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 확대엔 이견 없다지만… 부산서는 ‘신공항 카드’ 변수로, 부동산·지역개발 大戰된 서울·부산 시장 선거
문수인 기자
입력 : 2021.01.27 15:37:22
수정 : 2021.01.27 15:38:35
‘부동산 대전(大戰).’
4월 치러지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선거운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져 어느 때보다 정책 선거가 중요해진 시점에 각 후보들은 부동산 문제 진단과 해법에 자신의 화력을 모두 쏟아내고 있다.
여야 후보들이 부동산에 사활을 거는 것은 부동산 민심이 선거의 성패를 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민심은 치솟는 집값에 고공행진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꺾어버릴 정도로 성나 있는 상태. 야당은 현 정부의 최대 실정을 적극 활용해 10년 만에 서울시장을 탈환함은 물론 내년 대선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여당은 부동산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정권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인식으로 전력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공급 부족이 현 부동산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해법에 있어 각론은 좀 다르다. 여당 후보는 주택 공급에 있어 공공의 역할을 더 강조하지만, 야당 후보들은 민간 주도 공급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서울시장 출마 후보들의 부동산 정책 집중 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실성이 의문시되는 공약부터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재탕 성격의 공약까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서울시장선거는 부동산 빼고는 다른 이슈가 자리 잡을 공간은 극히 적어 보인다. 출마 후보들을 지원하는 각 당조차 서울시장선거서 부동산 문제를 선거전의 이슈로 전면에 내세울 태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현장으로 달려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자영업자 찾은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간담회 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민 만나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동산 대전의 포문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열었다. 가장 먼저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1월 14일 가진 부동산 정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현 부동산 시장 혼란의 근본 원인에 대해 “정부 주도형 주택공급정책에 있다”고 지적한 뒤, “민간이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주도해 향후 5년간 74만6000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청년 임대주택 10만 호, 3040·5060 세대용 40만 호, 재개발재건축 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을 통해 20만 호 등이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여러 지원책도 함께 내놨다.
정비사업은 용적률을 최대한 완화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초과이익환수제 적용 재건축 사업지의 경우 용적률 상한을 조정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주민과 합의해 용적률을 상향하는 대신 임대주택 공급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지하화된 국철과 전철의 상부공간·시 소유의 여러 유휴 공간· 노후화된 공공임대주택 등 시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부지들을 활용해 미래세대를 위한 공급 물량을 계속 확보해 나가겠다고 제시했다. 청년들을 위해선 ▲청년주택바우처제도 ▲보증금프리제도 도입 등도 제안했다.
세금 규제 완화 방안도 내놨다. 1주택자의 취득세와 재산세의 경우 토지공시지가와 공동주택공시가격 인상분만큼 연동해 세율을 인하하여 예전과 같은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고 했고, 동시에 ▲고가주택의 기준 대폭 상향 조정 ▲일정 기간 이상의 무주택자 DTI, LTV 등 대출 제한 완화 등도 시장 당선 시 우선과제로 해결하겠다고 내세웠다.
국민의힘 후보인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도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 안 전 대표와 부동산 문제의 해법에 대한 인식을 같이한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총선 낙선 이후 전문가 그룹을 정기적으로 만나 부동산 문제 해법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전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부동산 규제 혁파를 내세웠다. 용적률, 용도지역, 층고제한 등 도심 주택 공급을 막고 있는 규제를 완화해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나 전 의원의 구상이다. 나 전 의원은 그러면서 “분양가상한제 폐지”도 내세웠다. 이는 부동산 시장 또한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나 전 의원의 부동산 문제 해법에 대한 인식이 들어있다.
나 전 의원은 이어 “강남·북 균형 발전도 시급한 과제”라면서 이와 관련된 구상인 북부테크노밸리 조성 계획을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밝혔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10만 평 규모의 한국전력 연수원 부지를 활용해 직주공존 형태의 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판교테크노밸리를 벤치마킹할 예정이다.
나 전 의원은 “판교가 고급 주거단지로 거듭난 것은 좋은 일자리와 주거지가 함께 있기 때문”이라면서 “북부테크노밸리 조성을 통해 강북 지역도 판교에 못지않은 살고 싶은 주거단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국민의힘 후보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출마선언 장소를 아예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부각시킬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오 전 시장은 자신의 재임 중에 조성된 ‘북서울꿈의숲’에서 서울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이곳은) 강북을 강남 못지않은 삶의 질을 느끼게 하고자 만든 상징적 공간으로, 뒤로는 박원순 전 시장의 재개발·재건축 탄압 정책으로 중단된 (장위) 뉴타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시작한 뉴타운정책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다. 부동산 문제가 공급 부족현상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부각시킨 전략인 셈이다.
