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현지시간) 코리아 타운에서 오픈하우스(매매 시장에 나온 집을 공개하는 행사)를 하는 주택 앞에 갔다가 믿기지 않는 장면에 입이 벌어졌다. 이런 긴 행렬이 생기다니!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죽었다는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주택가 안쪽 골목에 자리잡은 이 집 주변은 주차장처럼 차들이 가득했다. 이 집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때문에 추위에 떨며 30분은 대기해야 했다.
이 주택은 89만9000달러(약 11억7000만원)에 나온 매물이었다. 하지만 잠재 매수자들의 열기를 봐서는 이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주택은 오픈하우스를 한 지 3일 만에 ‘계약 중(Under Contract)’이라고 업데이트됐다. 오픈하우스를 한 뒤 3일 만에 ‘계약 중’ 이라고 상태가 바뀌는 것은 요즘 보기 드문 케이스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주택 매매가 일종의 경매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픈하우스를 하고 나면 잠재 매수자들이 각자 매수 희망가, 대출 비율, 은행의 대출 확약서 등 자금 조달 계획, 잔금 목표 날짜 등을 담은 제안서(offer)를 낸다. 매도자는 제안서 중에서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매수자를 고른다. 이렇게 매수자가 정해지면 변호사 간 계약서 검토(attorney review)를 거친다.
이 과정이 3일에 끝났다는 것은 매매 당사자 간 이견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주로 100% 현금으로 구매하거나 매수자가 매도자가 원치 않는 조건을 포기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정이다. 지난해 상반기 가장 시장이 뜨거웠을 때나 보던 장면이 재현됐다.
크리스티인터내셔널 소속인 로버트 가부라 애드버킷그룹 매니징파트너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기록적으로 상승한 뒤 주춤하자 이때 매매를 하려는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라며 “실거주 목적뿐 아니라 투자자들까지 나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에 있는 한 주택 오픈하우스를 찾아온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7%를 찍은 뒤 6~7%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SVB(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이후 국채금리가 기록적으로 하락하면서 모기지 금리는 다시 하락했다. 모기지뉴스데일리에 따르면 SVB 사태가 난 직후인 13일(현지시간) 기준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3월 2일 7%를 다시 넘었다. 4개월 만이다. 이후 시장 불안이 증폭되며 국채 수요가 몰리며 국채 금리가 하락하자 모기지 금리는 6% 중반대로 하락했다.
최근 들어 하락했지만 6% 금리로 부동산을 사기에는 부담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수요가 몰리는 것은 렌트비가 예상과 달리 하락하지 않고 있어서다. ‘임장’을 갔던 주택의 경우 렌트를 주면 월 4500~5000달러를 기대할 수 있다. 보유세(연간 약 1만5000달러)를 차감해도 연간 3만9000~4만5000달러가 남는다. 보험, 각종 유지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순이익이 3만5000~4만달러에 달한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4.5~5%에 이른다.
기준금리가 5%를 향해 가는데 이런 수익률이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애플뱅크 등에서 판매하는 1년짜리 CD 수익률이 4%를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준금리가 변하면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른다. 꾸준한 수익이 보장되는 이런 부동산 시장에 계속해서 투자금이 몰리는 이유다.
뉴욕 맨해튼에도 이런 수요를 노린 투자가 활발하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맨해튼브리지 바로 옆에 생긴 ‘원 맨해튼 스퀘어(One Manhattan Square)’가 대표적이다. 맨해튼 신축 콘도(개별 소유권 등록이 가능한 공동주택, 한국의 아파트 같은 개념)이지만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고 임대 수요가 좋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곳이다. 이곳의 원 베드룸 콘도 매매 가격은 130만달러(약 16억9000만원)~140만달러(약 18억2000만원)다.
이 콘도를 렌트를 줄 경우 월 4500~50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이곳은 뉴욕시가 한시적으로 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했던 재산세 감면(tax abatement) 혜택이 있어 4%대 수익률이 가능하다. 수익률은 뉴저지 주택보다 낮지만 이런 신축 콘도는 매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더 있다는 평이다.
이 콘도 구매자의 70~80%는 중국계와 한국계로 알려졌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이 가까이 있는 영향도 있지만,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인 아시아계가 투자 가치를 보고 뛰어드는 셈이다. 뉴욕시는 이제 더 이상 신축 콘도에 재산세 감면 혜택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희소성에 가치를 더 두는 사람도 있다.
블룸버그가 감정평가 업체인 밀러 새뮤얼, 뉴욕 최대 브로커리지 회사인 더글러스 엘리먼 자료를 인용해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월 맨해튼 신규 계약 렌트비 중간값은 4095달러로 1월 대비 2달러가 하락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7월 4150달러로 정점을 찍은 맨해튼 렌트비는 계속해서 수요가 몰리고 있다.
2월 통계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약 1200건의 신규 계약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2월 말에 시장에 남아있는 매물은 1400채로 집계됐다. 밀러 새뮤얼 감정평가법인의 대표인 조너선 밀러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주인의 렌트비 인상 요구를 거절하고 새로운 집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렌트비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같은 렌트비를 내면서도 조건이 좋지 않은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부동산 플랫폼인 아파트먼트리스트 3월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월 미국 전국 렌트비는 전월 대비 0.3%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5개월 연속 하락하던 렌트비 하락세가 되레 상승한 것이다. 미국 100대 도시 중에서 62개 도시에서 렌트비가 상승했다. 보스턴 지역 렌트비는 전월 대비 1.5% 상승하며 가장 빠르게 렌트비가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기준금리 인상이 고점에 달했다는 판단이 서며, 모기지 금리가 일부 하락하자 대기하고 있던 매매 수요가 살아났고 이것에 렌트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역에 따라 팬데믹 직후 과다하게 올랐던 지역에서는 렌트비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아파트먼트리스트가 집계한 전국 공실률 지수는 6개월 만에 5.1%에서 6.4%로 상승할 정도로 공급 부족이 풀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장 변화기일수록 주거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수요는 약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학군 등에 따라 이사를 가려는 수요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 한국인들의 투자도 점점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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