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 확장하는 콘텐츠 제국 ‘하이브’의 미래는

    입력 : 2022.01.07 17:35:53

  • ‘연결, 이동, 확장을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2021년 3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사명을 변경하면서 밝힌 ‘하이브’에 담긴 의미다. BTS(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넘어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명에 걸맞은 본격적인 행보다. 강력한 IP(지적재산권)와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엔터 사업을 기반으로 고성장 신사업으로의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하이브의 비전은 ‘바운드리스(Boundless)’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시작은 음악과 아티스트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에서 사랑받는 플랫폼을 갖게 됐고, 커머스·게임·오리지널 콘텐츠·영상·출판·교육까지 한계 없이 확장하고 있다. 온라인·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음악과 아티스트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의 구분 없이 전 세계 팬들을 만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위버스’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온라인 유료 콘서트
    플랫폼 ‘위버스’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온라인 유료 콘서트
    하이브는 두나무와 손잡고 전개하는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을 비롯해 자체 보유한 IP를 활용한 게임, 오리지널 스토리(웹툰·웹소설), 컨슈머(패션·뷰티 신규 브랜드)로 영토를 넓혀 가고 있다. 위버스와 V LIVE 통합 플랫폼 출시를 통해서는 본격적인 ‘F2E(Fan to Earn)’ 생태계 구축에도 나선다.

    하이브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메타버스의 첨병으로 떠오른 국내 엔터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K-POP’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한류 콘텐츠다. 훌륭한 재료를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안진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브는 단순 엔터업 영역을 넘어 원천 IP 스토리의 소비·생산이 반복해서 이뤄지도록 하는 사업 구조를 확립해 나가고 있다. 오리지널 IP 아티스트 기반 비즈니스가 미디어, 게임, 플랫폼, 메타버스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무한 확장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기대감에 주가도 많이 올랐다. 하이브 주가는 12월 20일 기준 32만5000원으로 2021년 들어 105.2% 상승했다. 11월 17일에는 장중 42만1500원까지 오르면서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급등에 따른 부담으로 11월 중순 이후 다소 조정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전망이 많다. 금융투자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14곳이 추정한 하이브 평균 목표주가는 43만6321원이다.

    하이브 사옥
    하이브 사옥
    ▶공격적인 M&A로 IP 확보 BTS 의존도 낮추며 라인업 확대 하이브는 BTS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 플랫폼 비즈니스와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NFT 사업을 단단하게 쌓아 올려 나가고 있다. 연예기획사에서 플랫폼 회사로, 그리고 이제는 블록체인 기업으로까지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 레이블 사업은 캐시카우이자 IP 확보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브는 2020년 10월 기업공개(IPO) 전후로 음악 레이블 확장에 있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2019년 쏘스뮤직, 2020년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2021년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하며 레이블을 확장하고 양질의 아티스트 IP를 확보했다.

    특히 음악과 IT, 영화, 문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이타카 홀딩스 지분 100%를 1조1860억원에 인수한 것은 국내 엔터업계 M&A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레이블 인수 사례다. 이타카 홀딩스는 세계적인 팝스타를 키우는 기획자 스쿠터 브라운이 설립한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소속돼 있다. 2020년 순이익은 2045억원으로, 하이브 순이익 861억원보다 높다.

    그동안 하이브는 BTS ‘원팀 기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모두 미필인 BTS 멤버들이 하나둘 군대에 가고 나면 공백기를 메울 만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타카 홀딩스 인수를 비롯한 공격적인 투자로 이런 불안감이 희석되고 있다. 하이브 전체 매출에서 BTS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97%에 달했지만, 2020년 플레디스 인수를 통해 85%로 낮아졌고 2021년에는 60%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하이브의 글로벌 음반 시장 영향력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2020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서 발표한 글로벌 레코드 뮤직 매출 톱10 아티스트 중 세 팀(1위 방탄소년단, 8위 아리아나 그란데, 10위 저스틴 비버)이 하이브와 이타카 홀딩스 소속이다. 하이브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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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플랫폼 ‘위버스’ 고속 성장 MD 판매·콘텐츠 송출 등 실적 안정 코로나19가 지속되는 동안 월드투어에 파급력 있는 아티스트 라인업을 대폭 확대한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어 개최 시 하이브의 글로벌 음악 시장 점유율은 기대 이상으로 더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하이브를 다른 엔터기업과 차별화하는 요소다. 2020년 상반기 하이브의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음반·음원 40%, MD와 IP 라이선싱 33%, 콘텐츠 17%, 기타 11%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간접 매출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21년 상반기에는 이 비율이 57%에 달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은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다. 위버스는 아티스트와의 소통은 물론 가입 회원들만 볼 수 있는 단독 콘텐츠와 굿즈 구매 기회 등을 제공하면서 팬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BTS뿐만 아니라 블랙핑크, 위너, 세븐틴 등 국내외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하고 있어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4분기 470만 명 수준이었던 월 방문자 수(MAU)는 2021년 3분기 640만 명으로 36% 급증했다.

