를 방전, 해체, 파쇄해 분말 형태로 가공하는 ‘전처리’, 소재를 추출하는 ‘후처리’ 공정 기술을 모두 보유한 국내 유일 업체다. 폐배터리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핵심 원료를 추출하는 전문기업으로 국내 1위 점유율을 자랑한다. 국내 군산 공장뿐 아니라 중국, 인도, 헝가리, 말레이시아에 리사이클링 거점을 뒀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 헝가리에 연간 5만t 규모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2공장을 완공했다. 1공장까지 합하면 연간 재활용 규모만 유럽 최대인 6만t 수준이다.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매출이 1385억원으로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2030년 매출 1조원 달성이 목표다. 한동안 적자를 냈지만 지난해 137억원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수익성도 좋아졌다.
삼성그룹은 일찌감치 성일하이텍 가치를 높게 보고 지분 투자에 나섰다. 삼성SDI 8.81%, 삼성물산 4.9%, 삼성벤처펀드 0.09% 등 삼성그룹이 지분 13.8%를 보유했다. 심원용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성일하이텍은 배터리 신소재인 수산화리튬을 생산하는 공장 라인을 건설하는 데다, 최근 수요가 많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하는 기술 연구개발(R&D)도 진행 중이라 매출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빗켐은 2차전지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불량 양극활물질을 수거해 니켈, 코발트, 망간, 리튬 혼합액 형태로 만든 뒤 판매한다. 유가금속 회수율이 95%로 업계 최고 수준인 것이 강점이다. LG화학과 고려아연 계열사 켐코가 만든 합작 법인 ‘한국전구체’에 2024년부터 10년 동안 전구체 복합액(양극재 중간원료)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점도 돋보인다. 전구체는 양극재 재료비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대기업들도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중국 최대 코발트 생산 기업 화유코발트와 합작 법인 ‘포스코HY클린메탈’을 만들었다. 전남 광양 공장에서 양극재에 들어가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을 배터리에서 추출해 다시 양극재 소재로 공급한다. 최근에는 지주사 포스코홀딩스가 GS에너지와 함께 1700억원을 투자해 2차전지 재활용 합작 법인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를 설립하기로 했다. 포스코홀딩스는 폴란드에 연산 7000t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도 준공했다. 유럽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불량품, 찌꺼기 등), 폐배터리를 수거해 일명 ‘블랙매스’로 불리는 중간가공품을 만든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배터리 소재 업체인 엘앤에프와 손을 잡았다.
엘앤에프가 양극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파우더를 제공하고, 두산에너빌리티는 폐파우더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양극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파우더를 재활용해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폐파우더를 열처리하고 증류수를 활용해 리튬을 분리한 뒤, 전기흡착식 결정화 기술을 통해 탄산리튬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기존 추출 방식보다 공정이 단순해 경제성이 높고, 화학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기술이라는 것이 두산 측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폐배터리 재사용 시장에 주목했다.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충북 오창 공장에 설치했다. 이 시스템은 10만㎞ 이상 달린 전기택시 배터리로 만든 충전기로 전기차 충전을 할 때 사용된다. 100㎾ 충전기로 전기차 GM 볼트를 1시간가량 충전하면 300㎞를 달릴 수 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을 키우기 위해 해외 기업과도 손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기업 ‘라이사이클’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LG화학과 함께 600억원을 투자해 라이사이클 지분을 2.6% 확보했고 내년부터 10년간 니켈 2만t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비철금속 업체 영풍은 리사이클링 기술력으로 차별화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건식 리사이클 방식에 최적화된 원료 ‘리튬배터리 플레이크(LiB Flake)’를 생산해 폐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리튬배터리 플레이크는 폐배터리를 팩, 모듈 단위에서 곧바로 파쇄해 조각낸 것을 말한다.
영풍의 건식 리사이클링 방식은 배터리를 팩, 모듈 단위에서 그대로 파쇄해 리사이클 원료인 ‘플레이크’ 형태로 만들어 고온으로 녹인다. 기존 습식 방식과 달리 리튬을 90% 이상 회수할 수 있는 데다, 전처리 공정에 드는 시간·비용을 단축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영풍은 2030년까지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 원료를 연간 70만t 생산해 5조원 규모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배터리 원료는 수입에 의존한다. 때문에 원료 가격이 폭등하거나 공급이 불안정하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이미 국내에 들여와 있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려는 이유다. 사진은 인천항에 산적해 있는 배터리 제조 원료.(매경DB)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국가 역시 배터리 생산량이 폭등하면서 ‘폐배터리 산업 키우기’에 나선다. 사진은 미국 테네시주 일대에 조성된 배터리 공장 일대 전경. (로이터) ▶폐배터리 산업 급성장하는 이유
▷규모 증가·환경오염·비용 상승 원인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이 급성장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폐배터리 배출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게 제일 크다. 2010년대 중반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을 본격화했다.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하던 중국을 필두로 전기차 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전기차 판매량이 늘면서 사용 연한이 다한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대두됐다. 2021년 기준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대비 2배 상승한 660만대에 달한다. 순수하게 배터리 동력만으로 움직이는 배터리 전기차(BEV)는 2040년이 되면 예상 판매량이 1억4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증가는 관련 제품의 폐기물 증가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는 생산 후 10~20년 사이에 수명이 다한다. 수명이 끝난 배터리는 주행 거리 감소·충전 속도 저하·급속 방전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교체가 불가피하다. 2010년 중반대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만큼 2025년이 되면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폭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40년 예상 배터리 폐기량은 연간 780만t 수준이다.
