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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가성비 찾는다면 크뤼 부르주아가 대안
기사입력 2018.12.04 15: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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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보르도 샤토 방문이나 레스토랑 예약을 문의하는 와인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를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주로 파리에만 머물고, 다른 도시라고 해봐야 니스(Nice)같이 이탈리아를 가는 여정의 중간에 있는 도시를 잠깐 방문하는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보르도를 방문한다는 건 와인이나 미식 등의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와인 애호가들이 대체로 서양식의 예절에 익숙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보르도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은 편이다.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대한민국에 대한 인지도도 높을 뿐 아니라, 포도원을 방문할 때마다 작은 선물을 건네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씀씀이도 좋은 이미지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유명한 포도원이 모여 있는 마고(Margaux) 마을이나, 포이약(Pauillac) 마을은 모두 보르도 지역 안에 있지만, 보르도 시내에서 가기에는 꽤 멀다. 보르도 기차역에서 샤토 마고까지의 거리는 약 35㎞에 불과하지만, 대체로 트럭들이 다니는 좁은 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50분에서 1시간까지 걸린다. 지롱드강(Gironde) 하구에 인접한 샤토 라투르(Latour)까지는 30분, 다시 생테스테프(Saint-Estephe) 마을에 있는 샤토 몽로즈(Montrose)까지는 20분 가까이 걸린다. 그러니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출장 중에 짬을 내어 찾아오는 와인 애호가들은 십중팔구 낭패를 겪게 된다. 보르도 와인의 미쉐린 가이드 격인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에 속한 포도원들은 대부분 4개의 마을에 흩어져 있다. 황금색 레이블로 유명한 ‘샤토 브란 캉트냑’은 마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으로 레이블을 만드는 ‘샤토 무통 로쉴드’는 포이약, 노란색 레이블로 정겨운 ‘샤토 라퐁 로쉐’는 생테스테프, 히딩크의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탈보(Talbot)’는 생 쥴리앙 마을의 터줏대감들이다. 4개의 마을들은 모두 같은 포도를 사용하지만 조금씩 맛이 다른 와인을 생산한다. 실력이 있는 소믈리에들은 이 서로 다른 마을에서 나온 와인들을 눈을 감고도 신기하게 맞춘다.

1855년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위 4개의 마을 중 특히 마고 마을의 포도원들이 대거 상위 등급에 포함되었다. 당시 원본에 따르면 30개에 달하는 1등급부터 3등급까지의 포도원 중 16개의 포도원이 마고에 위치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포도나무를 다시 심고, 시설에 대한 투자를 하면서 품질의 큰 성장을 이루어낸 것은 포이약과 생테스테프에 있는 포도원들이었다. 5등급 포도원인 ‘샤토 린쉬 바쥬’는 프랑스의 농협 격인 크레디 아그리콜(Credit Agricole)의 재정적인 도움을 얻어 온도조절이 가능한 최신 발효탱크를 선구적으로 도입하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와인 애호가들은 5등급이지만 2등급 이상의 품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슈퍼 세컨드’, 1등급에 견줄 만한 품질을 지녔다는 뜻으로 ‘가난한 자의 무통 로쉴드’라 불렸다. 하지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마고 마을의 포도원들은 전통적인 방법만 고수하면서 발전이 늦었다. 그러다보니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1855년의 그랑 크뤼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들이 오가게 되었다. 가장 설득력 있었던 얘기는 다음과 같다. 1855년 당시 기차가 보르도에서 마고 마을까지만 운행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고 마을에 위치한 포도원들이 혜택을 보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지역에 처음 기차가 생긴 것은 1868년으로 13년 이후이니 역사적인 사실은 틀렸다. 하지만 마고 마을이 보르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장점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위대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좋은 땅에서 포도를 재배해야 한다. 최고급 포도원들이 같은 양조 팀과 같은 양조 장비를 가지고 다른 곳에서 와인을 만드는 실험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같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두 번째는 기술이다. 아무리 좋은 땅에서 좋은 포도를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최적의 장비와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없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생산자의 ‘의지’다. 비싼 가격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좋은 가격을 지불할 고객을 확보할 자신이 없는 포도원들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생테스테프 마을에 위치한 ‘샤토 메네이(Meyney)’는 좋은 포도밭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포도원이다.

생테스테프 마을에는 1등급 포도원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사실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의 포도밭 일부가 이 마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배수가 잘되고, 일교차가 큰 좋은 포도밭들이 있다. 특히 샤토 메네이는 이 마을 최고의 포도원인 ‘샤토 몽로즈’와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데, 심지어 그들보다 훨씬 오래전 수도승들에 의해 조성된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샤토 메네이의 직원인 베누아가 이런 말을 했었다.

“샤토 메네이는 이 동네에서도 제일 오래되고 좋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사장에게 우리도 5대 샤토에 견줄 수 있는 최고급 와인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이웃들이 프랑스 최고 재벌들이 소유한 포도원인데, 우리는 그들만큼 투자할 자신이 없으니 그냥 가격대 좋은 와인이나 만들자고.”

다시 1855년의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의 선정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보르도 그랑 크뤼는 파리 세계박람회에 프랑스의 대표 상품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고, 샤토들은 파리까지 견본을 보내야 했다. 이는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고, 적지 않은 포도원들이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을 신청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아마도 보르도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웠던 마고 지역의 포도원 주인들에게 좀 더 동기 부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여기에 등재된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된다. 아마도 160년 전의 포도원들이 이를 알았더라면,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기꺼이 파리까지 와인을 보냈을 것이다. 늦게나마 자신들의 실수를 알게 된 보르도 포도원들은 1932년 보르도 유통업자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가이드북을 만들었는데 바로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라는 등급이다. 크뤼 부르주아는 5등급으로 나뉜 그랑 크뤼 등급과는 다르게, 미쉐린 가이드와 똑같이 3단계의 등급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03년의 등급에 불만을 가진 포도원들이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2007년 2월 27일자로 크뤼 부르주아의 3개 등급은 폐지됐다. 다만 크뤼 부르주아라는 하나의 등급만 유지하고 있다.
크뤼 부르주아 와인에 속한 와인들은 대체로 가격대비 품질이 뛰어난 와인이 많다. 여기에 속한 포도원 중 ‘샤토 샤스 스플린(Chasse Spleen)’이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와인으로, 2003년 마지막으로 등급이 발표되었을 때에도 똑같이 최고 등급을 유지한 포도원이다. 그 외에도 ‘샤토 메네이’, ‘샤토 드 페즈(Pez)’, ‘샤토 포텅삭(Pontensac)’, ‘샤토 펠랑 세귀르(Phelan Segur)’ 등이 크뤼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와인들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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