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올 여름은 일찍 시작된 만큼 길게 이어질 것만 같다. 습한 날씨와 집중호우는 동남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 날씨에 폭우로 인한 높은 습도까지 불쾌지수는 최고조. 에어컨 없는 밖을 몇 분만 돌아다녀도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러내린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의 의상은 점점 얇아지고 짧아져 ‘하의 실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재킷과 셔츠, 넥타이만을 고수해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은 땀 냄새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쿨비즈(Cool Biz) 룩’이다. 쿨비즈란 시원하고 멋지다는 의미의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가 결합된 단어로 습하고 더운 여름을 지내는 일본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고안했다. 가볍고 시원한 복장으로 출근해 사무실 에어컨 온도를 28도로 맞춰도 크게 더위를 타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처음에는 단순히 넥타이를 풀고 시원한 차림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게 쿨비즈 룩의 취지였다. 하지만 남들과 그냥 똑같이 셔츠에 넥타이만 풀고 정장 바지를 입는다면 그것 또한 획일화된 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자신을 전락시키는 일종의 ‘자기학대’가 아닐까. 쿨비즈 룩을 하겠다고 모두가 유니폼처럼 획일화되는 것도 안 되고 너무 튀게 스타일링한 바캉스 룩도 안 된다. 그리하여 필자는 최대한 시원함을 살리면서 각자의 개성에 맞는 스타일, 품위를 잃지 않는 산뜻한 쿨비즈 룩을 완성할 수 있는 몇 가지 노하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안 입은 것 같은 투명 재킷, 리넨
리넨은 열전도율이 높고 뻣뻣하기 때문에 통풍이 잘되고 시원해 아프리카의 고대 이집트인들도 옷을 지어 입었다. 리넨 소재로 된 재킷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정말로 제격이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포멀함을 연출할 수 있고 동시에 시원함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넨 소재의 재킷은 자연스런 주름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주름으로 오히려 캐주얼한 느낌이 강해질 수도 있다. 최근엔 섬유기술의 발전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구김이 덜 가는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리넨에 실크가 섞인 소재도 괜찮다.
올 여름에는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리넨 재킷의 컬러도 화려하다. 핑크, 블루, 오렌지 컬러의 멋스러운 리넨 재킷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화려한 컬러가 부담스럽다면 네이비나 그레이 등 은은하고 시원해 보이는 컬러도 좋겠다.
또 리넨 재킷 위에 다양한 패턴을 프린트해 일반 재킷처럼 보이게 한 것도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독창적으로 클래식 스타일을 재해석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볼리올리의 네이비 리넨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100만원대)과 클래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체사레 아톨리니의 블루 리넨 재킷(400만원대), 리넨 재킷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는 휴고 보스의 그레이 블루 리넨 재킷(100만원대) 등 올 여름 리넨은 그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이다. 리넨 재킷에는 목이 적당히 타이트한 티셔츠나 셔츠를 단추 두 개 정도 열어 받쳐 입으면 제격이다.
또 리넨 셔츠와는 파스텔 톤의 팬츠가 썩 잘 어울린다. 런웨이의 모델처럼 리넨 재킷에 반바지도 잘 어울리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남성에게 일터에서 반바지에 재킷을 권유하기는 다소 어렵다. 대신 금요일이라면 8부나 9부 바지를 리넨 재킷과 코디해 준다면 트렌디한 감각을 얻을 수 있다.
재킷 부럽지 않은 서머 베스트
리넨 재킷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없이 대할수 있는 휴고보스의 리넨 재킷.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끼, 베스트는 추운 가을과 겨울 동안 아우터 안에 숨어 있는 조연 아이템이다. 하지만 여름에는 당당히 밖으로 나와 훌륭한 주인공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베스트는 원래 군인들이 추위와 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아이템이다. 그러던 것이 영국의 찰스 2세에 의해 타국 귀족들에게 퍼지며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베스트는 셔츠와 함께 갖춰 입고 그 위에 재킷을 입는 것이 포멀 룩의 정석이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재킷 대신 베스트를 잘 응용하면 쿨비즈 룩이란 스타일을 포멀하게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에르메네질도 제냐나 체사레 아톨리니와 같은 클래식 슈트 브랜드의 베스트는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처럼 캐주얼한 느낌의 셔츠가 멋스럽게 어울리며 하의로는 치노 팬츠 혹은 데님과도 별 무리가 없다. 서머 니트 소재의 베스트는 부드러우면서도 댄디한 느낌을 살려 주며 나온 배도 살짝 가려 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또한 체크무늬의 베스트는 화이트 셔츠에 코디하면 깔끔하고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스타일에 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다.
