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기업들이 노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 부담 증가로 기업 실적이 무더기로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그 핵심으로 지목받는 임금 인상을 두고 노동자와 사측 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다.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없던 아마존, 스타벅스, 애플 등에 속속들이 노조 설립 및 추진 소식이 전해오면서 긴장감을 높이는 상황이다.
노조 결성 트렌드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커피 기업 스타벅스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뉴욕주 버펄로시 매장은 작년 12월 노조 설립 찬반 투표를 실시해 27명의 직원 중 1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스타벅스 창사 이래 첫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이다. 다만 같은 날 노조 설립 투표를 한 인근 다른 매장은 노조 설립이 불발됐다. 뉴욕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버펄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역사를 갖고 있으며, 미국 대부분 지역보다 노동자의 노조화 비율이 높다. 스타벅스의 경우 점포별 고용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점포별 노조 설립이 이뤄진다.
노조의 규모는 작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수천 개에 달하는 스타벅스 매장의 노조 결성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측은 경영 일선에 복귀한 하워드 슐츠를 동원해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했지만 끝내 이를 막지 못했다.
버펄로시 스타벅스 직원들은 지난해 8월 열악한 근로 여건을 개선해달라며 노조 설립 캠페인을 벌였다. 업무량은 늘어난 데 비해 직원 고용은 계속 부족해 업무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 실직자로 머무르면서 현장 일선에선 일손 부족이 보편화됐다. 특히 모바일 주문 서비스의 확대 및 테이크아웃 고객의 급증으로 스타벅스는 오히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수혜를 입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이러한 수익 증대의 반면에 바리스타와 직원들의 부담 급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시간적·물리적 부담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았다는 것이 노조 결성 측의 주장이다. 실제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켈로그, 트랙터 제조업체인 존 디어, 과자 제조업체인 몬델레즈, 프리토레이, 맥도날드 버거 체인 등 여러 기업의 업무가 구인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마존 이어 애플도 노조 추진, 명과 암
이번 사건은 창사 이래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던 스타벅스에겐 조직 문화를 뒤바꾸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타벅스 버펄로 지점이 소속될 노동자 연합 노조는 버펄로 매장 직원들이 노조 결성 논의를 막기 위한 회사 측의 방해와 회유에 시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휴가 확대, 보험 등 복지 제도 개선 등의 방안을 내놓았던 스타벅스는 결국 노조 결성을 무산시키는 데 실패했다.
스타벅스는 이에 대한 후속조치도 단행했다. 바로 노조 결성을 주도한 직원들을 퇴사시킨 것이다. 스타벅스는 해당 직원들이 영업시간 이후에도 매장을 이용하는 등 회사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이뿐 아니라 현재 전국 곳곳에서 추진 중인 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한 로비 및 회유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스타벅스가 불러온 노조 설립 분위기는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으로 옮겨 붙었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역시 노조 설립 대세를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 뉴욕이었다.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 JFK8 공장의 전 노동자 크리스천 스몰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직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이러한 노조 설립 운동 중 회사에서 해고됐지만 이러한 캠페인을 계속해 결국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일을 이어갔다.
아마존 역시 수백만달러짜리 노조 저지 캠페인과 노동 관련 사측 인사의 강연 등 여러 방법과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결국 이를 막지 못했다. 이번 사건 역시 노조 설립의 둑이 열렸단 평가가 나올 정도로 여러 지역별로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올해 4월 1일 실시된 노조 설립 찬반투표에서 8304명 중 4850명이 참여해 2654명의 찬성으로 노조가 설립됐다. 찬성률은 54%에 달했다. 노조 설립에 반대한 비율은 2131명으로 43%였다.
JKF8은 미국 전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아마존은 제프 베이조스의 업계 최고 대우 근무환경 조건을 내세워 1994년 설립 이후 30년간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왔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사측에 말하면 된다며 노조의 불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아마존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 의료보험제도, 유급 출산휴가 등 타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역시 과도한 업무 부담이 발목을 잡았다. 잦은 해고와 직원 통제, 감시 등이 수시로 이뤄졌다. 물류창고 특성상 쉬는 시간이 거의 없고, 항상 일해야 하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다. 노조가 진짜 필요한 이유가 발생한 것이다.
