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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연·예술 그리고 삶이 함께하는 섬
입력 : 2022.12.02 14: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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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세계건축기행] (5) 섬 전체가 예술공간…나오시마(直島)
나오시마 전경. 나오시마는 인공의 건축물과 자연이 완벽하게 하나로 일치되는 건축이 만들어낸 융합의 예술공간이다. 나오시마(直島)는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의 앞바다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있는 작은 섬이다. 건축 명장 안도 다다오의 철학과 상상력으로 채워진 나오시마는 자연과 인공의 건축물, 그리고 인간의 삶이 어우러진 예술공간이다. 안도 다다오는 좋은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 공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오시마에 환경과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은 없다. 자연으로 스며든 건축은 공간을 예술로 만들었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예술은 삶이 됐다.
▶산업폐기물 가득했던 곳이 건축예술의 섬으로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다카마쓰항에서 1시간 남짓 페리를 타면 나오시마에 도착한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이우환미술관과 옥외 작품들, 그리고 문화마을 혼무라 지구 등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건축이다. 실제로 방문객 대다수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나오시마는 1960년대 금속제련 공장이 폐쇄된 후 오랫동안 버려진 섬으로 불렸다. 이곳의 변신은 1980년대 중반 베네세 문화재단이 추진한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재단 설립자인 기업가 후쿠다케 데츠히코는 나오시마를 세계적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고자 섬의 절반을 매입했고, 아들 후쿠다케 소이치로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나오시마 여행은 대부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에서 시작된다. 1992년 가장 먼저 완공된 건축이고, 페리가 도착하는 미야노무라 포구에 인접한 까닭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 중 하나인 ‘붉은 점박이 호박 조각’이 방문객을 반긴다. 붉은 호박보다 더 널리 알려진 ‘노란 호박’은 섬의 남쪽 베네세 하우스 입구 해변에 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건물의 절반 정도가 땅속에 묻혀 있는 형태다. 주변 지형을 변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지형에 건물이 비집고 앉았다. 바람을 느끼며 걸어 올라 정문에 도착하면 ‘역시 안도 다다오!’라며 얼굴에 미소가 절로 배어난다. 노출 콘크리트와 돌로 쌓은 자연 석축은 안도 다다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인데, 외관뿐 아니라 실내 역시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하지만 삭막하거나 단절된 느낌은 없다. 지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풍성한 빛과 테라스를 통해 연결된 바다의 절경 덕분이다.
뮤지엄에 이어 1995년 완공된 베네세 하우스의 별관 오벌(Oval)은 안도 다다오가 왜 위대한 건축가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건축이다. 객실이 6개밖에 안 되는 이 호텔은 산악 모노레일(Funicular)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약 3분 정도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물의 정원’이 나온다. 중정 구조로 설계된 공간은 타원형 수조를 중심으로 객실이 배치됐다. 뚫려 있는 하늘을 통해 정원은 낮은 구름과 햇빛으로 가득하고, 밤은 무수히 빛나는 별빛으로 채워진다. 이곳에서 계단을 한 번 더 오르면 ‘옥상 정원’이다. 나오시마에서 제일 높은 곳인데, 세토나이카이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키 낮은 나무 사이를 걷는 기분이 일품이다. 이곳에 서면 ‘건축은 형태가 아니라 빛과 주변 지형과의 조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던 세계적 건축 명장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이해된다.
지중미술관에 영구 전시돼 있는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 천장 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작품과 공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삶이 그려낸 문화의 공간
2004년 완공한 지중미술관은 나오시마를 명실공히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다. 이름 그대로 아예 땅속에 지은 건물이다. 숲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지는 나오시마 고유의 풍광을 해치지 않기 위한 설계다.
지중미술관은 신비롭다. 땅속이지만 구석구석 자연의 빛이 가득하다. 산 정상에 사각형, 삼각형 모양의 홀을 만들어 땅속으로 빛을 끌어들인 덕분이다. 전시 작품도 자연광 아래서 감상하도록 설계됐다.
모네의 명작 ‘수련’을 비롯한 3점의 작품이 전시된 ‘모네룸(Monet Room)’도 인공조명은 없다. 자연광이 전부다. ‘모네가 작품을 완성했을 당시의 빛을 관람객이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다. 실제로 지중미술관이 전시하는 작품들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들어오는 빛의 방향과 양, 그리고 빛의 색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은 마치 자연의 해석을 듣는 듯 관람객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외에도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고 있다.
지중미술관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는 2010년 개관한 ‘이우환미술관’이 있다. 재일한국인 현대 미술가 이우환의 작품을 전시한 이곳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둘러보면서 ‘명상을 하기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명상의 방’이 있어 깜짝 놀랐다.
섬의 반대쪽에는 혼무라 지구가 있다.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마을이고, 동시에 문화를 체험하는 예술공간이다. 과거 빈집이 가득했던 마을을 살려낸 건 ‘이에(家) 프로젝트’다. 안도 다다오와 협력한 예술가들이 한 집에 작품 하나씩 설치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공간에 현대 미술을 담았다. 마을에서 제일 유명한 공간은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옛 신사다. 찾는 사람이 많아 성수기에는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나오시마는 위대한 건축과 예술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터를 이어온 사람들의 일상이 숨 쉬는 곳이다. 이는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가 협력과 소통의 원칙으로 진행됐기에 가능했다. 베네세 재단은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전 세계 예술가들과 의논을 거듭하며 30여년 세월에 걸쳐 나오시마를 변화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1000여회가 넘는 설명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정체성을 주민의 삶과 분리할 수 없다는 기획자의 철학과 원칙이 없었다면 이런 노력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오시마는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한 인공의 건축이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마침내 융합된 공존의 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7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