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스키 시장이 심상치 않다.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가 새로운 소비층으로 유입되며 올해 5조원대까지 성장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위스키(스카치, 버번, 라이 등) 수입량은 전년 대비 13.1%(3만586t)나 늘었다. 2만7379t이 수입된 2002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연간 수입액도 2년 연속 2억달러를 넘어섰다. 위스키수입업체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이 회식을 없애며 위스키 시장도 고꾸라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혼술이 늘며 오히려 좋은 술을 나 혼자 즐긴다는 트렌드로 이어졌다”며 “혼술, 홈술 문화가 하이볼로 이어지면서 위스키 입문의 턱을 낮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부터 국산 증류주에 대한 기준판매비율이 도입되며 국내 제조사들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장은 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위스키 시장에선 한국산 위스키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쓰리소사이어티스’와 ‘김창수위스키’가 대표적인 국내 위스키 생산업체다. 두 곳 모두 국내 공장에 증류소를 마련하고 숙성 과정을 거쳐 100% 국내산 원액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다. 2020년 설립된 싱글몰트 위스키 제조사 김창수위스키는 스코틀랜드와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김창수 대표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해 한국산 싱글몰트를 완성했다. 2022년 4월, 단 336병만 출시된 첫 작품은 22만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오픈런을 낳을 만큼 화제가 되며 열흘 만에 완판됐다. 김창수위스키는 지난해 말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첫 펀딩에서 500억원에 육박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부터 GS25 등 편의점과 협업해 하이볼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김창수 대표는 ‘매경LUXME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십년 대계로 해외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위스키지만 향후 소주나 막걸리 등 우리 전통주에도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접근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2020년 경기도 남양주에 싱글몰트 증류소를 마련한 쓰리소사이어티스도 한국산 위스키를 생산한다. 2013년 수제맥주 양조장 ‘핸드앤몰트’를 창업했던 도정한 대표가 스코틀랜드 글렌리벳 출신 앤드류 샌드 마스터 디스틸러를 영입해 싱글몰트 ‘기원’을 출시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한국 사람’이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기술과 노하우’로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래서 브랜드 로고인 방패 문양에도 한국과 미국,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호랑이와 독수리, 유니콘이 배치됐다. 도 대표는 “10년쯤 후에는 카발란급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가 더 맛있는 싱글몰트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가 하면 기존 주류 기업들도 국산 위스키 개발에 뛰어들었다. 우선 위스키 전문 업체 골든블루는 우리 술의 세계화를 목표로 2016년부터 K(코리안)-위스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뉴-메이크(증류후 증류기에서 막 나온 고도수의 투명한 미숙성 증류 원액) 원액을 들여와 부산 기장 공장에서 숙성 테스트를 진행하며 지난해 첫 제품을 출시했다. 올 3월에 출시한 ‘골든블루 더 그레이트 저니 포트 캐스크’는 K-위스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골든블루 측은 “사계절이 뚜렷한 계절 변화와 함께 대만의 여름, 스코틀랜드 겨울의 특성을 모두 가진 부산 기장만의 독특한 기후는 위스키의 섬세한 밸런스와 부드럽고 깊은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스카치블루’를 판매하는 롯데칠성음료는 제주도 서귀포에 위스키 증류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현재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위스키를 국내에서 개발, 생산해 맥주사업을 보완할 신사업으로 육성한다는 포석이다. 올해 제주 증류소를 착공하고 내년 2분기에 완공해 2026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최근 높아진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어떤 브랜드와 제품에 집중되고 있을까. ‘매경LUXMEN’이 위스키 전문가 6인을 선정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질문 내용은 아래 세 가지. 현업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순서대로 전달한다.
① ‘글렌알라키’가 주목받고 있다. 마스터 블렌더 빌리 워커가 글렌드로나흐에서 독립한 후 인수한 글렌알라키 증류소와 그곳에서 선보인 스타일과 에디션이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② 역시 ‘맥캘란’이다. 오랫동안 식지 않는 인기, 꾸준한 사랑이 위스키의 품질로 이어진달까.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호텔에 투숙 중인 외국인 고객들도 여러 에디션을 주문하곤 한다.
③ 나는 ‘조니워커 블랙 하이볼’과 ‘맥캘란 12년 하이볼’을 선호한다. 둘 다 좋은 얼음을 사용하고, 얼음으로 먼저 저으면서 위스키를 풀어주는 게 포인트다. 사용하는 소다는 입자가 작고 힘이 있는 타입을 좋아한다. 위스키와 소다의 비율은 1:2. 얼음은 가능한 한 많이 넣는다. 0도에 가까운 온도로 마실 때 가장 맛있다.
① ‘카발란’. 최근 이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새로운 브랜드는 아니지만 젊은 층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위스키다.
② ‘발베니’를 꼽고 싶다. 워낙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평도 좋다.
③ 주로 ‘달모어 하이볼’을 즐긴다. 토닉 워터와 3:1 비율이 가장 좋다. 달모어의 맛과 향이 기포와 잘 어울리고 과일향 시트러스, 향신료, 세비야 오렌지, 건과일, 바닐라맛, 로스팅된 커피와 다크초콜릿 맛으로 마무리된다.
