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넝쿨째 들어오는 격이다’
국민건강을 증진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담배값 인상 정책에 흡연자와 담배제조사들의 시름은 깊어졌지만 뒤에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곳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경제적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통사들과 그 오너들이다. 담배유통망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그들은 국민건강을 담보로 매년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는 동시에 담배제조사들로부터 수천억의 광고료도 챙기고 있다. 편의점에 담배를 판매하는 유통기업을 소유한 대기업 오너 일가는 매년 배당금으로만 수 십억원의 이익을 얻고 있다.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으로 최근 담뱃값 인상이 추진되며 이들의 수익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소가 함박웃음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반사이익 예상되는 편의점
판매량 편법으로 줄이는 가맹점들
무려 10년 만이다. 내년 1월부터 담뱃값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연말 국회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여야 모두 큰 맥락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담뱃값 인상은 눈앞으로 다가온 상태다. 담뱃값은 지난 2004년 500원이 인상된 뒤 물가상승을 무시한 채 정체됐다. 정부는 지난 9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련장관회의를 통해 담뱃값 인상, 비가격 정책, 금연치료 집중 지원 등을 포괄하는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 이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인상 폭은 사상 최대인 80%로 현행보다 2000원씩 비싸질 예정이다. 향후 단계적인 추가인상의 단서도 남겨뒀다. 정부는 담뱃값을 물가에 연동해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유력한 선택지는 물가가 5% 오를 때마다 그만큼 인상하는 방안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제관련장관회의에서 “몇 년간 누적되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년이나 3년 동안에 물가가 5%가 오른다면 그것을 담뱃값에 반영해 올리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연동제가 시행될 경우 연간 물가상승률이 2~3%대인 것을 감안하면 내년 담뱃값이 인상되는 시점에도 2년 뒤인 2017년에는 가격이 5000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른 가격을 기점으로 다시 인상폭이 결정되는 만큼 담배가격 그래프는 갈수록 가파른 모양세를 예상할 수 있다.
담뱃값 인상을 두고 지금까지도 격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 정책의 명분으로 ‘흡연 억제를 통한 건강증진’을 주장하고 있는 한편 이를 반대하는 편에서는 ‘증세를 위한 꼼수’라고 반격하고 있다.
이처럼 담배 회사들과 흡연자들은 울상을 지으며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있지만 한 발짝 떨어져 표정관리에 나선 곳도 있다. 담배 판매를 독식하고 있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유통기업들이다. 담뱃값 인상 발표일인 지난 9월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BGF리테일은 3.42%가 오른 6만6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GS리테일은 전날보다 6.6%나 상승했다. BGF리테일과 GS리테일은 각각 편의점 CU와 GS25를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의 주가는 3일간 나란히 강세를 보였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수혜를 예상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담배는 편의점업체에서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품목으로 전체 매출의 약 35%를 차지하며 올 한 해 담배 관련 매출만 각각 1.2조원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담배가격이 인상될 경우 편의점업체 유통 재고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차익과 담배가격 인상으로 매출과 이익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담배는 가격탄력성이 낮은 편이라 가격 인상폭이 클수록 편의점 실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또한 편의점의 경우 최대 한 달까지 재고를 비축할 수 있는데 가격 인상 전 재고 확보로 인상금액의 8.5%에 해당하는 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정부의 담뱃값 인상 추진 정책에 따라 최근 주가가 올랐지만 본격적으로 실적이 늘어나는 것은 내년부터가 될 것”이라며 “담뱃값 인상분이 모두 세금으로 들어가지 않고 통상 유통마진인 10%가 편의점의 수익으로 남기 때문에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담뱃값 인상을 통한 재고이익을 늘리기 위해 편의점들이 자발적으로 판매를 제한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사재기 규제를 빌미로 담배판매량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주가 담배 판매량을 가격인상 전 제한해 담배를 비축한 뒤 담뱃값이 인상된 후 판매해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각 본사에서는 현실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BGF리테일 한 관계자는 “가맹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포가 대다수이며 특정 점포가 담배 판매량을 제한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담배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든 정황이 보이면 시정을 요청하고 최악의 경우 가맹계약 해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익 