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매니지먼트 ⑨ 미래에셋 금융그룹] 박현주 회장 글로벌 야망… 도전과 성공 스토리 과감한 해외진출·M&A로, 亞 3대 IB 반열에

    입력 : 2022.01.06 11:15:13

  • 미래에셋 금융그룹은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대표주자다. 미래에셋은 자산운용, 증권, 벤처투자, 캐피털, 보험 등 비은행 금융산업 각 부문에서 전방위적 성장세를 나타내며 발군의 역량을 과시한다. 미래에셋은 차별화 전략과 스케일업,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 한국 금융산업의 새 역사를 썼다. 미래에셋 금융그룹을 설립한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을 한국 금융의 잠재력을 꽃피우는 선도기업으로 키워냈다. 그의 도전정신과 리더십은 불확실성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아시아 톱클래스 금융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하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투자그룹으로 부상한 미래에셋의 성공 스토리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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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금융 신기록 제조기, 진격의 미래에셋 미래에셋 금융그룹은 2021년 상반기 자기자본이 17조원에 육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 증권업계 최초로 자기자본 10조원을 돌파하면서 아시아권에서 손에 꼽히는 자기자본 규모를 갖춘 대형 투자은행(IB)으로 부상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대규모 자기자본 확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골드만삭스, 아시아를 호령하는 글로벌 IB로 도약하겠다는 박현주 미래에셋 금융그룹 회장의 목표가 실현되고 있다.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 세전이익 1조원, 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달성하겠다.” 박현주 회장은 2015년 KDB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이 같은 청사진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구상을 2021년 상반기에 모두 달성했다. 미래에셋증권은 2021년 상반기 자기자본이 10조467억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미래에셋캐피탈의 자기자본은 2조3480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조1135억원, 미래에셋생명은 1조9140억원, 미래에셋벤처투자는 2166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로써 미래에셋 금융그룹의 자기자본은16조6388억원에 달한다. 박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미래에셋그룹 전체 자기자본은 17조원을 돌파하고 세전이익은 2조3000억~2조4000억원가량 낼 것”이라며 “앞으로 자기자본 30조원을 돌파하는 시점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미래에셋증권이 자기자본 10조원을 돌파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6년 금융위원회는 초대형 IB 육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기자본 10조원을 기준선으로 삼았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굵직한 거래에 참여하려면 자기자본이 100억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자기자본 규모가 커야 다양한 업무를 취급하면서 글로벌 영업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국내 증권사 중 미래에셋증권의 위상이 독보적인 가운데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6조원에 육박하며 삼성증권은 5조원대 중반 KB증권과 하나금융투자는 5조원대 초반이다. 게다가 미래에셋증권은 해외투자 성과가 가시화하고 해외법인 실적이 호조를 보인 데다 발행어음업 인가에 힘입어 2021년 증권업계 최초로 순이익 1조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9월 미래에셋증권은 자기자본이익률(ROE) 11.6%를 기록했다.

    그동안 미래에셋증권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1999년 설립 당시 미래에셋증권 자본금은 500억원에 불과했다. 후발 주자인 미래에셋증권이 2015년 KDB대우증권을 합병하면서 대형 증권사로 도약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 자기자본은 6조6389억원으로 단숨에 두 배가량 늘었다. 동시에 취급하는 상품과 비즈니스 영역은 대폭 확대됐다. 미래에셋증권은 멀찌감치 앞서가던 일본 유수 증권사와 견줄 만한 규모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에셋증권은 설립 22년 만에 자기자본 10조원 고지를 밟고 국내 1위를 넘어 아시아 ‘톱3’ IB로 발돋움했다. 일본 1위 노무라증권의 자기자본은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30조원에 달하고 2위 다이와증권은 14조원에 이른다. 다이와증권은 1902년에 설립됐고 노무라증권은 1925년 출범했다. 1999년 설립된 미래에셋증권이 100년 역사를 보유한 일본 증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미래에셋증권이 노무라증권·다이와증권과 경쟁할 수 있는 아시아권에서 손에 꼽히는 빅 IB 반열에 올랐다. 미래에셋은 두둑한 실탄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수·합병(M&A)시장에서 아시아 맹주로 호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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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박현주 리더십: 도전정신·기업가정신 ‘샐러리맨 신화’ ‘스타 주식브로커’ ‘한국 자본시장의 개척자’ ‘최고의 금융 전략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이름 앞에는 그동안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왔다. 그는 한국 금융산업의 신기원을 연 주인공이다. 그는 ‘도전을 통한 성장’이라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성취한 금융인이다. 그는 통찰력과 예측력이 강하고 야성적 투자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지구촌 세상의 흐름을 면밀히 생각하고 고민한다. 여러 현상 간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추론한다. 그는 미래의 세계를 관통하는 트렌드를 예측하는 탁월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한다.

