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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춘추전국시대 ‘망사용료’ 분쟁에 소비자 부담만 커지나
입력 : 2022.02.03 13: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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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미국 보스턴 출신의 수학 교사 리드 헤이스팅스는 근처 비디오 가게에 영화 <아폴로 13>을 늦게 반납했다가 연체료 40달러를 물게 됐다. 마침 지인과 함께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던 그는 ‘연체료가 없는 비디오 대여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훗날 시가총액 300조원, 전 세계 사용자 2억 명에 달하는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 등장의 시초였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OTT 기업들은 타사와의 차별성을 위해 각자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란 다른 OTT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자사만의 단독 콘텐츠를 뜻한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과 <D.P.>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질세라 디즈니플러스는 마블 시리즈를 오리지널 콘텐츠로 내세워, 다른 OTT에서는 <아이언맨>을 비롯한 유명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됐다. 이 외에도 쿠팡플레이는 <SNL코리아>를, 애플TV+는 <닥터 브레인>을 내놓는 등 국내외 후발주자들도 각자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중이다.
OTT 시장의 성장은 미디어 산업 전체의 흐름까지 뒤바꾸어 놓고 있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던 기존 지상파, 종편 채널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시청률까지 감소하면서 광고업계에 긴장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등 OTT 업체들은 광고가 아닌 소비자 구독료를 통해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유튜브는 일정 구독료를 내면 광고를 회피할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내놨다.
▶자발적이던 계정 공유 수익 사업화 이처럼 OTT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들 사이의 틈새시장을 노린 OTT 계정 공유 플랫폼까지 등장했다. 이는 OTT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계정 공유를 수익사업화한 것이다.
OTT 서비스는 대부분 계정 1개당 4~6명 정도가 동시 접속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어, 지인들끼리 모여 ‘파티’를 구성한 뒤 이용료를 나눠 내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가령 넷플릭스의 요금은 월 1만7000원이지만, 4명이서 계정을 공유하면 월 4250원만 내면 된다.
계정 공유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에는 주로 지인을 통해서 파티를 구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파티원을 찾곤 했다. 하지만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고, 이용 과정에서 1명이 이탈하면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아야 하는 등 불편함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파티원을 모집한다며 돈을 받아놓고 잠적하는 사기 사건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계정 공유 플랫폼을 이용하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피클플러스’는 현재 OTT 계정 공유 서비스 중 가장 많은 사용자를 가진 플랫폼이다. 지난해 서비스를 개시한 지 1년 만에 1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시청을 원하는 OTT 종류를 선택하고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파티 매칭 및 이용료 정산이 자동으로 되는 게 장점이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 등 OTT 계정을 소유한 ‘파티장’에게는 490원의 수수료가, 계정을 공유받는 ‘파티원’에게는 990원의 수수료가 적용된다. 이석준 피클플러스 대표는 “계정 관리를 맡은 파티장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조만간 수수료를 추가적으로 할인받을 수 있는 친구 추천 이벤트를 열 것”이라고 귀띔했다.
‘링키드’는 지난 10월 출시한 신생 플랫폼이다. 다른 서비스에는 없는 ‘보증금’ 개념을 도입해 파티 중도 이탈을 억제하는 게 특징이다. 파티를 생성하거나 가입할 때 월 990원(넷플릭스 기준)의 보증금을 받고, 약정한 파티 기간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이를 다른 파티원에게 나눠준다. 나혜선 피치그로브 공동창업자는 “파티를 오래 유지할수록 수수료가 많이 환급된다”며 “오래 지속되는 파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위즈니, 벗츠, 쉐어풀 등 다양한 업체가 OTT 계정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목록에 없는 서비스라도 직접 파티를 만들어 공유하거나,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저렴한 결합 상품을 제공하는 등 각자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OTT 계정 공유의 단점도 있다. OTT 서비스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빅데이터 기반 추천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정 공유의 특성상 타인의 계정을 사용할 일이 잦고, 파티를 새로 구할 때마다 기존의 시청 기록이 모두 소멸하는 탓이다.
지난 11월 딘 가필드(Dean Garfield) 넷플릭스 공공정책 수석부사장이 국회 과방위원장실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망 사용료’ 문제와 콘텐츠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 대표는 “OTT 기업 입장에서도 계정 공유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단속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넷플릭스의 계정 공유가 중단될 경우 왓챠 등 경쟁사로 갈아타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OTT 계정 공유 서비스가 OTT 기업과 장기적으로 상생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계정 공유로 인해 OTT 기업의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나 공동창업자는 “일부 OTT는 고객 록인 효과로 인해 계정 공유를 반기고 있다”며 “계정 공유 서비스가 OTT 서비스의 장기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피클플러스를 이용하는 경우 OTT를 직접 가입하는 것에 비해 이탈률이 5분의 1 정도로 감소한다”고 전했다.
▶계정 공유 스타트업 인기 OTT 시장의 팽창을 그리 반기지만은 않는 일각의 시각도 있다. 다름 아닌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사업자들이다.
지난해 통신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하나의 판결이 있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를 둘러싼 소송에서 법원이 SK브로드밴드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6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넷플릭스) 패소를 판결했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게 내야 할 채무, 즉 망 사용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피클플러스
양측의 주장은 각자 일리가 있다.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한 ISP 측에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로 인해 비용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고화질 영상을 안정적으로 전송하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더 많은 설비 투자가 필요하므로, 트래픽을 부담시키는 OTT 업체에서도 일정 몫을 부담해야 맞는다는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 등 CP 측에서는 망 사용료를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SK브로드밴드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개인 소비자로부터 요금을 받고 있으며, 해당 요금을 통해 인터넷 품질 유지라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화질 영상 전송을 위해 설비 등에 투자하는 비용은 이용자에 대한 SK브로드밴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일 뿐,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에 그 대가를 물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해당 사건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형태는 금전으로 망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 외에도 SK브로드밴드에게 독점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거나, 오픈커넥트(OCA)를 설치해 트래픽을 경감시키는 식으로 간접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OCA는 넷플릭스가 자체적으로 도입한 인터넷 설비로, 넷플릭스 측은 소송 내내 ISP에게 OCA를 무상 제공함으로써 트래픽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망 사용료 논란을 바라보는 소비자 및 시민단체의 시각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미 본인으로부터 충분한 요금을 받고 있는 통신 사업자들이 요금 인하 없이 OTT 업체로부터 이중으로 요금을 받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픈넷 등 일부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서는 망 사용료로 인해 소비자의 부담이 가중되고, 거대 기업 중심으로만 콘텐츠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OTT의 등장으로 인한 미디어 업계의 변화가 예상되는 해이다. OTT 업계 내부의 경쟁이 심화됨은 물론, 이를 이용한 스타트업까지 대거 등장했고, 통신업계와의 갈등도 진행 중이다. OTT를 시청하는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 투자자까지 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대은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7호 (2022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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