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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비대면이 일상인 세상, 나 홀로 걷기 ‘딱’ 좋은 전국 산책코스 7
입력 : 2021.10.12 13: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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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억겁의 세월이 더해져 일어나는 기적이라 했던가. 하지만 그 기적, 팬데믹 이후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른바 비대면이 일상이 된 세상은 삭막하지만 자유롭고 외롭지만 이채롭다. 그 새로운 일상의 작은 취미가 된 ‘나 홀로 산책’의 보물 같은 둘레길을 소개한다. 올해 ‘Dear My Walking’이 직접 걷고 뛴 흔적이자 평일엔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담양 추월산 용마루길, 군산 고군산군도 전북 부안 내소사, 삼척 이사부길 영월 청령포, 북한산 진관사, 변산반도
전남 담양 추월산 용마루길 전라남도 담양은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고을이다. 병풍산, 삼인산, 추월산, 금성산이 서북쪽을 에워싸고 맞은편에 버티고 선 무등산이 바로 그 수려함을 완성한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이곳만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슬로시티’를 표방한다는 것. 그러니까 거북이 같은 걸음이나 행동, 살짝 게으름을 피워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 한번쯤 그러고픈 이들에게 대놓고 그래보라고 손짓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뭐가 그리 좋은지 용마루길을 걷는 이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혼자 걷는 이들도 하나둘 눈가에 웃음이 그득하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할 수 없지, 알아보려면 직접 걸어보는 수밖에.
Course 2. 잔잔한 바닷가, 바다가 열리는 장관까지…
충남 보령 무창포 바닷길 “무창포 해수욕장은 가족들이 많이 찾아요. 조용해서 아이들하고 놀기가 좋거든. 해변가를 걷다 갯벌체험도 할 수 있고, 수산물시장에 가서 회도 뜰 수 있으니 가족여행으로 이만한 데가 없어요. 한 10분 거리에 있는 대천해수욕장은 젊은이들이 많아요. 거긴 시끌시끌하지.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 놀기엔 거기가 최고라니까. 머드축제 덕분에 외국인도 많이 오는 동네가 됐어요.”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앞 커피숍. 색색이 스카프로 단장을 마무리한 사장님이 나름의 지역분석을 더해 내준 커피가 구수하다. ‘과연 그럴까?’라며 들어선 무창포해수욕장의 풍경은, 실제로 그랬다. 해변가 산책에 나선 이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다.
이곳만의 비밀병기도 있었다. 한 달에 4~5차례씩 바다갈라짐이 일어나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그것인데, 해변의 중간지점부터 바닷가 앞 무인도인 석대도까지 약 1.5㎞가 갈라지며 길을 내준다. 그 시간을 기다렸다 길에 들어서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나 조개, 혹은 낙지까지 손쉽게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전언이다. 물론 이 모든 건 물때를 맞춰야 한다. 인터넷으로 무창포 홈페이지를 찾으면 확인할 수 있다.
Course 3. Course 3. 찬란한 태양 아래 잔잔한 산하… 바다 위로 이어진 섬 산책길
전라북도 군산 고군산군도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남짓, 바다가 지척인 항구도시 군산에 들어섰다. 금강의 왼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서해안의 중심 항구도시다. 군산을 찾은 이유는 온전히 고군산군도 때문이다.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을 걷거나 차로 이동할 수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이다. 고군산군도로 가려면 군산에 들어선 후 이 새만금 간척지를 지나 약 30여 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 차가 새만금 방조제로 들어서면 동남아시아의 어느 섬이라 해도 믿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진다. 방조제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짙푸른 파도 넘실대는 서해바다의 위용에 숨이 턱 막힌다. 그늘 없는 전망대로 쏟아져 내린 볕은 색이 깊고 찬란하다. 그림 같은 뭉게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내가 원래 이런 존재라는 듯 미친 듯이 이글거린다.
대장봉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Course 4. 산길과 바닷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소
전북 부안 변산반도국립공원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자리한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백제 무왕 34년)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 사실 내소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주차장에서 내소사까지 약 1㎞ 거리에 조성된 ‘전나무 숲길’ 때문이다. 폭이 5.5m나 되는 이 무장애 탐방로 양쪽엔 족히 30~40m는 되어 보이는 전나무가 도열해있다. 일주문에서 사천황문까지 휑했던 길 위에 150여 년 전 전나무를 심었다는데, 지금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의 풍경에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내소사를 찾는 이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 길을 걷는다.