    박 회장은 승부사적 기질을 갖췄다. 그는 날쌘 표범처럼 기회 포착 능력이 탁월하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심사숙고한다. 또한 거의 중독에 가깝게 운동에 매달리며 홀로 의사결정에 몰입한다. 선택과 집중은 의사결정의 요체다. 의사결정은 핵심을 키우고 곁가지를 잘라내는 일이다. 기업이 해야 할 비즈니스와 해서는 안 될 비즈니스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는 전략적 선택을 ‘강점이 있는 분야, 핵심역량에 주력해 최고로 포지셔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룹 중역회의에서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래서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수많은 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로베이스에서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았다. 박 회장은 항상 중장기 미래를 내다보고 전략을 수립한다. 일단 마음을 굳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전속결로 추진한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올인한다.

    박 회장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박 회장은 책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됐다. 그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위인전기였다. 성공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점을 독서를 통해 인식했다. 장기적으로 한 길을 걸어간 위인들이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판단으로 투자의 매력을 체험했다. 그리고 그는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됐다.

    대학 시절 박현주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1980)이었다. 그는 이 책을 10회 이상 반복하며 열독했다. 이 책을 통해 미래라는 말에 매료됐다. 그는 미래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후 미래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게 됐다. 박 회장은 대학시절부터 키워온 미래에 대한 비전과 자산운용 비즈니스를 향한 꿈을 담아 설립하는 회사 이름을 ‘미래에셋’으로 짓게 된다. 박 회장은 미래를 향한 투자와 혁신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미래에셋 브랜드에 담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가 1990년대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중앙지점장 재직시절 영업의 지침으로 삼은 지점훈이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방법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라는 의미다. 그는 어려움이 닥쳐도 특유의 상황 판단력과 돌파력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서울 명동은 한국 증권산업의 중심이었다. 서른두 살 때 증권사 최연소 지점장에 오른 그는 패기만만한 25명의 직원들과 함께 전국 1000여 개 증권사 지점 중에서 실적 1등을 달성했다.

    박현주는 중견 증권사 임원으로서 순탄한 앞날이 보장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서른아홉 살에 자신의 비즈니스 세계를 열었다.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과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출범했다. 당시 심경은 “첫눈에 첫발을 내딛는 마음과 같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만 했다. 창업 당시 그는 “대출 중심의 한국 금융시장이 어떻게 하면 투자 중심의 금융시장으로 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또한 “투자 문화를 개선해 한국 자본주의와 증권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고 결심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자본시장 규제 완화와 증권투자신탁업법 시행은 큰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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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한국 최초의 회사형증권투자펀드(뮤추얼펀드) 운용회사, 미래에셋투자자문은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 회장은 그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미래에셋 박현주 1호’를 출시했다. 당시 그가 세운 원칙은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설계한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호응에 대성공을 거둔 뮤추얼펀드는 투자자가 주주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다른 펀드보다 운용의 투명성을 높인 금융상품이었다. 박현주 회장은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했고, 2005년 SK생명을 인수해 미래에셋생명을 출범시켜 퇴직연금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7년에는 PCA생명을 인수, 대형 생보사로 키웠다.

    미래에셋은 저축에서 투자로,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 상품 중심에서 글로벌 자산배분으로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꿔 왔다. 투자는 새로운 산업의 씨앗을 뿌려주고 육성하는 일이다. 특히 미래에셋은 고령화시대 금융의 컨버전스를 연금투자로 봤다. 근로자의 노후자산인 퇴직연금을 운용함에 있어 저수익 안전자산에 묶어두는 대신 고수익 투자자산을 편입하는 과감한 전환을 시도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에 자산을 배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분산투자로 수익성과 안전성을 겸비한 미래에셋의 연금자산 규모는 20조원을 넘었다. 박 회장의 미래에셋 성공 스토리는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 MBA의 ‘국제 기업가정신’ 강의교재로 채택됐다.

    당대 세계 최고 기업가와 초일류기업을 소개하는 케이스 스터디 교재에 박 회장이 주인공으로 선정된 것이다. 또한 미래에셋 금융그룹의 파괴적 혁신 사례는 2017년 세계적 학술기관인 ‘더 케이스’ 센터에 등재됐다.

