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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즐기며 돈 버는 ‘P2E’ 논란… ‘사행성 우려’ 불법 규정이 변수
입력 : 2022.02.03 13: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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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돈 버는(P2E)’ 게임을 두고 규제 당국과 게임업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수십만 명이 몰린 국내 첫 ‘돈 버는’ 게임에 대해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시장 퇴출’이라는 초강수를 두자 해당 업체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국내 시장에서의 P2E 게임 향배가 결국 소송을 통해 판가름 나게 된 것이다.
국내 첫 돈 버는 게임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무돌 삼국지)’는 일단 국내 앱 마켓에서 퇴출됐다. 게임 개발사인 나트리스는 이달 14일 공식 커뮤니티를 통해 “등급 분류 결정 취소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며 “게임 접속이 차단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규제 당국인 게임위는 지난달 27일 게임 삭제 조치에 준하는 ‘등급 분류 취소 통보’를 내렸다. 이에 게임 개발사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후 무돌 삼국지는 법원으로부터 ‘임시효력정지결정처분’을 받아 한시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법원이 결국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앱 마켓에서 퇴출됐다. 현행법상 P2E 게임은 사행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국내 유통이 금지돼 있어 해당 게임은 출시와 함께 논란을 몰고 왔다. ‘무돌 삼국지’ 사태로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떠오른 P2E 게임 산업의 국내 확산이 2022년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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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E 게임을 놓고 사행성과 정보의 불투명성 등을 우려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규제 당국과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할 신사업으로 평가하는 일부 게임사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P2E 게임은 블록체인(암호화폐)과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을 활용해 게임 내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이용자가 아이템 및 재화 등을 구매하는 기존의 과금 모델이 한계에 봉착하자 새로운 게임사 수익 모델로 급부상했다. 학계 등 일각에서는 “게임을 돈과 엮을 경우 ‘바다이야기’와 같이 극단적인 중독·사행성 게임이 나올 수 있다”며 보수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내에서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게임관리위의 등급 분류가 필요한데, 무돌 삼국지의 경우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분류돼 게임이 우선 출시됐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게임의 등급을 기업이 직접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게임관리위가 사후 관리하는 제도다.
돌출 행보를 보이는 기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작년 4월 출시된 NFT 게임 ‘파이브스타즈’가 시장에서 퇴출되자 개발사 스카이피플은 사행성 여부를 놓고 규제 당국과 아직까지 법적 공방을 펼치고 있다. 반면 규제가 혁신을 막아선 안 된다는 게 게임업계의 주장이다.
▶P2E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국내 게임사들… “규제 샌드박스 도입해야” 국내 게임사들은 ‘돈 버는 게임’으로 낙점하고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MBN(메타버스·블록체인·대체불가능토큰) 기술 개발과 함께 이를 접목한 P2E 해외 출시 등을 신규 먹거리로 올해 사업 계획을 세웠다. 대다수 게임사들은 규제로 묶여 있는 국내 시장은 제쳐두고 P2E가 합법인 해외로 우선 나간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P2E 게임에 뛰어들지 않은 게임사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P2E와 소셜 카지노를 접목한 사업 모델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전 세계 게임 시장이 P2E로 빠르게 전환하는 가운데 규제가 혁신을 막아선 안 된다는 게 게임사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일단 먼저 서비스를 출시하고 사행성 논란 등 문제가 없을 경우 규제 개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지난해 지스타 현장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한국에서는 게임 자체가 사행성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게임의 경제나 재화가 게임 밖으로 나오면 사행이라고 규정한다”며 “그런 기준이 게임 플레이에 맞는지 심각한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위메이드의 글로벌 히트작인 미르4의 경우 전 세계 170개국에서 출시됐지만 불법 철퇴를 맞은 사례가 없고, 규제 때문에 출시가 제외된 국가는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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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사들은 MBN 기술을 기반으로 한 P2E를 교두보 삼아 글로벌 외연확장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기존 게임에 대한 이용자 반발을 불식시키고 새롭게 태동하는 시장을 선점해 세계로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비롯해 카카오게임즈, 컴투스, 네오위즈 등 P2E 게임에 뛰어들지 않은 게임사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신사업 소식에 침체돼 있던 게임사 주가도 연일 요동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올해 본격적인 P2E 게임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선 위메이드, 게임빌 등 중형 게임사들이 관련 생태계 조성을 가장 선두에 서서 주도하고 있다. 주력 게임인 전 세계 170여 개국, 12개 언어로 지난해 8월 출시한 ‘미르4’는 서버 수 약 180개, 동시접속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미르4는 블록체인 기반의 NFT 기술을 통해 P2E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위메이드는 글로벌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올해 말까지 위믹스를 기축통화로 하는 블록체인 게임 100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자체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P2E가 게임의 본질(재미)을 흐린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벌기 위한 플레이(P2E)’가 아닌 ‘즐기고 번다(P&E)’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NHN도 위메이드 진영과 손잡고 블록체인 게임 시장 공략을 예고했다. 정우진 NHN 대표는 지난해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위메이드가 보여준 높은 성과를 기반으로 NHN이 잘할 수 있는 장르 협업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스포츠 등 NHN이 잘할 수 있는 장르를 기반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향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언급했다.
