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성 파티 끝났다지만 초고가 아파트 ‘나 홀로 질주’

    입력 : 2022.07.07 11:07:08

  •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

    금리 인상이라는 파도를 만난 자산 시장에 서서히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과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치가 올랐던 암호화폐 거래 시장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고, 최근 몇 년간 ‘개미 투자’ 열풍을 일으켰던 국내외 주식 시장 역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 청약 시장은 올해 들어 냉기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고,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는 수억원씩 가격이 떨어진 매매 계약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투자 지역과 입지, 주택 유형을 가리지 않고 ‘넣어두면 오른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매수 심리가 크게 얼어붙어 거래까지 씨가 마르면서 이제는 본격적인 시장 하락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초고가 아파트 매매 시장은 때 아닌 열기가 불고 있다. 자산 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를 무색케 할 정도다. 거래가 잦지는 않지만 계약 신고가 나왔다 하면 1년 새 수십억원씩 가격이 올라 신고가 거래되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시장 양극화와 맞물려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곧 사회적인 지위’와 연결되는 사회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하이엔드 주택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나인원한남 <사진 연합뉴스>
    나인원한남 <사진 연합뉴스>
    ▶거래 나왔다 하면 20억~30억 껑충 부동산 매매 시장에 짙은 관망세가 드리운 가운데 서울 초고가 아파트는 몸값이 치솟고 있다. 초고가 아파트는 공급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최근 시장 유동성 과잉 공급에 수요가 커지면서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는 역대 아파트 최고가 거래가 연이어 등장했다.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전용면적 244㎡ 펜트하우스(하늘채)는 지난 3월 29일 164억원에 거래돼 역대 아파트 최고 거래가를 갈아치웠다. 법원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매수자는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으로 그는 대출 없이 현금만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종전 아파트 매매 최고가인 145억원도 올해 계약된 거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더펜트하우스청담(PH129)’ 전용면적 273㎡(16층)이 지난 4월 28일 145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3월 거래된 같은 전용 물건 종전 신고가 115억원 대비 30억원이 올랐다. PH129는 올해 공시가격이 전용 407.71㎡ 기준 168억9000만원으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한 단지다.

    ‘역대 최고가’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더라도 초고가 아파트는 1년 새 수십억원씩 올라 거래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한남더힐 전용 240㎡(3층)이 110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전용 매물의 최근 거래일은 지난해 5월인데, 당시 7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불과 1년 새 가격이 32억5000만원 오른 것이다. 이번 거래로 한남더힐은 ‘매매가 100억 클럽’에 처음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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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더힐은 앞서 지난 5월 16일에도 전용 233㎡(7층)이 83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4월 거래된 같은 전용 매물의 거래가격은 59억5000만원으로, 이 물건 역시 최근 1년 새 가격이 24억원 뛰었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같은 전용 매물의 매매 호가는 90억원에 달한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98㎡ 역시 지난 4월 20일 71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해 4월 48억원에 거래된 같은 전용 매물 대비 23억5000만원가량 가격이 치솟았다. 이 단지는 지난 3월 22일에도 전용 222㎡ 물건이 80억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초고가 아파트가 초과 수요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최근 주식과 코인 등 다른 투자 자산 시장이 요동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동산 자산으로 일부 자금이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평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식과 코인에서 큰돈을 번 20~30대들이 최근 초고가 아파트를 매수하겠다고 상담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있었다”며 “고가 주택만큼은 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자산가들 사이에서 주택이 아직까지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만 9700억원 몰려 초고가 아파트 거래 시장 열기는 전체 아파트 거래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서울의 50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금액은 총 9788억2853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거래금액인 2957억2400만원 대비 3.3배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거래 건수도 51건에서 158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자치구별로는 강남구(3949억7853만원)가 가장 많았고, 용산구(2980억7000만원)와 서초구(2095억6000만원), 성동구(822억2000만원)가 뒤를 이었다. 개별 동을 기준으로 거래금액이 가장 많은 지역은 용산구 한남동으로 전년 동기간(1259억2000만원)보다 2.2배 증가한 총 2810억7000만원의 거래금액이 몰렸다. 특히 한남더힐과 나인원한남 거래가 주를 이뤘다.

