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vs LG 전장사업, LG는 흑자전환·삼성은 추가 M&A 촉각

    입력 : 2022.04.08 15:27:07

  • 국내 전자 업계 투톱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500조원 규모의 자동차 전장 시장에서 맞붙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전장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장 사업은 두 그룹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이 일찌감치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한 분야다. 실제 두 회사는 잇따른 인수합병(M&A)과 신규 계약을 통해 시장 선점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와 리서치앤드마켓, 그랜드뷰리서치 등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세계 전장 사업 시장 규모는 2024년에 4000억달러(약 480조원), 2028년에 7000억달러(약 84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전기차용 e파워트레인 등이 매년 두 자릿수대 성장률을 올리며 시장이 급격하게 커진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 내 통신 수요 증가 및 IT 기기 사용 확대, 각국 정부의 환경 규제 정책과 보조금 지원 확대로 친환경 전기차 부품의 고성장은 명약관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에서 자율주행차로 전환되면서 전장 사업의 성장세도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한 MBUX 하이퍼스크린. 141㎝ 너비에 인공지능 기술을 갖춤으로써 탑승자에 혁신적인 편의기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한 MBUX 하이퍼스크린. 141㎝ 너비에 인공지능 기술을 갖춤으로써 탑승자에 혁신적인 편의기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삼성, 하만 인수 후 사업 본격화 삼성전자는 전장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지난 2016년 11월 미국 업체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하만 경영진과 인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2018년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등과 함께 전장부품을 미래 사업으로 선정하고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실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2017년 영업이익은 574억원으로 전년의 6800억원에서 급감했다. 이후 2018년 1617억원, 2019년 3223억원, 2020년 555억원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반전이 일어났다. 삼성전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하만 부문의 영업이익은 5990억원으로, 전년 대비 979% 증가했다. 2017년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한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매출도 9.3% 증가하며 10조원을 돌파했다. 당기순이익은 3576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디지털 콕핏을 포함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시장에서 유럽·북미 지역 주요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대형 수주를 기록한 덕분이다.

    수익성 개선에도 역량을 집중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 미주 커넥티드 서비스 법인을 청산하고 인수 전 100여 개애 달하던 자회사도 통합하는 등 승부수를 던졌다. 2020년 말에는 전장 전문가인 크리스천 소봇카 로버트 보쉬 최고기술책임자를 전장부문장으로 영입하는 등 최근에는 조직을 혁신해 본격적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지속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전장 사업 경쟁력을 높여가는 전략이다.

    사진설명
    하만은 지난해 3월 V2X(Vehicle to Everything) 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사바리(Savari)’를 인수한 데 이어 이달엔 독일 AR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아포스테라(Apostera)’를 인수했다. V2X는 자동차가 유·무선망을 통해 다른 차량과 모바일 기기, 도로 등 사물과 정보를 교환하는 기술로 신호등을 비롯한 교통 인프라와 전방 교통 상황 정보를 차량에 전달하는 자율주행차 인프라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2017년 설립된 아포스테라는 아우디·벤츠·BMW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합심해 만든 업체로 자동차용 헤드업 디스플레이, 내비게이션 업체 등에 AR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하만은 아포스테라 인수를 바탕으로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디지털화된 자동차 운전 공간)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목표다. 디지털 콕핏은 일반적으로 비행기 조종석을 의미하나, 승용차 1열에 위치한 운전석과 조수석 전방 영역을 통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통상 업계에서는 디지털 전장 제품으로만 구성된 운전석과 조수석 전방 영역을 ‘디지털 콕핏’이라고 칭한다. 삼성전자 측은 “아포스테라의 솔루션은 하만의 디지털 콕핏 제품에 적용돼 실제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하만의 전장용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10년 전만 해도 LG그룹의 자동차 연관 사업은 제한적이었다. 특히 차량용 전자장비, 전장 쪽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최근에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LG전자(인포테인먼트), LG디스플레이(디스플레이), LG이노텍(자동차용 카메라 부품) 등 LG그룹 계열 전장사업부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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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구광모 회장 취임 이래 확장 속도 LG 전장 사업의 중심은 LG전자 VS사업본부다. VS사업본부는 2013년 출범 후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매출이 17조원대였던 반면, 2020년부터 2년간 신규 수주 규모는 20조원대에 육박했다. 지난해에도 관련 매출액이 7조원을 돌파했고 50조원 이상 수주 잔고를 감안해 올해 또다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하는 중이다.

    특히 VS사업본부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24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하지만 구광모 LG 회장이 2018년 취임한 이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장 사업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2018년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회사 ZKW를 인수해 차량용 램프 사업을 ZKW로 일원화했다. 또 지난해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함께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생산하는 합작 법인인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여기에 기존에 전장 사업을 맡던 VS사업본부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 보다 주력하도록 했다. ‘VS사업본부-엘지마그나-ZKW’의 전장 사업 3각 편대를 구축한 것이다.

    유망기업 지분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작년 7월 미국의 차량사물통신(V2X) 스타트업 소나투스에 4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하고, 11월에는 사이벨럼 지분 69.6%를 확보하는 주식 매매 절차를 완료했다. 사이벨럼은 이스라엘의 자동차 사이버 보안 분야의 선도기업이다.

