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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홍콩증시 상장 1호 ‘코웰이홀딩스’ 곽정환 회장 | 10년째 애플에 카메라 모듈 납품 맨손으로 中서 매출1조 기업 일궈
기사입력 2018.04.03 11: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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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곽정환 코웰이홀딩스 회장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88년 ㈜대우에 입사, 1992년 독립해 홍콩에서 코웰토이를 창업한다. 1997년 코웰전자(한국), 2002년 코웰옵틱일렉트로닉스(중국)를 설립하며 카메라 모듈사업을 시작했다. 코웰이홀딩스는 스티브잡스 애플 창업자 사망 이후 애플의 협력사 명단이 공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아이폰 출범 당시 매출 500억원에 불과하던 중소기업이 애플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세계 3위 카메라모듈 제조업체로 성장한 코웰이홀딩스는 그해 한국인이 외국에서 설립한 한상기업 최초로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 현재 코웰이홀딩스의 매출은 약 1조원에 이르고 있다.

3월의 홍콩은 이미 여름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후덥지근한 바람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후끈하다. 홍콩의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침사추이.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중심가, ‘The Gate Way’ 빌딩 32층에 내려서니 탁 트인 바다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곳에 스마트폰 카메라 업계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는 ‘코웰이홀딩스’가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선 생소한 기업이지만 해외에는 아이폰에 쓰이는 카메라 모듈을 생산, 납품하는 히든챔피언으로 알려졌다. 쉽게 말해 아이폰에서 카메라를 작동하려면 코웰이홀딩스가 생산한 손톱만한 카메라가 장착돼야 한다.

“물론 쉽지 않았어요. 2008년에 애플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린 매출 500억원 정도의 중소기업이었으니까.”

사방이 투명한 집무실에서 만난 곽정환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당시 곽 회장이 애플을 상대로 한 신사업을 제안했을 때, 코웰이홀딩스 임직원들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애플이 이름 없는 한국계 중소기업을 상대해 줄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담당자가 누구인지 연락처가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곽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2년 후 무모한 줄만 알았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다. 코웰이홀딩스는 이후 깐깐하기로 소문난 애플에게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협력사가 됐다. 애플이 제시한 카메라모듈 구조를 개량해 역제안할 정도였다. 신뢰가 쌓이며 2012년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중국 후난공장 투자에 애플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코웰이홀딩스의 매출액은 약 1조원. 2015년에는 한상기업 최초로 홍콩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1992년 홍콩에서 코웰토이를 창업하며 사업을 시작한 곽정환 회장의 인생역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웰이홀딩스의 개발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이동구 전무는 “일에 대해선 무서울 만큼 확실한 원칙을 세우고 지켜 나가는 분”이라며 “‘Nothing is impossible’이라는 신조처럼 앞으로도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성공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전했다.

26년간 CEO로 살아온 그의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사업구상이 궁금했다. 곽 회장은 “기회를 찾고 잡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 아파해야 창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강약을 조절하며 말하는 품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공무원, 관료는 만난 일이 없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사업에 뜻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잘못 아셨네. 사업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 때부터 있었어요. 언론이나 드라마에서 대기업 회장들이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서 회의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더라고요.(웃음)

▷경제학을 전공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죠. 대학을 졸업하고 ㈜대우에 입사하면서 종합상사로 가게 됐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아주 강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아예 입사하기 전부터 일본어를 공부하고 들어갔습니다. 남들과 차별성을 가져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요.

▷현재 구사하는 언어가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말은 당연히 하고,(웃음) 영어, 일본어에 중국어도 조금 합니다.

▷만나기 힘든 CEO로 알려졌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그동안에는 제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직원들이 회사를 선택할 때 언론에 노출빈도가 있으면 좀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내부에서 건의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한상기업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사무실 내에 한국 직원의 비중이 꽤 높은데요.

중국 공장에만 한국인 12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해외 공장과 비교해도, 아마 우리가 단일규모로는 한국인 구성원이 가장 많을 겁니다.

▷홍콩에 본사, 중국에 공장을 두고 계신데, 해외에서의 사업이 국내에서의 사업과는 전혀 다를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얘길 하면 한국에서 싫어할 것 같은데요.(웃음) 홍콩에선 매출 1조원이 될 때까지 공무원을 만날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한국에서 사업하는 분들 말씀을 들어 보면 1조원 정도 하면 뭔가 번거롭다더군요. 중국에선 제가 오너지만 아예 관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요구도 있었는데, 아예 임원들에게 ‘나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 전하고 당신들이 가라고 했어요. 실제로 우리 회사에 중국의 고위관료(광동성 서기)가 방문하기도 했는데 가지 않았습니다.

▷관계를 터놓으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모든 걸 합법적이고 정공법으로 하면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랬어요. 많은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시(關係)나 돈을 말하곤 하는데, 저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그랬던 적이 없습니다.

▷다른 비결이 있는 겁니까.

