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에 대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월경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데 이는 바로 문화적인 문제다.”
2016년 월경주기 추적 앱 ‘클루’의 최고경영자(CEO) 아이다 틴은 여성의 건강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며 펨테크(Femtech)라는 용어를 세상에 제안했다.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Female’과 기술을 의미하는 단어 ‘Technology’가 합쳐진 신조어인 펨테크(Femtech)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여성 건강 관련 상품 및 서비스, 소프트웨어 등을 의미한다. 틴 CEO는 “여성 건강을 위한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을 지칭하는 개념이 없었다”며 “합치면 더 강력해지고 문화적으로도 더 받아들여지기 쉽다”고 말했다.
펨테크의 범주는 여성의 성적 건강, 생리주기 추적 애플리케이션부터 임신 및 출산, 불임 치료 등 광범위하다. 유방암, 자궁경부암 진단 및 치료 등도 펨테크에 해당한다. 초기에는 ‘여성을 위한 기술’이란 소극적 의미로 쓰였다면, 지금은 여성의 의식, 행동, 소비, 생활, 헬스케어 등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산업 확장
국제 시장 정보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가 2020년 225억달러(약 26조7000억원)에서 2027년에는 650억달러(약 77조3000억원)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펨테크 시장은 월경, 임신, 수유 등 젊은 여성 타깃이었으나, 최근 중년여성 건강이나 갱년기 등을 테마로 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폐경 이후 삶도 늘어남에 따라 갱년기 건강관리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성은 50세 전후 급격한 여성 호르몬 감소로 열감, 안면홍조, 우울감, 불안감 증상이 나타나고 장기적으로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의 발병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해외 펨테크 시장 정보 플랫폼 ‘펨테크 애널리틱스(FTA·FemTech Analytics)’에 따르면, 지역별 펨테크 기업 수는 북미(52%)가 1위, 유럽(24%) 2위, 아시아(14%) 3위로 나타났고, 국가별로는 미국이 49.1%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해외에서는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라 월경, 임신, 난임, 갱년기, 피부미용, 건강 등을 중심으로 펨테크 서비스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2021년 10월 FTA가 펨테크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Global FemTech Survey, 2021) 결과 펨테크를 이끄는 주요 트렌드 1, 2위로 ‘난임과 임신’(36%), ‘갱년기’(27%)가 뽑혔다. 한때 펨테크 시장의 주류를 차지했던 ‘월경’(19%), ‘성’(17%) 문제 등을 제치고 ‘갱년기’가 주요 트렌드로 떠올랐다. 수명 연장과 더불어 늘어난 폐경 이후의 삶이 이러한 결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펨테크 시장의 성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건강은 개인은 물론 기업과 사회에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월경은 여성의 삶에 오랜 기간 큰 영향을 미치는 신체 변화지만,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능동적인 노력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바이엘코리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20~40대 여성 10명 중 4명(43%)은 ‘자주 또는 항상’ 월경 과다 증상을 경험하지만, 이들의 병원 방문율은 30%에 불과하고, 치료까지 받는 경우는 1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분석 통한 월경주기 예측
펨테크 시장은 주로 미국 기업들이 이끌어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북미 펨테크 스타트업에 3억8000만달러의 누적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 지역에서도 성장세가 나타나며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펨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 및 기술이 개발되며 시장 확대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여성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는 건강 과제인 월경, 임신과 난임, 갱년기, 건강과 미용 관련 펨테크를 중심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펨테크는 월경주기 관리와 배란일 예측이다. 월경일, 기초체온 등을 입력하면 월경주기에 따라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기관과 데이터를 공유하여 의사 진료 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표적인 월경주기 관리 앱인 펨테크 기업의 시초로 불리는 독일의 ‘클루’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월경일, 월경전증후군, 가임기를 예측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월경일 예측뿐 아니라 월경주기에 따른 신체적·감정적 변화 패턴을 30종류 이상 추적한다. 월경일 알림과 함께 월경주기와 관련된 전문 치료법과 교육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임력 모니터링을 통해 임신 확률이 높은 시기를 알려주는 디지털 피임약(‘Clue Birth Control’)이 올해부터 미국에서 판매될 예정(미국 식품의약청 승인)이다.
