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공연은 티켓 오픈 40초 만에 전석 매진돼 화제를 모았다.
이 공연은 강남구 역삼동에서 22년간 운영돼온 LG아트센터가 오는 10월 13일 마곡 지구로 이전해 새롭게 개관하며 마련됐다.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즌이며, 한국이 배출한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LG아트센터 서울은 당초 전석 초대의 개관식 형태로 공연을 준비했다가, ‘초대권 없는 공연장’ 운영방침에 맞게 일반 관객에게 전석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수입금 전액은 공연예술계 신진 아티스트 활동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에 기부된다.
LG아트센터 서울 외관.
강남구 역삼동에 22년 전 문을 연 LG아트센터는 그동안 민간공연장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물론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세계 3번째 규모로 커진 데에도 기여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등 세계적인 라이선스 공연은 물론 <영웅> 등 초연 공연으로 명성을 높여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LG아트센터의 등장은 한국 공연계에 큰 자극이 돼왔다. 시즌제 패키지, 초대권 없는 공연장 등 과감하게 시도한 정책들은 민간극장으로서의 실험 정신을 대표한다.
서울 강남의 역삼동에서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전해 다시 태어난 ‘LG아트센터 서울’은 기존의 브랜드를 계승하면서도 공공성을 강조한다. 서울시 기부채납 후 사용수익권을 확보해 20년간 LG연암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공연장의 이름이 LG아트센터 서울로 변경된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상징인 출입 복도 ‘튜브’.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디자인
LG아트센터 서울은 LG와 서울시가 마곡지구에 ‘LG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하면서 공공기여시설로 건립됐다. 건축, 컨설팅, 음향 등을 포함해 총 250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LG아트센터의 디자인을 맡은 건축가의 이름 또한 낯익다. 노출 콘크리트와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LG아트센터 서울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 중 상하이의 ‘폴리 시어터(Poly Theatre)’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공연장으로 ‘튜브(TUBE)’, ‘게이트 아크’(GATE ARC)’,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등 3가지 건축 요소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튜브’는 LG아트센터 서울의 지상을 관통하는 타원형 통로다. 동서남북으로 공연장, 러허설룸, 공연 공간, 서울식물원, LG사이언스파크 등이 연결돼 지상의 관객들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다. ‘게이트 아크’는 관객들이 고비에서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곡선 벽면이다. 각 공연장에 관객을 초대하는 문의 역할을 한다.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철 마곡나루역부터 아트센터의 객석 3층까지 연결된 100m 길이의 계단이다. 튜브가 지상 공간을 횡으로 연결한다면 ‘스템 아트리움’은 지하와 지상 3층까지를 종으로 연결한다.
새 단장을 마친 LG아트센터의 첨단 공연장도 눈길을 끈다. 새 공연장의 연면적은 4만1631㎡로 역삼동 공연장(2만1603㎡)의 두 배에 달한다. 기존 1100여 석 규모의 단일 공연장에서 1335석 규모의 대극장 ‘LG 시그니처 홀’과 가변형 소극장 ‘유플러스 스테이지’(365석) 등으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2개의 리허설룸과 예술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3개의 클래스룸, 1개의 스튜디오, 5개의 음식료 매장까지 보유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공연장 전체에 ‘건축구조분리공법’을 적용했다. 공연장 좌우 벽면은 물론 바닥 및 천장까지 전체를 분리시켜 소음을 최소화했다.
유플러스 스테이지는 공연에 따라 무대와 객석을 자유자재로 변형해 예술가들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블랙박스 공연장이다. 17개의 이동식 객석 유닛으로 구성된 시팅 왜건(Seating Wagon)을 통해 연출 의도에 맞춰 자유자재로 조립해 다양한 형태의 무대와 객석을 만들 수 있다. 이 센터장은 “객석 규모뿐 아니라 교육시설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을 추가했다”며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건물을 디자인한 데다 바로 옆에 서울식물원 등이 있기 때문에 공연장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 휴식과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서울 메인 공연장.
넓어지는 공연 스펙트럼
공연 콘텐츠의 종류도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확장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이 지향하는 프로그래밍 방향성은 ‘동시대성’ ‘확장성’ ‘협업’이다. ‘동시대성’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의미. ‘확장성’은 더 커진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예술, 건축, 자연이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협업’은 장르와 방식을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창작자 및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LG아트센터 관계자는 “3가지 방향성을 기반으로 기획공연을 다양한 형태로 운영해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전 세계 정상급 공연들을 공개해온 LG아트센터의 대표적인 기획공연 시즌 ‘CoMPAS’ 외에도 협업 프로그램 ‘CREATOR's BOX’, 관객 체험형 공연 ‘VOID’, 다양한 문화를 담는 프로그램 ‘ClubARC’ 등 새로운 브랜드를 더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관 공연 이후 12월 18일까지 총 15편의 공연으로 구성된 ‘개관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개관 페스티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계 속 한국 아티스트, 동시대 해외 공연 그리고 확장과 다양성이다. 이날치, 이자람, 이은결, 김설진, 김재덕, 갬블러크루, 엠비크루, 박정현, 박주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선우예권, 클라라 주미 강 등 한국 공연예술의 현재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무대와 아크람 칸, 요안 부르주아, 알 디 메올라, 파보 예르비 & 도이치캄머필하모닉 등 동시대 우수 해외공연, 그리고 ‘다크필드 3부작’과 ‘Club ARC’,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등 새로운 관객 경험을 선사할 공연들을 만날 수 있다.
