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샤토 마고의 섬세함을 칠레에서 구현한 ‘아키타니아 라줄리’

    입력 : 2021.10.06 17:23:17

  • 세계적인 와인 메이커 중에는 양조 실력은 뛰어나지만, 예술가적인 세심한 감수성 때문인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1976년 파리의 심판으로 유명한 마이크 거기쉬는 전설적인 양조가 중 하나다. 그러나 자신의 와이너리를 설립하기 전까지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크리스토 페로-미노, 샤토 하이야스의 에마뉘엘 헤이노는 모두 세계 최고의 양조가들이지만 성격이 독특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대체할 수 없을 만큼의 뛰어난 품질이 아니었다면, 와인을 팔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반면 양조 실력보다 뛰어난 친화력으로 유명한 와인 메이커들도 있다. 이런 와인 메이커들은 대게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영업형 와인 메이커들이다. 대표적으로 나파 와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 보졸레 누보를 전 세계에 알린 조르주 뒤뵈프 같은 인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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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59세의 나이로 작고한 샤토 마고의 폴 퐁탈리에는 양조와 영업 양쪽에서 모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천재 양조가였다. 나는 각국에서 모인 와인 바이어들과 함께 2013년산 와인을 배럴 테이스팅하기 위해 보르도의 샤토 마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2013년은 날씨가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시음하기 전부터 품질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달변가로 유명한 폴 퐁탈리에가 이 와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몹시 궁금했다. 와인을 시음하면서 폴은 우리들에게 2013년이 얼마나 어려운 해였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는 평소와는 다르게 오크통이 가득한 저장고로 우리를 안내했다. 와인이 가득 찬 오크통들을 앞에 두고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여러분, 조용히 냄새를 맡아보세요. 혹시 이 방에서 오크 냄새가 나고 있나요? 오크통이 가득 찬 방이지만 오크 냄새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있는 와인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해의 샤토 마고는 바로 아시아 사람들과 같은 와인입니다. 겉으로는 약해보이지만, 속은 강하고 꽉 찬 바로 그런 와인입니다.”

    나는 수없이 전 세계의 오크통 저장고를 드나들었지만, 한 번도 향기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정말 오크통으로 가득 찬 방에서 오크향이 나지 않았다. 이후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2013년산 보르도 와인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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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냐 아키타니아는 폴 퐁탈리에가 1990년 칠레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이웃의 샤토 무통 로칠드가 칠레에 설립한 알마비바보다 약 5년 정도 빠른 시기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당시 샤토 코스데스 투르넬의 주인이었던 브뤼노 프랏, 그리고 이미 칠레에 진출해 있었던 펠리페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브뤼노 프랏은 1970년대까지 샤토 마고를 소유했던 페랑 지네스테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는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샤토 코스데스투르넬을 2000년 미셸 헤비에에게 매각하고, 그 자금을 해외의 포도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였다. 2002년에는 브뤼노 프랏의 대학 친구이자 샴페인 볼랑제의 주인인 기슬랑 드 몽골피에가 아키타니아에 합류하는데, 기슬랑 드 몽골피에는 샴페인 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프랑스 고급 와인의 주요 인사 중 하나이다.

    프랑스 명품 와인업계의 핵심인물들이 설립한 비냐 아키타니아는 초기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보르도 양조가들이 주도하여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화이트 와인들이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냐 아키타니아의 솔 데 솔은, 영국 가디언지의 와인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윌리엄스에 의해 칠레 최고의 화이트 와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냐 아키타니아의 대표 와인은 아키타니아 라줄리(Aquitania Lazuli)라는 레드 와인이다. 라줄리라는 이름은 칠레를 원산지로 하는 보석인 청금석, 라피스 라줄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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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퐁탈리에는 보르도 출신의 와인 메이커들이 칠레에서도 보르도와 똑같은 방식으로 블렌딩하는 것과 달리,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만 라줄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카베르네 소비뇽과 다른 포도들을 블렌딩한 알마비바나 돈 멜초 같은 다른 칠레산 최고급 와인들에 비해 카베르네 소비뇽으로만 만든 라줄리가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브뤼노 프랏은 라줄리를 만들 때 10년이 지나도 과일 맛을 지닐 수 있는 장기 숙성 와인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라줄리 와인은 끝에서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도 느껴진다. 섬세한 와인의 표본으로 생각되는 샤토 마고 와인처럼 폴 퐁탈리에는 외유내강형 와인을 칠레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이민우]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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