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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규 특파원의 일본열도 돋보기] 코닥처럼 망할 줄 알았는데…후지가 간 길은 달랐다
기사입력 2016.02.25 13: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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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제록스의 캠페인

10년 전인 2005년 미국 동부 뉴욕 주의 로체스터 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로체스터 시는 19세기 말 조지 이스트만이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세계 최고 필름회사 이스트만 코닥의 본거지다. 도시 곳곳에는 이를 반영하듯 코닥 박물관, 이스트만 코닥 음대 등 코닥의 자취가 서려 있다. 코닥은 100년 이상 인류의 삶은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로체스터 시도 코닥과 함께 번성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닷컴과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면서 코닥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년 전 방문했던 로체스터 시 풍경 가운데 지금까지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코닥박물관도 코닥음대도 아닌 거대한 포클레인들에 의해 철거되고 있는 코닥 건물들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코닥의 몰락을 가져온 디지털카메라를 가장 처음 발명한 곳은 다름 아닌 코닥이다. 코닥은 그러나 디지털카메라 쇼크를 애써 무시했다. 실제로 돈을 벌고 있는 곳은 필름사업이니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커지는 것을 일부러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코닥은 애플 아이폰 출현으로 한 방에 무너진 노키아와 같은 신세로 몰락했다.

▶건강바이오 사업으로 활로 찾은 후지필름

코닥과 함께 세계 필름 카메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회사는 일본의 후지필름이다. 후지필름도 2000년 정점을 찍은 카메라 필름시장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후지필름은 코닥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몰락은커녕 역대 최고 실적 경신을 목표로 하루가 다르게 혁신을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다. 2014년도(2015년 3월 결산) 후지필름홀딩스의 매출은 전년보다 2% 늘어난 2조4926억엔을 기록했다. 놀라운 것은 순이익이다. 순이익은 1185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6%나 늘어났다. 순이익이 1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경신하며 디지털 쇼크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후지필름의 대변신은 창조적 혁신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후지필름이 성공한 것은 디지털카메라를 재빨리 받아들여 디지털화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업으로 변신한 것도 아니다. 후지필름은 자신들이 수십 년에 걸친 연구개발로 축적한 화학기술에 상상력을 총동원해 전혀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갔다.

현재 후지필름의 주 사업은 화장품과 제약 등 건강 관련 사업, 복합기 등 문서관리 관련 사업, 그리고 기존 카메라 관련 사업이다.

후지필름의 창의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것은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건강바이오 사업이다. 후지필름은 필름의 주원료인 콜라겐과 아스타키산틴 기술을 활용해 피부재생 노화방지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필름기술이 화장품기술로 변신한 것이다. 항산화 효과를 갖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아스타리프트는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후지필픔은 화장품 후발주자지만 아스타리프트 브랜드를 화장품 선진국인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건강 관련 사업의 성장성을 알아챈 후지필름은 집중적인 인수합병으로 바이오시장에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도야마화학을 인수한 데 이어 세계 최대 제약사 가운데 하나인 독일 머크의 바이오제약사업 부분도 사들였다. 후지필름이 세계 어느 나라 제약사보다 먼저 에볼라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것도 이런 M&A의 결과다.

후지필름은 기존 제약사들에 앞서 새로운 바이오 기술 연구에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3월에는 iPS(인공다능성줄기세포)를 개발하는 미국 CDI(셀룰러 다이내믹스 인터내셔널)를 주식공개매수(TOB)를 통해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CDI는 2004년에 설립된 바이오 벤처 세포치료 등을 연구하는 기업으로 종업원 수는 155명, 매출액은 1670만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벤처기업에 3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은 바이오 분야에 대한 후지필름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모리 시게다카 회장은 “종합 헬스케어컴퍼니를 내걸고 재생의료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또 다른 캐시카우는 문서 관련 사업이다. 후지필름은 지분 75%를 보유한 후지필름홀딩스를 통해 문서 관련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성공했다. 복합기 시장은 언뜻 보면 프린터처럼 레드오션으로 수익을 내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지필름은 하드웨어 사업을 수익성 높은 서비스 사업으로 바꿔 나가는 혁신력을 발휘했다. 후지제록스는 2012년에 문서관리, 인쇄 등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을 주로 하는 호주 기업을 인수했다.

단순히 하드웨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오피스 기기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효율성을 높여주는 사업 모델이다. 후지제록스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문서관리 인쇄 기기의 가동상황을 조사한 후 불필요한 기기 비용 삭감을 제안하면서 시장을 넓혀나가는 전략을 펴고 있다. 기업마다 원가절감을 위해 문서 인쇄 매수를 줄이는 상황에서 프린터, 복사기 등 인쇄 관련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으로는 성장이 어렵다고 보고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사업으로 기반을 돌린 것이다.

실제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각국 통신사 금융기관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연 10% 정도의 매출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후지필름홀딩스는 주력사업 중 하나인 복합기 관련사업의 영업이익이 2016년도에는 2014년도에 비해 23%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채산성이 아주 좋은 서비스의 매출이 사업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약 40%에서 5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하드웨어와 서비스 매출을 비슷하게 가져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몰락한 것으로 인식됐던 카메라 사업도 부활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은 후지필름의 도전

후지필름홀딩스는 2015년 상반기(4~9월)에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6% 늘어났다. 매출액은 1조2260억엔으로 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 증가한 806억엔으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이익이 개선된 것은 인스턴트카메라 체키와 채산성이 좋은 전용 필름 판매가 유럽과 미국에서 꾸준히 늘어난 덕분이다. 카메라 관련사업의 영업이익은 124억엔으로 무려 2.7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체키 이외에 디지털카메라의 화질이 뛰어난 고급기의 판매가 늘어났다.

후지필름이 불과 10여 년 만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부활한 것은 고모리 회장의 리더십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고모리 회장은 후지필름 혁신을 진두지휘하며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후지필름홀딩스는 2017년 3월까지 중장기 전략에서 M&A에 5000억엔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의료 관련 기업 등을 주로 매수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아울러 2016년도에 22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최고였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2007년도 영업이익 2073억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후지필름 부활의 과실은 주주들에게도 되돌아가고 있다. 후지필름홀딩스는 주당 배당을 60엔에서 올해에는 65엔으로 늘렸다. 아울러 3년간 2000억엔을 환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4호(2016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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