비결이요? 법을 지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건 물건이 팔린다, 안 팔린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중국이란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면 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한국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 대부분 통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허락받은 품목에 허락받은 수량을 그대로 진행하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중국 정부로부터 고신기술 인증(중국정부가 인정한 최첨단 기술 보유기업)도 획득했습니다.

카메라 모듈은 2가지 분야가 있는데, 애플만 카메라 모듈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요. 반도체를 패키징하는 방식으로 카메라를 생산합니다. 전문용어로 플립 칩(Filp Chip)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 기술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고부가가치 기술이죠. 코웰이홀딩스가 현재까지 중국 공장에 투자한 금액만 약 3억달러에 이릅니다.



일을 노동이 아니라 게임으로…

▷코웰이홀딩스와 애플의 비즈니스는 다윗과 골리앗의 만남이 연상됩니다. 당시 어떤 제안을 하신 겁니까.

애플과의 비즈니스를 추진할 때 제 전략 중 하나가 스피드 경영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애플의 협력사는 대부분 글로벌 대기업이었거든요. 2008년에 애플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린 매출액 500억원 정도의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경쟁에 확실한 우위는 뭘까. 전 그걸 스피드라고 봤어요. 그러려면 의사결정 구조가 빨라야 합니다. 또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디테일을 알아야 결정이 빨라지죠. 그렇지 않으면 밑에서 올라올 때 리뷰부터 계획서 등등 시간이 많이 걸려요. 오너이자 CEO인 사람이 먼저 실무를 파악하고 상하조직이 아니라 수평조직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우리와 경쟁하던 다른 대기업에 비해 애플에 확실히 얘기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점이죠. 돈이 많길 합니까, R&D인력이 더 많길 합니까. 우리가 더 잘 났다고 그런 면을 강조해 봤자 안 되잖아요. 오히려 우리도 그만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고객이 원하는 걸 최대한 팔로 업(Follow Up)하는 스피드 경영이라고 강조했습니 다.

▷고객이 원하는 걸 팔로 업한다? 그건 24시간 소통으로 들리는데요.

소통하는 정도가 아니지요. 전 늘 직원들에게 고객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린 개발과 생산이란 행위를 하잖아요. 이 행위는 고객이 원하는 만큼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매일 +-가 달라집니다. 잘하는 게 +5점인데 잘 못하는 게 -3점이라면 결국 +2점에 그치는 거예요. 이걸 스스로 플러스시켜 가야 합니다. 그래야 호흡할 수 있고, 대화가 통하게 되죠.

그럼 결국 24시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엄청 싫어할 얘긴데,(웃음) 몸은 그렇지 않더라도 머리는 24시간 일하고 있어야죠. 상황을 정리해서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애플에서 직원도 자주 오고 우리 회사에 상주하는 인원도 있는데, 공식적인 회의에 콘퍼런스콜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실무자들에게 미팅을 리드하라고 합니다. 왜 고객이 먼저 묻고 답하는, 방어하는 미팅을 해야 합니까. 이게 한 끗 차이예요. 내가 먼저 챙겨서 질문하면 공격하는 셈이 되잖아요. 질문을 받고 답하면 시키는 것만 하게 됩니다. 그럼 스트레스가 늘어요.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연구해야 자꾸 하고 싶지, 그렇지 않으면 노동이죠. 일을 노동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능동적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으로 만들어 가야죠. 면접장에서 왜 일하냐는 질문에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미래가 없는 겁니다. 정신적 만족을 위해 일해야죠. 내가 하는 노동을 내 음식과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시키는 건 잘못된 겁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일하는데 월급까지 받잖아요. 생존보다 정신적인 만족에 비중을 둬야 행복합니다.

▷애플과 일하면서 배울 점도 많아 보입니다.

많지요. 이건 한국 사람들이 싫어할 말인데(웃음), 다 그렇진 않지만 한국직원들은 해외출장지 도착시간이 저녁이면 밥부터 먹고, 반주로 소주 한잔하고, 술집이 어디 있나 알아봅니다. 애플 직원들은 새벽에 도착하면 커피부터 2잔 주문해요. 잠 깨고 일하려는 것이죠.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밤 비행기를 타면 새벽 5~6시에 홍콩에 도착하고, 우리 중국공장으로 이동하면 아침 8~9시쯤 됩니다. 그때부터 하루 종일 미팅에 나서죠. 더 황당한 건 그들이 그렇게 종일 미팅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샌프란시스코가 일할 시간이에요. 콘퍼런스콜까지 꼬박 치릅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시차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선 난리 날 일이지요.



사업의 리스크는 결국 ‘To Do List’ 아닙니까

▷의사결정이나 경영전략 등을 판단할 때 나름의 방법이 있으신지요.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땐 회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건 리스크가 크더라도 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많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방법론이 생기고 추진동력도 생깁니다. 분명 리스크가 있어요. 요즘은 SWOT분석이 잘돼 있던데, 전 단점과 리스크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그걸 들여다보면 결국 제가 해야 할 일들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 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는 건 단점이자 리스크인데, 뭐가 부족한지 해결해야 하잖아요. 그럼 이 리스크는 ‘To Do List’가 됩니다. 해야 할 일이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Must’예요.

