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새 옷 입은 묵호, 여기가 어드메뇨… 느릿느릿 자근자근 걷는 길, 동해 논골담길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9.06 15:48:48
수정 : 2022.09.06 15:49:03
“하이구마. 여기가 묵호라고? 검은 석탄 날리던 그 묵호?”
80대 노모의 손을 꼬옥 잡은 60대 큰딸이 입이 떠억 벌어진 엄마에게 한마디 건넨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긴데, 요즘은 1년 전 세상이 옛날이라니까요.”
딸의 설명이 푸념처럼 들렸는지 엄마는 옛날 옛적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엄마 젊었을 때 아빠랑 바다 보러 왔었잖아. 그땐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었다고. 저기 산동네가 전부 달동네였어. 길도 얼마나 질었는지 원. 여기 묵호항에서 배로 석탄을 날라서 땅이 질지 않으면 거뭇거뭇했다니까.”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이번엔 식당 앞에서 점심 채비를 하던 주인장이 거들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여기가 원래 깡촌이긴 했어요. 그때랑 비교하면 완전히 천지개벽했지요. 저기 위에 있는 묵호등대서 한번 내려다보세요.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니 더 실감날 겁니다. 내려오시면 우리 식당에서 한 끼 하시고.”(웃음)
강원도 동해시에 자리한 묵호가 달라졌다. 다양한 놀 거리와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생기며 찾는 이도 부쩍 늘었다. 강원도를 휩쓸고 간 화마가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이름 난 관광지로 거듭난 묵호는 상처를 툭툭 털어냈다. 논골담 벽화마을 위쪽 언덕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들어섰고, 해발 59m 높이의 스카이워크, 도깨비 방망이 형상을 한 해랑전망대는 어느새 동해의 명물이 됐다.
그러니까 요즘 묵호항을 찾는 이들은 항구에서 바다도 보고 특산물도 먹고, 스카이워크나 하늘 위 자전거도 타며 제대로 놀다 간다. SNS상에 #묵호를 검색하면 이 모든 ‘꺼리’를 즐기며 남긴 인생 사진이 그득하다. 그 사진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경 중 하나가 바로 논골담길이다.
묵호등대
▶묵호의 삶을 그려낸 길
묵호항은 사실 깡촌이라기엔 화려한 과거를 감추고 있는 곳이다. 1936년부터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자그마한 항구는 1941년에 국제무역항이 됐다. 1976년엔 대규모 확장공사를 하며 지금의 시설을 갖추게 됐는데, 석탄과 무연탄, 수산물의 중요한 이동로이자 거점이었다.
일거리 많은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 당시엔 “길거리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만큼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그 모든 화려한 것들이 사그라들며 과거만 남게 됐지만,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묵호등대마을에 2010년 논골담길이 생기며 그 시절의 삶이 그림으로 되살아났다.
논골담길
공공미술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과 마을사람들이 묵호의 삶을 마을 곳곳에 벽화로 재현한 논골담길은 그야말로 아기자기하다. 좁다란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갖가지 그림이 객을 맞는데 이 그림이 왜 이곳에 그려졌는지 상상하다보면 묵호 사람들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터전을 마련하고 뱃일과 덕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지금의 천지개벽을 예상이나 했을까.
논골1, 2, 3길과 등대오름길까지 4개의 길이 펼쳐진 논골담길은 각각의 길이 다채롭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덕에 자리한 집은 어느 집 하나 똑같지 않다. 그 집에 살던 이들은 언덕배기에 자리한 덕장에 오징어와 명태를 날랐는데, 언덕이 늘 질퍽해서 장화가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속엔 오징어, 명태, 장화가 많다. 길은 길지 않다. 하지만 모든 길을 걸으며 벽화 감상에 나서면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짧다고 얕봤다간 가파른 언덕길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물 한 병은 꼭 챙겨둬야 맘 편히 걸을 수 있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정상에 우뚝 선 등대, 일출 명소
길은 모두 등대로 향한다.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이다. 1963년부터 그 자리에 우뚝 선 등대는 높이가 21.9m나 된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게 되는데, 새벽엔 망망대해에 붉은 해가 불쑥 솟아오르는 해맞이 명소다. 바다 뒤편엔 청옥산과 두타산이 버티고 섰다. 그러니 묵호항까지 와서 논골담길을 걷지 않는 건 묵호의 반만 보고 가는 것과 다름없다.
논골담길이 과거를 추억하는 길이라면 지척에 놓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현재로 이동하는 길이다. 이곳 또한 연말연시엔 손꼽히는 해맞이 명소인데, 전망시설인 하늘산책로(스카이워크)와 체험시설인 스카이사이클(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자전거), 자이언트슬라이드(대형미끄럼틀)를 중심으로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도째비골 해랑전망대
묵호항에 들렀다면 이곳으로→ 백사장과 갯바위, 울창한 송림이 있는 감추해변
동해시의 중심인 천곡동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 좁다란 백사장과 함께 분위기가 조용해 가족 단위 피서지로 적합한 곳이다.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어 즉석에서 회를 맛볼 수 있다. 신라 51대 진성여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의 전설이 내려오는 감추사가 자리했다.
→ 동쪽바다중앙시장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물들이 어시장을 가득 메우고 인근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야채까지 판매하고 있다. 70여 년간 상권을 형성하며 차양막 설치, 주차장 확보, 화장실 신축까지 현대적인 전통시장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무릉별유천지
→ 하늘 아래 최고 경치 좋은 곳, 무릉별유천지
동해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된 ‘무릉별유천지’가 묵호에서 가깝다. 동해시청에서 추천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면적이 107만㎡(약 32만4000평)나 되는 유원지인데, 쌍용양회(현 쌍용C&E)가 40년간 채굴 작업을 하다 2017년 마무리하자 동해시가 304억원을 들여 유원지로 개발했다. 라벤더 정원이 된 황무지와 호수, 전망이 훌륭한 카페에서 맛보는 흑임자 아이스크림(시멘트 아이스크림)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