    뒤이어 서초구 반포동 2095억6000만원, 강남구 압구정동 1619억8500만원, 강남구 도곡동 845억3726만원, 강남구 청담동 831억6627만원 순으로 상위 5위에 랭크됐다. 이들 지역에선 반포동의 반포자이, 압구정동의 현대2차, 도곡동의 상지리츠빌카일룸, 청담동의 PH129 등이 거래를 주도했다.

    이처럼 50억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 거래가 크게 증가한 이유는 미래가치가 높은 한정된 물량을 소유하고자 하는 고소득층의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일반 아파트에서 보기 힘든 고급 마감재와 커뮤니티 시설, 주거 서비스 등도 자산가들의 매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초고가 아파트는 수요 대비 공급 물량이 많지 않아 희소성이 높은 데다, 매매가 상승세도 중저가 아파트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어 최근 분양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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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엔드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는 오피스텔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억원 이상에 매매 거래된 오피스텔은 632건으로 2020년(457건)보다 38% 증가했다. 2019년 204건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많다.

    최근에는 3.3㎡(평)당 1억원 이상의 하이엔드 오피스텔 공급도 증가 추세다. 현재 분양 중인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위치한 ‘아티드(ATID)’의 분양가는 3.3㎡당 1억5000만원에 달한다. 강남구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인 3.3㎡당 8380만원보다 약 2배 가까이 높다. 올 초 분양에 나섰던 ‘레이어 청담’도 3.3㎡ 1억5000만원대의 분양가를 책정했지만 최근 물량이 전부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분양한 루시아 도산208과 갤러리 832 강남으로 각각 3.3㎡당 약 1억4000만원대에 공급됐다. 루시아 도산208은 1.5룸인 소형 아파트 수준의 면적으로 최고 20억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약 2개월 만에 계약이 끝났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3.3㎡당 1억원(전용 59㎡ 미만) 이상이거나 분양가가 20억원이 넘는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2019년은 4개 단지 526실, 2020년은 4개 단지 306실 공급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신사동 ‘원에디션 강남’을 포함해 15개 단지 총 1962실에 달한다. 주로 강남, 서초 등 강남권 중심으로 공급됐다.

    분양 업계 관계자는 “하이엔드 주거시설의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고객들은 가격보다 상품성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녹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개인화된 성향의 젊은 부유층이 증가하면서 소형 오피스텔이 고가 주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특히 강남은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해 사업 속도가 더딘 재개발·재건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공급이 부족한 고가 아파트의 자리를 상업용지에 지을 수 있는 오피스텔이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 사느냐=사회적 지위’ 특히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와 함께 살고 있는 주택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하이엔드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소득 양극화가 주택 가격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고, 서울 초고가 아파트 단지는 소셜 포지션(사회적 지위)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초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면서 전체적인 시장 상황과 별개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KB부동산이 조사한 5분위 평균 아파트 가격에 따르면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지난해 연말 23억7933만원에서 지난 5월 24억4358억원으로 2.70%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 상승률 0.8%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도 이들 초고가 아파트의 매매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과세 부담에 보유 중인 물건을 정리하고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다운사이징’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초고가 아파트 시장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펜트하우스청담 <사진 연합뉴스>
    더펜트하우스청담 <사진 연합뉴스>
    고 원장은 “80억원짜리 상업용 빌딩 1개동을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5억원짜리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돼왔다”며 “다주택자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과 함께 보유세 등의 이슈도 똘똘한 한 채로의 수요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승철 유안타증권 수석부동산컨설턴트도 “최근 강남에 분양하는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분양가가 3.3㎡당 1억5000만~1억6000만원까지 가고 있는데, 입지가 좋고 규모가 있는 초고가 아파트 단지는 평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아직까지 가격 메리트가 있다고들 판단하는 것 같다”며 “투자 시 안정성과 희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에셋 파킹(자산을 저장하는 수단)’에 목적을 두고 투자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준호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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