LG아트센터 서울 ‘게이트 아크’.
건축, 클래식, 무용 등 문화예술 단체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현대무용단, 정림건축문화재단이 함께한다. 어린이들이 건축가와 함께 토론하며 건축을 체험해보는 ‘건축학교’,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세계 유명 공연장의 건축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탐탐’, 청소년들이 클래식 음악 공연 감상법을 체험하는 ‘음악 이야기’가 열린다. 또 직장인 대상 클래식 프로그램인 ‘퇴근길 콘서트’, 국립현대무용단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홍승엽 안무가가 직접 지도하는 어린이 예술 워크숍 ‘몸으로 예술놀이’ 등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이 센터장은 “역삼동 시절에는 대극장밖에 없어 실험적인 국내 창작 공연을 올리기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소극장도 생겼고,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위상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 국내 아티스트도 많이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창작자들이 상상력 펼칠 수 있는 공간 만들어나갈 것”
1996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지난해 제5대 LG아트센터 대표로 취임한 이현정 센터장(51)은 마곡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 센터장은 역삼동 아트센터 개관을 준비하던 1996년 사원으로 입사해 공연기획팀장, 공연사업국장 등을 거쳤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LG아트센터 서울을 지역 명소화할 계획”이라며 “공연 관람이라는 목적 지향적 방문도 중요하지만 극장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
▶10월 13일 재개관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역삼동 센터는 1000석 규모의 극장이나, 단일 공연장으로 창작에 대한 제한이 아쉬웠다. LG아테센터 서울은 극장이 2개에 교육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당연히 할 수 있는 활동이 달라진다.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창작 기회를 줄 수 있다. 1300 규모에 맞는 대중적이고 다채로운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관 페스티벌도 12월 18일까지 15개 공연을 준비했는데, 대작 공연은 물론 다양한 장르를 포괄했다. 다양한 연령, 생각, 취향을 가진 관객들이 한 번이라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마곡시대를 열면서 플러스알파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역삼센터는 목적 지향적으로 오직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는 곳이었다. LG아트센터 서울은 서울식물원에 붙어 있어, 자연적인 환경에 주변 놀거리, 볼거리가 많다. 게이트 아크, 스텝 아트리움, 튜브 공간, 식물원 광장까지 여러 시설을 활용한 관객 체험형 활동을 통해 확장성을 지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장의 물리적인 거리보다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동선을 최소화하는 등 가깝고 편하게 느낄 수 있게 접근성을 높였다.
▶대극장과 함께 새로 생긴 블랙박스 형식의 소극장이 궁금하다.
▷극장이 2개라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아진 점은 분명하다. 무대 예술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데, 제약이 없는 상태일 때 가능성이 커진다. 블랙박스는 창작자들이 전형적인 공연 타입을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어 활용성이 크다. 앞으로 한국 창작가들과 다양한 협업으로 LG아트센터만의 도전적인 작품을 선보일 생각이다.
▶LG아트센터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온전히 프로그래밍에 대한 자율권이 핵심이다. 어떤 공연을 할 것인가에 대해 퀄리티 외에 다른 영향 안 받고, 관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에만 집중했다. 이런 방침을 2000년 개관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이 유지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예를 들어 ‘초대권 없는 공연장’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극장과 차별화한 공연을 꾸준히 소개하려면 초대권 없이 유료 관객으로 채워야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길게 보면 공짜표는 공연 생태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공연이 있을 텐데.
▷한계 없이 일을 했다. 초반에는 아트센터 공연을 좋아하는 공연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2002년에 독일 연극 <단테의 신곡>을 공연하는데 천국, 연옥, 지옥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27m 벽을 세우고 3만8000ℓ의 물을 가득 채웠다. 같은 해에 러시아 연극 <검은 수사> 때는 연극 객석 1층과 3층을 비우고 2층에 130명만 관객을 반쯤 띄워놓고 공연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한 것이다. 사실 이런 공연들은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는 간섭이 없어 가능한 일이었다.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모기업이나 재단에선 좋은 공연 외에 다른 주문은 없었다.
▶마곡 시대를 맞아 직원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도 있을 텐데.
▷너무 즐겁게 일했던 20년간의 시간이었다. 큰 자부심과 애사심이 있다. 나와 함께 스태프들도 자부심과 소신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 좋은 극장은 결국 직원 한 명 한 명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직원들의 생각이 모여서 새로운 공연,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사실 민간 기업에서 우리 같은 큰 공연장을 운영한 사례가 드물다. 공연 비즈니스는 미술관 같은 다른 자산과는 차이가 있다. 운영상의 적자 등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LG아트센터가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태프들도 가치를 온전히 고객들과 나눌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