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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레인보우’ 출신 배우 김재경 | 10년의 담금질이 드라마서 빛 발해
기사입력 2019.01.03 17:30:14 | 최종수정 2019.01.03 17: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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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하면 누군가는 ‘걸그룹 레인보우’를, 또는 ‘뷰티 전도사’를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만능 ‘금손’으로 기억되고 있을 터. 이 모든 게 김재경임이 틀림없지만, 현 시점의 그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초년병 배우’ 김재경이다.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2.5세대’ 걸그룹 레인보우 대표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김재경은 3년여 전부터 배우로 사실상 직군을 전환, 드라마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 있다. ‘신의 퀴즈4’, ‘고결한 그대’, ‘라이프 온 마스’ 등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데 이어 최근 MBC 드라마 ‘배드파파’에서 강력계 형사 차지우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배드파파> 통해

걸그룹 이미지 지우는 데 성공


‘배드파파’ 그리고 극중 차지우라는 인물은 김재경에게 크나큰 도전이었다. 기존 작품들에서 맡았던 인물들이 실제 김재경의 걸그룹 출신이라는 직업적 배경을 베이스로 한 캐릭터들이었다면, ‘배드파파’ 속 차지우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그냥 ‘형사’ 역할. 때문에 김재경에게 더없이 간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재경은 어쩌면, 준비된 차지우였다. 대본 상 인물 분석을 통해 직접 본인 옷장에서 제일 낡은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선 ‘배드파파’ 오디션장에서, 그는 PT(프리젠테이션)까지 진행했다. “차지우 역할을 꼭 따내고 싶었거든요.” 캐릭터에 대한 김재경의 애정과, 작품에 대한 열정이 닿은 걸까. 결국 김재경은 치열했던 오디션을 뚫고 차지우가 됐고, 그날 바로 미용실에 들러 수년간 고수했던 긴 머리를 삭둑 잘랐다.

“단발은 18년 만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처음이죠. 음반 활동 할 땐 무대 콘셉트와 맞지 않아서 머리를 못 잘랐고, 회사 옮긴 뒤로는 작품 오디션에서(단발머리가) 한정되는 면이 있어서 못 잘랐거든요. 개인적으로 (단발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기도 했는데, 캐릭터에 단발이 어울릴 것 같아 감독님께 직접 제안했죠.”

하지만 TV 드라마 시장의 장르물 홍수 속, ‘걸크러시’ 이미지의 여자 형사는 흔한 캐릭터. 때문에 김재경으로선 ‘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고민이 많았어요. 다른 배우들의 형사 역할 모니터도 많이 했는데, 어떻게 다르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보니, 저는 연기자로서 걸음마 단계고 갖고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스토리적으로 아버지가 주범이고, 그런 아버지를 직접 체포해야 하는 (차)지우 같은 형사는 그동안 없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접근해봤어요. 촬영을 실제 경찰서에서 해서 야외 휴게 공간에서 쉬고 계신 형사님들께 짬짬이 궁금한 걸 여쭤보기도 했고요.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도움도 많이 됐어요.”

함께 호흡을 맞춘 장혁 등 대선배들은 존재 자체로 큰 힘이었다. 김재경은 “장혁 선배님이 촬영 틈틈이 연기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덕분에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다. 촬영 하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촬영 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실제 방송을 보니, 제 연기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작은 감정의 낙차에서도 굉장히 다채롭게 표현하시는 (장혁) 선배님에 반해 나는 너무 플랫했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요. 선배님을 통해 많이 배웠죠.”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2018년은 김재경에게 뜻 깊은 한 해였다. 연기로 진로를 선회한 뒤 계속 오디션을 봤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신 그녀가 ‘라이프 온 마스’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계속 떨어지니까 ‘이 길이 맞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3년은 무조건 버텨보자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라온마’에 붙었고, 감독님이 ‘너는 잘 되겠다’고 해주신 말씀이 큰 위로가 됐어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단 생각도 들었고요.”

기회 자체가 막연한, 기약 없는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은 버텨보자’고 생각한 원동력은 어떤 의미에서 연기보다 더 혹독한 가수 연습생 기간을 버틴 ‘내공’이었다. “‘(가수) 연습생 4년을 버텼는데 이걸 못 버티겠냐’는 마음이 컸다”고.

하지만 비결은 따로 있었다. 가수 데뷔 후 성공에 대한 기약 없는 쳇바퀴 활동에도 꾸준히 스스로를 채워 온 담금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마인드컨트롤’ 덕분이다.