역시 처음은 쉽지 않았다. 사측은 조직적인 노조 설립 방해 공작을 이어갔다. 본사의 10개 부서, 11명 이상의 부회장급 임원이 노조 설립을 저지하는 캠페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바쁠 때는 하루에 20차례나 참여해야 하는 회의를 만들어 노조 결성 추진위원회를 비판하고 불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마존은 노조 설립 캠페인에 총 430만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이 크라우딩 펀딩 사이트를 통해 모금한 금액이 12만달러였다. 스몰스는 노조 설립 가결 후 “모든 기업들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도전했다”며 “노동자들을 대신해 옳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아마존의 두 번째 노조 결성은 무산됐다. 이에 대해 언론은 “무노조 경영이 이어져온 아마존에서 노조 결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벌여온 노조 조직화 세력의 활동이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지난 5월 2일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의 아마존 창고 ‘LDJ5’에서 치러진 노조 결성 투표에서 직원들의 62%가 반대표를 던져 노조 설립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유효 투표 가운데 노조 설립 찬성이 380표에 그친 반면 반대표는 618표에 달했다. 이번에 부결된 LDJ5는 분류센터로 주문처리센터인 JFK8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창고였다. 분류센터는 주문처리센터에 비해 시간제 근무자가 많고 업무 강도가 세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LDJ5의 투표 결과는 지난달 투표의 성공을 확대해나가기를 희망했던 노조 조직화 세력에 타격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뉴욕 일대의 아마존 창고에서 노조 조직화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인 ‘아마존 노동조합(ALU)’을 대리하는 변호인 역시 “노조가 투표에 대해 아마존을 상대로 이의를 제기할지 검토 중이며 LDJ5 등지에서 노조 결성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아마존 대변인은 투표 결과에 대해 LDJ5에 있는 우리 직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기쁘다”며 “우리는 직원들의 하루하루가 더 나아지도록 애쓰는 가운데 계속해서 함께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되받아쳤다. 이번 노조 설립 무산에 대해 일각에선 첫 노조 설립이 가결된 후 아마존이 노조 결성 방해 공작을 더욱 강화한 영향으로 이번 두 번째 노고 결성이 무산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화에 반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개설한 웹사이트에서 “ALU가 아마존과 직원들을 이간질하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 역시 노조와의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뉴욕 맨해튼 지점을 비롯해 곳곳에서 노조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애플도 이를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현재 뉴욕 맨해튼 내 애플 플래그십 매장인 그랜드센트럴스테이션점의 직원들이 웹사이트를 열고 노조 결성을 위한 서명을 진행 중이다. 노조 결성이 최종 승인되면 북미서비스노조(SEIU) 지부 노동자연맹(WU)에 가입할 예정이다. 이 역시 미국 내 270여 개의 애플 매장 중 첫 노조가 된다. 애플은 노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 몇 달간 설득 작업을 벌여왔다. 최근엔 통신근로자노동조합이 애플이 연방 노동법을 위반하고 노조 결성을 불법으로 방해한다는 이유로 회사를 정부기관에 고발하기도 했다.
▶노동자 보호 긍정 평가가 많아
이러한 노조 결성을 추진하는 분위기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어떨까. 갤럽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조에 대한 지지는 50년 만에 최고치인 68%를 기록했다. 스타벅스 직원과 같이 회사로 출근해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일반인들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창사 이래 첫 노조가 설립된 아마존과 스타벅스에 이어 애플까지 노조 설립에 성공한다면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온 산업군의 수많은 기업들에게도 상당한 파급력이 예상된다.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을 해온 기업들에서조차 최근 노조 설립이 적극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팬데믹 기간 동안 기존 임금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4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3% 상승해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상태다. 모든 물가가 뛰는 상황에서 임금만 제자리에 있으며 가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모양새를 띠었다.
문제는 노조 특성상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꾸거나 없앨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자의 권리 신장은 필요하지만 경영 관점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최근 나빠진 경기 탓에 여러 기업들이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며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노조가 결성될 경우 이러한 해고에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 카바나는 최근 직원 250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했으며 온라인 주식거래 기업 로빈후드 역시 전체 직원의 9%를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노조 설립 후 고용 자율성이 침해될 경우 그만큼 회사의 비용 또한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순손실이나 영업이익 감소를 막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결국 그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판매가격 및 상품가격 상승은 소비자들의 주머니 물가를 드높이는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판매량 감소로 기업이 어려워지고 그 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즉 노조 설립의 이면에는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안전장치적 성격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여러 첨예한 대립과 이해관계가 상충된 만큼 노조 설립이 마냥 우후죽순식으로 늘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난해한 고차방정식으로 엮여버린 노조 설립 이슈는 향후 미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