    ③ 차별화 전략, 선택과 집중 그리고 혁신 미래에셋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향한다. 미래에셋은 고객 우선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품,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사업 모델을 끊임없이 만들기 위해 중단 없는 혁신을 추구한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자본시장의 DNA를 바꿔 투자를 활성화하고 미래 산업을 육성화하는 도전정신을 실천한다. 미래에셋은 네 가지 투자원칙을 정해 실천한다. 첫째, 경쟁력의 관점에서 투자 기업을 본다. 둘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다. 셋째, 기대수익과 함께 위험을 고려한다. 마지막으로 운용을 담당하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 신중하게 의사를 결정한다.

    미래에셋은 발상을 전환하는 혁신적인 사고로 통념에 도전했다. 기존의 관행을 다시 되짚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1990년대 말 창업 초기 박 회장이 선택했던 최선의 전략은 기존 자산운용사(투자신탁회사)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소수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당시 한국, 대한, 국민 등 대형 투자신탁 3사의 주력상품은 채권형 상품이었다. 3대 투신사는 고금리 시기에 채권형 상품 판매로 ‘공룡화’되어 있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시기에 주가지수가 급락한 경험을 가졌던 투자자들에게 주식형 상품은 기피 대상이었다. 주식형 펀드 비중이 크지 않았던 시절, 미래에셋은 주식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판단 아래 차별화된 전략에 힘을 모았다.

    1999년 현대투자신탁에서 판매한 주식형 수익증권 ‘바이코리아’의 열풍이 불었다. 당시 선보인 ‘미래에셋 박현주 1호’는 주식형으로 최대 1년 만기의 폐쇄형 펀드였다. 박현주의 명성을 기대한 투자자들의 참여로 500억원 한도가 출시 2시간 만에 완판됐다. 한국 주식의 디스카운트 현상은 투자매력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기존 대형 투신사들은 상황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은 대기업이 무너졌지만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미래에셋은 저평가된 우량기업 주식에 집중 투자했다. 그리고 1년 뒤 80%라는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박 회장은 저축자산의 투자 자산화를 예견하고 개인투자자를 위한 간접주식투자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예금상품이나 채권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겠다는 목표 아래 미래에셋은 채권형 펀드가 아닌 주식투자펀드 개발에 올인했다. 성장성이 높은 상장기업 주식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주식운용에 나선 것이다. 금리가 하락하는 저금리 구조로 진입하리라는 중장기 예측 아래 개발한 주식형 펀드는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제공했다. 종목 선정에 있어서도 업종 대표주를 중심으로 우수기업을 선정하는 전략적 투자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간접금융 상품에서 직접금융 상품으로 금융중개 기능이 탈은행화(Disintermediation)하는 추세와도 맞아떨어졌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서울대 강연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서울대 강연
    미래에셋은 출범 초기부터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명의 신생 금융회사인 미래에셋은 금융상품에 대한 대규모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을 적극 전개했다. 미래에셋은 신문과 TV, 잡지에 거금의 광고비를 투입해 미래에셋 상품을 소개하고 브랜드를 키우며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박 회장은 자신이 직접 광고를 디자인하고 카피를 작성하는 등 열의와 정성을 마케팅 활동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투자자는 미래에셋에 대한 관심과 호응으로 화답했다.

    미래에셋이 추구한 또 하나의 차별화는 펀드 판매채널의 혁신이다. 상품 판매 네트워크가 취약했던 미래에셋은 남다른 판매 채널 전략을 채택해 큰 성과를 냈다. 미래에셋과 관련이 없는 은행과 직접적인 경쟁상대가 아닌 증권사들을 펀드 판매 창구로 이용하는 역발상이 통했다. 다른 금융회사의 견제를 받지 않고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은행 판매 채널은 미래에셋의 적립식펀드 판매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 냈다. 은행 적금처럼 고객이 매달 자동이체 방식으로 일정 금액을 불입하는 적립식펀드는 중산층의 자산형성에 기여하는 상품이다. 적립식펀드는 주식시장의 변동성 위험을 줄여주는 투자수단으로 평가된다. 이는 평균 주식매입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미래에셋은 적립식펀드에 대한 잠재고객을 은행 창구 판매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보한 셈이다. 나아가 미래에셋생명이 적립식 퇴직연금상품을 개발해 선도적으로 판매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증권업계의 후발 주자인 미래에셋증권은 온라인 증권거래를 통한 대폭적 수수료 인하에 앞장섰다. 미래에셋은 모든 지점 객장에 주식시세 전광판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 위탁매매 수수료 위주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고객의 이익에 반해 빈번한 매매를 유도함으로써 수수료 수입을 증대시키는 ‘푸시전략’을 펼친 상황에서 미래에셋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미래에셋은 벽을 문으로 바꾸듯 금융에 새 길을 여는 영원한 혁신가가 되겠다.” 2017년 미래에셋 그룹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박현주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의 성공에 안주할 수는 없다. 박 회장의 도전은 계속된다. 창업 후 20년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규모 확대에 성공한 박 회장은 2017년 신년사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투자의 야성’으로 제2의 창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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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아시아 정상 등극을 통한 글로벌 전략