베스트는 셔츠뿐만 아니라 기본 면 티셔츠 위에 코디해도 굉장히 댄디하고 상큼한데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게 무리인 직장이라면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여름의 지존! 쿠~울 셔츠 4가지
영국적인 헤리티지가 살아있는 프레드 페리의 피케 셔츠.
넥타이를 풀고 스타일링을 할 때 셔츠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에겐 셔츠가 입은 옷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간혹 셔츠만 입었는데 속에 러닝셔츠가 그대로 비친다든가 반대로 유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직장 내 여직원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따라서 먼저 셔츠 소재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만 가볍게 입고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개성 있는 쿨비즈 룩 셔츠로 화이트 컬러의 리넨 셔츠를 권하고 싶다. 시원한 것은 물론 정갈해 보여 보는 사람도 시원하다. 재킷이 없어도 재킷을 대신 할 정도로 포멀하다.
브리오니처럼 고가 명품브랜드의 화이트 컬러 리넨 셔츠(90만원대)부터 합리적인 가격의 유니클로 민트 컬러 리넨 셔츠(2만원대)까지 다양하니 선택의 폭도 매우 넓다. 다음은 샴브레이 원단의 블루 셔츠다. 흔히들 데님 셔츠로 혼동할 만큼 언뜻 보면 데님 셔츠처럼 보인다. 하지만 샴브레이는 데님과 원단의 직조 방식부터 차이가 있다. 샴브레이 블루 셔츠의 경우 파란색 실과 하얀색 실을 교차해 직조한 가벼운 원단으로 투톤이다.
뒤집어 봐도 색이 같다. 데님은 능직으로 짜인 원단이라 훨씬 두툼하고 질기다. 샴브레이 셔츠는 어떻게 코디하느냐에 따라 캐주얼과 포멀을 넘나들 수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블루 컬러 샴브레이 셔츠(20만원대)에 화이트 팬츠를 코디해 입으면 시원하고 경쾌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베이지 치노 팬츠는 좀 더 댄디하고 클래식한 느낌도 줄 수 있다.
여름에 가장 필수 아이템인 피케 셔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폴로셔츠를 피케 원단으로 만든 것이다. 테니스 경기용으로 개발한 것이 그 시초다. 피케 원단은 겉 표면이 오톨도톨해 마치 벌집 모양과도 같으며 구김이 적고 세탁 후에도 변형이 적다. 원단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해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고 재킷과 함께 하면 포멀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주말에는 반바지와 스니커즈를 코디하는 등 어디에나 어울리는 비즈니스맨의 필수 아이템이다. 라코스테의 그린, 레드 컬러의 화려한 피케 셔츠(10만원대)와 영국적인 헤리티지가 살아있는 프레드 페리의 그레이, 화이트 컬러의 심플한 피케 셔츠(10만원대)가 있다. 폴로의 커다란 말이 인상적인 빅포니 피케(10~20만원대)도 존재감 있어 보인다. 최근엔 이러한 피케 셔츠가 하이앤드 브랜드에서 다양한 핏으로 좀 더 난이도 있고 트렌디하게 공개되고 있으니 멀티숍을 한번 기웃거려 보면 독특한 나만의 피케 셔츠를 컬렉션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어서커 소재의 셔츠. 리넨 못지않게 시원한 여름 소재로 오톨도톨하고 얇아 일명 파자마 룩으로도 잘 알려진 셔츠다. 특히 최근 몇 년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포멀 룩이나 캐주얼 룩에 모두 다 잘 어울린다. 시어서커 셔츠를 입을 때는 재킷도 같은 소재로 통일해 주는 것이 좋다. 닥스의 시어서커 셔츠(20만원대)처럼 블루와 오렌지 컬러의 스트라이프나 체크무늬가 있다면 더욱 시원해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