늘어나는데 손실 보전금까지 챙겨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평균 판매 단가상승에 따른 매출증가 효과는 약 5000억원으로 판매마진 10% 감안 시 이전보다 영업이익은 5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편의점 전체 매출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기관별로 정책시행 이후 담배수요 예상 감소폭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가격인상폭이 수요감소를 상쇄해 편의점 담배 매출 비중은 40%를 훌쩍 넘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100가지가 넘는 품목을 다루는 편의점에 담배 한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져 불균형이 심화될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전문가는 “편의점들이 마진율이 높고 광고수익이 발생하는 담배 판매에 열중하느라 다른 상품은 구색 맞추기만 급급해 실질적으로 ‘담배가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본격적으로 편의점 사업확대에 나선 신세계가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어 편의점을 통한 담배판매 비중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편의점주는 이번 담뱃값 인상을 통해 약 10%의 추가 이윤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에는 232원의 제조원가 유통마진 인상분 항목이 책정돼 있다. 이 가운데 소비자가격의 10% 가량인 182원은 담배 소매점 마진으로 편의점 수익으로 돌아간다. 가격인상을 통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담배소비량에 대비한 보전금인 셈이다.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보건정책의 하나로 꺼내든 담뱃값 인상으로 편의점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는 격이다. 이에 반해 담배 소비 감소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한 국내 담배 농가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어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너 일가 직접 관련된 외산담배 유통권
국내에서 판매되는 외산담배의 최대 유통업체는 ‘옥산유통’이다. 이 회사는 1997년부터 말보로 등을 생산하는 한국필립모리스와 상품 독점공급 계약을 맺고 할인마트와 편의점 등에 담배를 공급하고 있다. 옥산유통의 대주주는 GS그룹 오너 일가이며 주요 거래처는 GS리테일이다.
내부거래를 통해 탄탄한 성장을 거듭해온 옥산유통은 매년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옥산유통의 자산총계는 2005년 4월 GS그룹으로 처음 계열 편입할 당시 200억원 미만에 머물렀으나 2013년 기준 약 1400억원으로 7배나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옥산유통은 지난해 매출액 5500억원, 영업이익 45억원, 순이익 37억원을 거뒀다. 매출 가운데 1715억원가량은 GS리테일이 옥산유통에게서 매입한 금액이며 GS엠비즈 역시 3억원 상당의 담배를 구매했다. 옥산유통 총매출에서 GS그룹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1%가량이다. 여기서 발생했고 순이익의 절반은 배당을 통해 범GS그룹 3·4세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4월 1일 기준 옥산유통의 대주주를 살펴보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 씨가 20.06%(2만60주)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어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장남인 허준홍 씨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씨가 각각 19.04%(1만9040주), 7.14%(7140주)를 보유 중이다.
GS리테일은 허승조 부회장이 맡고 있다. 허승조 부회장은 GS그룹이 분리되기 전 LG그룹의 공동 창업자인 허만정 씨의 아들이다.
한 재계 전문가는 “옥산유통은 GS리테일과 담배 공급 계약은 매년 수의 계약으로 이뤄져 왔다”며 “GS그룹 친인척 간 계열분리와 향후 경영승계에 들어갈 자금은 옥산유통 같은 업체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한편 롯데그룹 역시 과거 담배유통과 관련해 가맹점과의 계약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2012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의 편의점 ‘세븐일레븐’ 직영점과 가맹점 중 20%가량인 891개 점포의 담배 소매인이 세븐일레븐 법인이거나 전·현직 회사 대표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소진세 전 코리아세븐 대표 등의 명의로는 91개나 지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담배사업법 제16조 및 시행규칙 제7조에 따르면 담배를 판매할 수 있는 담배 소매인은 점포를 갖추고 담배를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고자 하는 자에게 시장, 군수, 구청장이 지정하도록 돼 있다.
당시 코리아세븐 측은 “위탁 가맹점의 경우 점포 임차권, 사업자등록, 상품 소유권 등이 모두 법인으로 돼 있고 가맹점주는 판매를 대리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담배소매인 지정도 법인이 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신 회장 등이 담배 소매인으로 지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행정 착오 때문”이라며 “모두 법인으로 신청했으며 개인 차원의 담배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CU와 GS25의 경우 위탁 가맹점도 가맹점주가 담배 소매인으로 지정돼 있는 것이 드러나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세븐일레븐 측에 확인한 결과 이 같은 관행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업계 전문가는 이에 대해 “편의점 개점 시 담배사업권이 있는지는 상당히 중요하다”면서 “위탁 가맹점주가 담배 판매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계약기간 종료 후 다른 회사의 편의점으로 계약을 맺거나 슈퍼를 열기 위해 가지고 나가기 쉬워 우회적인 안전장치를 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