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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 재개발 20년 좌절 역사 종지부 찍나? 임대비율·GTX-C 지하통과… ‘산 넘어 산’
입력 : 2022.10.17 14: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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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같은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드디어 확정’이라는 제목의 기사 형식의 게시물인데, 은마아파트가 드디어 재건축을 확정했고, 조합 설립 후 80년 만에 쾌거를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특히 재건축 확정 기념 디너쇼에는 79세가 된 원로가수 아이유 씨가 공연할 예정으로 해당 기사의 게재일이 2072년 6월 17일로 표기돼있다.
은마아파트는 대지 23만9224㎡에 14층 규모 건물 28개 동 4424가구로 이뤄진 대단지다. 개포주공1단지에 이어 강남구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은마아파트는 26년 넘게 ‘만년 재건축 후보’로 남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79년 입주한 은마아파트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는데 여러 차례 사업이 무산됐다. 집값 상승을 우려한 정부·서울시의 철벽 규제와 입주민 사이 거듭된 반목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재건축 규제 대명사로 낙인 은마의 재건축 사업을 좌절시킨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규제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재건축 가능 여부를 가리는 잣대인 아파트 안전진단이었다. ‘강남 재건축의 대명사’가 돼버린 은마는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될 때마다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은마아파트는 2002년을 시작으로 안전진단을 3번이나 떨어지고 2010년이 돼서야 ‘4수’ 끝에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는다.
안전진단을 통과하자 이번엔 층수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당초 은마 주민들은 49층 높이로 새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 층고 제한을 도입하면서 은마아파트는 정비계획 심의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2006년 도입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은마아파트에겐 타격이었다. 은마와 같은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재건축 사업에서 많은 수익이 발생하는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그 수익을 깎아 사업성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 소장은 “은마아파트는 잠실 주공5단지와 더불어 소위 ‘집값 상승 주범’으로 서울시에 찍혔던 지역”이라며 “상대적으로 재건축을 늦게 추진한 개포 주공 사업이 이미 끝났고, 다른 강남 주요 단지도 조합 설립을 끝냈는데 은마만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경.
결국 주민들은 은마반상회·은마소유주협의회·은마사랑모임 등 여러 비상대책위로 나뉘었다. 조합 설립 과정에서 주민 단체 사이 소송전까지 이어졌고, 지난해 9월엔 주민 총회에서 조합 설립에 성과를 못 낸 지도부 전체가 해임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년째 은마아파트에 거주한다는 박 모 씨(65)는 “수년간 재건축 계획이 서울시에 퇴짜 맞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끼리 의견이 분열돼버렸다”며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와 비대위 싸움이 너무 길어지면서 희망고문당한 주민들만 지친 상태”라고 말했다.
▶35층 룰 폐지로 사업 탄력 하지만 지지부진하던 은마 재건축 사업은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5층 룰을 폐지하면서 주민 갈등을 일으키던 규제가 사라진 데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과감한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3월 은마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새로 결성되면서 재건축 사업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새 지도부는 최근 시공사·설계사와 회의를 갖는 등 조합 설립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은마 재건축 추진위는 층고 제한이 풀리기 전인 지난 2월 새 아파트 단지를 35층으로 조성한다는 정비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는데, 이 계획이 앞으로의 재건축 사업에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정비계획안을 만들면서 서울시와 주민 모두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50층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35층으로 최대한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은마아파트를 둘러싼 재건축 작업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편이다. 서울시는 9월 7일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분과위원회를 열고 ‘은마아파트 재건축정비계획 수립, 정비구역 지정 및 경관심의 자문 결과’를 반영한 보완사항 8개 항목을 조합 측에 통보했다. 정비계획안만 내면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서울시가 강남구청에 통보한 8개 보완사항은 주로 건축 배치 계획 및 공공 기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선 지하철역(학여울역 등)에 인접한 동은 역세권 복합용도로 배치하도록 조정하고 위례신사선 계획과 연계해 학여울역 출입구를 신설해야 한다. 문화공원 역시 지하철역에 위치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삼성로에 접한 5개 동은 적정 가로경관을 형성해야 하며 통경축도 확보해 동 배치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은마 재건축 추진위는 통보받은 8개 사항이 민감한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수정이 어렵지 않다는 반응이다. 추진위가 보완자료를 제출한 후 10월 초에 도계위에 서류를 접수하면 10월 중순에는 도계위 안건으로 상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금리 인상에 따른 주택 경기 침체로 집을 사려는 수요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예비 매수자들이 일단 지켜보자는 식의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은마아파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은마아파트가 속한 대치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는 점 역시 수요자가 매수를 꺼리는 요소 중 하나다.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금지된 데다 주택을 구매하면 무조건 바로 거주해야 하는 만큼 선뜻 매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은마아파트가 실제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 역시 문제다. 서울시 도계위는 재건축 추진 과정의 한 단계인 만큼 뒷부분에 아직 더 많은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부채납이나 임대비율 등이 결정되지 않은 점은 가장 큰 문제다. 기부채납은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을 진행할 때 땅의 일정 부분을 임대주택, 학교 부지, 도로 등으로 기부하면 건폐율이나 용적률 등의 제한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대치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은마아파트 관련 문의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늘었지만 아직은 많지 않은 수준”이라며 “기부채납을 얼마나 하는지, 임대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지금은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아래 지하를 지나는 것으로 계획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 노선의 변경 여부도 관심사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원래 아파트 용지가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늪지대여서 GTX가 지하로 관통하면 지하수로 인한 지반 붕괴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지난달 GTX-C 은마아파트 우회 노선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양재역에서 삼성역까지 구간을 기존 3호선 노선(양재역~대치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매봉산을 통과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는 우선 사업자 선정 당시 양재천을 우회해 학여울역을 지나는 GS건설의 노선과도 다른 ‘제3의 노선’이다. 다만 국토부에서는 GTX 기능과 사업 추진 일정, 지역 주민의 민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우회 노선안 채택에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선안 검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GTX의 기능”이라며 “사업성이나 주민 민원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중대한 사항인 노선 변경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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