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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수익률 퇴직연금에 TDF 인기몰이
입력 : 2022.05.04 14: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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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퇴직연금 운용 통계가 발표됐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00조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2.00%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 10.7%와 비교하면 5분의 1에 그친다.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연금의 경우 국내주식, 해외주식, 국내채권, 해외채권, 대체자산 등에 골고루 자산배분을 하지만 퇴직연금은 300조원 중 86%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주식형 상품(실적배당형 상품) 투자를 늘리면 수익률 개선 효과가 뚜렷하다는 건 통계로 입증된다. 지난해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상품의 수익률은 1.35%였지만 실적배당상품 수익률은 6.42%로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형 펀드나 생애주기형 타깃데이트펀드(TDF)에 투자를 하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지금보다 훨씬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실적배당형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에 불과한 상황에서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지상 과제로 꼽힌다.
물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퇴직연금 투자 붐이 일면서 확정급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은행, 보험사에서 증권사로 옮겨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근로자들이 늘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들은 예·적금에 넣어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전체 평균 수익률은 2.00%로 2020년 2.58% 대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4.8%에 불과한 DB형이 1.52%로 수익률이 가장 낮았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각각 20.7%와 34.3%인 DC와 IRP 수익률은 2.49%와 3.00%로 나타났다.
▶IRP 활용한 재테크 주목 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투자자들은 주로 IRP 계좌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RP는 원래 퇴직금을 수령하는 계좌로 설계됐지만 소득이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 전 금융회사에서 복수로 개설 가능한 연금계좌다. DC 추가납입금과 개인연금저축 적립금을 합쳐 1년에 1800만원까지 불입 가능하다. 납입금 중 합쳐서 7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IRP 적립금을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하게 되면 퇴직소득세를 30~40% 감면받는 것도 가능하다. 운용수익, 배당금 등에 대해서는 3.3~5.5%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도 큰 혜택 중 하나다.
DC나 IRP를 통해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는 근로자들이 필수로 가입하는 상품이 TDF다. TDF는 생애주기형 펀드의 일종으로 은퇴 목표 시점을 설정하고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안전 자산인 채권 비중을 늘리고 반대로 주식 비중을 줄인다. 상품명에 2025, 2030, 2040, 2050 등 숫자(빈티지)가 은퇴 목표 시점을 나타낸다. 주식 비중을 높여 공격적인 운용을 하고 싶다면 높은 숫자가 붙은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은퇴 시점에 따라 알아서 주식, 채권 비중을 조절해주는 상품이다 보니 연금 투자자들 가입이 몰리면서 TDF 순자산은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7년 7293억원이던 TDF 순자산 규모는 지난해 10조원을 돌파했다. 4월 14일 현재 10조4359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국내외 증시 부진 여파로 TDF 수익률도 부진의 늪에 빠져 있어 연금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TDF의 연초 이후 4월 14일까지 수익률은 -7.09%로 저조한 상황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9.44%), 해외 주식형 펀드(-13.05%)와 비교하면 선방하고 있지만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할 때 단기간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기업은 DB 자금을 은행 예·적금에 넣어두고 있다. DB 수익률을 올리려다가 손실이 날 경우 퇴직금 지급을 위한 비용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DB형을 채택한 95%의 기업은 적립금을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한다. DB형이지만 일부 적립금을 운용해 연 4~5% 정도 수익을 내고자 하는 기업들이 지금까지 OCIO펀드의 주 고객층이었다.
DB 자금만 가입할 수 있는 OCIO펀드는 특히 지난 4월 14일부터 개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새로 바뀐 법령에 따라 300인 이상 상시 고용 기업은 DB 적립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고 매년 1회 이상 적립금운용계획서(IPS)를 작성해야 한다. 적립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처럼 DB 적립금의 목표 수익률을 정하고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큰 틀의 자산배분 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오원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연금마케팅1부장은 “개정 근퇴법 시행이 원리금 보장형에 사실상 방치되어있던 퇴직연금 DB 적립금을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옮겨가게 하는 촉매가 되면서 퇴직연금 OCIO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라며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국내 퇴직연금과 자본시장의 제도 변화에 대응하면서 운용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의 자금 운용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DB 기업은 물론 DC와 IRP 투자자들도 가입할 수 있는 OCIO펀드가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3월 28일 NH아문디자산운용은 ‘올바른지구 OCIO 자산배분 펀드’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자산배분, 시나리오 분석 및 투자 펀드 선별 등의 투자 전략 전반에 ESG(환경·책임·투명)경영 프로세스를 적용한다.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은 시장 상황에 따라 기민한 대응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자형 구조로 주식펀드, 채권펀드, 대체자산펀드 등 3개의 모(母)펀드에 투자해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비중을 조절하며, 시장에 단기 충격 발생 시 적극적인 위험관리와 환헤지 비율 조정 등을 수행한다.
박학주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는 “국민연금처럼 장기간 글로벌 자산에 분산투자할 수 있다면 투자 타이밍 고민을 덜 수 있다”며 “수익률 목표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에 연기금처럼 위험관리를 잘 한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도 3월 31일 ‘삼성OCIO솔루션 성장형 펀드’와 ‘삼성 OCIO솔루션 안정형 펀드’ 2종을 출시했다. 연기금 및 대학기금 등에서 활용하는 자산배분 방식을 적용한 상품으로, ‘성장형’은 연 5.0%, ‘안정형’은 연 3.5% 목표 수익률을 추구한다.
NH-Amundi올바른지구 OCIO자산배분, 삼성자산운용, ‘삼성OCIO솔루션’ 공모펀드 2종 출시
운용사들은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에게는 OCIO 공모펀드 상품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기업의 DB 자금을 OCIO 공모펀드로 모아서 한꺼번에 운용하는 전략이다. 운용사에 위탁 운용을 맡기는 DB 자금 규모가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할 경우 공모보다는 사모 OCIO펀드 형태로 운용될 전망이다. 이 경우 해당 기업만을 위한 일대일 맞춤형 전략적 자산배분과 전술적 자산배분이 이뤄지게 된다. 이를 위해 최근 운용사들은 OCIO 관련 조직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KB타겟리턴OCIO펀드 2000억 돌파, 한국투자OCIO알아서펀드
▷확정기여(DC)형 사용자 부담 금액이 확정기여 산출 공식(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 이상)에 의해 사전에 결정돼 있는 제도. 근로자는 회사가 입금하는 부담금 외에 추가로 적립할 수 있으며 주식형 상품에 70%까지 투자할 수 있고 운용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소득이 있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납입금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계좌. 주식형 상품에 70%까지 투자할 수 있고 운용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
▷TDF(Target Date Fund)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 시점(target date)으로 해 생애주기에 따라 펀드가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조정하는 자산배분 펀드.
▷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펀드 DB형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들이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펀드. 자산운용사가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을 대신해주는 개념을 퇴직연금 상품에 접목한 것.
[문지웅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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