일본의 ‘루나루나’는 월경주기 관리 앱으로 시작하여 건강, 다이어트, 미용, 임신, 육아 등 여성의 생애 전반의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월경일과 기초체온 등을 입력하면 월경일과 배란일, 컨디션 변화 등을 예측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임신을 준비 중인 사용자를 위한 기초체온과 진료 기록 관리, 원격 진료와 처방약 배송 등 종합적인 여성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 건강 데이터를 토대로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서비스를 제공, 의사는 루나루나에 입력된 사용자 건강 데이터를 병원용 시스템(‘루나루나 메디코’)을 통해 확인하고 진료에 활용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월경케어 관련 서비스를 속속 출시했다. 대표적으로 ‘먼슬리씽’은 입력된 증상 정보와 구매 이력을 토대로 월경용품, 진단 키트, 영양제 등 시기별로 건강 상태에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고 주기에 맞춰 배송해준다. ‘핑크다이어리’는 산부인과 전문의 상담, 커뮤니티 운영, 커플 간 공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성용품 제조 기업들은 유기농 순면 등 피부 자극을 줄일 수 있는 재질을 사용하고, 샘 방지 기능을 강화하여 월경 기간에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유기농 생리대와 탐폰을 판매하는 ‘해피문데이’는 월경주기 관리 앱 ‘헤이문’을 통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월경주기에 맞춰 필요한 용품을 배송한다.
▶웨어러블 활용한 가임기 예측
병원 방문 없이 집에서 진단키트나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간편하게 가임력, 가임기를 측정하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의료 전문가에게 상담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미국의 ‘모던퍼틸리티’는 호르몬 분석으로 난소 나이 등을 파악하여 가임력을 측정해준다. 손가락 끝부분에서 채혈한 혈액 샘플을 업체에 발송하면 호르몬 분석 결과를 제공하고 간호사 상담, 온라인 교육 등을 통해 체계적 임신 계획 관리를 지원한다. 모던퍼틸리티 앱에 월경주기와 함께 호르몬 검사, 배란일 검사 결과를 입력하면 더욱 정교한 예측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위스의 ‘아바’는 임신 확률이 높은 가임기 예측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 식품의약청의 승인을 받은 손목형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사용자의 호르몬 변화와 관련된 체온, 심박 수, 맥박, 호흡 등을 측정하여 데이터를 아바 앱으로 전송해준다. 또한 수면 중 수집되는 정보만으로 가임기를 식별함으로써 배란 테스트기, 월경주기 관리 앱 등 여타 가임기 예측 방법과 비교하여 편의성과 정확성을 높여 준다(임신 확률이 높은 5일 예측 서비스 제공).
국내에서도 여성질환 관련 의료 전문가의 원격 진료 서비스와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했다. 월경통, 여성질환 등에 대해 원격 상담을 통해 주치의 면담을 위해 내원하는 부담을 감소시켜 주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닥터벨라’는 여성질환에 대해 의료 전문가 상담과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 병원 검색과 예약도 가능하다. 이 외에 ‘루닛케어’는 유방암 전문의가 검증한 유방암 정보와 맞춤 솔루션을 통해 예방부터 완치 후 관리까지 전문적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면서 ‘닥터나우’, ‘올라케어’, ‘똑닥’, ‘닥터콜’, ‘굿닥’ 등 비대면 진료와 처방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급증하기도 했다. 닥터나우가 2021년 하반기 비대면 진료 서비스 사용자 10만 명을 대상으로 주로 사용하는 분야를 조사한 결과, 감기가 가장 많았고 질염, 월경통 같은 여성질환이 뒤를 이었다.
▶갱년기 여성을 위한 건강관리 시장
펨테크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는 갱년기 증상을 모니터링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갱년기 여성은 여성 호르몬 감소와 폐경에 따른 신체적·심리적 변화에 대응하여 개인 맞춤형 정보 제공과 진료를 통한 증상 완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엘로케어’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여 데이터 기반 치료를 지원한다. 웨어러블 기기로 건강 상태를 지속해서 관찰하여 체온, 혈압 등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개인별 생활 습관 개선 제안과 의학적 소견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만약 복약 시기를 놓치거나 약물을 과다 복용하지 않도록 돕는 모니터링 기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미국의 ‘카리아’는 건강 상태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맞춤형 건강관리와 갱년기 증상 완화를 지원한다.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기록하고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토대로 전문 영양사의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한다. 인지행동요법 등을 통해 증상 완화를 위한 처방도 지원한다.
카리아를 개발한 ‘버추헬스(Virtue Health)’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노화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큘러스 등 VR 기기를 활용한 디지털 치료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 일본의 ‘요리솔(Yorisol)’은 AI 챗봇의 질문에 따라 증상과 감정을 기록하고 배우자와 정보를 공유한다. 메신저 앱 ‘라인(LINE)’에서 요리솔을 친구 추가하면 사용자는 AI 챗봇의 질문에 따라 일상적인 증상과 감정을 기록할 수 있다. 부부간 또는 연인 간에 폐경기 증상을 공유하는 기능과 함께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을 제안하여 인식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
펨테크는 인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다. 펨테크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도 증가세를 보인다. 국내에도 웨어러블 기기, 디지털 치료제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중년여성을 위한 갱년기 케어 서비스 등으로 펨테크 산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헬스케어 확산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여성 헬스케어 서비스의 필요성이 증대되며, 미래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도연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생애주기별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펨테크 역할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최근 펨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펨테크 시장 규모와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