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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혁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경제 석학들의 미국 & 글로벌경제 진단 리더십 잃은 ‘美 우선주의’… 소프트파워마저 흔들
기사입력 2018.02.02 11: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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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연초마다 미 경제학계의 가장 큰 행사인 ‘전미경제학회’가 열린다. 작년에는 시카고, 올해는 필라델피아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마침 미 동부지역을 강타한 눈폭풍과 한파로 필라델피아는 꽁꽁 얼어붙었지만 1만3000여 명에 달한 참석자들의 학습 열기는 혹한을 녹일 정도로 뜨거웠다. 무려 700개가 넘는 세션이 행사 기간 중 진행돼 어느 발표현장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1월 4~7일(현지시간) 진행된 2018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단연 눈길을 끈 건 ‘트럼프노믹스 1년 평가’ 세션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아쉽게도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참석하지 못했다. 전날 눈폭풍 여파로 항공편이 대거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 세션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우선주의가 미국과 전 세계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편향적 정책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타격을 주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진단한 뒤 “중국이 광역 경제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워 영향력을 키우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사실상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건 시기상 최악이며 중국이 이런 상황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이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 물리적 힘인 하드파워와 달리 교육·예술·과학 등 인간의 이성과 감성적 능력을 통해 창출된 문화적 힘을 뜻한다. 미국의 교육경쟁력과 기술혁신의 주요 원천이 다양한 글로벌 인재를 수혈하는 토대인 이민정책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강도 높은 반이민정책을 취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모든 상품을 미국이 더 많이 수출해야 하고 미국을 우선시하는 신중상주의는 문제”라며 “무역을 제로섬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글로벌 자유무역협정은 대개 개발도상국에 불리했고 미국은 원하는 걸 얻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잘못된 것을 원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 대다수는 무역협정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반세계화를 지나치게 부풀려 과장했다면서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파괴가 더 많아지는 등 반세계화에 따른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화와 불만’이라는 저서를 통해 반세계화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스티글리츠 교수지만 트럼프의 보호주의 행보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주로 문제 삼는 게 자동차 등 특정산업”이라며 “단지 자동차 때문에 재협상하는 건 큰 실수”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지만 미국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자동차 분야의 적자를 기록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무역장벽을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령 미국에게 나쁜 조항이 있더라도 이미 FTA 협정은 체결됐고 시행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간 교역의 서비스수지 부문에서 미국의 흑자가 훨씬 크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부채위기 최대 리스크… 유럽 붕괴 가능성 우려”

미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경제 전반에 퍼져 있는 과도한 낙관론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서머스 교수는 “현재 미국은 너무 단맛에 젖어 있다”면서 ‘슈거하이’(sugar-high·과도한 당 섭취로 인한 일시적 과잉 흥분 상태)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 이후 미국의 증시 상승률이 높긴 하지만 같은 기간 독일·일본·홍콩 등의 증시가 그보다 많이 올랐거나 그에 못지않은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자아도취에 빠질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하는데 분명히 알아야 할 건 경제성장과 증시 호조가 글로벌 트렌드라는 점”이라며 “미국이 이 추세를 따르고 있는 것이지 선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경제정책이 효과적이어서 이런 글로벌 상승 국면을 주도하는 것이라면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달러가치가 절상돼야 하는데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가치는 유로화나 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오히려 절하됐다고 덧붙였다.

