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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과의 작별
입력 : 2022.11.21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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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유람① 오색천 주전골 트래킹
단풍이 물든 계곡 치고 예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만, 설악산 단풍은 그 아름다움이 유난해서 그 단풍 떨어지기 전에 영접하겠다는 방문객들로 이즈음 설악은 무척 붐빈다. 올해 마지막으로 본 설악의 단풍, 아쉽진 않다. 더 보고 싶으면 중남부 지역으로 여행하면 되고, 하물며 내년이 또 있지 않은가.
물 이야기 하나, 오색천 오색약수물 이야기 하나, 오색천 오색약수골 깊고 물 맑은 금수강산은 사실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계곡이 깊으면 숲이 가득하다는 말이고, 그 촉촉한 산에서 흐르는 물이 어찌 혼탁할 수가 있겠는가. 특히 설악산 오색천은 맑은 물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오색천에는 폭포, 선녀탕, 크고 작은 소와 담 등이 줄줄이 있고 어마어마한 바위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대단한 계곡이 있다. 지금은 오색천 주전골이라는 좌표 지명으로 공식화되어 있지만 우리 아버지, 최소한 삼촌 세대에게 이곳은 오색약수로 불렸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약수를 뿜어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오색약수 하면 다섯 빛깔 약수를 상상하게 되지만 물에 무슨 색이 들어가 있겠는가. 이 계곡에서 샘솟는 약수가 오색약수가 된 것은 샘물을 발견한 주전골 초입 사찰인 성국사, 즉 오색석사 스님과 연관이 있다. 1500년경의 일이라고 하는 걸 보니 조선 중기 때의 일로 여겨지는데, 그 옛날에 이 물이 약수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때도 일반 물과 약수를 구별하는 기준이 있었을 것이고, 냄새도 맡아보고, 차를 끓여도 보고, 조금씩 마시는 양을 늘려가며 이 물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과학적인 방식으로 오색약수를 분석해 본 결과 이 약수는 수소이온농도가 6.6pH에 해당하는 강력한 알칼리성이며, 칼슘, 마그네슘, 철, 나트륨 등 필수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살충력도 뛰어나 약수에 가재나 지렁이 등을 넣어두면 시름시름 앓다 죽을 정도로 강한 성분을 지니고 있다. 살충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체내에 머물고 있는 찌꺼기 영양소, 미처 소화되지 못하고 부패해가고 있는 음식물 잔해 등을 몸속에서 녹여버리거나 배출해 내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름을 오색약수라 지은 것은 발견한 스님이 수행하던 성국사 뒷뜰에서 자라던 꽃의 이름인 오색화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오색화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원래는 매화라고 한다. 매화나무 한 그루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핀다 해서 오색화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라면 성국사 즉 오색석사는 불자들과 여행자들, 식물학자들로 하루하루가 번잡해질 뻔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조용한 사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수행에 정진할 뿐이다. 오색천에는 오색약수 나오는 구멍이 두 개 있는데, 모두 마실 수 있고 떠 갈 수도 있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무리한 일이겠지만, 이 물만 마시고 산다면 pH 균형 하나는 끝내주게 맞추며 건강하게 살 수 있겠구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pH 균형이 무너져 몸이 산성화되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상식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부러울 뿐이다.
물 이야기 둘, 사실 성국사는 참 잘 생긴 절이다거의 전 국민이 산꾼이 되어버린 지금 주전골의 오색천은 오색약수보다 주전골 계곡 트레킹으로 더욱 유명한 여행지가 되어 있다. 왕복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계곡 코스를 걸어보니 가벼운 트레킹으로 이 보다 더 좋는 곳이 있을까 싶었다. 일단 트레킹 코스가 가파른 경사가 아닌 평평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V 계곡 양쪽으로 펼쳐지는 산세는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하고 아름다웠다. 탐방로 정돈도 잘 해두었다. 나무로 만든 데크가 계곡 초입부터 시냇물을 따라 나 있어서 몸이 불편한 사람도 어려움 없이, 성국사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다.