적벽강
내소사
강원도 삼척 이사부길 A코스 삼척은 강원도 최남단에 위치한 시(市)다. 이게 뭐 그리 의미 있는 사실인가 싶은데,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어감에는 왠지 자연환경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건 고스란히 강원도가 지닌 고지대 산간지역의 이미지에 기인하는데, 태백산맥의 동쪽에 자리한 삼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주산맥의 기세는 바로 이 삼척에서 동해바다로 흘러간다. 덕분에 구불구불한 해안선 곳곳엔 멋들어진 풍경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해안선을 따라 차가 드나드는 도로가 뚫리고 보행자를 위한 데크가 놓였다.
이사부광장에서 삼척해변까지 이어지는 약 4.7㎞의 산책로는 걷는 내내 바다를 보며 전진하는 길이다.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공원, 카페 등을 놓치지 않고 걷다보면 90분 동안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동해바다의 풍광이 펼쳐진다. 코스의 출발점인 이사부광장에서 출발해도 좋고 도착점인 삼척해변에서 출발해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차를 주차해야 한다면 삼척해변 주차장이 넓고 편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리조트가 자리한 삼척해변은 깔끔하고 아담하다. 해변 남단에 방파호 축조공사가 한창인데, 공사안내판에 나온 조감도를 보니 10월이면 먼 바다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공사구간을 통과해 돌아 나오니 푸른색 물기둥이 일렬로 일어서서 해안으로 밀려든다. 작은 자갈이 달그락대는 몽돌해변엔 기다란 낚싯대 드리운 이들 두서넛이 그림처럼 파도를 맞고 섰다. 작은 후진 해수욕장을 지나 후진항에 들어서면 곳곳에 강태공이다. 근처의 후진마을은 나루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후진(後津)’은 ‘뒷나루’다. 동헌이 있던 시내에서 볼 때 뒤쪽에 자리한 포구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뒷나루’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후진이 됐다.
삼척해변
강원도 영월 청령포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청령포. 앞에는 서강이, 뒤에는 육육봉이 버티고 선 이곳에 가려면 작은 배를 타야만 한다. 그야말로 육지 속의 작은 섬이다. 작은 나룻배가 이곳에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아침에 비라도 오면 배가 멈춰 선다. 한반도를 닮은 지형에 물길이 좁아 적은 강수량에도 강물이 험악해지는 탓이다. 성인 기준으로 왕복 3000원이면 탈 수 있는 배의 경로는 약 50~60m가 전부다.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뺏긴 단종의 유배지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은 560여 년 전 궁궐을 떠나 영월까지 내려와 이곳에 유배됐다. 뒤는 험준한 산이요, 앞은 강이니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지금의 청령포는 그러니까 당시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살던 망향의 터다. 이 적막한 산하에서 단종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선착장에 내려 조금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객을 반긴다. 한눈에도 경광이 빼어난 이 숲은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숲 곳곳에 단종이 살던 흔적을 재현해놨는데, 나무 데크를 놓아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크게 5곳으로 나뉜 길은 각각 ‘단종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금표비’ ‘노산대’ ‘망향탑’에 이른다. 우선 단종어소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관노들이 살던 행랑채로 재현돼 있다.
Course 7. 서울 산사에서 누리는 고요한 시간
마음의 정원, 북한산 진관사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자리한 진관사는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사찰로 손꼽히는 명찰(名刹)이자 명승지(名勝地)다. 최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방한 당시 찾은 인연과 재계의 거목이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49재가 치러졌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물론 이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도와 산책이다. 진관사가 ‘마음의 정원’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심에서 약 1시간 정도 이동해 도착할 수 있는 호젓한 산책코스다. 대부분 산사의 둘레길이 등산코스의 곁길인 데 반해 진관사로 향하는 길은 은평구 한옥마을에서 시작된다. 한옥마을을 한 바퀴 휘휘 돌아 나와 다시 진관사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 ‘백초월길’이란 이정표가 선명하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진관사 일주문에 도착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살짝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가 진정 진관사다.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서기 1010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다는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명령으로 고려 왕 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봄·가을로 큰 제사인 ‘수륙대재(水陸大齋)’를 베풀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된 이곳을 다시 살린 이는 1963년 주지로 부임한 비구니 진관(眞觀) 스님이었다. 30여 년간 진행된 복원 작업으로 현재 진관사는 현재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독성각, 나가원, 홍제루, 동정각, 동별당, 요사체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진관 스님은 외형적인 복원과 함께 1977년부터 수륙대제 복원에도 나섰다. 진관사 하면 떠오르는 정갈한 사찰음식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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