    위버스의 고속 성장을 주도한 건 20대 여성들이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2021년 10월 한 달간 위버스 이용자의 37.4%가 20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3.8% 늘어난 규모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10대 여성 이용자가 43.8%에 달할 만큼 위버스는 사실상 10대의 전유물이었으나, 2021년 들어 20대 이상으로 외연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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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 콘텐츠 플랫폼 목표 웹툰·웹소설·게임 출시 예정 하이브는 2021년 1월 네이버의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 ‘V LIVE’ 인수를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확대했다. 하이브의 자체 팬 플랫폼인 위버스와 경쟁 관계에 놓일 우려가 있었던 V LIVE를 인수하면서 리스크를 줄였다는 평가다. 2022년 상반기에는 V LIVE와 통합된 위버스가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텍스트 위주의 위버스에 V LIVE의 라이브 영상 기능이 더해진다. 특히 새 플랫폼은 검색, 인공지능 등 네이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서비스가 기대된다.

    팬과 아티스트의 소통 창구로만 쓰이던 플랫폼을 아티스트 공식 물품(MD) 판매, 콘텐츠 송출 등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실적도 안정화됐다. 특히 2021년 1분기에는 소속 아티스트의 공연이 없었음에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8.7% 증가한 1783억원을 기록했다. 공연 부문 매출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서도 MD와 라이선싱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8.54% 증가한 효과다. 2021년 3분기에도 간접참여형 매출 비중이 52%(1776억원)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섰다.

    강력한 IP도 하이브의 강점으로 꼽힌다. 하이브는 이를 웹툰, 웹소설, 게임, 패션, 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은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원천 IP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황보상우 하이브 제너럴 매니저는 “하이브는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을 통해 고유의 스토리 IP를 직접 기획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일 것”이라며 “오리지널 스토리에 하이브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캐스팅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2022년에는 웹툰, 웹소설로 소개될 네 편의 오리지널 스토리 <더 스타 시커스(THE STAR SEEKERS)> <다크 문(DARK MOON)> <크림슨 하트(Crimson Heart)> <7 페이츠: 착호(7Fates: CHAKHO)> 등을 공개한다. <7 페이츠: 착호>는 방탄소년단 컬래버레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2021년 1월 15일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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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브가 웹툰, 웹소설 사업에 발을 담그기로 한 것은 산하 K-POP 레이블 아티스트들과 시너지를 위해서다. 최근 K-POP 시장은 아티스트가 음악, 춤, 공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부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이브는 네이버, 카카오와 비교하면 아직 웹콘텐츠 규모가 영세하지만 아티스트 IP를 활용한다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브는 2010년 10월 기업공개(IPO) 당시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시작부터 엔터 기업을 넘어 종합 콘텐츠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티스트와 음악 IP를 바탕으로 한 게임도 개발 중이다. 하이브는 게임 사업에도 소속 아티스트를 적극 개입시킨다. 게임 기획, 개발 단계에서 소속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하는 ‘열린개발’ 방식을 도입했다. 게임을 통해 아티스트의 음악과 콘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2022년 상반기 방탄소년단의 신작 게임이 출시 예정이다.

    ▶두나무와 손잡고 NFT 시장 진출 F2E 경제 선구자로 자리매김 기회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NFT(대체불가능토큰) 시장 진출이다. 하이브는 2021년 11월 4일 두나무와 손잡고 NFT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지분 스와프 방식을 통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아티스트 IP 기반의 콘텐츠와 상품들이 팬들의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있는 NFT 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팬덤의 주된 수집품이자, 개인 간 거래가 활발한 포토카드를 영상으로 확장해 NFT화하는 방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공연, 음반, 플랫폼에 이어 NFT 기반 디지털 굿즈 시장이라는 미래 먹거리를 선점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NFT 사업이 본격화되면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들이 디지털 자산화될 수 있고, 팬들 간 거래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연간 매출의 약 52%를 차지하고 있는 MD, 라이선싱, 콘텐츠 기반 매출 성장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왼쪽)과 송치형 두나무 의장. 하이브와 두나무는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아티스트 IP와 NFT가 결합된 팬덤 기반의 신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왼쪽)과 송치형 두나무 의장. 하이브와 두나무는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아티스트 IP와 NFT가 결합된 팬덤 기반의 신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하이브가 ‘F2E(Fan to Earn)’ 경제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측면에 주목할 만하다. 최근 게임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P2E(Play to Earn)’가 ‘게임+NFT+거래소·DeFi 생태계’를 통해 게임 이용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F2E는 ‘아티스트 IP+NFT+마켓플레이스 생태계’를 결합해 팬들에게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통해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선화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덕질을 통해 사 모은 포토카드 NFT가 단순히 혼자 즐기는 소장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을 대상으로 환금성이 생기면 K-POP 팬뿐만 아니라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도 유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빈익빈 부익부’가 성립한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 결국 트래픽이 많은 곳에 NFT 거래량이 커질 수밖에 없고, 글로벌 1위 팬덤 규모와 최고가의 아티스트 IP를 보유한 위버스에 트래픽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선화 애널리스트는 “하이브는 F2E 생태계를 선도하는 데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독보적인 글로벌 1위 IP를 보유하고 있고, 리셀 가능이나 우선권 제공 등 팬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팬덤 활동을 장려하고 있어서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IP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확장해 나간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류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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