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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부진, 주가하락, 혁신 기로 선 3N(넥슨·엔씨·넷마블)
입력 : 2021.12.08 17: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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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등 ‘3N’으로 불리는 국내 대형 게임사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3N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 PC 온라인·모바일 게임 산업의 성장을 주도해 왔다. 넥슨의 바람의 나라·메이플스토리,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넷마블의 모두의마블 등이 대표적인 히트작이다. 3N은 작년 코로나19 특수가 더해져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주가는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가총액이 신기록을 썼다. 하지만 신바람을 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어두운 전망과 함께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3N의 기업가치도 추락했다. 넥슨은 작년 하반기 시가총액이 32조원을 넘어섰지만 올해는 한때 17조원대까지 떨어졌다. 엔씨소프트도 작년 21조원을 돌파했지만 올해 13조원대까지 주저앉았다가 최근 16조원대로 회복했다. 넷마블은 작년 17조원에 육박했지만 올해는 11조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3N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곡선을 그리면서 시가총액은 지난해 최고점 대비 28조원가량 증발했다. 회사별로 시가총액의 약 3분의 1이 날아갔다.
엔씨소프트 리니지W
게임 속 ‘뽑기 아이템’ 확률은 얼마나 낮은 걸까. 게임업계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를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핵과금러(고액결제자)’를 양산하는 대표 게임으로 꼽는다. 실제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은 상당수의 캐릭터 변신·장비·스킬 아이템의 뽑기 성공 확률이 1% 미만으로 설정돼 있다.
게임 캐릭터의 등급에 따라 확률은 최저 0.0005~0.0003%까지 낮아지기도 한다. 예컨대 리니지M에서 뽑기를 11번 할 수 있는 상품 가격은 3만3000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0.01% 확률의 아이템을 획득하려면 3000만원을 들여 만 번을 시도할 때 평균적으로 한 번 성공할 수 있다.
둘째, 과거 인기 지식재산(IP)을 활용한 게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업계는 히트 게임을 만들어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다보니 신작 게임을 개발할 때 시장에서 흥행 검증을 마친 기존 IP를 이용하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전략을 쓴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3N이 출시한 신작 게임들의 상당수가 십수년 전 성공했던 PC 온라인 게임을 모바일에 이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게임 방식과 그래픽, 배경음악 등이 스마트폰 환경에 맞게 바뀌었지만 이용자들은 ‘추억의 게임’이라며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메타버스 VFX 연구소 투시도
게임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3N이 고수해온 확률형 아이템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해외 진출을 노리고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리니지W’가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면 앱 매출 순위 상위권 진입에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블록스·메타·MS 등 해외 기업은 게임 콘텐츠와 기술로 승부 반면 해외 기업들은 개성 있는 스토리와 첨단 기술을 내세워 게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게임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 이용자의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3N의 게임처럼 돈을 써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제작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를 전 세계 이용자들이 공짜로 즐길 수 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창작자)와 게임사들이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5000만 개 이상의 게임이 생겼다. 올 3분기 매출이 1년 전의 2배인 5억930만달러(약 6001억원)를 기록했다. 3분기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473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31% 늘었고, 게임 이용 시간도 28% 증가했다.
중국 게임사 미호요가 개발한 ‘원신’은 작년 9월 한국·미국·일본·유럽 등에 출시된 게임이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고품질 그래픽·배경음악·촘촘한 스토리텔링 등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글로벌 히트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유럽 게임 박람회에선 원신 캐릭터로 분장한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원신도 확률형 아이템을 적용했지만 확률이 1% 이상으로 한국처럼 낮지 않고 돈을 쓰지 않아도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넷마블은 개발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지분 100%를 출자해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Metaverse Entertainment Inc.)’를 설립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선 사행성 논란이 있는 확률형 뽑기 아이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계는 12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관련 강화된 자율규제를 시행한다. 그러나 국회에 게임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확률 조작과 수집형 뽑기를 금지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학계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
변신에 가장 적극적인 게임사는 넥슨이다. 넥슨은 내년 신작 출시를 앞두고 확률형 아이템과 같은 기존 사업 모델을 재검토하고 대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의 오웬 마호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콘퍼런스콜에서 “이용자들이 아이템 뽑기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등 게임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다”며 “게임사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실시간 확률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해 연내 게임에 도입할 예정이다. 넥슨은 기존 게임은 물론 향후 출시하는 모든 게임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넥슨 던전앤파이터
넥슨 관계자는 “임원들이 게임 관련 새로운 사업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내년 신작 출시를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는 게임 내 가상화폐로 캐릭터와 각종 장비와 펫 등이 거래되고 있고 ‘지하경제’도 형성돼 있다”며 “게임 속 경제 시스템 운영 경험과 노하우가 많아서 NFT 게임을 잘할 수 있는 게임사로 꼽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리니지처럼 이용자에게 지나치게 과금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확률형 아이템 뽑기를 적용한 게임에 NFT와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사행성 논란이 커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이용자 입장에서 아이템의 가치를 어떻게 가져갈지 등 운영의 문제와 사회·법률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도 MMORPG에서 탈피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앞서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앤소울2’를 출시했지만 기존 리니지를 우려먹은 게임으로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엔씨소프트는 향후 신작은 기존 게임과 다를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3N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수익모델에 매몰되면서 혁신을 기반으로 한 게임 업(業)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며 “신규 IP와 수익 모델 다각화 등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영신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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