성국사는 계곡 바로 옆 둔덕 위에 있는 한 칸짜리 절인데, 계곡길을 걸을 때는 불쑥 들어가게 되지 않기도 하는, 법당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사찰이다. 이렇게 작은 절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고, 또한 이렇게 잘 생긴 법당을 본 게 언제적 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법당의 이름은 인법당인데, 법당의 폭이 굉장히 길고 중간에 눈을 어지럽게 하는 기둥도 별로 보이지 않아 깔끔한 미를 뽐내고 있었다. 지붕의 용마루 양쪽 끝마구리(베어 낸 통나무의 위쪽 끄트머리 부분)에 설치한 숫기와 머거불(지붕마루의 마구리에 대는 부고)의 모습 또한 단순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백제 사찰의 건축물을 연상하게 했다. 신라 말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이 법당은 당시에 건축한 건물이 아니었다. 원래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삼국시대의 문화 예술을 이끌었던 백제의 향기를 슬쩍 맛본 것 같은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법당과 마당에는 여행자들만 서성일 뿐 스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안거를 위한 준비 수행 중인가 보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성국사라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오색석사였다고 한다. 절의 이름을 오색석사로 한 것도 오색 매화였고, 스님이 발견한 약수의 이름도 오색화에서 빌려온 오색약수며, 지역의 이름마저 오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이 절이 그냥 수행하고 명상하는 공간이 아닌, 지역 사회의 뿌리 역할까지 한 유서 깊은 장소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오색석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전라남도 장흥군의 가지산문의 사찰이고 창건을 한 스님은 도이선사다. 그런데 왜 오색석사의 위치가 전라도 장흥이 아닌 강원도 양양일까. 자료를 살짝 뒤적여 보니 도의선사는 장흥에 가지산문을 연 뒤 당나라로 유학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혜능스님에게 석가모니의 말씀을 배우고 귀국, 곧장 장흥으로 가지 않고 설악산에 머물며 동설악에는 진전사를, 이곳 남설악에는 오색석사를 창건한 것이다. 하기사 옛날 큰 스님들 하는 중요한 일이 사찰 창건이었으니 당나라에서 석가모니를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본인이 배운 그 석가모니를 닮은 사찰을 창건하고 싶은 욕구가 오죽했을까.
성국사는 인법당과 인법당 앞의 약수터 닮은 우물, 그리고 마당 끝 무렵의 양양오색리 3층 석탑이 가람의 전부이다. 3층 석탑은 창건 당시 세운 탑으로 보물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라가 있는데, 탑신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이 오직 귀퉁이 기둥을 뜻하는 우주만을 조각해 놓았다. 역시 백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 풍화를 겪으며 완전히 무너졌던 것을 복원했다. 또한 3층 석탑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석탑 한 기도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데, 탑신 등이 일관된 조각 등을 보며 성국사의 창건 이야기가 하나하나 풀리는 느낌이었다.
웅장한 풍경과 뻔한 듯, 늘 신기한 선녀 이야기주전골 단풍은 그새 색깔이 많이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새빨갛거나 붉은빛의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물론 그나마 이 단풍들도 일주일 안에 또 다른 색깔로 변해 있거나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아무튼 주전골을 걸을 때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날씨가 꾸물꾸물 비가 올 듯 불안했다.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설악산에 대고 꾸벅 인사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전골로 들어서며 데크로 단장한 탐방로를 따라 걸었다. 왼쪽으로는 데크길, 오른쪽으로는 약간의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기본길을 지키며 탐방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걷는 동안 몇 차례 다리를 건너야 했다. 계곡을 걸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풍경과 이야기가 소와 담, 그리고 선녀탕이다. 주전골을 감싸고 있는 봉우리들의 모습들도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주전골에는 또 하나의 멋들어진 풍경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흘림골이다. 등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흘림골은 자연 생태 회복을 위해 2022년 9월6일까지 7년 동안 출입을 통제했었다. 그러다 9월7일부터 내년 2023년 2월28일까지 한시적으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그 흘림골을 주전골에서 우뚝우뚝 우러러 보게 되는데, 그 우람한 풍경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흘림골은 원래 흐림골로 불렸었다. 흘림골은 한계령 휴게소에서 양양 방향에 위치한 계곡인데 워낙 숲이 깊어서 날씨가 아무리 짱짱해도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많이 보여, ‘언제나 흐린 풍경을 준다’ 해서 흐림골로 불린 것이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정식 명칭을 ‘흘림골’이라고 명명했다. 흘림골을 걷고 싶은 사람은 국립공원공단 누리집 예약시스템에서 예약을 해야 가능하며, 탐방객은 하루 5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시 주전골로 돌아와 본다.
주전골을 이루고 있는 오색천은 계곡의 폭이 적당히 넓거나 좁고, 대부분의 유명 계곡이 그렇듯 거대한 바위가 계곡 곳곳에 버티고 있고, 때로는 계곡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어디든 폭포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강한 수력을 보이거나 또한 어디든 선녀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고요한 소와 담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선녀탕이라 명명된 곳은 지금 보아도 제법 은밀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아, 볕이 잘 들지만 계곡길에서 환히 내려다 보이지 않는, 저곳에 선녀들이 옷을 두었겠군’, ‘하늘로 올라갈 땐 저 소나무 뒷길에서 이어지는 독주암 옆에서 날개를 펼쳤겠구만’ 따위의 생각 말이다.
