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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귀환한 R&B 황제 그룹 솔리드 | “와인처럼 숙성된 음악 노력했어요”
기사입력 2018.05.30 17: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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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그룹 솔리드(Solid)가 돌아왔다. 한국 대중가요 르네상스 시기로 불렸던 1990년대를 풍미한 이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라면 시쳇말로 ‘옛날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을 법도 한데, 놀랍게도 솔리드의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첨단’을 달리고 있다.

1993년 1집 ‘기브 미 어 챈스’(Give Me A Chance)로 데뷔한 솔리드는 당시 한국에서 생소했던 R&B, 뉴잭스윙, 힙합에 기반을 둔 음악을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밤의 끝을 잡고’ ‘나만의 친구’ ‘천생연분’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고 승승장구했지만 1997년 4집 ‘솔리데이트(Solidate)’를 끝으로 돌연 활동을 중단,

이후 프로듀서(정재윤), 솔로가수(김조한), 사업가(이준)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추억의 그룹으로 남는가 싶던 솔리드가 미니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를 발매하고 무려 21년 만에 컴백했다. 1년 가까이 준비한 이번 앨범 역시 수록곡 전 곡 솔리드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리얼’ 솔리드표 앨범이다.



이렇게 해낼 수 있던 재결합까지, 어쩌다 21년이나 걸렸던 걸까.

“인생이 마치 ‘인터스텔라’ 같아요. 각자 살다 보니 세월이 엄청나게 빨리 지나갔네요. 저는 프로듀서로 일하다 보니 거기 몰입하며 풀타임으로 일하게 됐고, 이준 역시 사업하면서 각각 바쁘게 지냈어요. 서로 음악을 같이 해야겠다는 얘기가 오고 가긴 했지만, 이번에는 ‘더 기다리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정재윤)

1997년 마지막 콘서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각자의 삶에 몰두하던 세 사람이 솔리드로 다시 뭉친 일은 팬들에게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처럼 느껴질 테지만, 실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우리 셋 다 절친인 친구가 있었어요. 친구들 중 유일한 싱글이었는데, 그 친구가 장가를 가게 돼 셋이서 들러리를 서게 됐죠. 같은 양복을 입고 들러리로 나서니 친구들이 ‘솔리드다’라며 웃더군요. (김)조한이가 솔로로 축하곡을 불러야 했는데, 우리도 같이 무대에 끌려 올라가서 ‘천생연분’을 불렀어요. 당시 다들 ‘솔리드! 솔리드!’ 하며 분위기가 뜨거웠는데, 그날 이후 다시 솔리드를 생각하게 됐어요.”(정재윤)

“20년 전, 솔리드로 마지막 방송을 하고 떠났는데 당시 너무 바빴어요. 음반도 직접 다 만드는데 활동도 전국을 누비며 해야 했죠. 음반 세 개를 그렇게 하고 나니 지치더라고요. 아이디어도 고갈됐고요. 리프레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죠.”(김조한)

그렇게 재충전기에 들어간 1997년 이후, 이준은 미국으로 건너가 부모님과의 약속인 학업에 몰두했다. 정재윤은 미처 진행 못 했던 음악 프로젝트에, 김조한은 솔로 보컬리스트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1년이 가고, 5년이 가고, 10년이 흘렀다.

“제 노래 중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라는 곡이 있어요. 각자의 생활로 시기가 안 맞은 건 사실이지만 너무 늦은 거죠. 하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준 씨도 사업 하고 있어도 스케줄 맞춰 나올 수 있고, (정)재윤 씨도 본인 프로젝트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저도 제 음악 하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3~5년 전만 해도 못 할 수도 있었어요. 많이 늦어 죄송한 마음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퍼펙트한 시기라고 생각해요.”(김조한)

팀 내 래퍼로 실력뿐 아니라 훈훈한 외모로 뭇 여심을 사로잡았던 이준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세월에도 여전한 모습의 솔리드 공식 ‘비주얼’ 담당이다. 하지만 정재윤, 김조한과 달리 지난 시간 음악 아닌 사업에 전념해 왔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 개발 사업가로 거듭난 상황. 솔리드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음악 활동을 해오지 않았던 터라 그의 어린 자녀들은 아빠가 가수인 것조차 모르고 있단다.

“아이들은 아빠가 가수인 걸 최근에야 학교 친구들에게 들어 알게 됐어요. 학교 다녀오더니 ‘친구들이 아빠가 TV 나왔었다고 하더라’며 묻더라고요. 저희 집에는 포스터라던가, 제가 가수였다는 흔적이 없어서 아이들이 알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엄마들에게 듣고 알게 된 거죠. 지금도 아빠가 TV에 나오면 이상하다네요(웃음).”

이번 솔리드 앨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20년 전에도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라는 평을 받았던 솔리드의 음악은 이번에도 ‘역시나’다. 컴백 후 들었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기분 좋은 말은 “음악이 여전히 새롭다”는 의견이다.