    “미래에셋을 아시아 1위의 금융투자회사로 키워 골드만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2007) “한국인만으로 세계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기는 어렵다. 동맹군을 찾아야 한다.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된 몽골족이 150년간 2억 명의 세계 인구를 지배한 연합(동맹) 전략이 벤치마킹 대상이다.”(2006) “자산 다각화 포트폴리오로 지혜롭게 투자하겠다.”(2012) “기회가 닿는 대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공격적으로 M&A하고 국내외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2015)

    박현주 회장은 아시아 외환위기가 수습되자 세계로 눈을 돌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해외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200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수를 마친 박 회장은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에 나섰다. 그는 해외진출 시 해당 국가의 성장 지속성, 인프라 투자 충분성, 천연자원 보유,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인구구조 등 영업환경을 면밀히 검토했다. 현지 시장이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 경제 기반을 바탕으로 긍정적 흐름을 보이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글로벌 진출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포기하는 일 없이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현지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봤다.

    미래에셋은 2003년 홍콩에 자산운용사를 설립, 금융수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갈증과 도전은 희망이 된다”는 신념을 품은 박 회장은 칭기즈칸 전략을 앞세워 이머징 마켓을 집중 공략했다. 미래에셋은 글로벌 투자 전략으로 투자영역과 자산규모를 확대했다. 해외 영업거점 확충과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미래 수익원 확보와 투자위험 분산 관리를 실현함으로써 한국 금융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토를 개척했다. 2021년 9월 미래에셋은 현재 세계 15개 지역에서 34개의 현지 법인과 사무소를 통해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영미권과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 이머징 국가에 진출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미래에셋 해외법인은 증권 위탁매매, 기업금융(IB),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등 현지 사업을 영위하는 동시에 해외 금융상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래에셋은 이머징 마켓 최고의 주식 투자 전문그룹으로서 한국 투자자들에게 특정 지역과 업종을 테마로 하는 펀드를 소개했다. 글로벌 금융지도를 더욱 넓고 촘촘하게 그려가는 미래에셋은 전 세계 36개국에서 1700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 중이다. 해외 현지에 설정된 자산도 90조원을 웃돈다. 미래에셋이 지역별 특화 전략을 통해 시장변동성에 적극 대응한 결과는 실적 개선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항상 빼어난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창업한 미래에셋은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3차례 위기를 겪었다. 주가 하락기엔 어떤 운용사도 탁월한 수익률을 내기 힘들다. 2008년 인사이트 펀드의 투자 실패는 미래에셋의 쓰라린 경험이 됐다. ‘해외판 박현주 펀드’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던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의 거품경제 붕괴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며 운용자산의 가치가 폭락해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히고 ‘반토막 펀드’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인사이트펀드는 7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지나 플러스 수익률로 돌아섰다. “실패하더라도 모든 경험은 한국에 남는다”는 신념이 실적으로 화답했다. 고통과 실패의 경험으로 쌓은 장기투자 노하우는 결국 든든한 보약이 됐다. 2019년 3월 박회장은 미래에셋그룹 임직원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사내 편지를 썼다. “위기는 미소 띤 얼굴로 찾아온다. … 항상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고 글로벌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은 미래에셋 금융그룹 해외법인의 헤드쿼터 역할을 한다. 홍콩법인은 원 아시아 에퀴티 세일즈 조직을 통해 해외투자자 대상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각 지역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홍콩법인은 해외 IB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럽 최대 바이오 업체인 바이오엔텍의 나스닥 상장, 아시아 최대 물류 플랫폼 기업인 ESR의 홍콩 상장 등 글로벌 IPO 주관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베트남법인도 2007년 베트남 최초 외국계 종합증권사로 출범한 이래 10년 만에 현지 최대 증권사로 도약했다. 미래에셋은 2018년 미국의 상장지수펀드(ETF) 전문 운용사인 ‘글로벌X’ 인수를 통해 글로벌 자산운용 역량 강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캐나다 호라이즌스 ETFs 등 해외 조직이 상장시킨 ETF는 2021년 9월 말 기준 368개에 달한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ETF 순자산은 87조5000억원으로 글로벌 10위권 운용규모를 자랑한다. ‘아시아그레이트컨슈머’와 ‘아시아섹터리더’ 펀드는 미국에서 설정된 아시아 펀드 가운데 3년 수익률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해외사업은 미래에셋의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타이거 ETF 수수료는 해외법인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래에셋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투자전문인력을 바탕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테마형 ETF를 꾸준히 공급한 것이 운용자산 증가, 실적 개선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낳은 것이다. 또한 국내 펀드시장의 성장 둔화와 과열된 수수료 경쟁 속에서 돌파구를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 해외 시장의 역동성과 가능성에서 찾은 전략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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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수출의 선봉장, 미래에셋은 이제 국내보다 해외에서 돈을 더 많이 버는 회사가 됐다. 한국 금융을 세계에 수출하겠다는 박 회장의 집념이 꽃을 피운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법인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3분기까지 265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법인의 누적 순이익 2437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증권은 물론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등 모든 계열사가 해외 시장에서 각자도생한다는 목표로 전략을 펼친다. 박 회장은 해외경영에 관해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진입한 느낌이 든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명했다.

