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LG 주력 분야 다르지만 차세대 기판 사업 놓고 격돌 예고

    입력 : 2022.03.14 11:03:32

  • 국내 전자부품 양강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냈다. 올해도 삼성전자, 애플 등 주요 고객사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늘고 기판·전장 사업까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신기록이 예상된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흔히 국내 전자부품업계의 라이벌로 꼽힌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좀 다르다. 당장 주력 제품에서 차이가 난다. LG이노텍은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이, 삼성전기는 반도체 전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부품이 매출의 핵심이다.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분야가 겹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맞수 기업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삼성과 LG그룹 내에서 부품사업을 영위한다는 점 때문이다. 카메라 모듈 등 광학솔루션 분야에선 겹치는 분야도 꽤 있다. 여기에 신성장동력으로 양 사는 공히 반도체 패키지 기판 사업을 꼽고 있다. 업계에선 향후 전장사업 부품 분야에서도 두 회사가 더욱 치열하게 다툴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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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적 뜯어보니 LG이노텍은 매출, 삼성전기는 이익률 앞서 두 회사는 지난해 모두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먼저 삼성전기는 지난해 연간 매출 9조6750억원, 영업이익 1조486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5%, 영업이익은 63%나 성장했다.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 고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작년 4분기는 매출 2조4299억원, 영업이익 316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삼성전기의 주력 제품인 MLCC를 담당하는 컴포넌트 사업부가 실적 호조를 이끌었다. 컴포넌트 사업부의 4분기 매출은 1조17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상승했다. 5G 스마트폰 시장 확대, 서버·네트워크용 등 전체 세트 수요 증가와 전장 시장의 성장세로 실적이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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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공급난으로 기판 사업을 담당하는 패키지솔루션 부문도 4분기 매출 4789억원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38% 증가한 규모다.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용 및 5G 안테나용 등 고사양 BGA와 박판 CPU(중앙처리장치)용 고부가 FC-BGA 공급이 확대되면서 실적이 개선됐다. 광학통신솔루션 부문의 매출은 해외 거래선향 고성능 카메라 모듈과 전장용 고성능 카메라 모듈 공급이 확대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7774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기는 렌즈·액추에이터 등 핵심 내재화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화소, 고배율 광학줌, 초광각, 초슬림 고성능 제품을 지속 출시하며 시장에 대응했다. ‘초호황기’에 접어든 기판 사업을 이끄는 패키지 부문에서도 전년보다 성장한 탄탄한 실적을 보여 줬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말 전방업체의 재고 조정 영향으로 일부 제품의 매출 감소가 예상됐으나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와 패키지 기판 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경영선회로기판(RFPCB) 등 손실을 내던 사업을 정리하고 MLCC(적층세라믹캐패시터)와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 전략이 적중했다는 설명이다.

    LG이노텍은 지난해 15조원에 육박하는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두 배가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매출은 14조9456억원, 영업이익은 1조2642억원이었다. 사상 첫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대를 돌파했다. 4분기는 전년 대비 매출이 48.9%, 영업이익은 25.6% 늘어난 5조7231억원 및 4298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성인 손가락 위에 올려 놓은 삼성전기의 최신 초소형 MLCC.
    성인 손가락 위에 올려 놓은 삼성전기의 최신 초소형 MLCC.
    카메라 모듈 사업이 실적 성장을 주도했다. LG이노텍 최대 고객사인 애플 내 카메라 모듈 공급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며 큰 폭의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LG이노텍 전체 매출의 약 70%가 애플에서 나왔다. 고객사 신모델 공급 확대와 멀티플 카메라 모듈, 3D 센싱 모듈 등 고부가 제품이 판매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13 판매 호조세에 힘입어 카메라 모듈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사업이 실적을 견인했다. 카메라 모듈은 LG이노텍의 주력 제품으로, 애플에 주로 공급한다. 애플이 올해에도 아이폰SE와 아이폰 14시리즈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LG이노텍 카메라 모듈 사업 역시 계속해서 호조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광학솔루션 사업은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한 4조794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로는 65% 증가한 규모다. 멀티플 카메라 모듈과 3D 센싱 모듈 등 고부가 제품 판매가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도체 기판을 담당하는 기판소재사업은 매출 42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전 분기 대비로는 1% 늘었다. 특히 자동차용 부품을 공급하는 전장부품사업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 전 분기 대비 13% 증가한 387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차량용 카메라, 통신 모듈, 전기차용 파워 등 전 제품군에서 고른 판매 호조세를 보였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스마트폰용 멀티플 카메라 모듈, 3D 센싱 모듈 등 고성능 카메라 모듈 신제품의 공급 확대가 실적을 이끌었다. 반도체 기판의 견조한 수요와 생산능력(CAPA) 확대로 매출과 수익성이 개선되었고, 차량용 카메라, 통신 모듈, 전기차용 파워 등 전장부품도 전 제품군에서 고른 판매 증가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LG이노텍이 희토류 사용을 60% 줄여 개발한 세계 최고 성능의 ‘마그넷’.
    LG이노텍이 희토류 사용을 60% 줄여 개발한 세계 최고 성능의 ‘마그넷’.
    ▶올해 전망은 양 사 매출 격차 벌어질 듯… 삼성은 MLCC에 기대 두 회사는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기대한다. 5G 스마트폰 시장 확대와 서버, 네트워크용 등을 포함한 세트 수요 증가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핵심 고객사의 카메라 모듈 스펙이 개선되면서 단가와 수익성 상승도 기대된다. 삼성전기는 실적에 가장 큰 변수인 MLCC 업황이 좋기 때문에 매출도 처음으로 10조원 문턱을 넘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MLCC가 30%가량 더 들어가는 5G 스마트폰의 전 세계 보급률은 올해 5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기판 사업도 5G,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관련 시장 성장에 발맞춰 고사양 패키지 기판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이노텍 실적 전망도 밝다. 10조원 수주 잔액을 확보한 전장부품 사업부가 하반기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발판으로 올해는 15조원 이상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올해 전망도 매출은 LG이노텍이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카메라 모듈과 회로기판 매출 호조로 올해와 내년에는 매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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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영업이익률을 보면 사정이 정반대다. 삼성전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4%를 넘고 올해 15%도 뚫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LG이노텍은 지난해 10.3%에서 올해에는 다시 한 자릿수로 내려올 것으로 추정된다. LG이노텍이 매출 대비 이익 규모가 작다보니 기업가치 또한 낮았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삼성전기 시가총액이 LG이노텍보다 2.5배 컸지만 최근에는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시가총액 격차가 좁아지는 배경은 미래 성장 기대를 반영한다.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과 회로기판 사업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에 필수 부품이다.

