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남자의 계절’이 왔다. 가을·겨울 패션 트렌드를 통해 살펴본 잇(it) 아이템 8가지.
무채색을 깔맞춤하라
가을 남자하면 분위기인데 다행히 이번 시즌엔 그레이·블랙 등의 무채색과 카멜색(camel color·모래색)이 대세다. 그 중 메인 컬러를 꼽자면 바로 그레이. 이번에 유행하는 그레이 컬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 컬러가 특징이다. 이른바 ‘깔맞춤’ 패션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슈트, 이너셔츠와 타이까지 올 그레이 컬러로 입거나 그레이 슈트에 그레이톤 터틀넥을 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 루이비통은 럭셔리한 패션 하우스다운 위엄 있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디자이너의 대담한 표현은 자제했고, 모든 컬렉션이 블랙, 그레이, 브라운 컬러 위주다. 심지어 루이비통의 트레이드마크인 백(bag)마저 점잖다. 대부분 캔버스, 가죽과 매치해 불필요한 장식을 피하고 실용성을 살렸다.
세련된 스타일과 웨어러블한 컬렉션이 특징인 이브생로랑은 이번 시즌에도 그레이 컬러를 통해 실용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스타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드러운 그레이 컬러를 메인 컬러로, 강렬한 블랙, 네이비 등을 선보인 것. 이탈리아 최고급 남성복 브랜드인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한 브랜드 제냐 역시 그레이와 블랙의 무채색 패션을 제안한다. 슈트가 아닌 터틀넥이나 니트도 그레이 컬러를 많이 볼 수 있다. 디올 옴므는 레이스 장식의 오버코트, 팬츠 등을 모두 블랙으로 선보였고, 날카롭고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패션계를 선도해온 프라다는 그레이 슈트를 제시했다.
카멜색 아우터를 구비하라
무채색과 함께 카멜색은 이번 시즌 키 컬러. F/W 여성복에서도 가장 핫한 컬러인데, 남성복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루이비통의 카멜색 코트는 고급스러움의 극치이고, 구찌 역시 카멜색 아우터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드리스 반 노튼 역시 쇼트 크롭트 팬츠, 멋진 벨트를 매치한 톱코트와 함께 여러 벌의 카키색 의상을 선보였다. 3.1 필립림은 라이딩 팬츠와 구조적인 울 코트에 카멜톤의 컬러를 사용했다.
위의 컬러들은 모두 미니멀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컬러들이다. 디자인 면에서 재킷의 단추가 감춰지고 칼라와 라펠(깃)이 매우 슬림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복고 컬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컬러의 매칭이 어렵다면 올 블랙 컬러의 이너에 원 포인트 컬러 아웃웨어를 착용하거나 내추럴한 컬러와 매칭하면 된다. 재킷의 디테일이나 타이 등의 액세서리 또한 아우터와 같은 컬러로 매치돼 마치 한 피스처럼 보이는 룩을 연출할 수도 있다.
군 시절이여, 다시 한 번!
지속된 경기 침체 때문일까? 보호와 방어를 모티브로 한 밀리터리 룩이 강세다. 독일군 장교가 입었을 법한 맥시 코트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또한 많은 브랜드에서 클래식한 재킷이나 코트에 레더나 퀼팅을 믹스해 와일드한 느낌을 주는 아우터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에 등장하는 빅 칼라의 코트와 재킷을 보면 이해가 빠를 듯. 한 겨울의 러시아 군인을 생각나게 하는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에선 카키와 브라운, 네이비 컬러가 주를 이루며 두꺼운 오버코트들이 돋보였다. 3.1 필립림 컬렉션은 미니멀한 재킷과 셔츠 차림에 사파리 재킷을 매치해 어번 밀리터리 룩을 완성했다.
군복 같은 카키색 코트를 입었을 때 정말 군복 같은 느낌을 피하려면 아우터는 칙칙한 색이더라도 이너로 밝은 색상의 아이템을 매치해야 한다. 또 하나, 밀리터리 룩에는 버클을 빼놓을 수 없다.
재킷에 버클 장식. 배우 원빈이 영화 <아저씨> 관련 행사에 입고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버버리 프로섬 의상에도 양 어깨에 골드 버클 장식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제임스 본드로 빙의하자
2010년에 맞게 재해석된 1970년대 스타일에 주목할 것. 1970년대 패션 아이콘인 007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를 연상하면 된다. 영화 속에서 베이직 아이템으로 선보였던 터틀넥 아이템을 슈트의 이너로 매치한 것이 좋은 예다. 프라다 컬렉션에서는 슬림한 슈트, 뜨거운 물에 빨아 줄어든 것 같은 쇼트 니트나 멜란지 니트를 입어 1970년대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구찌 역시 1970년대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슬림한 슈트와 얇은 스웨터 차림, 빈티지한 느낌의 카디건, 더플코트, A라인 코트 등으로 매력적인 레트로 가이의 모습을 완성했다. 빛바랜 느낌의 컬러, 해지거나 마구 짜깁기한 듯한 텍스처의 니트와 레더는 이 룩의 필수 요소. 1970년대와 1990년대에 유행했던 격자무늬 모직 팬츠는 맞춰 입기가 대략 난감한데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상의에 화이트나 그레이, 블랙 등의 단색 탑과 맞추는 것이다.