“저는 오디션에 떨어져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멍하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뭔가를 장전해놓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많은 걸 해봤죠. 혼자서 여행도 가보고, 김재경이라는 사람이 더 영양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으로 써왔어요. 그 (공백)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차지우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할 터

2009년 레인보우로 데뷔, 만 10년 가까이 활동해오며 슬럼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늘 아쉬웠던, 그래서 ‘비운의 그룹’이라는 웃지 못할 수식어를 받곤 했던 레인보우 활동 중반엔 김재경도 심적으로 조바심을 많이 느꼈다고.

“레인보우 활동하며 생긴 긴 공백에,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어요. 몇 년간 준비하고 데뷔했는데 곧바로 다음 앨범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때, 정말 머리가 딩 했죠. 하루라도 빨리 뭔가를 해야 하는데(아무 것도 없으니) 조바심도 나고 걱정도 했고, 대상이 누군지 모를 원망도 있었어요. 그런데 살다 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있잖아요. ‘뭐라도 하자’ 하고, 취미도 만들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많이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러던 중 2014년 초 SBS ‘정글의 법칙’을 통해 파푸아뉴기니에 다녀온 경험은 김재경의 인생관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게 됐다.

“파푸아뉴기니에 한 번 다녀오고 나서 내가 지금 생각하는 고민이나 슬럼프가 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파푸아뉴기니에 가기 전엔 미래 지향적이었다면 이후엔 현재 지향적으로 바뀌었어요. 미래만 보고 갈 땐 현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가 탄탄해지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 이후로는 현재에 더 충실하려는 편이에요.”

내년이면 데뷔10주년을 맞는 김재경. 홀로가 아니라 레인보우 멤버들과 함께다.

“연습생 때 매니저나 선생님들이 ‘이 바닥 10년 버티면 쭉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우리끼리 모였을 때 얘기했죠. 올해 우리가 10년차인데, 해냈다고. 평생 (연예계에서 일하며) 먹고 살 수 있겠다, 고생했다고요. 좋아하던 단골 카페도 1년 뒤면 사라져있는 게 현실인데, 한 분야에서 10년을 버텼다는 게 우리 스스로 굉장히 대견했어요.”

전 소속사와 전속계약이 만료되면서 멤버들은 현재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레인보우가 와해된 듯하지만 당사자들은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고.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전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입으로 해체라는 단어를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죠. 단지 우리의 활동이 계약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었고, 그 계약이 만료된 것 뿐이에요. 계약이 끝났다고 레인보우가 끝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를 잊지 않게 각자 열심히 일해보자는 마음이죠.”

기존 이미지와 달리 소탈, 털털한 김재경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이 빛났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빠르게 ‘소비’되고 싶은 마음은 없단다. “예능은 내 삶에 정체가 왔다고 느낄 때 도전해보고 싶다. 그럴 때 내가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직은 정체기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이제 막 걷는 것에 맛을 들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마구 걷고 싶은 마음”이라고 여유 있게 받아치기까지.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데 대해서도 “인생 길지 않나”며 “아쉽지 않다. 앞으로 차근차근 하고 싶은 게 많다”며 똑부러지게 말했다. 모든 말과 행위의 주체는 그 자신이었다. 어느 인터뷰이보다 또렷한 주관과 소신이 김재경을 빛나게 하고 있었다. 20대 초반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연기자로서는 아직 초년병인 김재경.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상태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을까. 노파심에 물었지만 김재경은 빙긋 웃으며 “전혀 없다”고 답했다.

“연기는 우리네 삶을 TV 드라마나 영화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우리 삶에 젊고 예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나이 들면 나이 든 배역 하면 되는 거고요. 나이 드는 건 또 그대로 기대되고, 그 때 내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매릴 스트립을 좋아하는데,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도 너무 사랑스러운 거죠. 나문희 선생님도 너무 사랑스러운 부분이 많으시죠. 저도 나이 들어도 그런 모습이고 싶어요.”

‘언젠가’에 대한 바람도 있지만, 김재경은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한 해 한 해 너무 알차게 보냈고, 그런 하루하루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아요. 가끔씩 누군가는 연기를 빨리 시작하지 그랬냐고도 하는데, 저에게 그 시기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가올 10년에 대한 기대와 포부도 전했다. 그는 “지금의 나처럼 살고 싶다. 끊임없이 설레고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고, 향후 10년이 더해진다면 김재경이라는 사람의 영향력이 더해져서, 더 좋은 영향력을 주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10년을 더 쌓으면 그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을까요?(웃음) 저도 대중에게 받은 게 많아서 보답은 해야겠는데, 그때쯤 되면 보답의 사이즈가 더 커져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돼요. 배우로서는, 다음이 늘 기대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거고요.”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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