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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커지는 부동산 조각 투자의 세계
입력 : 2022.08.05 1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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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5000원에 불과한 소액으로도 수십억원대 빌딩 투자를 가능케 하는 ‘부동산 조각투자’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부동산 조각투자란 하나의 건물을 수십, 수백만 개의 증권으로 쪼개 투자자를 모집하고 상장 후엔 주식처럼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투자기법을 말한다. 100억원짜리 서울 강남업무지구(GBD)의 오피스빌딩, 안국역 인근 50억원대 수제버거 맛집 등의 소유주가 되는 투자자들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매 분기(혹은 매월) 배당 수익으로, 매각 시엔 가격 상승분만큼을 차익으로 얻을 수 있다.
신생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펀블’은 지난 6월 22일 자사의 1호 조각투자 상품으로 서울 최고 랜드마크로 꼽히는 롯데월드타워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타워동 45층에 위치한 오피스 공간으로, 펀블에 따르면 부동산개발업체 ‘씨에스엔피엘’이 3년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펀블 측은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입지, 유동인구, 임차수요 등을 고려하면 매매차익 역시 안정적인 수준으로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이라는 상징성까지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선 땅의 올해 개별공시지가는 ㎡당 5115만원에 달한다.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 2017년 4200만원에서 5년 새 20%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평균적인 급여생활자 입장에선 꿈꾸기 힘든 투자였겠지만 조각투자라는 기법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
2020년 12월 101억8000만원에 공모한 ‘역삼 런던빌’ 역시 지난 5월 수익자총회를 열고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가는 117억원으로 공모 참여자들의 누적수익률은 14.76%에 달했다. 통상 배당 수익은 연 환산 3~5% 수준이다.
▶원금 손실 위험 감수해야 물론 위험성도 존재한다. 부동산 가격 자체가 하락하거나 증권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라는 자산 특성상 주식만큼 가격의 변동성이 크지 않지만 오르내림이 있기 때문에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은 장기 우상향’이라는 믿음이 통하더라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수익실현 역시 쉽사리 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매각 시점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더라도 거래소 내에서 증권 가격이 떨어진다면 매각 전에는 손실을 보고 자금을 회수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상장 이후 공모가 대비 증권 가격이 10% 가까이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 방법은 주식만큼 손쉽다. 스마트폰으로 조각투자 플랫폼 앱을 다운받아 투자계좌를 개설한 뒤 공모에 참여하거나 상장된 부동산 수익증권을 사고팔면 된다. 증권사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거의 유사한 모양새를 갖췄다. 다만 플랫폼마다 상장된 부동산 상품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투자를 원하는 부동산을 먼저 선택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 조각투자자들은 부동산의 직접적인 소유주가 되는 건 아니다. 신탁회사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투자자들은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 증권을 소유하는 개념이다. 부동산 주인이 신탁사에 부동산 처분 신탁을 하면 신탁사는 이를 바탕으로 수익증권을 발행한다. 발행된 증권의 공모는 플랫폼 거래소를 통해 이뤄지고 공모금이 부동산 매각대금으로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디지털자산유동화증권’의 영문 약어로 ‘댑스(DABS·Digital Asset Backed Security)’라는 명칭이 붙기도 한다. 투자자가 직접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보유세, 취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매매차익과 배당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15.4%의 세율이 부과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조각투자 플랫폼의 회원 수는 최소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이들 플랫폼을 통해 상장된 부동산들의 누적공모가액은 600억원 이상이다.
소유. 새비지가든.
후발주자인 ‘소유’의 경우 단순 투자수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품으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유의 1호 상장 부동산은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 위치한 수제버거집 ‘다운타우너’가 들어선 상가 건물이었다. 다운타우너는 소유를 통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가게 건물을 매각한 뒤 이를 다시 임차하는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을 택했다. 다운타우너는 외식 업체 GFFG의 외식브랜드로 GFFG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뜨거운 도넛 브랜드 ‘노티드’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유는 임차인이 되는 다운타우너와 협력해 공모투자자 전원에게 안국 다운타우너 방문 시 매월 1회 탄산음료 무료제공 혜택을, 20주(공모가 기준 10만원) 이상 보유자에겐 다운타우너 모든 매장에서 상시 10%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투자수익을 넘어 부동산 소유주로서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소유를 운영하는 루센트블록의 안명숙 부동산총괄이사는 “단순 투자상품을 넘어 부동산의 사용가치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다”며 “내가 가지고 있지만 이용 못하는 공간보단 가지고 있으면서 이용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투자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팬덤’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카사. TE물류센터.
비브릭의 상품은 ‘디지털 부동산 펀드’다. 발행하는 증권 역시 집합투자증권이다. 따라서 자기자본으로만 투자가 가능한 카사, 소유와 달리 대출을 끼고 투자하는 게 가능하다. 엠디엠타워의 실제 가격은 387억7000만원이었다. 비브릭에서 공모한 금액인 17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출을 통해 조달했다.
여기에 ‘펀블’까지 가세하면서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은 점점 규모를 키우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속속 등장하는 경쟁사들에 대해 “경쟁자가 늘어나서 생기는 긴장보다도 시장 자체가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조각투자는 종종 리츠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간접투자인 리츠와 달리 개별 부동산에 사실상 직접투자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조각투자 플랫폼들의 수익모델은 거래 수수료로 요율은 0.22% 수준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고액 자산가가 아닌 이상 개인이 투자하긴 어려운데 조각투자 기법으로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며 “개인들 입장에서는 투자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주거용 부동산에 비해 규제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운 점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전문기업 알스퀘어의 진원창 빅데이터실장은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갈수록 규제가 심해지고 있고 모든 정책이 주거용에 맞춰져 있다 보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상업용 부동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리스크가 적다는 것 역시 강점이다. 진 실장은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지만 부동산은 내재 가치가 확실하다. 변동성도 부동산이 훨씬 적기 때문에 주식보다 안전한 투자처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바꿔 생각하면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도, 환금성도 낮기 때문에 적절한 상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비브릭. 초량 엠디엠타워.
다만 하반기 예상되는 큰 폭의 금리 인상은 조각투자 시장에도 변수다. 대출 비용이 증가해 매수세가 꺾이고 경기 둔화에 따라 오피스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업용 부동산의 거래액은 주춤한 상황이다. 알스퀘어가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올해 상반기 서울의 업무·상업용 부동산 매매 거래액을 분석한 결과 13조9612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27.4% 감소한 수치다.
[이석희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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