게임회사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합종연횡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펄어비스도 블록체인과 NFT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정경인 펄어비스 대표는 지난해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플레이투언(P2E)과 NFT 게임 개발 및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형 게임사뿐 아니라 메이저 게임사(엔씨소프트·넷마블)도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 열풍에 올라탔다. 엔씨소프트는 내년 중 NFT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새로운 게임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P2E 게임과 관련해서는 게임과 자체 플랫폼 양방향에서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자체 코인 발행의 기술적인 검토는 완료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사가 강점을 가진 다중접속역할수행(MMORPG) 게임이야말로 NFT를 적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라는 게 게임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리니지의 경우 음지에서 아이템이 거래되는 등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은 구축된 상태다. 엔씨 입장에서는 아이템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리면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다. 넷마블도 관련 기술개발(R&D)과 게임 출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 게임사 중 유일하게 크래프톤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섣불리 NFT 게임을 출시하기보다는 메타버스라는 큰 틀에서 시장을 바라보겠다는 게 이 회사의 방침이다.
배동근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호작용 가상세계(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것을 장기 성장의 주요한 축으로 보고 준비해왔다”면서 “게임 내 가상세계 안에 있는 재화나 콘텐츠가 의미를 가지려면 게임 자체의 경쟁력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NFT 상품 출시보다는 가치 있는 지식재산권(IP) 확대에 중점을 두겠다는 얘기다. 대신 향후 게임과의 접목을 고려해 블록체인 관련 회사에 대한 펀드 투자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소셜 카지노와 블록체인 기반 P2E를 융합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교두보 삼아 글로벌로 외연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게임을 통한 현금 거래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데, P2E 게임 도입과 함께 관련 규제가 완화될 경우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수의 국내외 게임사들은 블록체인 기반 P2E 게임과 소셜 카지노의 결합을 염두에 둔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서는 한편 관련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선 위메이드, 넷마블 등이 관련 생태계 조성을 가장 선두에 서서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P2E 분야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회사인 위메이드는 2021년 말 1367억원을 들여 최근 ‘애니팡’ 개발사 선데이토즈를 인수했다. 블록체인 플랫폼 ‘위믹스’의 캐주얼 게임 라인업을 강화하고 소셜 카지노 장르까지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다. 선데이토즈는 3곳의 자회사를 통해 ‘슬롯메이트’ ‘일렉트릭 슬롯’ 등 소셜 카지노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선데이토즈의 자회사 플레이링스는 대체불가능토큰과 블록체인 기반 소셜 카지노 게임을 통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선언하기도 했다. 넷마블은 2021년 8월 글로벌 3위 규모 모바일 소셜 카지노 게임 개발사 ‘스핀엑스(SpinX)’ 지분 전량을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P2E 게임 출시도 공식화했다. 네오위즈는 올해 강원랜드가 자체 개발한 ‘케이엘 사베리(KL Saberi)’ 슬롯머신 15종에 대해 5년간 독점 사용하는 콘텐츠 계약을 진행했다. 두 회사는 온라인 소셜 게임 및 오프라인 슬롯머신 리소스를 공동 개발하고, 향후 온·오프라인 연계(O2O) 비즈니스를 위한 사업 모델 개발에도 나선다는 구상이다.
