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부진, 주가하락, 혁신 기로 선 3N(넥슨·엔씨·넷마블)

    입력 : 2021.12.08 17:26:21

  •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등 ‘3N’으로 불리는 국내 대형 게임사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3N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 PC 온라인·모바일 게임 산업의 성장을 주도해 왔다. 넥슨의 바람의 나라·메이플스토리,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넷마블의 모두의마블 등이 대표적인 히트작이다. 3N은 작년 코로나19 특수가 더해져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주가는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가총액이 신기록을 썼다. 하지만 신바람을 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어두운 전망과 함께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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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은 실적 하락에 흔들리는 3N 3N은 지난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감소하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냈다. 지난 3분기 성적도 부진했다. 넥슨은 3분기 영업이익이 3137억원(약 298억엔)으로 8% 늘었지만 매출은 7980억원(약 759억엔)을 기록해 4% 줄었다. 엔씨소프트는 영업이익이 963억원으로 작년 동기(2177억원)의 절반에 못 미쳤고, 매출은 14.45% 감소했다. 넷마블 역시 매출이 5.5% 줄고, 영업이익은 296억원에 그쳐 지난해 동기(874억원)보다 69.6%나 감소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 감소도 심각하지만, 매출 하락은 게임사의 기본 체력이 약해졌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3N의 기업가치도 추락했다. 넥슨은 작년 하반기 시가총액이 32조원을 넘어섰지만 올해는 한때 17조원대까지 떨어졌다. 엔씨소프트도 작년 21조원을 돌파했지만 올해 13조원대까지 주저앉았다가 최근 16조원대로 회복했다. 넷마블은 작년 17조원에 육박했지만 올해는 11조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3N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곡선을 그리면서 시가총액은 지난해 최고점 대비 28조원가량 증발했다. 회사별로 시가총액의 약 3분의 1이 날아갔다.

    엔씨소프트 리니지W
    엔씨소프트 리니지W
    ▶확률형 아이템·IP ‘재탕’으로 비판 3N이 고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이용자에게 과금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넥슨이 2000년대 초반 게임에 처음 적용했다. 이후 국내 게임 전반에 핵심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초기엔 게임의 재미 요소로서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갈수록 아이템을 뽑는 조건이 복잡해지고 뽑기 성공 확률이 소수점 단위까지 낮아지면서 사행성 논란이 커졌다. 여기에 게임 아이템의 확률 조작 논란이 터지면서 사상 초유의 ‘집단 트럭 시위’가 벌어졌다. 3N의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며 ‘손절(포기)’을 선언하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

    게임 속 ‘뽑기 아이템’ 확률은 얼마나 낮은 걸까. 게임업계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를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핵과금러(고액결제자)’를 양산하는 대표 게임으로 꼽는다. 실제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은 상당수의 캐릭터 변신·장비·스킬 아이템의 뽑기 성공 확률이 1% 미만으로 설정돼 있다.

    게임 캐릭터의 등급에 따라 확률은 최저 0.0005~0.0003%까지 낮아지기도 한다. 예컨대 리니지M에서 뽑기를 11번 할 수 있는 상품 가격은 3만3000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0.01% 확률의 아이템을 획득하려면 3000만원을 들여 만 번을 시도할 때 평균적으로 한 번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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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지 이용자들에 따르면 유료 패키지 상품을 통해 한 번당 100만원 이상 들어가는 뽑기가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게임에서 최상급 레벨의 용사가 되려면 ‘서울 아파트값’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리니지 이용자는 “확률이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낮은 것도 문제지만 확률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며 “시간·수량 한정이란 수식어를 단 유료 패키지 상품이 거의 매주 추가되면서 ‘게임사가 이용자의 배를 갈랐다’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넥슨과 넷마블의 게임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확률형 아이템을 바탕으로 한 과금 방식에서 리니지와 유사하다는 게 게임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확률장사 5대 악덕 게임’으로 리니지,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모두의마블 등 3N 대표 게임을 지목했다.

    둘째, 과거 인기 지식재산(IP)을 활용한 게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업계는 히트 게임을 만들어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다보니 신작 게임을 개발할 때 시장에서 흥행 검증을 마친 기존 IP를 이용하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전략을 쓴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3N이 출시한 신작 게임들의 상당수가 십수년 전 성공했던 PC 온라인 게임을 모바일에 이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게임 방식과 그래픽, 배경음악 등이 스마트폰 환경에 맞게 바뀌었지만 이용자들은 ‘추억의 게임’이라며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메타버스 VFX 연구소 투시도
    메타버스 VFX 연구소 투시도
    결국 확률형 아이템 모델과 비슷한 IP로 게임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해외 성적도 부진하다. 넥슨은 국가별 매출에서 한국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2018년 29%, 2019년 36%였는데 작년 56%까지 높아졌다. 엔씨소프트도 매출에서 한국 비중이 80% 이상이다. 넷마블만 해외 매출 비중이 70% 이상이며 북미·일본·동남아시아 등에 고르게 분포됐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3N이 고수해온 확률형 아이템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해외 진출을 노리고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리니지W’가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면 앱 매출 순위 상위권 진입에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블록스·메타·MS 등 해외 기업은 게임 콘텐츠와 기술로 승부 반면 해외 기업들은 개성 있는 스토리와 첨단 기술을 내세워 게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게임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 이용자의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3N의 게임처럼 돈을 써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제작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를 전 세계 이용자들이 공짜로 즐길 수 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창작자)와 게임사들이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5000만 개 이상의 게임이 생겼다. 올 3분기 매출이 1년 전의 2배인 5억930만달러(약 6001억원)를 기록했다. 3분기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473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31% 늘었고, 게임 이용 시간도 28% 증가했다.

