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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스릴러 퀸’ 염정아의 귀환
기사입력 2017.09.01 15: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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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스릴러 퀸’ 염정아(45)의 귀환이다. 최근 1990년대를 상징하는 ‘왕년의 여배우’들의 재활약이 반가운 가운데 ‘변신의 귀재’ 염정아는 또 어떤 충격을 안길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세련되고 멋졌다. 오랜 경험을 통한 여유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분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녀 또래의 성공한 여배우들 대부분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동안 미모와 당찬 카리스마를 풍기긴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했다.

훤칠한 키와 날씬한 몸매, 도시적인 이목구비와 남다른 패션 감각은 기본이요, 두 아이의 엄마다운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갈증과 고민을 토로하며 큰 눈을 더욱 더 반짝이고, 열정적으로 ‘꿈을 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90년대 인기 여배우들이 돌아온 이유

대한민국에서 40대 여배우로 산다는 것. 그것은 참 특별하고도 힘들지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삶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연기의 참맛에 대해 잘 몰랐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주목받고 인기를 끌고, 화려한 모든 것들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이제는 그저 조용히 연기만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고 싶은 작품, 캐릭터가 너무나 많지만 내 나이의 배우가 설 자리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한동안은 결혼 생활이 너무 즐거워 집에 있는 게 마냥 좋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손을 한참 필요로 하는 시기가 지나고 나니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내 꿈에 대한 고민,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아졌죠. 사실 주부들 대부분이 결혼 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나면 일터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데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죠. 너무도 간절하게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연기가 더 좋아졌어요. 요즘엔 1~2년에 한 작품 정도 출연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해요.”

그래서일까. 자신뿐만 아니라 고소영, 김희선 등 1990년대 함께 활동하며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들의 재활약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녀였다. 염정아는 “너무나 반가운 얼굴들이지 않냐”며 “그들을 보면 나 역시 한창 활동했을 때 기억이 난다. 참 재밌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젊고 패기가 넘쳤던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을 때도 물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월의 흐름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오픈마인드가 됐고 애착도 커졌다. 도전의식도 더 강해지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캐릭터, 반대로 잘 못할 것 같은 역할까지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됐고, 그런 폭넓은 도전이 주는 만족감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죠. 점점 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 어떤 수식어도 바라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 잘하는 배우,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형성 깨는 특별한 드라마에 끌려

<장화, 홍련>에서 최고의 스릴러 연기를 선보인 이후 <범죄의 재구성>을 통해 화려한 푼수 연기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염정아는 <카트>에서는 대형마트 계약직 직원의 피곤한 민낯까지 거침없이 드러내며 연기파 배우로 활약해 왔다.

그런 그녀가 3년 만에 선택한 스크린 컴백작은 바로 <장산범>(허정 감독). 영화는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을 둘러싸고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는다.

보이진 않지만, 귓가에 맴도는 ‘그것’의 소리.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사람을 홀린다는 괴담의 주인공. 감독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신묘한 능력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 그다지 큰 힘을 쏟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잃어버린 아이를 그리워하고 자책하며, 여전히 마음속에서 보내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 그 애절하고 강렬한 모성애에 집중한다.

다채롭고 도전적인 캐릭터를 주로 선택해온 염정아는 이번에도 그랬다. 기존의 스릴러물과는 색다른 결의 공포,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에 마음이 이끌렸단다. 극 중 낯선 ‘여자애’(신린아)를 만난 후 충격과 공포와 마주하는 일에 휘말리는 ‘희연’ 역을 맡은 그는 “이번에는 공포를 자아내는 쪽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무서움에 떠는 역할이다. 모든 상황을 알고 연기하는데도 너무나 무섭더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보기와 달리 겁이 정말 많은 편인데 이번 영화는 공포물이지만 드라마가 워낙 촘촘하게 잘 짜여 있어서 저절로 몰입이 됐어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분명 무서운데도 너무 슬픈, 묘한 감정을 느꼈죠. 전체를 이끌고 가는 정서가 ‘모성’이라 두 아이 엄마인 제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특히 마지막 희연의 선택에 무척 공감했어요. 결말이 억지스럽지도 않으면서 공포물의 전형적인 틀을 깨는, 강력한 드라마의 힘이 느껴지는 특별함이 좋았죠.”



▶아이들에겐 그저 쩔쩔 매는 ‘소심쟁이’ 엄마

연기에 대한 갈망, 오랜 고뇌는 고스란히 그녀의 연기에 묻어났다. ‘장산범’에서 그녀는 이전의 어떤 여배우보다도 애절하면서도 공감도가 높은 깊이 있는 모성애 연기를 펼친다. 언론시사회 후 쏟아진 극찬 세례에 “아무래도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본능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실제로 9살, 10살 초등학생 두 아들의 엄마인 염정아는 “자녀들에게 어떤 엄마냐”라는 질문에 “쩔쩔 매는 ‘소심쟁이’ 엄마”라며 수줍게 웃었다.

