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총 1조달러 돌파하며 ‘천슬라’ 등극 경쟁 상대는 SW 강자 구글·애플

    입력 : 2021.12.08 16:08:10

  • “이제 탄소중립은 뒤집을 수 없는 국제사회의 규범이자 시대적 과제가 됐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이를 법제화해 탄소중립을 위한 법적 기초를 갖췄다.”

    지난 11월 22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콘퍼런스’에 참석한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의 기조연설 중 한 대목이다.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모인 이날, 영상으로 발표에 나선 캐드리 심슨 EU집행위원회 에너지분야위원장은 “유럽연합과 한국이 추구하는 기후관련 비전은 유사하다”며 “바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는 청정 디지털 전환”이라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에너지의 중심축이 석유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최종 에너지 수요에서 전기에너지 비중은 2020년 20%, 2030년 26%, 2050년 50%로 성장이 예상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분야는 역시 자동차산업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미래 산업이 아닌 일상이 됐다. 국산 완성차 기업의 한 임원은 “‘아이오닉5’의 전기로 차박 시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것처럼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움직이는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ESS)”이라며 “전기차는 탄소중립 시대에 일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 수가 대략 절반 정도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은 훨씬 더 복잡하다. 전기차의 핵심기술은 배터리관리시스템(Battery Management System·BMS)과 빅데이터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AI, 반도체로 요약된다.

    임은영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관련 리포트에서 “전기차의 핵심 기술을 잘 갖춘 기업은 향후 충전 플랫폼, 에너지 플랫폼, 자율주행 플랫폼 등 세 가지 오프라인 플랫폼을 주도하게 될 전망”이라며 “에너지 플랫폼 시장 규모는 자동차 시장(연간 2조달러) 대비 50% 수준,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 규모는 현재 성장성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각의 플랫폼은 데이터 판매 비즈니스도 포함하고 있어, 전기차 핵심기술을 갖춘 기업의 가치는 글로벌 시가총액 기준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세 가지 오프라인 플랫폼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어느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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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세 분야의 선두주자는 ‘테슬라(Tesla)’다. 테슬라는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충전·에너지·자율주행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임은영 수석연구위원은 “내년에는 테슬라의 서비스 사업부에 속한 충전 플랫폼과 에너지사업부에서 매출 고성장과 흑자전환이 예상된다”며 “AI 플랫폼의 끝판왕인 AI 로보택시(Robo-Taxi) 서비스는 지연되고 있지만 실적에선 이미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위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올 3분기 매출액은 138억달러(약 16조23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억달러(약 2조532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8%나 늘었다.

    ▶충전·에너지·자율주행 플랫폼 선두주자 지난 10월 24일(현지시간) 테슬라의 주가는 전일보다 12.66% 급등하며 마침내 1000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시총도 1조달러를 돌파했다. 시총 1조달러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모회사 알파벳만 보유한 기록으로, 테슬라는 전 세계 자동차 기업 중 처음으로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세금과 스톡옵션 문제로 보유 주식 매도에 나서며 한때 1000달러를 밑돌기도 했지만 11월 22일 현재 주가는 1156.87달러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타격을 받은 시점에 과연 테슬라의 무엇이 주가 상승의 도화선이 된 걸까. 증권가에선 “렌터카 업체 허츠(Hertz) 관련 호재가 테슬라의 주가 급등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앞서 허츠는 2022년 말까지 테슬라의 보급형 세단 ‘모델3’ 10만 대를 구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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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필즈 허츠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가 렌터카 시장에서 주류로 이동하고 있다며 고객에게 렌터카용 전기차를 선도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렌터카용 테슬라 전기차를 이미 영업장에 배치 중이고 11월 초부터 미국과 유럽의 허츠 지점에서 모델3 대여가 가능하다”며 “테슬라는 전기차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제조업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전체 계약 금액이 약 40억달러(약 4조6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모델3의 기본 가격이 4만달러인 점을 감안한 액수다. 여기에 모건스탠리가 테슬라의 향후 수익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목표 주가를 900달러에서 1200달러로 높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완성차 업계 일각에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던 일이 일어난 것 뿐”이란 반응도 나온다. 그만큼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테슬라는 차량용 반도체 쓰나미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테슬라의 전기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차량 내부 전자장비 구동과 네트워크, 자율주행 분야까지 관여한다. 내연기관차에 사용되는 그것에 비해 훨씬 고성능이다. 일반적인 차량용 반도체와 종류가 다르니 이번 사태에서 비껴갔다는 설명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연기관을 제쳐두고 전기차만 생산한 이력도 빛을 발했다. 테슬라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 위탁생산(파운드리)하며 소프트웨어와 배터리 관련 연구에 집중했다.

    모델3
    모델3
    완성차 업계에선 “테슬라를 제외하곤 AI 기술과 반도체 기술, 전기차 양산 기술을 모두 갖춘 업체가 없다”고 말한다. 국내 완성차 기업의 한 임원은 “전기차 가격 중 절반 이상이 배터리 가격이라 이걸 핵심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동력원일 뿐”이라며 “테슬라 차량의 실제 운행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진행되는데 대부분 휴대폰처럼 원격으로 업데이트(OTA)가 이뤄져 성능이 업그레이드돼 달리는 모바일 기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동차 제작에 있어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자율주행시대를 앞두고 전기차 생산에 힘을 모으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최근 반도체 내재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 전기차의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고 기술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최근 GM과 포드가 반도체 업체와 협력해 자신들이 쓸 칩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섰다. GM은 퀼컴, NXP 등 반도체 업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반도체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영국 자동차 리스 업체 바나라마(Vanarama)가 애플 특허를 분석해 3D 렌더링한 애플카 콘셉트
    영국 자동차 리스 업체 바나라마(Vanarama)가 애플 특허를 분석해 3D 렌더링한 애플카 콘셉트
    포드는 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글로벌파운드리와 반도체 공급 확대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두 회사는 포드 차량에 특화된 새로운 반도체를 설계하고, 미국에서 반도체 공동생산을 검토하기로 했다. 포드는 자사 차량 전용 반도체 개발을 통해 자율주행이나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꾀하고 있다.

    폭스바겐이나 도요타, 현대차그룹도 이러한 이유로 반도체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애플이 완전자율주행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고 있는 전기차 ‘애플카’의 출시 시점이 2025년으로 정해졌다는 외신도 전해졌다. 애플은 2014년 애플카 개발팀인 프로젝트타이탄을 출범시키고 제한적인 자율주행 모델과 운전자 조작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 모델을 동시에 연구해 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완전자율주행에 초점을 맞춰 전기차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다. 완전자율주행차의 양산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완전자율주행 대신 애플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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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수입차 관계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나오면서 전기차를 만드는 게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됐다”며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충분하다면 외주를 통해 배터리와 플랫폼을 구입하고 운영체계를 첨단화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경쟁상대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아니라 애플이나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포드는 폭스바겐, 혼다는 GM에서 생산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폭스콘, LG-마그나 등 제품의 설계부터 개발,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기업도 등장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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