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온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걸핏하면 3퍼트인데…. 도대체 힘 조절을 할 수가 없어.”
얼마 전 서울 인근에서 골프를 하면서 지인이 그린에서 퍼트를 끝내고 푸념하면서 뱉은 말이다. 평소 골프장 탓을 하지 않는 반듯한 매너를 가진 그에게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멘트였다.
그날 그린은 온통 모래투성이였다. 군데군데 백사장처럼 작은 모래톱을 이룬 곳도 있었다.
그린에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 힘 조절이었다. 평소 굴리는 방식의 퍼트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부드럽게 밀면 번번이 짧고, 작정하고 때리면 방향이고 거리고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퍼트 변별력이 제로였다.
방향과 거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힘 조절이 난해한 방정식을 푸는 작업이었다. 굴리는 퍼트를 구사하는 필자도 그날 핀에서 1m 안팎의 퍼트를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때리는 퍼트 스타일을 지닌 한 동반자의 퍼트 성공률이 그나마 높았다. 오랫동안 그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지인은 여태 한 번도 그린을 보수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의 주변 골퍼들은 그린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놓은 골프장을 최악으로 꼽았다. 골프 경기를 마무리하는 장소인 데다 스코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수들도 웬만하면 드라이버와 아이언을 휘두르는 페어웨이를 두고 불평하진 않는다. 자연 환경 그대로 플레이하는 것이 골프 정신이다. 디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골프장은 척박한 환경에다 바람마저 강하지만 그곳에서 골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프로대회가 아니라도 아마추어들은 공이 도저히 플레이를 진행하기 힘든 곳에 놓이면 로컬 룰로 미리 약속하고 옮기든지 조치하면 된다. 실제 페어웨이의 디벗이나 맨땅에선 옮겨놓고 치기도 한다.
그린 상태가 엉망이면 로컬 룰을 정하기도 힘들뿐더러 골프 뒷마무리도 영 시원찮다. 그린은 골프를 완성하는 곳이어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몰이하듯 몰아붙이는 골프장도 대표적인 기피 대상이다. 골프장 팀 간 시간 간격이 8분에서 대부분 7분 간격으로 내려왔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골프 수요가 늘고 대부분의 골퍼가 수용하면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팀을 더 받으려고 이마저도 축소하려는 골프장도 있다.
이른 아침 시간을 배정받으면 골퍼들은 샷을 한 후 육상선수처럼 뛴다. 어느 정도 구력이 되는 골퍼들은 사정을 이해하지만 의아해하는 골퍼도 많다.
3부제로 운영하는 골프장에선 첫 팀이 빨리 전반을 마치고 지체 없이 후반을 시작해야 다른 팀들의 일정을 채울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어떤 때는 전반 라운드를 도는 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기도 한다.
이런 진행은 우리나라 외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고객을 많이 받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골프장들은 하나같이 골프 수요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전반을 끝내고 쉬지도 않고 곧바로 후반 코스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령자나 몸이 불편한 골퍼들은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언감생심이다. 땀범벅이 되는 여름이나 겨울엔 골프가 아니라 극한 훈련이다.
진행을 빠르게 하려고 파3홀에 전속 캐디를 배치하는 골프장도 있다. 티샷을 날리고 그린에 가보면 어느새 나타났는지 해당 홀 고정 캐디가 튀어나와 바로 라인을 읽고 공을 놓는다.
골퍼에 따라선 고마울 수도 있지만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는 모습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 심지어 경기도의 한 골프장은 티샷을 위해서도 뒤 팀에 웨이브를 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두 번째 샷을 하러 페어웨이에 나간 사이 뒤 팀이 티잉 구역에 도착하면 파3 홀처럼 웨이브(사인)를 주고 치게 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런 웨이브가 이뤄지는지 알 수 없지만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안전사고에다 공의 식별문제도 있어 쉽지 않을 텐데 사실이라면 토픽감이다. 골프 수요 측면만 부각하는 대신 기본적 상도의는 지켜야 한다.
터무니없는 골프비용을 매기는 골프장도 악성 리스트에 단골이다. 코스 관리와 진행, 예우 등에서 확실히 차별화되는 명문 골프장의 골프비용이 높다고 불평하는 골퍼는 없다.
그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불만이 터진다. 특히 대중 골프장 가운데 교통 여건과 코스 상태, 그리고 진행 여건 등에서 두드러진 게 없는데도 주중 그린피가 20만원 안팎인 경우다.
웬만한 회원제 골프장을 능가한다. 회원제 골프장의 그린피에 붙는 개별소비세가 대중제에선 면제된다. 이 혜택의 취지를 완전히 무색하게 하는 처사다.
기껏 세금을 면제해 줬더니 그린피 자체를 올려 회원제 골프장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골퍼들을 수탈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경기도 여주의 A 골프장, 홍천의 B골프장 같은 충분히 수긍 가능한 그린피를 적용하는 골프장도 있다. 이들 골프장의 식음료 값도 별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골퍼들이 선호한다.
첫 홀부터 마지막 홀까지 티잉 구역에 인조매트를 깔아놓은 골프장도 눈총을 산다. 골프는 티를 잔디 바닥에 꽂는 맛에서 출발한다.
티샷에는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묘한 쾌감이 있다. 인조매트는 이런 맛을 반감시킨다.
우선 티를 꽂는 자체가 힘들다. 스윙 과정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좁은 매트가 평평하지 못하면 더욱 난감하다. 그냥 섣불리 티를 꽂고 공을 날리면 바로 OB로 연결될 수도 있다.
캐디가 매트 대신 잔디가 있는 곳에 공을 놓고 치라고 권유하지만 룰을 고수하는 골퍼들에겐 불편하다.
그린과 티잉 구역은 골프장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요소다.
시작과 끝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부분이 다소 취약해도 최소한 악평은 면할 수 있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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