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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광풍 부는데… “디지털 경제 만능열쇠” vs “옥석 가려야”
입력 : 2022.01.06 16: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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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대체불가능토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20년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코인’ 광풍이 불었다면, 2021년은 단연 NFT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영어사전 출판사 영국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NFT를 선정했을 정도다. 정보기술(IT)업계부터 게임을 필두로 한 콘텐츠업계와 엔터테인먼트, 패션, 예술계까지 너도나도 NFT를 활용한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NFT 광풍에 힘을 보태고 있다. NFT는 다양한 유무형의 재화를 디지털자산으로 만들어 주고, 이를 ‘정품’으로 인증해주는 기술이다. 기존에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들을 디지털자산으로 만들 수 있고, 위조방지와 영구적인 유일성을 통해 소유권을 보장한다. 특히 또 다른 화두가 되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와 궁합도 좋아 거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 받는다.
그러나 NFT가 아무 데나 붙여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기업들이 빈약한 실적과 사업 구조를 가려 미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악용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광풍만큼 커졌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순식간에 가치가 0원이 될 수도 있고, 디지털 자산화 과정에서 원작자의 저작권이 침해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규제 공백 지대에 있어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받기 힘들다. 지난 수년 동안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 자금을 모으는 ‘초기코인공개(ICO)’가 내실 없는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된 것처럼, NFT가 또 다른 피해 사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바꾸면서 자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디엠(Diem)을 거래할 수 있는 가상자산 지갑 노비(Novi)를 출시했다.
반면 NFT는 각각의 토큰이 모두 다르며 가치도 저마다 다르다. 블록체인 기술로 자산에 일련번호를 부여해 복제나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영구적인 유일성이 인정되면서도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를 통해 출처, 발생시간 및 횟수, 소유자 내역과 기타 정보까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통용되는 ‘정품 인증서’인 셈이다. 진위 여부나 소유권 입증이 중요한 미술품 같은 분야에 NFT 적용이 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윗, 음악, 유전자 정보까지 디지털 자산으로 어떤 것들을 NFT로 만들어 팔 수 있을까. NFT는 기존에 통용되던 자산의 경계를 깬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지난 2006년 3월 “지금 막 내 트위터 설정했음(Just setting up my twttr)”이라는 최초의 트윗을 날렸는데, 이를 캡처한 파일도 NFT 기술을 적용해 자산이 됐다. 도시가 판 이 트위터 캡처 파일은 2021년 3월 290만달러(약 34억3500만원)에 낙찰됐다. 누구나 잭 도시의 트위터에서 이 트윗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캡처 파일이 나와도 ‘진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이 파일뿐이다.
그래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미국 록밴드 ‘킹스 오브 리온’은 2021년 신규 앨범을 NFT로 판매했다. 앨범에 일련번호를 매겨 팬과 수집광의 호기심 욕구를 자극한 결과 2주 만에 200만달러(약 22억33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디지털 예술가 비플이 만든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The First 5000 Days)’은 2021년 3월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786억원에 낙찰됐다. 2007년부터 매일 온라인으로 올린 비플의 모든 작품을 콜라주한 작품이다. 이는 현존 작가의 작품 가운데 3번째로 비싼 가격으로 기록됐다. 2021년 4월에는 유전자학의 대가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의대 교수가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NFT로 만들어 경매에 내놓았다. 처치 교수는 1984년 세계 최초로 인간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결정하는 법을 개발한 석학이다. 1990년 시작된 인간 유전자 정보 해독 연구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 방법이 사용됐다. 처치 교수는 지난 2018년 개인의 유전자 분석 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해 사고팔며 수익화할 수 있는 스타트업 ‘네뷸라 제노믹스’도 창업했다.
NFT를 통한 디지털 자산화에 관심이 몰리면서 거래액도 폭증했다. NFT 데이터 분석 사이트 논펀저블(NonFungible)에 따르면, 이더리움 블록체인상 NFT 거래액은 2018년 3676만달러(약 436억원), 2020년 6683만달러(약 792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1년 들어 NFT에 대중의 관심이 몰리면서 수요가 급증해, 1~9월까지 거래액만 43억1000만달러(약 5조1117억원)를 넘어섰다. 이마저도 상당수의 NFT 프로젝트가 집계되지 않은 수치라 실제 거래액은 더욱 클 것으로 추산된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대퍼 랩스는 지난 2017년 가상 고양이를 육성하는 게임 ‘크립토키티’를 출시했다. 크립토키티는 온라인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고양이를 수집하고, 교배시키는 게임이다. NFT 기술을 적용해 고양이마다 고유의 일련번호를 부여받고, 암호화폐로 고양이를 사고팔 수 있다. 가장 비싼 고양이 캐릭터는 ‘드래곤’으로 600이더리움에 거래됐다. 이를 산 게임 이용자는 당시 2억원(약 17만2000달러)가량을 들였는데, 현재 이더리움 시세를 감안하면 가치가 30억원 수준에 달한다. 베트남 스타트업 기업 ‘스카이마비스(Sky Mavis)’는 이더리움 기반의 블록체인 게임 ‘엑시인피니티(Axie Infinity)’로 흥행 몰이를 하며 NFT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이 게임은 게임 내 활동으로 ‘스몰러브포션(SLP)’이라는 자산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자산을 거래소를 통해 수익화할 수 있다.