“요즘 1990년대 가수들이 많이 컴백했는데, 옛날에 히트했던 노래를 부르고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들이 다시 나왔을 때 너무 즐거웠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 팬들에게 21년 만에 그렇게 인사하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어요. 솔리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음악으로 승부한다는 게 있었거든요. 이번에도 오로지 음악으로 인사하고 싶었죠.”(김조한)

3년 전, MBC ‘무한도전-토토가1’ 특집에서 솔리드 재결합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야 털어놓는 얘기지만 그 또한 추억팔이라는 ‘이슈’보다 ‘음악’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진정성 때문이었다.

“솔리드 하면 20년 전 솔리드가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리드라는 그룹이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나이 들면 실력이 줄어드는 가수도 있지만 솔리드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좋은 와인은 숙성된 와인이잖아요. 우리도 뭐랄까, 빈티지처럼, 각자 계속 (음악을) 배우려 노력했어요. 뻔한 1990년대 음악을 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새로운 음악을 갖고 나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어 기분이 너무 좋아요.”(김조한)

미국에서 함께 자란 ‘동네 친구’인 이들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단짝이 됐다. 솔리드가 결성된 것도 우연한 경험을 통해서였다. “당시 대만에 LA보이즈라는 팀이 있었는데 LA에서 녹음을 한다고 해서 제가 프로듀싱을 하고, 조한이가 노래를 하고, 이준이 DJ 스크래치와 랩을 해준 적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너희 셋이 그룹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정재윤)

“그때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우리가 같이 녹음한 걸 매니저에게 들려줬던 기억이 나요. 한국 기획사 보내볼 테니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고, 몇 달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석 달이 지나 연락이 왔죠. 처음엔 한국이 아니라 대만에서 데뷔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어요. 하지만 대만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한국 사람들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 시작하게 됐죠.”(이준)

한창 활동할 당시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통이 넓은 힙합바지가 본격 한국에 상륙하기 전, 생소했던 옷차림 덕분에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택시 승차거부를 당한 일은 이미 유명한 에피소드. 당시 한국 가요계에선 신선하게 통했던 음악 덕분에 여러 기획사에 끌려(?) 다니며 취조당하듯 ‘어떻게 그런 사운드를 만들었느냐’는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고. 정재윤은 “당시 녹음실에 있던 고가의 악기들을 내가 갖고 있던 저가의 악기들로 바꾸신 분도 계셨다.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인데”라며 씩 웃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이들이지만 당대 이들의 음악이 파격이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시대를 너무 앞서가 ‘덜’ 성공했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을 들려준 이들은 어떻게 그런 음악을 선보이게 됐을까.

“1집은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2집은 1집 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만들었는데, 나름대로는 맞춰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우리 자체가 좀 특이했던 것 같아요.”(정재윤)

그렇다고 남들과 애써 차별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노력한 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좋아한 음악과 문화를 거리낌 없이 표현한, 당당한 청년들이었던 것일 뿐이다.

“R&B 못 하는 친구에게 R&B를 하라고 한다거나 힙합 못 하는 친구에게 힙합 하라고 하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일 거예요. 저는 R&B, 흑인음악을 너무 사랑해요. 시키면 바로 나오죠. 그때 당시엔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장르였지만 우린 그냥 좋아해서 한 거였어요. 이준의 랩이나 디제잉도 누가 가르쳐서도, 어디서 배워서 한 게 아닌, 좋아서 한 거였고요.”(김조한)

최근 진행한 팬미팅은 솔리드를 제대로 ‘해동’시켜준 이벤트였다. 교복을 입고 ‘오빠’를 연호했던 소녀팬들이 어느덧 아이 엄마가 돼 아이 손을 잡고 온 모습은 “뭉클한 느낌”으로 다가왔단다. 이들은 “아이 키우며 힘든 일들이 많은데 우리의 컴백 소식을 듣고 힘이 난다, 힐링이 된다고 하셔서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팬들의 열띤 호응에 일찌감치 매진된 컴백 콘서트도 1회 추가해 성황리에 진행한 솔리드. 단발성 프로젝트로 뭉친 게 아닌 만큼, 앞으로도 솔리드는 ‘현재 진행형’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언제까지 이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20년 전이면 소속사 눈치도 봐야 하고 6개월 정도 녹음실에서 살아야 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각자 녹음실에서 곡 작업 하고 결과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 훨씬 편해졌죠. 좋은 아이디어와 상황이 따라준다면 계속 활동할 생각입니다. 해외 공연도 계획 중이에요.”

인터뷰 말미, ‘이것만큼은 솔리드의 멋이다’라는 질문에 “(이준의)지팡이?”라고 너스레 떨면서도 여느 때보다 단단하고 확고한, 지극히 ‘솔리드(solid)’다운 답을 내놨다.

“음악이죠. 음악으로 제일 먼저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음악은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우리만의 진리라고 얘기하고 싶네요.”(김조한)

“음악이 우리의 메인 직업인데 그걸 못 하면… (웃음) 나머지는 플러스 알파고, 제일 중요한 건 음악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2018년에 새롭다는 말을 들은 것이 너무 뿌듯해요. 아직도 새롭다는 말을 들으니, 나름대로 성공적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장르를 시도할 수 있는 그룹이 되면 좋겠습니다.”(정재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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