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무익한 술이지만 특별히 더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사 전 측정하는 혈당 수치가 높다면 음주는 독이 될 수 있다. 최근 공복혈당 수치가 높을수록 음주량이 늘어나면 간암 위험도 매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당뇨 환자가 과음하면 비음주 정상혈당의 일반인보다 간암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음하는 당뇨 환자는 비음주 정상혈당의 일반인보다 간암 위험이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당뇨 환자들뿐만 아니라 전당뇨 단계에서부터 간암 예방을 위해 더욱 철저한 금주를 실천해야 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지난 7월 11일 서울대병원 유수종·조은주 교수, 강남센터 정고은 교수, 숭실대 한경도 교수 공동연구팀이 2009년 국가건강검진에 참여한 성인 938만7670명을 대상으로 혈당 수준에 따른 알코올 섭취량 및 간암 위험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간암은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환자 10명 중 6명은 5년 이내 사망할 만큼 예후가 좋지 못하다. 대표적인 위험인자로는 간경변, B형/C형 간염바이러스, 과체중, 흡연, 과음, 당뇨병 등이 있다. 최근 예방접종의 발전과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인해 간염바이러스로 유발되는 간암은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간암의 위험인자 연구에 있어 과음 및 당뇨병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추세다.기존 연구에서 ‘과도한 알코올 섭취’와 ‘높은 혈당 수치’는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해 간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2가지 위험인자 조합이 복합적으로 간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지금껏 연구된 바 없다. 연구팀은 건강검진에서 측정된 공복혈당 수치에 따라 성인 938만여 명을 ▲정상혈당(<100㎎/dL) ▲전당뇨(100~125㎎/dL) ▲당뇨(≥126㎎/dL) 이상 3개 그룹으로 구분했다.
이어서 각 집단을 주당 알코올 섭취량에 따라 ▲비음주(0g) ▲경·중등도 음주(1~209g) ▲과음(≥210g)으로 다시 구분했다. 자가 문진에서 응답한 주당 음주 빈도(일수) 및 섭취강도(잔수)의 곱으로 계산됐으며, 1잔의 알코올 함량은 8g으로 정의했다. 중간값 8.3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전체의 0.37%(3만4321명)에서 간암이 발생했다. 그룹별 간암 발생 위험비 분석 결과, 모든 혈당 상태에서 알코올 섭취가 증가하면 간암 위험도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상혈당군 및 전당뇨군에 비해 ‘당뇨군’에서 알코올 섭취 증가에 따라 간암 위험이 가장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혈당 비음주군과 비교했을 때, 전당뇨 경·중등도 음주군과 전당뇨 과음군의 간암 위험은 각각 1.19배, 1.67배 증가했다. 당뇨 경·중등도 음주군과 당뇨 과음군의 간암 위험은 각각 2.02배, 3.29배 증가했다.
즉 공복혈당 수치로 평가한 혈당 수준이 높을수록 알코올 섭취 증가 시 간암 위험이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추가로 정상혈당 비음주군과 비교했을 때, 정상혈당 과음군의 간암 위험은 1.39배 높았다. 반면 당뇨 비음주군은 1.64배로 정상혈당 과음군보다 더 큰 간암 위험 증가세를 보였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음주량과 관계없이 간암 위험이 컸다. 따라서 당뇨나 전당뇨로 진단받은 사람은 간암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금주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유수종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간암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알코올 섭취량과 혈당 상태의 상호작용을 조사한 최초의 연구”라며 “개인의 혈당 상태에 따라 같은 양의 음주도 간암 위험을 매우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간암 예방 전략 수립 시 개별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의학(PLOS Medicine)’에 온라인 게재됐다.
당뇨병이 없는 사람은 공복 혈당이 70~100㎎/dL, 식후 혈당이 140㎎/dL 이하 범위에서 조절된다. 즉 당뇨병이 없는 사람은 혈당이 올라가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돼 혈당을 낮추고 혈당이 내려가면 인슐린 분비가 억제돼 저혈당이 생기지 않는다.
공복혈당이 정상과 당뇨병의 중간인 100~125㎎/dL가 나오거나 경구당 부하검사 결과가 140~199㎎/dL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각각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라고 부른다. 두 경우를 합쳐 ‘당뇨병 전 단계 또는 전 당뇨병’이라고 칭한다. 향후 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화혈색소가 5.7~6.4%인 경우도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당화혈색소가 5.5~6%인 경우 향후 5년 이내에 당뇨병으로 진행할 확률은 9~25%이고, 당화혈색소가 6~6.5%인 경우 향후 5년 이내에 당뇨병으로 진행할 확률은 25~50%라고 한다. 이는 당화혈색소 5% 미만과 비교해 20배나 높은 비율이다.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과 더불어 당뇨병 전 단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당뇨병 전 단계에서 당뇨병의 미세혈관 합병증(당뇨병성 망막병증, 당뇨병성 신증 등)이나 심혈관 질환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뇨병 전 단계는 비만(특히 내장비만)과 관련이 있고, 이상지질혈증, 고혈압과도 관련성이 높다.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하면 식사조절, 운동 및 체중조절 등의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려는 노력만으로도 당뇨병이 생길 위험성을 60% 정도 줄일 수 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정기 혈당검사를 통해 당뇨병으로의 진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