    중국 게임사 미호요가 개발한 ‘원신’은 작년 9월 한국·미국·일본·유럽 등에 출시된 게임이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고품질 그래픽·배경음악·촘촘한 스토리텔링 등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글로벌 히트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유럽 게임 박람회에선 원신 캐릭터로 분장한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원신도 확률형 아이템을 적용했지만 확률이 1% 이상으로 한국처럼 낮지 않고 돈을 쓰지 않아도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넷마블은 개발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지분 100%를 출자해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Metaverse Entertainment Inc.)’를 설립했다.
    넷마블은 개발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지분 100%를 출자해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Metaverse Entertainment Inc.)’를 설립했다.
    메타(페이스북)는 증강(AR)·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게임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미국 3대 정보기술(IT) 공룡들은 클라우드 게임을 통해 정액제로 수십 수백 개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최근 넷플릭스도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추가 요금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세상’이라고 광고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선 사행성 논란이 있는 확률형 뽑기 아이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계는 12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관련 강화된 자율규제를 시행한다. 그러나 국회에 게임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확률 조작과 수집형 뽑기를 금지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학계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
    ▶‘절치부심’ 3N “올해가 증대 변곡점” 내년 신규 IP와 신기술 출격 채비 3N은 올해를 중대 변곡점으로 보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3N이 트럭 시위를 비롯해 신작 흥행 실패,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등 각종 악재를 겪으면서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게임을 고수하면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신에 가장 적극적인 게임사는 넥슨이다. 넥슨은 내년 신작 출시를 앞두고 확률형 아이템과 같은 기존 사업 모델을 재검토하고 대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의 오웬 마호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콘퍼런스콜에서 “이용자들이 아이템 뽑기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등 게임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다”며 “게임사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실시간 확률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해 연내 게임에 도입할 예정이다. 넥슨은 기존 게임은 물론 향후 출시하는 모든 게임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넥슨 던전앤파이터
    넥슨 던전앤파이터
    넥슨은 새로운 IP를 10종 이상 개발하고 신작에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경영 목표를 세웠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 RPG) ‘프로젝트 ER’, 수집형 RPG ‘프로젝트 SF2’, ‘테일즈위버M’, ‘프로젝트 HP’를 준비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해양 어드벤처 ‘DR’, 대전 액션게임 ‘P2’, 중세 동굴 탐험 ‘P3’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소규모 게임 브랜드 ‘프로젝트 얼리스테이지’도 개발하고 있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샌드박스 플랫폼 ‘프로젝트MOD’와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는 넥슨의 카트라이더 IP 기반 게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도 선보일 계획이다. 넥슨은 동시다발적인 게임 개발을 추진하면서 내년까지 1000명 이상을 뽑기로 했다. 넥슨은 많게는 수천 명까지 투입하는 대규모 신작도 검토 중이다. 통상 국내 게임사에서 대형 신작엔 200여 명의 개발자가 투입된다.

    넥슨 관계자는 “임원들이 게임 관련 새로운 사업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내년 신작 출시를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엔씨소프트는 신작 개발을 위해 해외 게임사에 대한 인수합병(M&A)·지분투자를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블록체인을 활용한 게임도 선보인다. 엔씨소프트는 사내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NFT를 활용한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임(P2E·Pay to Earn)’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20년 넘게 ‘돈을 써야 이길 수 있는 게임(P2W·Pay to Win)’인 리니지 시리즈를 출시해왔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계기로 엔씨소프트가 요즘 유행하는 P2E 게임으로 국면전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는 게임 내 가상화폐로 캐릭터와 각종 장비와 펫 등이 거래되고 있고 ‘지하경제’도 형성돼 있다”며 “게임 속 경제 시스템 운영 경험과 노하우가 많아서 NFT 게임을 잘할 수 있는 게임사로 꼽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리니지처럼 이용자에게 지나치게 과금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확률형 아이템 뽑기를 적용한 게임에 NFT와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사행성 논란이 커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이용자 입장에서 아이템의 가치를 어떻게 가져갈지 등 운영의 문제와 사회·법률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도 MMORPG에서 탈피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앞서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앤소울2’를 출시했지만 기존 리니지를 우려먹은 게임으로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엔씨소프트는 향후 신작은 기존 게임과 다를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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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마블은 메타버스 사업을 통해 게임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넷마블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지분 100%를 출자해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가상현실 플랫폼 개발과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 등 게임 관련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넷마블이 메타버스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콘텐츠와 해외 유통 체인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넷마블은 내년 상반기 완공 목표로 광명역 인근에 메타버스 VFX 연구소를 짓는다. 이 연구소엔 모션캡처와 크로마키, 전신 스캐닝 등 메타버스 구현에 필요한 기술 장비로 채워질 예정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3N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수익모델에 매몰되면서 혁신을 기반으로 한 게임 업(業)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며 “신규 IP와 수익 모델 다각화 등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영신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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