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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MZ세대가 선택한 ‘눈에 띄면 반드시 사야 하는 술’ 수작업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입력 : 2022.10.13 16: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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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국내 위스키업계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설을 앞두고 한 창고형 할인매장이 들여온 싱글몰트(Single Malt·한 증류소 맥아로만 제조한) 위스키 선물세트에 오픈런이 발생한 것. 매장이 개장하기도 전에 위스키를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한 명이 대량으로 구입하는 걸 막기 위해 매장 측이 1인당 2병으로 판매 개수를 제한했지만 개장한 지 단 5분 만에 모든 물량이 팔려나갔다.
오픈런은 열혈 팬들이 새 영화의 개봉일이나 신제품 발매일에 맞춰 새벽부터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팬 문화다. 2008년 이후 10여 년 이상 시장 상황이 쪼그라들었던 국내 위스키 업계 입장에선 입이 떠억 벌어질 만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했을까. 또 다른 대형마트가 이번엔 애플리케이션(앱) 스마트오더로 이 위스키를 판매했다. 10만원 중반대 가격이니 마트에서 파는 위스키 중에서도 고가였지만 준비된 500병이 2시간 만에 완판됐다.
국내 위스키 시장의 성장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 무역통계를 살펴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한 1만3700t을 기록했다. 위스키 수입액은 같은 기간 9257만달러에서 1억4683만달러로 58%나 늘었다.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매장 앞에 줄을 서는 풍경은 이제 예삿일이 됐다. 지난여름 한 편의점 브랜드에서 진행한 위스키 한정판매 행사에도 MZ세대가 몰려 줄을 서는 풍경이 연출됐다. 해당 제품 구매 고객은 30대(43.4%), 20대(39.5%), 40대(14.8%) 순이었다. 2030세대의 구매가 80%를 넘긴 것이다. 앞서 나열한 행사의 주인공은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라 불리는 ‘발베니(Balvenie)’. 이 술, 과연 어떤 술이기에 국내 위스키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을까.
발베니 레어 매리지 레인지.
박리다매로 판매하다보니 다른 판매처보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남대문 주류상가는 팬데믹 기간 동안 MZ세대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또 다른 판매점의 B씨는 “예전엔 가격대도 비싸고 아저씨 술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홈술, 혼술 문화 때문인지 한두 병씩 구입해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사려고 이곳을 찾았다는 이승경 씨(31세)는 “날이 선선해 친구들과 캠핑장에서 마실 위스키를 사려고 한다”며 “요즘은 위스키 바(Bar)에서 한 잔씩 잔술로 싱글몰트를 즐기는 MZ세대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 따르면 발베니는 매장에 입고되는 즉시 매진되는 품목 중 하나다. A씨 조언처럼 눈에 띄면 사야 하는 술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에 올여름엔 5성급 특급호텔이 발베니 위스키와 호캉스를 결합한 패키지를 내놓기도 했다. 롯데호텔 서울이 선보인 ‘더 발베니 나잇 인 서머’ 패키지는 객실 1박과 발베니 위스키 1병을 기본으로 구성, 위스키 애호가들을 겨냥해 총 30객실만 한정 판매됐다. 호텔 관계자는 “오픈런까지 생긴 ‘발베니 대란’을 피해 호캉스와 발베니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위스키 수입사의 한 임원은 “발베니의 인기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원인은 역시 맛과 풍미”라며 “여기에 SNS 등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 유튜버나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협찬 등이 MZ세대에게 어필되며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발베니 증류소의 오크통.
어쨌거나 생산과정의 희소성과 특수성에 발베니는 한정판 위스키로 입소문이 났다. 전 세계 싱글몰트 위스키 생산량은 스카치위스키 중 5%에 불과한데, 발베니 증류소는 글렌피딕을 생산하는 증류소에 비해 생산량이 10분의 1에 불과해 희소가치가 더 높게 평가된다. 팬데믹 시기에 스코틀랜드 현지의 인력도 줄어 생산량 또한 덩달아 줄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가격은 올랐다.
지난 4월 1일, 2018년 7월 이후 약 4년 만에 ‘발베니 12년 더블우드’(5.1%), ‘글렌피딕 12년’(7.5%), ‘몽키숄더’(9.4%) 등 위스키 공급 가격을 올린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물류비, 노무비 등 제조비 상승에 더해 원자재 가격까지 올라 단가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 자리한 발베니 증류소.
대신 유명한 위스키의 공병 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뒤져보면 한정판 코냑의 공병은 가격도 비싸다. 발베니의 경우 당근마켓에서 12년산 공병이 1만~2만원, 30년산 케이스가 2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맛과 향이 우수한 위스키가 오픈런이나 공병 재테크를 낳으며 사랑받는 건 환영받을 일”이라며 “그럼에도 젊은 층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들의 가장 좋아하는 술로 소개되며 판매를 부추기는 모습은 당장은 판매고를 늘릴 수 있지만 위스키 시장 전체의 거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며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발베니의 몰트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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