독주암은 누가 보아도 주전골 최고의 기암괴석이다. 거친 바위가 살갗을 드러내고 있고, 바위 위쪽으로는 소나무들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어서 그야말로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독주암의 원래 이름은 ‘독좌암’이다. 바위 꼭대기가 너무 뾰족해서 사람이 올라가면 딱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면적이라 해서 ‘혼자 앉을 수 있는 바위’, 독좌암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정식 명명할 때는 독주암으로 이름을 붙였다. 독주암은 사실상 등산이 불가능한 바위이다.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는 무모한 산꾼들이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지금의 산행 문화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엄두는커녕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갈라지고 풍화된 바위 봉우리인 것이다.
주전골과 저 멀리 보이는 흘림골 주전골의 하이라이트, 용소폭포독주암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길이 다소 거칠어진다. 오색약수에서 시작된 무장애 탐방로는 성국사에서 끝이 나는데, 몸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 이라면 이후의 탐방로를 걷는 데도 별 문제 없다. 절정에 와 있는 설악산 주전골–흘림골 계곡의 막바지 단풍에 흠뻑 취해 걷다 보면 힘들 틈도 없을 정도로 황홀한 계절의 마지막 선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국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용소폭포와 흘림골탐방로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한시적으로 개방된 흘림골까지 올라갔다 올 사람은 흘림골 탐방로로 진입하면 되는데, 탐방로 입장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겨울철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탐방로 진입 시간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시각에 들어가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내다가는 아무리 탐방로가 잘 닦여 있다 해도 여름철엔 길 잃기 딱이고, 겨울철엔 몸이 얼어버릴 수도 있다. 어쨌든 편안한 가을 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흘림골 예약은 패스하고 주전골 용소폭포까지만 걷고 하산하는 일정을 선택했다.
용소폭포 삼거리에서 다리 하나 건너고, 두 번째 다리로 올라서니 정면으로 용소폭포가 보인다. 솔직히 웅장한 폭포는 아니다. 그러나 주전골을 걸으면 단 일 초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공룡 닮은 바위’, ‘용의 비늘을 닮은 바위’, ‘코모도 섬의 대형 도마뱀 머리를 닮은 바위’ 등등 산 여행기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단어 ‘기암괴석’의 진수를 용소폭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용소바위는 원래 이무기 부부가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수행 끝에 이제 용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일만 남았다. 수컷 이무기는 용의 비늘이 생기고 날개가 자라더니 하늘로 꿈틀 비상하고 말았는데, 어쩐 일인지 암컷은 그 어떤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암컷 이무기는 그 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온갖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는데, 그때 지상에 남은 암컷 이무기가 골짜기에서 요동을 치며 난리를 부리는 통에 용소폭포 주변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널브러졌다는 것. 용소폭포를 정면에서 보고 다시 탐방로로 나와 용소폭포의 옆면을 보면 바위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시루떡을 엽전처럼 쌓아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습이 연유가 되어 이 골짜기가 주전골이 되었다는 썰이 있다. 한편으로는 먼 옛날 ‘위조주화단’이 이곳에 숨어 가짜 엽전을 만들어 유통시키다 큰 벌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게 주전골 이름의 연원이라는 설도 있다.
주전골의 암석은 판상절리로 갈라졌다. 안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주전골의 ‘쌓아둔 엽전’ 모양이 바위는 주전골 일대의 지질과도 큰 관계가 있어 보인다. 지각변동으로 커다란 바위가 때로는 세로로 갈라지고(제주도 중문 주상절리 처럼), 때로는 가로 모양으로 포개지는 ‘판상절리’를 이루기도 한다. 판상절리는 철원 한탄강 탐방로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는 절리 모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비주얼은 세로 주상절리가 멋있고, 안정감은 가로로 포개진 판상절리가 편안하다. 한편 구상절리라는 것도 있는데, 한자 뜻 그대로 공을 닮은 원형의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를 말한다. 주전골 일대의 판상절리는 대표적인 절리인 주전바위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연은 그때도 무심해서 하늘로 올라간, 용이 된 남편 이무기는 다시는 주전골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고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래야 신화가 유지되겠지. 용이 된 남편 이무기는 무심하게 세상을 떠났고, 용이 되지 못한 암컷 이무기는 하늘 대신 주전골 골짜기를 변화무쌍한 설악의 계곡으로 만들며 영생하고 있다. 하산이랄 것도 없는 하산을 하고 걸었던 주전골 골짜기를 바라보니 어느새 계곡에는 시커먼 밤이 내리고 있었고, 저 멀리 보이던 흘림골도 이제 어두운 하늘로 들어가 보일 듯 말듯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설악산을 많이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오색약수 주전골에 다녀온 것도 설악산에 등산(?) 리스트에 넣어야 할까? 저녁밥은 강릉에 가서 먹는 걸로 했다. 팬둥팬둥 편안한 강원도 여행은 내일도 계속 된다.
위치 강원도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분소 공영차장(식당촌에서 운영하는 사립 주차장들도 있다)
트래킹 소요 시간 2~3시간
글 이영근 사진 안동수(다큐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