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국력 퀀텀점프의 핵심이 되는 밀리테크4.0(miliTECH4.0)을 확보해야 한다. 밀리테크4.0을 확보해 안보와 성장을 동시에 잡는다면 1인당 GDP 5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다.”
매경미디어그룹은 매일경제신문 창간 53주년을 맞아 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28차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안보와 성장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해법인 ‘밀리테크4.0: 기술패권시대, 新성장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매일경제신문, MBN을 비롯해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진으로 구성된 ‘밀리테크4.0 기획팀’이 3개월여 동안 연구한 결과물이다.
연구팀은 밀리테크4.0을 통해 한국이 1인당 GDP 5만달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1인당 GDP 3만달러를 넘어섰다. 향후 첨단 군사기술을 확보해 안보가 강화되면 최대 20%로 추산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할 수 있고,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 밀리테크4.0 기반 차세대 무기 시장 개척으로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 여기에 밀리테크4.0 기술이 가져오는 혁신기업 증가와 일자리 창출로 1인당 GDP 5만달러에 도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는 밀리테크4.0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DARPA(국방고등연구사업국)같은 기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담겼다.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는 국방과 산업에 필요한 미래기술을 현실화하는 로드맵을 설정하고, 이를 구현할 대상을 찾아내 밀리테크를 추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현재 한국형 DARPA를 설치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지만, 군과 기업, 대학과 연구소를 아우르는 첨단과학 기술 네트워크 조성에 걸맞는 조직이 절실하다는 게 연구팀의 조언이다. 특히 재래식 무기의 소요기반(Demand driven)이 중심인 한국 군사기술 R&D가 미래기술 주도(Technology push)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형 다르파를 첨단기술단지인 판교테크노밸리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첨단기술 R&D를 능숙히 소화해 낼 인재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기술 엘리트 부대인 탈피오트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탈피오트는 최우수 고교인재를 선발해 대학교육을 조기에 이수한 뒤, 첨단기술 전문장교로서 국가에 이바지한다.
이미 전 세계가 밀리테크4.0 확보에 뛰어들고 있어 이 같은 흐름에 뒤처질 경우 국가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밀리테크4.0 시대를 향해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 상황을 아직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모습이다. 연구팀은 밀리테크의 중요성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앞선 기술력을 지닌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압도하고 승리했음을 강조했다. 철기문명, 화약·화포, 항공기·잠수함, 핵무기 등이 시대별 앞선 기술력의 상징이었다. 이들 첨단기술은 전쟁을 위해 고안됐다가 이후엔 산업계에서 핵심 동력의 역할을 했다. 사회 전·후방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첨단기술이 곧 밀리테크인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본질은 군사경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21세기 세계 정치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숙명적인 대결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매일경제 국민보고대회팀은 첨단 군사과학기술과 혁신의 측면에서 중국의 패권 도전 양상을 면밀히 분석했다. 세계 양대 초강대국(G2)의 경쟁을 축으로 형성되는 21세기 힘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양상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보고대회팀은 군사, 과학, 산업 등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끝에 무역 경쟁의 이면에는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이 제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내놓은 제조업 2025를 두고 미국은 해당 업종들이 모두 유사시 군사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미국이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를 견제하는 것도 화웨이가 중국 인민해방군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중국은 국방예산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중국이 공개하지 않은 국방비까지 감안한다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안보에 투입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두고 ‘디지털 냉전 시대(Digital Cold War)’라고 규정했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서>의 저자이자 세계적 인문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기술을 선점한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기술을 차지하기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역사를 바꾼 밀리테크
과거 인류 역사에서도 군사과학기술은 항상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군사력과 무기 체계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고, 인류의 성장을 추동해 온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오늘날 군사력은 과학기술 수준이 판가름한다. 더 나은 무기를 가진 나라가 전쟁의 승리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인민해방군 소속 군인 3000명을 미국에 유학시키고 있다.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기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군사기술을 선점한 자가 전쟁에서 승리했고, 패권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과학기술을 ‘밀리테크(miliTECH)’라고 한다. 밀리테크는 기술혁명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했다. 청동기 문명을 멸망시킨 철기혁명은 밀리테크1.0, 화약의 발명으로 등장한 총과 대포는 밀리테크2.0, 인간의 힘이 아닌 기계의 힘을 사용하게 된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전투기와 탱크, 전함을 만든 기술은 밀리테크3.0이다.
그리고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 군사전문가들은 미래 전쟁은 4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술의 영향으로 전장이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확대되고 전투 수단은 무인 자유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롭고 혁신적인 군사과학기술, 즉 밀리테크 경쟁의 승리자가 미래 패권을 차지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밀리테크’에도 4.0의 시대가 도래했다. 밀리테크4.0의 미래 첨단 기술은 인공지능, 퀀텀컴퓨터, 사이버보안, 로봇, 5G 등 분야에서 민군 겸용으로 발전돼 군사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밀리테크4.0을 선점한 나라는 밀리테크3.0 시대의 재래식 무기를 굴복시켜 미래전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이룩할 것이다.
밀리테크는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에서도 진보를 이루는 촉매제였다. 인터넷, 전자레인지 내비게이션 등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사기술에서 시작된 혁신제품이다. 밀리테크의 핵심은 민수와 군수를 구분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밀리테크4.0은 5G네트워크, AI, 로봇틱스, 퀀텀컴퓨팅, 바이오테크 등으로 민수와 군수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용도에 활용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기술들이다. 실제 5G 네트워크, 인공지능, 퀀텀컴퓨팅 등 밀리테크4.0을 형성하는 기술들은 이미 엄청난 미래 시장을 예고하고 있다.
▶전쟁의 양상 변화
밀리테크4.0 시대 신무기들은 기존 밀리테크3.0 시대의 재래식 무기들을 ‘고철덩어리’ 수준으로 만드는 최첨단 비대칭전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현실스텔스, 극초음속 미사일, 사이버폭탄(Cyber Bomb), 버그봇, 워리어플랫폼, 공격형 위성, AI드론군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기술들이 발전 및 상용화됨에 따라 300억달러 규모에서 지지부진하던 기존 무기시장에 2000억달러에서 최대 5000억달러에 달하는 시장으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성장’과 ‘안보’를 담보하는 밀리테크4.0을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은 AI분야에서 관련 특허와 논문 수가 미국의 80% 수준을 넘어섰고, 진일보를 이룩한 기술력으로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탐사하기도 했다. 미국도 반격을 시작했다. 2017년 백악관이 발표한 대외전략보고서, 2018년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안보전략보고서는 미국을 분명한 경쟁국이자 적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확대 증편한 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을 AI와 우주·사이버 기술 분야 연구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기술전쟁은 미국과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 일본, 영국, 러시아, 독일, 이스라엘 등도 연구개발(R&D)투자와 인재 양성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며 기술경쟁에 가세한 모양새다. 이미 패권과 생존을 위해 신무기 개발전에도 돌입했다. 러시아는 위성을 공격할 수 있는 최첨단 레이저-위성미사일을 개발했고, 독일은 작전시간과 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수소연료 잠수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한국 현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현실을 살펴보면 암담하다. 지난 3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고질적인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차 대두될 가능성에 놓였다. 중국은 지난해 우리 방공식별 구역을 8차례나 침범했고, 이웃나라 일본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으며, 최근 우리 군과 초계기 갈등도 겪었다. 우방국인 미국마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고 있어 우리 안보가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기술측면에서도 한국은 아직 4차 산업혁명에 안착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상의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기술은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실에 안주할 경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상도 얼마 안가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