▷회사 홈페이지에 현재 상황·중기·장기 전략을 소개해 놨던데요. 앞으로 성장 동력이라면.

기업의 성장 동력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뉴 클라이언트, 또 하나는 뉴 프로덕트. 찾고 개발하는 건데, 이뤄 나가는 방법 중 하나가 M&A고, 또 하나는 자체적으로 인재를 뽑아서 진행하는 것이죠. 코웰이홀딩스는 그간 애플과 LG에 집중하다 보니 중국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어요. 현재 중국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중이고, 또 하나는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자동차용 카메라의 R&D인력을 갖추고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에서 자율주행차 분야로 이동하는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자율주행차의 카메라 수요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넘어서는 시점은 아주 먼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스마트폰 생산량은 약 15억~18억 대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약 1억 대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당 카메라 20대가 장착되면 20억 대인데, 스마트폰에는 대당 하나의 카메라만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은 미래를 위해 개발하고 투자하는 단계입니다.

▷한국에서의 사업 확장 계획도 있습니까.

카메라 모듈 분야에선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신규 비즈니스나 M&A 기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M&A라면 자금에 자신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웃음)

▷어떤 기업을 유심히 살펴보고 계신 겁니까.

지금까지 코웰이홀딩스는 BtoB 비즈니스를 전개해 왔어요. 개인적으론 BtoC 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상이지만 피는 한국인이잖아요. 비록 해외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고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누구 못지않습니다.

난 전형적인 흙수저, ‘하면 된다’는 사회 만들어야

▷맨손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요즘 말로 혹시 금수저 아니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아이고, 저는 엄청나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요.(웃음) 어머니가 대구에서 채소 노점상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노점상에서 콩나물이며 채소, 두부, 비지를 팔았지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어머니 DNA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 독립심,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는, 어머니가 그렇게 사정이 어려웠어도 다른 이에게 손 안 벌리시고 저희 형제(그는 2남2녀 중 막내다)들을 키우셨거든요. 우리 시절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아주 전형적인 흙수접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요즘은 또 그걸 개룡이라고 한다던데요.(웃음) 제 생각에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회를 잡는 겁니다. 1992년에 창업을 했는데, 한국에서 대기업 다니다 그만두고 홍콩에서 시작했어요. 그때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도 안 된 시점(그해 가을에 양국이 수교를 맺었다.)이었는데, 기회가 여기에 있다고 봤습니다.

▷홍콩에서 어떤 기회를 보신 겁니까.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는데, 그동안 올림픽 개최국은 개최 후에 인건비가 상승했어요. 자연히 경공업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합니다. 실제로 당시 경공업 기업들이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로 이동했어요. 그때 전 종합상사에 다녔잖아요. 오더를 주고받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많은 바이어들이 한국에서 물건을 사는데, 공급자가 해외로 나갔으니 내가 홍콩에 있으면 중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있으니 연결해 주면 되는 일이잖아요. 해외에 살아 봤냐, 불편하지 않냐, 이런 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창업 당시에 가정이 있었는데, 반대는 없었는지요.

전혀 없었어요. 우리 집사람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웃음) 딱 한마디 했어요. “당신 좋을 대로 해라, 밥 못 먹여 살리겠나.” 모아 놓은 재산이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대우 다닐 때 첫 월급이 60만원, 대리 때 100만원인가 했었는데 재산은 무슨. I Can Do It, 밀고 나갔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해 주신다면.

비즈니스를 하려면 DNA가 달라야 합니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본인이 아픈 사람이라야 합니다. 분명 어려움이 생길 텐데, 그걸 고난이나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남아야죠. 또 자신에 대한 확신이 확고해야 해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회적으론 사시 제도가 폐지된 게 아쉬운데, 흙수저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합니다. 잘 살아야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간다? 그건 문제죠.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하면 된다’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떠십니까. 돌아보시면 성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살면서 재미있는 게, 어린 시절에 생각하던 성공과 50대의 성공이 전혀 다르단 겁니다. 어릴 땐 종교나 철학을 제외하면 비즈니스나 부에 대한 성공을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기준이 달라져요. 그래서 또 성취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성공에 대한 기준, 추구하는 가치들이 점점 진화하는 것 같아요. 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공헌하는 사람인지, 이걸 추구하고 싶어집니다.

▷쉬는 날엔 어떤 일을 하십니까. 색다른 취미가 있으신지요.

또 싫어할 얘기 같은데(웃음), 전 사실 일이 취미에요. 그런데 그게 제일 재밌어요. 일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고 취미지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집사람이 늘 그만 벌리라고 합디다.

▷자제분들도 같은 길을 가길 원하십니까.

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철저히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진정 적성에 맞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켜야겠지만 개인적으론 원하지 않습니다. 옛말에 제조업은 팔자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매일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데, 그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홍콩=안재형 기자 포토그래퍼 유상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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