코스닥 상장사 FSN은 P2E 기반 소셜 카지노 게임 사업을 추진해 블록체인 사업 생태계를 확장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일본 컴시드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P2E 기반 게임 연동과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컴시드는 일본의 대표 여가 산업인 파친코와 파치슬롯 게임 등을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회사다. 이에 FSN은 컴시드와 법률 검토를 통한 사업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양사는 일본 소셜 카지노 시장 진출과 북미·중화권·동남아시아 등에서 P2E 기반 신규 게임 서비스 출시를 비롯해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
소셜 카지노 게임 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 수혜를 입으면서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에일러스&크레이그에 따르면 소셜 카지노 게임 시장은 2015년 34억달러 규모에서 작년 70억 달러 규모까지 커졌다. 업계 안팎에서는 내년 3월 일몰되는 소셜 카지노 게임 규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P2E와 맞물려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블록체인·NFT 차단 대한민국을 ‘도박 공화국’ 충격에 몰아넣은 ‘바다이야기’가 최근 다시 소환됐다. 게임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돈 버는(P2E) 게임’의 국내 서비스 허용을 두고 혼란이 빚어지면서부터다. 국산 아케이드 게임 바다이야기는 지난 2004년 출시됐다. 아케이드 시장이 침체돼 있던 시기였다. 파친코에서 게임 시스템을 따온 이 게임은 이용자들에게 ‘대박 환상’을 심어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대신 상품권을 지급한 뒤 그 상품권을 환전소에서 다시 돈으로 바꿔주는 방법 등으로 경찰의 단속도 피해갔다. 심각한 중독성과 도박성으로 많은 이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탕진했다. 이 게임은 현재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탄생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일각에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수익이 나는 구조를 꼬집어 P2E 게임을 폰지사기에 빗대기도 한다. 어느 한 사용자가 돈을 벌었다면 누군가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 가장 유명한 P2E 게임 엑시인피니티의 경우 초기 진입자들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펫(엑시) 3마리가 필수로 있어야 하고 별도의 수수료(가스비)를 지불해야 한다.
펫 1마리의 가격은 0.1이더리움(약 48만원)에 달한다. 사실상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요즘 기준으로 약 15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돈을 버는 게임(Play to Earn)’이 ‘돈을 벌기 위해 쓰는(Pay to Earn)’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일부 사용자들의 우려다. 입장료를 꾸준히 내고 들어오는 이용자가 없으면 결국 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구조라 지속가능성에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P2E와 NFT 등이 합법화되는 순간 소셜 카지노 등 사행성 게임들이 밀고 들어와 ‘환전성’을 미끼로 제2의 바다이야기가 나올 염려가 있다”면서 “지금의 P2E는 게임성보다는 사행성을 건드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당국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규철 게임위 위원장은 2021년 한 토론회에서 “거래 기능을 뺀 블록체인 기술과 NFT는 환영하지만 그러면 게임사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술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이 유행처럼 NFT를 몰고 가지만 게임위까지 기업 유행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검증 안 된 게임들이 잇달아 출시될 경우 P2E 게임 자체가 사행과 사기의 온상이 되어 게임 산업의 건전한 발전마저 저해할 수 있다는 게 규제 당국의 우려다.
▶‘컨트롤타워 설치’ ‘규제 샌드박스’ 대안 부각 대선을 앞두고 ‘2030 게이머’ 표심을 잡기 위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게임 정책 공약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두 후보 모두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두 후보는 P2E 게임 공약에서는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P2E 게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윤 후보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두 후보 모두 게임 산업 자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과 함께 규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나트리스의 ‘P2E’ 게임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에 대한 등급분류 허가 결정취소를 통보했다.
한국게임학회는 지난 7월 민간 주도 대통령 산하 정책자문기구인 ‘게임산업전략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B게임사 관계자는 “거대한 기술 흐름이 너무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어느 한 규제기관(부처)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게임사들의 판단”이라며 “대선 후에 기술에 대한 정의와 큰 방향의 제도 개선 등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심의를 대폭 강화한 규제 샌드박스 등 전향적인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7호 (2022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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