    특히 LG사이언스파크와 LG디지털파크 등 VS사업본부 핵심 사업장을 비롯해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 사업장과 자회사 ZKW 등이 모두 글로벌 정보 보안 인증인 티삭스(TISAX·Trusted Information Security Assessment eXchange)를 획득하면서 글로벌 전장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전장 사업에 뛰어든 이후 아직까지는 수익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VS사업본부의 실적은 매출액 7조1938억원, 영업손실 9329억원을 기록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 모빌리티  네모 2022’에서 직원들이 미래 자율주행차 콘셉트 모델 ‘LG 옴니팟’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 모빌리티 네모 2022’에서 직원들이 미래 자율주행차 콘셉트 모델 ‘LG 옴니팟’을 선보이고 있다.
    ▶LG 텔레매틱스 강점 vs 삼성 차량 내 경험 집중 LG전자는 ‘가전 명가’로 흔히 불리지만, 최근에는 ‘전장 기업’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성과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세단인 2022년형 EQS 모델에 P-OLED(플라스틱 올레드, LG디스플레이 생산)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공급하는 등 자동차 산업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덕분이다.

    특히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후 ‘자동차=전자제품’이라는 인식 아래 전장 사업을 강화하고 점차 그 결실이 나타나면서 시장에서는 ‘LG모터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최근에는 유럽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로부터 차세대 차량용 5G 텔레매틱스 부품을 수주했다. 텔레매틱스(Telematics)는 차량 무선 인터넷 기술로 교통 정보는 물론 차량 사고 시 긴급구조, 도난 차량의 위치 추적, 원격 차량 진단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텔레매틱스 분야는 독일 전장회사인 콘티넨탈과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지난해 LG전자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시장점유율은 11.0%를 기록했다. 1년 새 3.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연간 기준 점유율 10%를 넘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지난 2018년(10만3011명) 대비 3년 만에 3.5%포인트, 2016년(7.1%)과 비교해 5년 새 3.9%포인트 늘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는 5세대 이동통신(5G), V2X(차 대 사물) 통신 기술 관련 기능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라며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와의 연동과 계기판, 디스플레이 제품들의 통합·대형화 등으로 AVN 시장의 성장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하만이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
    삼성전자·하만이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
    삼성 역시 디지털 콕핏 분야와 차량용 통신장비 등에서 제품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만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럭셔리 전기차 EQS에도 적용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 플랫폼을 공급하고 있다.

    2018년에는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다임러 공급업체 어워드(Daimler Supplier Award)’ 중 ‘특별 혁신상(Special Award for Innovation)’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하만은 삼성전자의 5G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5G TCU(Telematics Control Unit·차량용 통신장비)를 지난해 출시된 BMW의 럭셔리 SUV 전기차 ‘아이엑스(iX)’에 업계 최초로 공급했다. 작년에는 유럽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로부터 삼성전자의 SoC(System on Chip)를 적용한 차세대 디지털 콕핏을 수주하기도 했다.

    미셸 마우저 하만 CEO
    미셸 마우저 하만 CEO
    ▶車 엔터테인먼트 분야 격돌 불가피 업계는 올해 완성차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전장 시장도 동반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LG전자 VS사업본부는 지난해 매출 7조1936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성장했다. 다만 영업손실은 145% 늘어나면서 932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 관련 비용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LG전자는 전장 사업 효율화를 위해 최근 사업 개편에 나섰다. 회사는 지난해 차량용 운용체계(OS) 사업을 위해 룩소프트와 설립한 알루토를 1년 만에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영역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인포테인먼트(VS사업본부)와 미래 차 구동장치(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 차량용 조명(ZKW) 등 삼각편대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한다. 인포테인먼트 영역에서는 ▲영업 ▲임베디드SW ▲텔레매틱스 SW ▲SW 엔지니어링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SW ▲보안 등 전문 인력을 대거 충원한다. 지난해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금액으로 사들인 차량용 보안 솔루션 업체 사이벨럼을 활용, 차세대 텔레매틱스 솔루션을 개발한다. 증권 업계는 VS사업본부가 올해 매출 8조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
    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
    증권사들의 평균 매출 전망치는 8조597억원이다. 영업이익의 경우 하반기부터 분기 단위 흑자가 예상된다. 증권사가 예상하는 올해 평균 영업손실은 50억원 수준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LG전자 VS사업부) 영업이익이 여전히 적자구조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전장 시장 외형 확대를 위한 초기 투자 및 공격적인 수주 활동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VS사업본부는 올해 매출 증가와 함께 영업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하만은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커넥티드카용 전장 시장, 특히 ‘차량 내 경험(In-Cabin Experience)’ 시장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운전자 모니터링 등 탑승객 편의를 위한 기술 및 솔루션을 말한다. ‘차량 내 경험’ 시장 규모는 2022년 470억달러에서 2028년 85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AR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아포스테라(Apostera)’ 인수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전장 분야에서 추가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앞서 DX(디바이스경험)부문장인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부품과 세트 모든 분야에서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고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두 회사는 자율주행은 물론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맞부딪칠 공산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숱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래 사업을 두고 또다시 맞붙게 된 것”이라며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서 아쉬움을 남긴 LG전자가 미래 먹거리 경쟁에서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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