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투자 시장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변동성이 극심한 시장에서 전략을 고심하는 데 분주하다.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던 유가는 10월 기준 80~90달러 수준으로 안정화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수입 증가로 러시아 원유·석유 공급 차질은 시장의 우려보다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 우려로 휘발유 수요 감소로 이어지며 글로벌 원유 수급은 과잉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전면적 봉쇄 해제나 러시아의 전선 확대 등을 통해 원유 가격의 불확실성은 높아질 수 있다.
지난해 6월 대비 7배나 상승했던 유럽 가스 가격 역시 여전히 변동성은 높지만 천연가스 매매 단위인 MMBTU당 5달러대 중반으로 내려온 상황이다.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우방인 튀르키예 등 동유럽으로 향하는 가스를 끊지 않는 이상 노드스트림 가스 유량이 ‘0’으로 수렴된 상황에서 EU의 가스 수입량이 급감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재고는 평년보다 높고 수입량이 지금보다 큰 폭으로 줄기 어렵다면 동절기 가스 수요가 급감할 경우 재고는 여유를 보일 수 있다. 유럽 가스가 안정된다면 LNG, 석탄 등의 수급 완화와, 급등한 전기료 안정화, 대체 석유 수요 감소 등이 이어질 수 있지만, 아직까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국가와의 관계에 따라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 WTI유가의 그래프가 띄워져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에너지 시장에서 하나 확실한 것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의 움직임이다. 지난 5월 EU는 REPower EU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시행 첫해인 올해 러시아 수입 가스의 3분의 2 수준을 다른 국가의 가스 수입,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단기 목표다. 장기적인 목표는 2030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증시 추락에도 신재생에너지·2차전지 선전
주식 시장의 끊임없는 부진에 다양한 특정 섹터의 테마형 ETF들이 무더기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2차전지 분야만이 실적 성장세에 힘입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된 65개의 테마형 ETF 중 지난 3개월간(7월 13일~10월 13일)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14개(21.5%)에 불과했다. 모두 신재생에너지나 2차전지, 혹은 이들을 함께 담은 기후위기 관련 ETF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7.12%, 코스닥은 ?14.6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재생에너지 분야 ETF들의 경우, 특히 태양광 관련 기업들의 성장세를 기반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KODEX K-신재생에너지액티브’는 9.69%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TIGER FN신재생에너지’(1.92%)와 ‘HANARO FN친환경에너지’(1.33%) 역시 선방하는 모습이었다. 2차전지 역시 늘어나는 전기차 생산량에 따른 공급물량 증가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평가다. ‘KODEX 2차전지산업’(7.55%), ‘TIGER KRX2차전지K-뉴딜’(6.31%) 등이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분단, 블록화되고 에너지 자립이 최대화두가 되면서 성장 여부가 아니라 성장의 기울기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섹터는 신재생과 2차전지”라며 “특히 태양광은 설치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발전뿐만 아니라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제조 시설 투자도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EU의 단기·중장기적 러시아 가스 의존도 감축 계획인 REPower EU 주요 내용
2차전지 분야의 경우 중장기 과잉이 될 전력을 소비하는 섹터이자 순환경제의 주요 공급 수요원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분야다. 이러한 전망에 신재생·2차전지·전기차 등 기후위기 관련 종목을 함께 담은, 기후변화 테마 ETF들도 마찬가지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SOL KRX기후변화솔루션’은 4.73% 수익률을 보였다. 공통적으로 뚜렷한 실적 성장이 나타나고 있는 분야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성장의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도 매출·영업이익 개선은 계속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센터장은 “전 세계 증시의 불확실성이 워낙 높은 만큼 실적 개선이 단기간 내 고수익률을 보장하진 않지만, 중장기적 우상향은 분명하다”며 “시장 흐름과 별개로 높은 성장을 보일 몇 안 되는 분야”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섹터의 주가 상승으로 인해 가격 반영이 어느 정도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2차전지 업체들 비중이 높아진 가전 업종과 한화솔루션 등이 포함된 화학 업종, 그리고 상사자본재 업종 비중은 해당 업종의 전체 수익성(ROE) 대비 비교적 높다. 그만큼 호재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해당 업종의 수익성(ROE)에 비해 시가총액 비중이 낮은 업종으로는 에너지, 운송, 기계, 조선 등 업종 등이 있다.
유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에너지·조선·기계 업종의 업황은 러우 전쟁과 유럽·중국의 가뭄 등 기상 이변 우려 속에서 개선될 여지가 남아 있다”며 “에너지·조선·기계 업종의 시가총액 비중은 차화정 업종이 주도했던 2010~2011년 당시 절반에 불과하다”며 추가적인 개선 가능이 높은 섹터로 꼽았다.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ETF 업종 편입 비율 비교
삼성물산, 고려아연, 한화솔루션 등 안정적 파이프라인 구축 확인해야
글로벌 그린빅뱅은 이미 시작됐다. 정부와 민간기업들은 미국과 EU에서 각각 1조달러 이상의 자금을 10년 이상 그린산업 전반에 투자할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동안 재생에너지 관련 제조업에 국한되었던 우리 기업들의 사업 영역이 개발사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씨에스윈드, 삼강엠앤티, 한화솔루션 등 글로벌 상위 제조업체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개발사업까지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개발사업은 파이프라인이 쌓일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안정적인 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아직까지 개발사업에 진입한 업체들은 이로 인한 사업가치 평가를 아직 못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아크에너지(Ark Energy)는 최근 호주 통신업체인 텔스트라(Telstra)와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 계약(PPA)을 체결했다. 아크에너지가 개발 중인 호주 최대의 육상풍력 단지(923㎿)에서 생산한 풍력을 RE100 기업인 텔스트라에 공급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또한 아크에너지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문 개발업체인 에퓨런(Epuron)을 인수했다. 에퓨런은 풍력 4GW, 태양광 400MW의 개발 경험(또는 개발 중)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솔루션도 지난해에 글로벌 재생에너지 개발업체인 RES의 프랑스법인을 약 1조원에 인수했다. RES를 더하면 한화가 보유한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은 약 15GW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물산은 캐나다 온타리오에서의 1.4GW 재생에너지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만 약 10GW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허가부터 전력판매계약을 완료한 뒤 개발권을 매각하는 사업모델로 운영 중인데 올해에만 약 4000만달러 수준의 이익이 예상된다.
국내 RE100 기업 현황
삼성전자가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하고, RE100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미국 내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또한 삼성물산은 이 사업모델을 호주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위 업체들 외에도 국내 대기업들 중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노리는 곳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한병화 연구원은 이에 대해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집중하는 제조업체들과 개발업체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며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재생에너지 관련 업체들은 차별화된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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