    미래에셋은 국내 투자 중심이던 한국 금융권에서 글로벌 투자를 선도해왔다. 미래에셋은 2006년 중국 상하이 푸둥 대형 빌딩(미래에셋상하이타워) 인수를 시작으로 2011년 세계 최대의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큐시네트, 2013년 호주 ‘포시즌스호텔’과 커피빈 미국 본사, 2019년 프랑스 파리 ‘마중가타워’ 빌딩 등 해외 기업과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미래에셋의 M&A는 지역과 산업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 각 지역의 시장동향과 투자정보를 신속히 파악해 다양한 글로벌 투자기회를 찾는다. 박현주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1년에 300~400개 딜이 우리에게 들어온다. 대부분 해외 매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호텔과 오피스를 중심으로 대체투자를 진행해온 미래에셋은 물류센터를 비롯해 병원, 리스 등으로 대체투자를 확대해 나간다. 특히 글로벌 물류 인프라스트럭처는 코로나19 대유행 여파가 언택트 쇼핑과 이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는다.

    글로벌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는 알토란 같은 성과를 냈다. 미래에셋은 그동안 중국 드론제조업체 DJI, 동남아시아 차량공유서비스 그랩, 인도 이커머스 식품업체 빅바스켓, 인도 차량 공유서비스 올라, 그리고 미국 대체육류 개발 제조업체인 임파서블 푸드에 투자했다. 그리고 인도의 조마토,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기업 부깔라팍 등이 상장하자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면서 해외법인 실적향상에 보탬이 됐다. “의학이 발전하고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헬스케어라는 새 산업이 등장했다. 중국 인구가 15억 명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두고 투자해야 한다.” 박 회장은 2018년 미래에셋생명 사내 방송에서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부동산 시장 호황 이후를 내다보며 경쟁력을 갖춘 회사를 중심으로 꾸리는 것이 미래에셋의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은 네이버, 셀트리온, GS리테일 등 주요 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글로벌 신성장 투자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이다. 미래에셋증권과 네이버는 2017년 상대방 주식을 5000억원 규모로 매입하면서 글로벌 진출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당시 박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아이디어를 지닌 회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면서 “미래산업을 하는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M&A)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미래에셋과 네이버는 1조원 규모의 ‘미래에셋·네이버 아시아그로스펀드’를 공동 조성했고 이 펀드는 세계 최대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에 투자를 진행했다.