해외에서 성공 사례가 확산되자 국내 주요 게임사들도 NFT와 놀면서 돈을 버는 ‘플레이투언(P2E·Play To Earn)’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위메이드는 NFT 기술을 적용한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를 2021년 8월 170여 개국에 출시했다. 블록체인 기술 유틸리티 코인 드레이코(DRACO)와 NFT 기술이 적용됐다. 게임을 즐기며 돈을 벌 수 있어 최근 전 세계 동시접속자가 130만 명을 넘어섰다. 2021년 8월 3만원대에 불과했던 위메이드 주가는 한때 2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도 2021년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NFT를 적용한 게임을 2022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당시 “내부적으로 NFT와 P2E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며 “NFT가 게임에 잘 접목되기 위해선 게임 내부 경제 시스템 관리에 대한 이해, 경험, 지식, 기술이 중요해 엔씨소프트가 가장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도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블록체인과 NFT를 게임과 연계하는 부분을 개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계획은 내년 초 다양한 신작 라인업과 함께 설명하겠다”고 했다. 컴투스, 네오위즈 등 다양한 게임 업체들도 NFT를 활용한 신사업 계획을 밝혔다.
그래미상을 받은 미국 록밴드 ‘킹스 오브 리온’은 블록체인 기반의 스트리밍 플랫폼 ‘옐로하트’를 통해 NFT 신작 앨범을 출시했다.
네이버 일본 계열사 라인의 블록체인 사업 자회사 라인테크플러스는 2021년 11월 ‘라인 블록체인’을 활용해 일본에서 ‘제페토’ NFT를 발행했다. 제페토는 네이버 손자회사 네이버Z의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라인은 자체 블록체인 기술로 제페토 월드 공식 맵 벚꽃정원 이미지 12종을 각 100개씩, 총 1200개의 NFT를 발행했다.
라인은 2021년 11월 NFT 사업을 위한 법인 ‘라인 넥스트’를 한국과 미국에 각각 설립하며, NFT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 법인은 블록체인 플랫폼 전략과 기획을, 미국 법인은 글로벌 NFT 플랫폼 사업 운영을 담당한다.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기업, 창작자가 손쉽게 NFT 마켓과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일반 사용자들이 NFT를 거래하거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생태계도 조성할 계획이다. 고영수 라인 넥스트 대표는 “NFT는 콘텐츠, 게임, 소셜, 커머스 등 전방위적 영역에서 디지털 변혁을 만들 인프라”라며 “한국에서는 글로벌 NFT 플랫폼 전략을 수립하고, 미국에서는 여러 글로벌 협력사들과 NFT의 전 세계 대중화를 실현하는 서비스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직접 블록체인을 글로벌 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만큼, 다양한 계열사가 NFT 관련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김 의장과 함께 카카오 그룹의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의 수장을 맡은 것도 NFT 분야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남궁 대표는 2021년 11월 카카오게임즈 주주서한을 통해 스포츠·메타버스·NFT 같은 사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카오게임즈의 캐주얼 게임 개발 자회사 프렌즈게임즈는 지난 12월 NFT를 활용해 10분 단위로 시간을 거래하는 서비스 ‘투데이이즈(TODAYIS)’를 선보였다. 손흥민 토트넘 100골 달성(2021년 1월 2일 10시 14분) 같이 모든 희소성 있는 순간을 타임슬롯 NFT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NFT 초기 시장을 이끈 고양이 육성 게임 ‘크립토키티’
▶고유의 수익 창출 사례도 늘어 NFT의 급부상에는 이 기술이 디지털 경제를 확산하고, 창작자의 수익 창출을 돕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자리 잡고 있다. NFT를 활용하면 실물뿐 아니라 디지털로도 소유와 정품 인증이 가능해져, 디지털 콘텐츠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디지털 공간으로 경제 시장이 확대되는 것이다. 원작자도 더욱 손쉽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NFT 기술로 고유의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드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특히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재산권을 보장하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NFT의 가치는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메타버스는 현재 정보기술(IT)업계의 성장동력으로 NFT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다. NFT를 활용하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토지, 건물, 이용자가 직접 만든 아이템 등을 사고팔아 수익을 올리게 할 수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와도 잘 맞는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NFT화된 재산이 유·무형을 구분하지 않는 MZ세대의 자금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새로 설립한 ‘크러스트(Krust)’ 대표로 최측근을 내세워 국내와 해외에서 블록체인 사업에 속도를 낸다.
에너지 소비가 크게 늘어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NFT 발행부터 거래, 저장 같은 모든 단계에 에너지가 많이 든다. 블록체인 특성상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만큼, NFT가 활성화될수록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브가 NFT 사업 진출을 선언한 뒤 방탄소년단(BTS) 팬 상당수가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팬들은 NFT 발행 시 상당량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BTS가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오대석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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