서머스 교수는 “허버트 맥매스터(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와 개리 콘(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미 언론에 인터뷰하면서 국제사회 같은 건 없고 국가 간의 투쟁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게 트럼프 행정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며 “이는 나태한 인식이자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불과하고 세계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빈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이 처음 맞는 슈거하이 시기는 아니다”면서 “시장이 긍정적이고 강력했던 때가 있었다. 대통령이 자산 증가를 자축했던 때가 있었다. 반이민정책이 강력했던 때도 있었다. 기술적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번영이 계속되리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게 1928년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928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또 “언제, 어떻게 슈거하이 시기가 끝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끝난다. 우리 정부가 도덕적, 기술적, 정치적으로 재앙을 막을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머스 교수는 이어 “한미 FTA와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알아야 할 점은 미국에 유리하다는 것”이라며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이미 철폐할 규제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FTA를 체결하면 미국이 철폐하는 규제나 쿼터, 관세의 가짓수보다 다른 나라의 것을 더 없애는 효과를 불러온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면서 11개 국가에 접근할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의 경제성장은 한동안 정체돼 왔다”며 “이러한 저성장 흐름은 미국에서 시작돼 프랑스, 영국, 독일 등으로 전이됐는데 이는 모두 내생적 혁신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펠프스 교수는 “경제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건 인프라스트럭처 투자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 역동성의 연료가 될 근대적 가치의 상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19세기에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일어난 경제성장은 민간의 풀뿌리 단위에서 비롯된 역동성과 혁신에 힘입었다는 게 과거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노믹스는 스타트업 정신과 성공에 대한 기업가들의 열망을 촉진하는 데 소홀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 감세로 얼마나 투자가 늘어날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는 전미경제학회에서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최대 리스크로 중국발 부채위기를 꼽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중국의 과도한 부채 문제가 터지면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중국경제는 높은 부채로 부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의 파국(붕괴) 가능성을 두 번째 리스크로 지적했다.

굴스비 교수는 “중국과 유럽발 리스크는 일어날 확률은 크지 않지만 터지면 매우 파괴적인 경제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굴스비 교수는 이어 “또 하나를 거론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라며 “NAFTA와 한미 FTA의 존재를 흔들고 관세장벽을 부각한다면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리스크 등 지정학적 위험도 거론할 수 있지만 글로벌 경제를 크게 위협할 경제 이벤트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가상화폐 부정적 영향은 원자력 사고와 맞먹어”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출신인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글로벌 경제전망’ 세션에서 “암호화폐나 지하경제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원자력 사고와 맞먹을 것”이라며 “규제와 법치로 시장을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급격한 가격 변동성을 이어가고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중국 금융체제에 내재한 지하 금융시장은 세계경제에 큰 위협”이라는 말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다음 경제침체도 금융시장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며 “항공산업이나 원자력 발전에선 십수 년에 한번 대형사고가 있고 나서야 추가적인 규제가 진행되지만 새로운 기술이나 발전이 있으면 금세 잊혀지고 만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금융규제 완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또 다른 세션에서 도시 인프라 투자에 세계 경제성장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50년간 전 세계 29억 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할 전망”이라면서 “이 같은 인구 유입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므로 이들 나라의 노동생산성 정책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빠르게 축적해 가며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도시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들 도시는 다른 도시와 연계돼 가며 더욱 성장하는데 여기에는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로머는 “앞으로 50년간 세계 도시의 도로와 통신, 수도, 위생, 주거·업무시설 등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 규모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20조달러 정도”라며 “세계 도시들의 합계 면적도 현재 30만㎢ 수준에서 2050년께 120만㎢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프라는 정부 주도로 생성되는 물리적 자본으로서 이를 구축하려면 지정학적 위치부터 잘 잡아야 한다. 로머는 ‘그물망(net) 이론’을 언급했다. 그는 “선형적인 투자가 아니라 도시 내 여러 곳을 연결하는 그물망처럼 인프라스트럭처를 요소마다 적절히 배치하는 투자가 필요하다”며 “부실한 계획하의 도시 인프라 구성은 도시의 발전 가능성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1811년 뉴욕 맨해튼에 처음 도입된 그물망식 기반시설을 예로 들면서 “뉴욕 도로망 구축에도 100년 이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도시 인프라투자에 세계성장 달려… 29억 명 도시 이동”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매일경제와 만나 최저임금제는 지난 80년간 미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이는 최저임금이 적정한 속도로 올라갔을 때의 얘기라면서 “적정한 속도로 인상 범위를 결정하는 게 정책 결정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적정한 속도로 최저임금이 올라가야 부작용을 줄이고 저임금 근로자들이 일자리 박탈 불안 없이 소득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미국에선 2016년 이후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등 각 주정부와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불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정부는 근로자들이 괜찮은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강력한 사회안전망과 효율적인 세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인혁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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