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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스타 이즈 본` 反戰·인권 운동 시대 끝 알리는 종언(終焉)의 러브 스토리
기사입력 2018.10.31 10: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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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을 보기까지 꽤나 망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할리우드에는 유독 이런 얘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때 스타였던 남자가 몰락해 가고 무명이었던 여자는 유명 스타가 돼 가면서 둘 사이의 사랑이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상당히 남성 근본주의적 발상의 얘기이기도 하다.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던 장 뒤야르댕, 베레니스 베조 주연의 <아티스트>야말로 그런 영화의 전형이었다. 남자는 자기가 키운 여자가 스타가 되어 가는 모습이 물론 너무나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처참한 심정이 된다. 이건 남자라면 다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다. 물론 성(性)의 역할이 반대가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래서 자꾸 이런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주연을 맡고 레이디 가가를 상대 주연으로 내세운 <스타 이즈 본>도 시대만 다른 설정이지 이 같은 이야기 구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리메이크다. 1976년 당시 유명 가수였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주연으로 내세운 <스타탄생>을 42년 만에 다시 만든 것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특히 장년층)이 이 영화를 그런 이유 때문에 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40여 년 전의 <스타탄생>을 기억하면 할수록 영화 속 남자가 자멸해 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꼭 다시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때의 아픈 기억이 새로운 영화에 다가서는 것까지 꺼리게 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 영화 <스타탄생>이든 이번 신작 <스타 이즈 본>이든 주인공 남자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은 급속하게 잊혀져 가는데 반대로 여자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가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술과 약물에 빠져 살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그것뿐이겠는가. 꼭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늘 대형 사고를 치며 살아간다. 여자는 서서히 그런 남자에게 지쳐 간다. 남자는 여자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은 여자에게서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다.

이 모든 것은 겉으로만 보면 다 의지가 박약한 남자 스스로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술과 약은 멀리하면 된다. 마음을 비우고 건전하게 살아가면 된다. 마음속의 울혈(鬱血)이 있다면 조심조심 치료해 가면 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산다는 게 늘 그렇다. 잘하려고 애쓰면 더 안되는 법이다.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늘 싸움의 화근을 먼저 만들어 내곤 한다. 근데 그건 한번이라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법한 일이다. 인생은 그 좌초의 늪을 어떻게 헤쳐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울렸던 것은 단지 사랑을 잃어 가는 못난 주인공의 모습, 그 반대편에 서서 연인의 몰락을 지켜보며 슬퍼하는 여자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는 자신들의 인생, 그리고 시대가 투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 반전(反戰) 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 등 세상의 진보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시대적 성취로 이어지지 못했던 1970년대 중반과 그 이후를 예견한다. 당시 세상은 서서히 다시 보수로의 회귀를 준비 중이었다. <스타탄생>의 남자 주인공이 피폐해지는 모습은 당시의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광풍을 대변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록음악처럼 (이념적으로) 화려했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 주인공처럼. ‘여자=사람(들)’은, 과거에 사랑했던 ‘세상=남자’를 이해하고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스타탄생>은 따라서,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종언의 러브 스토리였던 셈이다.

올드 팬 가운데 영화 <스타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경기장에 마련된 무대에 헬기를 타고 와 내리는 장면, 이어서 불을 뿜듯 터지는 사운드와 노호의 보이스, 그가 불렀던 노래 ‘와치 클로즈리 나우(Watch Closely Now)’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혀 있다. 포효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가창력이 뛰어난, 그래서 조금은 나긋나긋한 여성 보컬과 그렇게 순화된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번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세상과 시대를 관통했던 한 ‘남자=사람’의 고단했던 삶의 굴곡을 걷어 내고 거기에 ‘가족주의’라는 신보수주의를 채색해 간다. 쿠퍼가 맡은 록 가수 잭슨 메인은 파편화된 가족에서 잔류해 낸 인간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아버지뻘인 형 바비(샘 엘리엇)와 비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아 왔다. 반면에 무명 가수였다가 순전히 슈퍼스타 잭슨의 뒷받침 덕에 인기 가수로 발돋움하는 엘리(레이디 가가)는 부족한 영세민의 삶이긴 해도(아버지는 리무진 기사다) 따뜻한 부성이 넘치는 집에서 성장한 인물로 그려진다.

쿠퍼가 그려 낸 주인공 잭슨의 방황, 그 근원은 예전 영화처럼 (시대적) ‘상실’에 있기보다는 (가족의) ‘결핍’에서 찾아진다. 이전 영화가 좀 더 큰 담론을 아우라로 깔고 있다면 새 영화는 의도적으로 작은 가치를 지향하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과거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다소 동의하기 어려운 변화를 보여주려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그런 이유다. 과거 전작을 보지 않은 신흥 세대들에게는 이 영화가 꽤나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신파 멜로극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서로가 관통하고 싶어 하는 삶과 세상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도 확 바뀌었다. 두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아주 다르다. 이번 <스타 이즈 본>은 록 음악 중심에서 레이디 가가의 음악으로, 좀 더 힙(Hip)하면서도 군무가 동원되는 퍼포먼스 형 음악으로 채워졌다. 그것 역시 두 작품 사이에 벌어져 있는 40여 년의 시간과 그 변화를 대변한다. 때문에 이번 <스타 이즈 본>은 과거 <스타탄생>과 같은 뿌리인 척, 사실은 매우 다른 궤도에 서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두 영화는 매우 다른 작품이다.

레이디 가가의 맨 얼굴을 처음 맞닥뜨리게 된 건 기이한 경험이다. 그녀는 늘 짙은 화장과 분장으로 사람들을 대해 왔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는 매우 낯선 모습으로 영화 속 무명 가수 시절에서 유명 스타까지 척척 연기를 해 나간다.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잭슨에게서 엘리로, 브래들리 쿠퍼에서 레이디 가가로 시선을 천천히 그러나 완전하게 옮겨 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가슴을 적시는 신파 음악 영화가 나왔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함께 울고 함께 마음 아파할 것이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1976년 작품을 찾아보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음악과 사랑과, 무엇보다 인생살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더 좋은지는 각자의 몫이다. 영화는 때론 철저하게 취향으로 선택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8호 (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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