    ‘글로벌X 클라우드 ETF’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나스닥 마켓사이트(NASDAQ MarketSite)에 표시돼 있다.
    ‘글로벌X 클라우드 ETF’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나스닥 마켓사이트(NASDAQ MarketSite)에 표시돼 있다.
    ⑤ 미래에셋은 인재 양성에 올인한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이고, 인재와 시스템이 기업과 국가의 성패를 좌우한다. 미래에셋은 돈보다 사람에 투자한다. 미래에셋은 역량 있는 경력자를 대거 영입한다. 미래에셋은 권한 위양과 다양한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는 인재경영을 지향한다. 동시에 글로벌 투자 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021년 11월 대대적인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미래에셋 창립멤버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는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전문경영인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박현주 회장은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과 홍콩법인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해외 시장 진출과 인수·합병 등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임원 수는 113명으로 늘었다. 전체 임직원 542명 중 20.85%가 임원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이처럼 임원 수를 크게 늘리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박 회장의 사업방침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은 유능하고 젊은 직원이 회사를 이끌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 직위나 보상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왔다. 스카우트 과정에서 유능한 인재라고 판단하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임원 승진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임원 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자산배분, 부동산투자개발 등 주요 사업을 부문별로 나눠 각각 대표를 두는 ‘부문 대표’를 23명으로 늘렸다. 실질적 책임과 권한을 갖는 대표 수를 늘려 임원들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동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스타급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펀드매니저를 지속적으로 영입해왔다.

    경쟁사보다 ROE가 낮아 막대한 자본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현주 회장은 평소 “회사가 얻은 열매를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 직원들과 나누려고 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배려가 있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998년 미래에셋육영재단을 세우고 2000년에는 사재 75억원을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오래전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설립 이후 20년 동안 재단의 장학사업과 글로벌 문화체험, 경제 및 진로교육 등 인재육성 프로그램에 32만 명이 넘는 학생이 참가했다.

    2021년 3월 기준 해외교환 장학생 5939명, 국내 장학생 3578명, 글로벌 투자 전문가 장학생 124명, 글로벌 장학생 124명 등 총 9641명의 학생이 미래에셋의 지원을 받았다.

    ⑥ 향후 과제 미래에셋 금융그룹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와 글로벌 투자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이머징마켓을 넘어 선진국 금융시장을 포괄하면서 깊이 있는 자산운용서비스와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 강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신규 비즈니스 확충과 수익성 강화로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를 통해 은행과 차별성을 키우는 초대형 금융투자회사로 거듭나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대형 IB인 JP모건, 모건스탠리 등은 100조원이 넘는 자기자본에도 ROE가 10%를 상회하는 호실적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의 경우, 늘어난 자본만큼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0년 말 기준 글로벌 증권사의 ROE는 JP모건이 10.7%, 모건스탠리가 11.4%, 골드만삭스는 8.5%를 각각 기록했다. 미래에셋증권은 2020년 8.94%로 비교적 양호한 ROE를 달성했지만 자본이 늘어날수록 수익성 제고 부담도 커진다. 미국에서 주식소수점거래 등으로 혁신에 앞장선 증권사 찰스슈와브는 미래에셋증권과 비슷한 연매출 100억달러(약 11조원)를 올리면서도 14.2%에 달하는 높은 ROE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고객자산관리(Wealth-Manage ment)를 잘하는 증권·자산운용사가 최고 금융사로 인정받는다. 회사 규모와 별개로 고객에게 높은 수익률을 돌려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보 어드바이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금융투자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 기술 인프라 구축과 AI를 활용한 자산관리기법의 고도화 등 혁신적인 서비스 개발도 요망된다. 또한 M&A나 상장(IPO) 업무에서 저가 출혈 경쟁이 아닌 전문 서비스를 펼치면서 합당한 수수료를 받는 금융투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내에서 미래에셋증권은 은행과의 진검승부를 앞두고 있다. 초대형 IB 비즈니스 가운데 발행어음 사업과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전개에 주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천신만고 끝에 따낸 발행어음 사업을 ROE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투자금융업계 최초로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IMA는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면서 고객 예탁금을 운용해 은행 금리 이상 수익을 지급할 수 있는 통합계좌를 말한다. IMA는 별도의 한도 없이 고객예탁금 및 기업금융 사업을 키울 수 있어 사실상 은행과 같은 예금·대출 업무 수행이 가능해진다.

    IMA 업무 허용은 한마디로 금융 영역 파괴의 신호탄인 셈이다. 미래에셋이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일찌감치 포기한 것도 IMA 사업을 통한 예금·대출 업무 진출 가능성을 내다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은 인공지능, 전자상거래와 금융결제 서비스 역량을 갖춘 네이버와 협업을 통해 예금·대출 업무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금융전략 추진방향이 주목된다.

    [홍기영 월간국장/경제학박사]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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