① ‘제임슨’. 스카치위스키가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논 스카치위스키인 제임슨의 활약이 제법 두드러진다. 국내에서 여러 차례 팝업을 진행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렸고, 특히 하이볼 베이스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가벼운 가격도 인기 요인이다.
② ‘크라겐모어 12’. 단 한 모금으로 버번 캐스크 위스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제품이다. 피트향이 코끝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면 달콤한 꿀향, 선선한 바람이 들판에서 옮겨 온 듯한 허브와 꽃향기가 퍼지는 순간이 정말 매력적이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③ 갈증을 해소할 한 잔이 필요할 때는 보디감이 가벼운 ‘발블레어’나 ‘산토리 가쿠빈’, 한겨울에는 스모키한 향이 묻어나는 ‘조니워커 더블 블랙’ 베이스로 마시는 걸 좋아한다. 묵직한 기운이 차가운 술을 마시고 있는데도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직접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전문가인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그대로 마신다.
① 영국의 국민 위스키라 불리는 ‘벨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을 모델로 발탁해 주목받기도 했다. 가성비가 뛰어나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② “돌고 돌아 조니워커”란 말, 괜한 말이 아니다. 뛰어난 품질 대비 합리적인 가격까지 손이 갈 수밖에 없다.
③ 스모키한 피트 위스키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이후 ‘탈리스커’ 베이스의 하이볼을 즐겨 마신다. 1(30㎖):3(90㎖) 정도의 비율을 선호한다. 통후추를 살살 뿌려주면 환상적인 ‘킥’이 된다.
① ‘기원’은 국내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로 현재 ‘배치 5’까지 정규 라인업이 출시됐다. 국내에서 유일한 위스키 증류소 투어와 라이 캐스크, 메이플 캐스크 등의 한정판 제품, 도산대로에 위치한 ‘기원 바’와 증류소에서 진행하는 이벤트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국내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증류소 투어를 가보면 현재 출시된 제품 외에 국산 오크를 사용한 캐스크, 복분자 캐스크, 일엽편주 캐스크 등 미래가 기대되는 원액들이 숙성고에 잠들어 있다.
② ‘글렌모렌지’. 고요의 계곡이란 의미의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중심 라인업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오리지널, 라산타, 퀸타루반, 넥타도르, 시그넷 등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각각 산뜻하고 섬세한 맛과 좋은 구조감을 갖고 있다. 질 좋은 캐스크를 이용한 피니싱 기법으로 다채롭고 개성 있는 맛이 특징이다. 빌 럼스덴 박사가 지휘하는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다양한 캐스크 피니싱뿐만 아니라 독특하고 실험적인 제품, 다양한 한정판으로 유명하다. 특히 우아한 병과 고급스러운 라벨 디자인이 수집욕을 자극한다.
③ ‘아란 쿼터 캐스크(56.2도)’와 탄산수 1:3 비율이 가장 좋다. 퇴근 후나 운동을 마친 후 라거 한 잔도 좋지만 더 깔끔하고 청량한 게 당길 때 아란 쿼터 캐스트 베이스의 하이볼 한 잔이 제격이다. 잔에 굵은 돌얼음을 가득 채우고 칠링한 뒤, 소주잔을 이용해 위스키 한 잔을 넣어 가볍게 섞어준다. 유리 경계면을 따라 탄산수 세 잔을 조심스럽게 따르고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려주면 끝. 탄산수는 싱하 탄산수를 추천한다. 마치 무가당 에이드를 마시는 듯한 청량함과 높은 도수에서 오는 만족감, 비강에 길게 남는 풍성한 향까지. 하루의 마무리에 어울리는 완벽한 한 잔이다.
① ‘스프링뱅크’ 위스키의 인기는 최근의 일은 아니다.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묵직한 피트함과 화사한 과일맛까지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맛이다. 무엇보다 자동화 방식이 아닌 플로우 몰팅 방식을 고수하며 100% 사람이 직접 작업한다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다만 국내에선 가격이 비싸고 재고도 넉넉지 않다. 구하기 힘들어 더 갖고 싶은 위스키다.
②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가끔 트레이더스나 코스트코에서 9만원 후반대에 구입할 수도 있다. 처음 위스키를 접했을 땐 피트함만이 위스키의 맛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균형 잡힌 밸런스, 바닐라향의 단맛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쉽게 구할 수 있어 자주 즐긴다.
③ ‘발베니 12’를 애용한다. 하이볼에 가장 어울리는 위스키는 버번이다. 일본에선 버번 소다라고도 부르는데, 고기나 튀김처럼 기름진 음식에 잘 어울린다. 10만원 언더의 버번 중에선 ‘와일드 터키 101’ 8년을 좋아한다. 비율은 위스키 40㎖에 탄산수 180~200㎖ 정도. 마지막으로 얼음 위에 위스키를 살짝 더 넣는다. 향을 더 짙게 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