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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후회는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문
입력 : 2022.11.14 10: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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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다. 이 순간은 한 번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바꿀 수 없고, 다가올 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늘 현재에만 살아간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매달려 봐야 아무 소용없다. 문제는 현재에 충실하고, 앞으로 잘하는 것이다. 이른바 ‘행복 전도사’는 말한다. ‘좋은 삶을 살려면 돌이키기보다 앞으로 내달리는 편이 낫다.’ 긍정심리학이 유행한 후, 후회를 인생 금기로 삼는 이들이 흔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친다. “후회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면서 앞만 보겠다고 다짐한다. 유명인 중에도 흔하다.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아니,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불후의 히트곡을 남겼다. 긍정 사고의 선구자로 리처드 닉슨과 도널드 트럼프의 멘토였던 노먼 빈센트 필은 “후회할 여유가 없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피아프는 마흔일곱 살에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고, 필의 두 대통령 제자 중 한 명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한 명은 대안적 진실, 즉 거짓말로 유명하다. 세계적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후회의 재발견>에서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근본적 결함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완전히 틀렸다는 점이다. 인간은 후회를 피할 수 없다.
후회는 인간 경험의 필수 요소이다. 인생엔 수많은 갈림길이 있고, 선택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6세 이하 아이들은 후회를 모른다. 후회에 필요한 마음의 역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회하려면 노련한 시간 여행자이면서 숙련된 이야기꾼이어야 한다. 자신이 선택지 않은 삶의 경로와 결과를 떠올리고, 이를 현재와 비교해 좋고 나쁨을 떠올릴 때, 인간은 후회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을 오가고, 삶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려면 높은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7세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해 청소년기에 성숙에 이른다. 사춘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덜떨어졌다는 뜻이다. 후회는 건강하고 성숙한 마음의 증거다.
2020년 핑크는 4824명을 대상으로 ‘미국 후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응답자의 82%는 적어도 이따금 ‘달리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후회를 무시할 수는 있어도, 느끼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후회 없는 삶’이란 너무 기대치 높은 소망에 불과하다. 알다시피, 허영은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재에 자꾸 허구를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꿈은 언젠가 깨어지고 거품은 반드시 붕괴한다. 돈키호테는 거인을 무찌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패배자로 죽었다. 꿈은 소중하지만, 너무 늦게 깨면 인생이 허황해진다.
긍정 감정에만 몰입하면, 우리 삶은 길을 잃고 위기에 빠진다. 삶의 밝은 면을 더 많이 보려고 하는 건 중요하나, 지나치면 과거에서 아무것도 못 배운다. 그러면 자아를 성장시키거나 삶을 다시 쓰는 일이 힘들어진다. 두려움을 모르면 위험을 피할 수 없고, 분노를 억누르면 옳고 그름에 관한 감각이 둔해진다.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 때나 용기를 부리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게 된다. 수시로 화를 내는 건 어리석다. 그러나 뼈 없는 사람처럼 굴면 이용당하기 쉽다. 투자할 때와 마찬가지로, 감정의 포트폴리오를 잘 갖추는 일은 좋은 삶을 사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인간 역능을 심리학에서는 ‘반사실적 사고’라고 부른다. 이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증거다. 반사실적 사고는 두 방향으로 일어난다. ‘적어도’ 사고는 현재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와 비교한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는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기뻐한다. 그들은 ‘적어도 메달은 받았잖아’라고 생각한다. ‘했더라면’ 사고는 더 나아지는 상황과 비교한다. 은메달리스트의 사고다. 그들은 흔히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조금만 더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메달리스트는 웃지만, 은메달리스트는 미소 띨 뿐이다.
‘적어도’는 위안으로 우리 기분을 좋게 하지만, ‘했더라면’은 상처이기에 불편과 고통을 안겨준다. 문제는 우리가 ‘적어도’ 감정보다 ‘했더라면’ 감정을 훨씬 더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마조히스트처럼 우리는 후회의 고통을 사랑한다. 후회는 현재의 감정을 희생해 앞날에 더 좋은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매몰 비용은 갈수록 커진다. 더 큰 손실을 막고 방향을 되돌리는 대신, 전망 없는 일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으면, 삶은 점점 나빠질 뿐이다. 손절은 언제나 힘든 일이나, 손절하지 않으면 바랄 곳은 기적밖에 없다. 좋은 투자자는 손해를 볼 때 좋은 행동을 하고, 뛰어난 협상가는 반성을 통해 상황을 개선한다. 후회는 단기 손해와 장기 이익을 연결하는 사고방식이다. 너무 오랫동안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돌이키는 힘은 우리를 신중하게 만들어 실질적 성과를 높이고,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피게 부추겨 문제를 더 잘 해결하게 한다.
후회하는 사람은 실패를 성찰해 전략을 수정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낸다. 후회는 단기 실패와 장기 성공을 이어준다. 학교에 가지 못했거나 다른 대학에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 후, 이를 학교에서 실제로 배운 점이나 친구들과 나눈 우정과 비교해 보자. 그 대답이 ‘적어도’일지, ‘했더라면’일지 알 수 없으나, 실제 이런 생각은 학창 시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건 분명하다. 모욕이나 수치나 폭력 경험이 아니라면 삶의 주요 경험과 관계는 하나하나 의미 깊고 소중하다. 반사실적 사고는 우리에게 삶의 진짜 의미를 숙고하게 만들고, 그 의미를 더욱더 열정적으로 추구하게 돕는다. 사람들 대부분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당장 소원해진 친구나 스승에게 전화를 넣고 싶어진다.
‘했더라면’ 사고는 우리 의사결정 능력을 끌어올리고, 업무수행 능력을 높이며, 삶의 의미와 유대감을 강화한다. 인간은 가치 있는 것만 후회한다. 자신이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지 안다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후회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우리를 반복된 실수에서 구해준다.
증자는 말했다. “나는 하루 세 가지로 나를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꾸미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더불어 사귀면서 믿음직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전해 받은 바를 익히지 않았는가?” 후회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우리 인생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