오 전 시장의 부동산 문제 해법 기조는 ‘살고 싶은 곳에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 전 시장은 출마선언 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반값아파트 공급”을 언급했다. 그는 “용산정비창, 강남 서울의료원 부지, 불광동 질병관리본부 등 SH공사가 주도해 반값아파트를 공급할 부지들이 있다”면서 “로또라는 반론도 있지만 주변 집값의 하향안정화를 이뤄내는 데 이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고 자신했다.
오 전 시장의 1호 공약도 부동산 관련이다. 그가 내놓은 것은 ‘1인가구 맞춤형 안심정책’으로, ‘1인가구 보호특별대책본부’를 설치를 하는 것이 골자다.
그는 “서울 시내 1인가구 비중이 30%를 넘어섰는데도 행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20~40대 여성 가구주에 대해선 구역별 경비원 지원과 CCTV 확대 설치를, 60대 이상 가구주에는 손목시계형 ‘스마트 건강지킴이’ 등을 보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주택 공급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20~30대에는 셰어하우스 공급에, 30~50대 장기무주택자에는 청약 특별공급에, 50~60대에는 생활환경 개선에 각각 주력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이 같은 야당 출마 인사들의 주택 공급 중심 부동산 문제 해결 접근법에 대해서 여당은 “또다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지층 세력을 겨냥해 주택 공급의 ‘공공성’을 재차 강조했다.
공약 설명하는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국민의힘), 출마선언하는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더불어민주당), 공약을 발표하는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야당 후보들의) 주장대로 되면 아마 서울 집값은 더 오를 것”이라면서 “야당 후보들은 모든 규제와 재건축, 재개발을 허용해 민간공급 분야를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규제를 푼다는 것은 투기를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의원은 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는 74만 호 공급을 내세운 안 대표를 직접 저격했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재개발·재건축은 계획 수립부터 실제 완공까지 최소 7년에서 10년 이상 걸렸는데, 5년 내에 74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우 의원도 물론 시장에 주택 공급이 더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민간주도가 아닌 공공 물량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이에 그는 ‘공공주택 16만 호 공급’을 자신의 부동산 정책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건설형, 매입형, 민관협력형 등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 대규모 공공주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또 “강변북로나 철도, 주차장 주민센터 등 활용 가능한 모든 부지를 주택공급에 활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또 우 의원은 야당 후보들이 규제완화차원에서 내세운 ‘35층 층고제한 해제’를 자신의 공약집에도 담는 파격도 보여줬다. 다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투기수요를 철저히 막고, 이익환수 또한 흐지부지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여당의원답게 기존 정책의 계승의지도 내세우고 있다.
우 의원은 “신혼부부·청년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청년 월세 지원, 주택 바우처 등 서울시에서 시행 중인 정책을 더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전월세상한제 전면 시행’ 의지도 드러냈다.
▶가덕도 신공항에 요동치는 부산 민심
부산시장 선거 또한 서울시장 못지않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한 가지 특징은 공약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메이킹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인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이 자신의 1호 공약으로 어반루프를 내세운 것이다. 어반루프는 일론 머스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하이퍼루프의 축소판격이다. 하이퍼루프 기술이란 진공 상태 튜브 안에서 자기부상 고속철도를 이용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터널 안 열차의 속도는 1000㎞에 이른다.
박 전 총장은 이 기술을 가져와 부산을 15분형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미래형 리더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박 전 총장은 “탄소중립이 중요한 시대에 도심 내 혁신적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면서 “신공항과 부산 도심 간 이동 시간은 15분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허황된 공약’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즉각 나왔다. 너무 이미지 구축에만 애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여당의 부산시장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인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은 “미국에서 아직은 실험실 수준의 이야기인데 1년짜리 시장선거에 나오면서 그런 공약을 1호로 내세우는 것은 좀 어처구니가 없다”고 꼬집했다.
지역 정가에서도 “구상은 좋은데…”라고 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가능한 일이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이에 대해 박 전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혁신 성장 동력 4개 중 하나로 선정했고, 현재 관련 예산도 투입될 예정”이라면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역시 국민의힘 후보인 이언주 전 의원은 이번 선거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비롯된 점을 부각시켜 ‘여성맞춤형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전 의원은 부산을 ‘성폭력 제로도시’를 만들겠다며 ‘엄마와 가족이 행복한 도시, 부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싱글맘 종합지원센터 설립, 30~40대 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 50대 여성종합건강 관리시스템 완비, AI기반 육아 및 튜터링 지원 등의 공약이 있다.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은 “부산을 동북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세웠다. 부산의 지정학적 위치를 십분 살려 동북아의 물류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의 첫 삽을 재임기간 내에 뜨겠다는 것이 김 전 총장의 청사진이다. 집권 여당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바탕으로 한 공약이다.
한편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부산경남지역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앞지르는 현상이 발생해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월 18∼20일 전국 18세 이상 1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은 전주 대비 8.4%포인트 치솟은 34.5%를 기록했고, 국민의힘은 10.2%포인트 추락한 29.9%에 그쳤다.
정치권에서는 부산에서 민주당의 신공항 띄우기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