    하지만 삼성전기 역시 이 두 부분에서 LG이노텍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LG이노텍이 영위하는 거의 모든 사업 분야를 삼성전기도 영위한다. 향후 모빌리티 분야에서 높은 수요가 발생할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삼성전기의 경쟁력이 앞선다.

    LG이노텍 스마트폰 부품.
    LG이노텍 스마트폰 부품.
    ▶미래 사업 경쟁은 차세대 기판 FC-BGA서 경쟁 두 회사가 가까운 미래에 직접 격돌하는 사업 분야도 발생했다. 바로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불리는 ‘FC-BGA’다. 각자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FC-BGA 사업에 대규모 금액을 투자하며 ‘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FC-BGA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제품 단가가 상당히 높다. 고성능 PC와 서버를 증설하는 기업이 늘면서 수요가 늘었는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적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분야에선 삼성전기가 한발 앞서고 있다. FC-BGA에 선제적으로 투자, 국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생산능력 기준 세계 6위 수준이다. 최근 투자를 늘리면서 상위권 업체와의 격차를 꾸준히 줄이고 있다.

    삼성전기는 올해에도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인 FC-BGA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FC-BGA는 서버 중앙처리장치(CPU) 등 프로세서 대형화 추세로 인해 적용 영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빠른 인프라 투자를 할수록 이득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FC-BGA는 초기 투자비용과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신규 업체 진입이 어렵다”면서 “일본과 대만의 경쟁 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투자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 연구원이 카메라 모듈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기 연구원이 카메라 모듈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미 삼성전기는 작년 말 베트남 법인을 통해 수익성이 저조한 RF-PCB(경연성회로기판) 사업을 중단했고, 대신 FC-BGA에 1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서버용 FC-BGA 제품 개발도 한창이다.

    LG이노텍은 삼성전기에 비해 ‘후발 주자’지만 시장 공략을 위한 채비는 마친 상태다. 지난해 말 FC-BGA 관련 조직을 신설했고 기판소재사업부 품질 분야 경력사원 공채에서 FC-BGA 품질 전문가 우대 조항을 넣으며 사업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 중 FC-BGA 사업 투자 계획을 확정, 본격적인 인력 운용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구미 사업장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동시에 기존 생산시설도 FC-BGA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이노텍의 맹추격을 삼성전기가 어떻게 따돌리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본다. LG이노텍 기판 제조 기술력을 감안하면 FC-BGA 시장 강자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다. 한편 LG이노텍은 주력 사업인 카메라 모듈 중심의 광학솔루션 사업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을 분명히 했다. 작년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 광학솔루션 사업에 작년 대비 약 25% 이상 확대한 1조561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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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특정 사업부에 연간 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것은 처음인데, 광학솔루션 사업 투자는 신모델 대응과 센서시프트, 3D 모듈 캐파(커패시티·수용량)를 확대하기 위한 선제 투자 성격이 짙다. 업계에서는 주요 고객사인 애플의 스마트폰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본다. 일련의 상황을 두고 두 회사가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는 순간이 왔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의존하는 구조였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LG이노텍은 LG전자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대로 내려왔다.

    삼성전기 역시 삼성전자 비중을 30% 아래로 낮췄다. 특히 FC-BGA는 국내 업체보다 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큰손 수요가 더 많은 분야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나란히 기록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올해 시장 예상보다 더 과감한 투자 행보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당분간 지속될 시장 수요 증가에 적극 부응하고 단가와 수익성 확보를 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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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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