“많은 분들이 제 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소 엄하거나 까칠할 것 같다고도 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아이들에게만은 쩔쩔 매는 소심쟁이죠. 무섭기는커녕 웃겨 주는 친구 같은 엄마고요. 가능한 한 섬세하게 제 손길이 닿도록 신경 쓰는 편이에요. 대화 수준도 많이 낮춰준답니다. 하하!(웃음)”

여느 엄마와 다름없이 자식 이야기에는 순박한 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교육관에 대해 물으니 보통의 엄마들처럼 착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랄 뿐, 특별한 욕심은 없단다. 그는 “다행히 남편도 가정적인 편이라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며 “복귀 후에는 외조도 약속해 줬다. 일과 연기,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학업 스케줄을 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두 아들이 학년이 달라서 동선 맞추는 게 어렵다. 꼬이지 않게 정리해야 하는데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라 종이에 자를 대고 일정표를 직접 그린다”며 코끝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일을 할 때는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현장에 가기 전에 유난히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편이다. 엄마의 할 일이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차기작 <도청>(최동훈 감독)이 후배 배우 김우빈의 건강 악화로 제작이 연기된 상황. 이에 따라 <장산범>으로 관객들과 만난 뒤엔 다시 ‘동탄맘’으로 돌아간다. 염정아는 “당분간 차기작 계획은 없다. 엄마로 돌아가 아이들의 2학기 준비를 해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지금보다 작품을 더 많이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또 기회가 오면 그때 가서 열심히 하면 되겠죠. 무엇보다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쉬는 동안에 그들과 ‘힐링’할 수 있어서 좋아요.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죠.(웃음)”



▶쉴 틈 없이 달리다 보니 벌써 27년 차 배우

벌써 데뷔 27년 차. 염정아 역시 베테랑 선배이자 누군가의 멘토다. 선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지난 봄 떠나보낸, 그녀가 가장 존경했던 선배 김영애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단다.

염정아에게 연기자로서 자극을 주는 멘토였고 인간적으로는 든든한 의지가 되는 선배였기에 그 허전함은 여전하다고. 염정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불태웠던 고인의 연기 투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어렵게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문득 데뷔작인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 제게 ‘발연기’라는 혹평이 쏟아졌거든요. 그리고 그런 평가를 극복하는 건 결국 작품을 많이 하는 길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20대 초반에 불러 주시면 감사하다며 달려갔어요. 정말 잠시도 쉴 틈 없이 달리고 또 달렸죠. 그렇게 하다 보니 결과가 좋든 나쁘든 연기자로서 자산이 쌓이더라고요. 후배들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걸 길게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반드시 길은 보여요.” <장산범>에서 5년 전 아들 준서를 잃어버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희연(염정아). 그녀는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 순자(허진)의 요양을 위해 시골로 이사 왔다가 의문의 여자아이(신린아)를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기이한 일을 겪게 된다. 잃어버린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아이에게 희연이 빠져들수록 남편 민호(박혁권)의 의심은 커져만 간다. 염정아와 신린아는 실제 모녀를 방불케 하는 애틋한 케미로 작품 공개 후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염정아는 “희연의 드라마가 가슴 깊이 와 닿아 실제 촬영할 때도 그 감성을 잘 가져가고 싶었는데 린아가 시나리오 속 여자아이와 너무나 비슷한 이미지인 데다 연기도 잘 해서 몰입이 잘 됐다. 기대 이상의 호흡이었다”며 아역 배우 신린아를 언급했다.


“린아는 눈빛 자체가 남다른 아이예요. 분명 그 나이에 쉽게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인데도 감독님이 무언가를 지시하면 단번에 이해하고 완벽하게 연기해냈죠. 연기할 때 전혀 애처럼 구는 법이 없었고,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예요.”

그는 14년 전 <장화, 홍련>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당시에 수정이는 어느 정도 이미 성장해 있는 청춘 스타였고 근영이는 중학생이었는데 확실히 남다른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다르긴 하더라”며 “린아 역시 그동안 내가 만난 아역 출신 스타 배우들 못지않은 역량과 가능성을 지닌 배우다. 아역 아닌 동료 배우라는 생각으로 함께 호흡했던 것 같다”고 극찬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연기에 빠져 살아온 그녀. 지칠 법도, 지겨울 법도 한데 그녀의 남은 꿈 역시도 ‘그저 오래도록 연기하는 것’이란다.

“어느새 제게도 많은 후배들이 생겼고 이제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통해 도움을 줄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과 함께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오랜 동료로서 함께 꿈을 꾸고 싶어요. 올해의 목표요? 특별한 욕심은 없어요. 그저 앞으로도 좋은 작품, 캐릭터를 만날 기회가 끊이질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현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4호 (2017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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