다음으로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다. 전기차 자체는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배터리는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배터리를 제조할 때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사용이 끝난 배터리는 매립도 할 수 없다. 각종 중금속과 전해액 등이 포함된 탓이다. 토양오염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은 산화코발트, 리튬 등이 1% 이상 함유된 전기차 배터리를 유독물질로 분류한다. 때문에 전기차가 진정한 친환경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이 필수다.
마지막 이유는 배터리 원재료 가격의 급등이다.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2차전지의 기본 구성 원자재인 리튬과 코발트, 니켈 가격이 폭등했다. 한국광해공단에 따르면 지난 11월 25일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당 562.5위안(약 10만4000원)을 기록했다. 전년 평균 대비 448% 오른 수치다. 니켈과 코발트 가격 역시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배터리 생산보다 폐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이 더 높아졌다.
▶세계는 일찌감치 시장 공략
▷中·美·유럽연합 각축전 치열
폭발하는 성장세에 맞춰 글로벌 기업 역시 발 빠르게 폐배터리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큰 중국과 미국,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차세대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는 중이다.
폐배터리 산업이 가장 급성장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한다. 전기차 시장이 큰 만큼 폐배터리 산업 규모도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중국 폐배터리 규모는 2022년부터 연평균 28.3% 성장해 2030년에는 237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스템 구축을 위한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국가가 주도해 폐배터리 관련 법안을 만들어왔다. 한국·일본 등 3국 중 폐배터리 회수 관련 법률이 가장 앞섰다. 배터리 재활용의 각 단계별(규격, 등록, 회수, 포장, 운송, 해제 등) 국가 표준을 제정해 적용 중이다. 일례로 2019년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폐배터리 종합이용 산업규범조건’을 지정했다. 전기차 폐배터리에서 나오는 니켈, 코발트, 망간의 98%, 리튬의 85%, 기타 희소금속의 97%를 의무적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지난해에는 ‘14.5 순환경제발전규획’을 발표, 배터리 재활용 산업 발전의 로드맵을 재정비했다. 자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은 착실히 힘을 키워나간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인 CATL은 원료, 전구체, 양극재, 폐배터리 재활용 능력까지 갖춘 종합 생산기지 건설을 준비 중이다. 전기차 업체 BYD는 중국 내 40여개 배터리 재활용기지를 설립했다. 배터리 회수 업체 GEM은 2030년까지 폐배터리에서 니켈 10만t을 회수하는 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다. 시스템이 완성되면 중국은 폐배터리의 니켈만으로 자급률 100%를 달성할 수 있다.
일찌감치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에 뛰어든 중국과 달리 미국은 ‘후발 주자’에 가깝다.
미국 정부는 2021년 처음으로 폐배터리 관련 정책을 내놨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위한 국가 청사진 보고서’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에너지부, 국방부, 국무부, 상무부 등이 참여하는 ‘첨단 배터리 연방 컨소시엄(FACB)’이 폐배터리 활용 관련 법제를 정비 중이다. FACB가 내세운 목표는 2가지다. 단기적으로는 2025년까지 처리기술 개발을 완료한다. 이후 2030년까지 미국 내 전체 배터리 사용량의 90%가량을 재활용이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라이사이클’ ‘얼티엄셀즈’ ‘테슬라’가 시장에 참전해 있다.
라이사이클은 북미 최대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기업이다. 뉴욕 일대에 1만t 이상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얼티엄셀즈는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 배터리 셀 합작 법인이다. 배터리 셀 제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최대 100%까지 재활용하기 위해 라이사이클과 협업하고 있다. 전기차 완성차 업체인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에 재활용 시설을 갖춘 공장 설립을 추진한다.
EU는 2020년 12월 ‘배터리 규제안’을 발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규제안에 따라 EU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터리들은 주재료의 일정 부분을 재활용 원료로 사용해야 한다. 2030년부터는 코발트·납·리튬·니켈의 재활용 연료 사용을 의무화한다. 또 전기차 각 배터리에 ‘배터리 여권’을 비롯한 폐배터리 재사용 지원책을 도입할 계획이다.
정책 변화에 힘입어 유럽 내 기업 성장세도 가팔라졌다. 벨기에 기업 ‘유미코어’는 2차전지 양극재를 비롯해 다양한 소재를 폐배터리에서 추출해 재활용한다. 유럽 내에서 재활용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 기업 ‘노스보트’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호주와 독일이 합작해 만든 ‘프리모비우스’는 연간 2만t의 폐배터리 처리 용량을 갖춘 공장을 설립했다.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폐배터리 기준 정하고 통합법안 제정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가 단위 지원책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폐배터리가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부터 필요하다. 아직까지 어느 시점과 수준에 이른 배터리를 폐배터리로 규정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기준만 명확하게 정해져도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 가능 여부를 알 수 있고 정확한 시장 규모 예측이 가능해진다.
양수정 국제환경규제기업지원센터 선임연구원은 “폐배터리의 안정성과 성능을 검증할 인증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위한 법적 기반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폐기 지침이 미흡한 실정”이라며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규격뿐 아니라 등록·회수·포장·운송·해체 등 주요 단계별로 국가 표준을 제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표준을 정할 때는 하나의 ‘통합된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개별 법률로 산재하면 폐배터리 사업자들이 규제를 일일이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배터리 재사용에 관련된 모든 규정을 통합한 ‘배터리 법’을 제정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제도 정비가 가능하다. 홍의표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배터리 법을 제정해 배터리와 관련해 제조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全) 주기에서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 소관 부처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2곳을 지정해 환경적인 측면과 산업적인 측면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신기술 연구개발에 나서는 만큼 우리도 신기술 투자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한국은 리사이클링 산업에 대한 기술적 연구보다는, 대기업 중심으로 기업 간 협력에 집중한다. 장기적으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신기술 투자에 주력해야 한다.” 김희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 의견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7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