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사블랑카>에는 흑인 피아니스트 샘이 부르는 ‘As Time Goes by’가 흐른다. 그 가사 중 한 구절. “사랑은 왔다가 떠나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영원한 클래식, 바로 트렌치코트다.
냉정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에서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다. 특히 비밀리에 홍등가에서 일하는 고상한 젊은 유부녀 얘기를 다룬<세브린느>는 “에로티시즘이란 반드시 노출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뒤엎은 영화다. 영화 속에서트렌치코트를 입은 드뇌브는 충분히 섹시했고 관능적이었다.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어떤 의상보다 트렌치코트의 파워풀한 이미지가마음에 들어요. 더군다나 남성적인 강인함에 여성스러운 섹시함을 자유롭게 가미할 수 있으니까요.”트렌치코트는 전쟁터로 나갈 만반의 준비를 갖춘듯한 남성적인 매력이 있는가 하면, 허리를 꽉 졸라매고 하이힐을 매치시키면 섹시함이 느껴지는아이템이다. 트렌치코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벌쯤 소장하고 있는 대표 클래식 아이템으로 손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으로 돌아간다’는 트렌드가 이어지며, 버버리의 헤리티지 아이템인 트렌치코트가 트렌드의 최전방에 자리 잡았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헤리티지 아이템
트렌치코트의 실용성과 미학 그리고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트렌치코트의 역사부터 알아보자. 트렌치코트의 트렌치(Trench)는 영어로 ‘도랑’, ‘참호’라는 뜻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 착용한 영국군의 레인코트에서 유래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1856년 영국 햄프셔 지방에서포목점을 경영하던 버버리(Burberry)의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기능성 신소재원단인 개버딘(gabardine)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순례자가 입는 겉옷’을 뜻하는 스페인어 ‘카발디나’에서 유래한 개버딘은 방수, 방한기능이 뛰어나면서도 통기성과 내수성이 뛰어난 천이다. 가장촘촘하게 짜인 이집트산 면에 방수처리를 했다.
최초로 남극탐험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날드 아문젠 선장도 극동 지방으로의 썰매 여행 때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가벼우면서도 외풍을 막아주는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특히 비행기 조종사와 선장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문가들로부터 내구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바람과 비가 잦은 영국의 궂은 날씨에도, 병사들은 개버딘으로 만든 전투용 외투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길이가 길고 넉넉한 박스형에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 수류탄을 걸 수 있게 만들어진 벨트의 D자 링,강한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앞가슴을 덧댄 디자인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코트의 길이와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졌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여성들도 입게 되면서 일상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실용성과 편안한 착용감으로 세계 저명인사들 역시 버버리를 즐겨 입었다. 영국 에드워드 7세도 트렌치코트를 자주 입었는데, 그때마다 입버릇처럼“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하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버버리’라는 브랜드 네임이 트렌치코트를 상징화한 유명한 일화다. 대문호 코난 도일,윈스턴 처칠 영국 전 수상, 조지부시 미국 전 대통령 등도 버버리 애호가였다. 또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역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포착될 때마다트렌치코트 차림일 적이 많았다.
특히 트렌치코트가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적이면서 우수적인 이미지와 아우 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40~1960년대에 큰인기를 누렸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영향이 크다고볼 수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트렌치코트를입고 등장한 험프리 보가트와 아찔하게 허리라인이 강조된 짙은 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한 여자 주인공 잉그리드 버그만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원피스에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걸친 오드리 헵번, 영화 <애수>에서 넓고각진 어깨선이 돋보인 트렌치코트를 입은 로버트테일러도 빼놓을 수 없다.
트렌치코트만큼 이토록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옷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우수와 외로움 그리고 지적인 이미지를 몸으로 말하는 트렌치코트는의상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이를 보는 관객들은 트렌치코트 입은 배우를 우상화했다.
모던해지고 멋스럽게 진화하는 트렌치코트
150년이 넘는 긴 역사만큼 트렌치코트는 더욱 모던해지고 다양해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컬렉션에서 트렌치코트로 드레스나 원피스를 선보일 만큼 트렌치코트는 그 개념이 점점 파괴되고 있다.2000년엔 뉴욕 출신 디자이너 미겔 애드로버에 의해 ‘뒤집어진’(그는 버버리의 안감을 겉감으로 만들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버버리 트렌치코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어느덧 트렌치코트는 재클린 케네디나 케이트 모스와도 같은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트렌치코트의 소재나 패턴 등이 다양해져 아무리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해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허리가 굵은사람에겐 허리를 묶는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는 뚱뚱해 보일 수 있다. 골격은 크지만 몸이 말랐다면더블 트렌치코트로 남성적인 멋을 낼 수 있다.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싶다면 상의는 노타이(No-tie)에 하의는 청바지, 스니커즈로 방점을 찍는 센스가 필요하다. 요즘 들어 트렌치코트는 전통 브리티시 트렌치코트의 클래식함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정장과 캐주얼을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인이 많아지고 있다.
스타일링에 있어서도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옷감 소재가 다양하고, 탈부착이 가능한 따뜻한 안감이 있으니 겨울에도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초봄에도 추위 걱정 없이 입을 수 있다.남자들의 경우 트렌치코트 속에 정장을 입는데,어깨 부분이 자칫 로봇처럼 보일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주말엔 터틀넥 같은 편안한 상의를 매치하면 세련돼 보인다. 목도리나 숄, 스카프와도 잘 어울린다. 소품을 활용하면 더욱 트렌디하게 연출할수 있으니 함께 스타일링 해보는 것도 좋다.무엇보다 트렌치코트는 기능적이면서, 어느 세대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클래식한 멋이 있다.남녀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전천후 아이템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계절마다 디자이너들은 트렌치코트를 다양하게 변형시킨 옷들을끝도 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볼레로부터 미니원피스, 판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된 트렌치코트를 보는 일은 즐겁다.트렌치코트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가장 중요한 명제 하나가 다시금 머리에 떠오른다. ‘트렌드는 왔다가 떠나가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