양털 재킷으로 보온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올 겨울엔 겉은 가죽, 안은 양털로 이루어진 양털 재킷이 유행할 전망이다. 겉으로 양털이 보이는 디자인이 특징. 안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양털이, 바깥에는 든든한 가죽으로 구성된 이 재킷은 언밸러스하면서도 특이하게 커팅된 칼라(깃)가 포인트. 버버리 프로섬과 구찌 쇼에서 볼 수 있었고, 지 제냐의 컬렉션에선 긴 양털 재킷을 선보였다.
소재와 패턴을 믹스하라
이번 시즌에는 같은 옷에 소재와 패턴을 믹스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같은 옷인데 팔이나 어깨 부분만 다른 소재나 패턴이 들어가는 식이다. 색상이 다른 패딩과 패딩을 섞은 후 가로로 잘라 보여준 드리스 반 노튼은 가히 믹스의 화신이라 불릴 만하다. 이번 시즌 그는 우리가 고등학교 가정 실기시간에나 봤던 원단의 조합을 시도했다. 통째로 소재나 패턴을 짜깁기 해버린 아이템들도 많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울 소재의 핀스트라이프 블레이저를 네이비 컬러 의상과 매치한 룩은 재킷 위에 레이어드돼 마치 투톤을 입은 듯한 느낌이다.
꼭 맞는 슈트와 셔츠, 그리고 다양한 사각형으로 재단된 질 샌더의 이번 컬렉션은 미니멀하기 그지없다. 모델들은 스포티하게 무장했으나 지나치지 않았고, 부풀려진 듯한 재킷의 사이즈도 적당했다. 그러나 아주 날카로운 슈트에 덧붙여진 빈티지스러운 컷의 울 소재로 믹스의 힘을 보여줬다.
스키니는 잊어라, 이젠 루즈가 대세
쫙 달라붙는 형형색색의 스키니진을 입고 나오는 샤이니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제는 기뻐해도 된다. 2000년대 스키니의 챔피언이었던 디올 옴므가 이제 루즈함으로 방향을 틀었으니까. 폴 스미스의 팬츠는 루즈하게 통이 넓은데, 허벅지 부분은 루즈하지만 밑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띤다.
랑방과 빅터&롤프의 쇼에선 앞쪽에 주름이 잡힌 통 넓은 스타일의 팬츠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같은 디자인은 웨어러블하진 않지만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으며 트렌드로 돌아왔으니 팬츠를 구입할 때 어느 정도 참고하면 좋겠다.
부츠와 장갑으로 포인트를
이번 시즌 컬렉션 전체를 아우르는 아이템이 있다면 바로 부츠! 든든한 무게감으로 추운 날 발을 보호해준 부츠가 버버리 프로섬에서는 바지 밑단이 들어가도 텅텅 빌 것만 같은 발목이 넓은 부츠와 안쪽에 털이 복슬복슬 나있는 따뜻해 보이는 털 부츠로 다시 태어났다. 청바지에도, 울 팬츠에도, 코트와 재킷에도 잘 어울리는 부츠야말로 이번 겨울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루이비통 쇼에선 지퍼나 스트랩, 버클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츠가 빠지지 않았다. 또한 1980년대 중반 독일의 인디밴드를 떠올리게 하는 3.1 필립림 컬렉션의 무릎까지 오는 부츠와 팔꿈치까지 오는 블랙 컬러의 가죽장갑은 후기 묵시록의 승마 클럽 멤버를 연상시킨다. 부츠를 신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는 이들에겐 추위도 이길 겸 장갑을 추천한다. ‘남자가 무슨 장갑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추위와 바람에 벌겋게 부르튼 돌쇠의 손으로 여자의 손을 잡는 것이 더 추한 광경임을
명심하자. 캘리포니아 출신의 디자이너 릭 오웬스는 여자들이 사용할 것만 같은 매끈한 디자인의 장갑과 부츠를 선보였다. 꼼꼼한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톰 브라운은 입은 옷의 스타일에 따른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장갑을 제시했다. 그의 쇼는 마치 하나의 장갑 컬렉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옷과 장갑은 하나의 패션으로 완성하는 방법을 확실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